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18
#418화
대통령비서실장, 조병철. 삼합회의 보스, 장쉬안.
두 사람의 술자리는 밤까지 이어졌다.
“어떻게, 음식은 입맛에 맞으십니까? 일부러 중식도 겸하는 곳을 골랐습니다만.”
“만족스럽군요. 요리사를 한번 만나보고 싶을 정돕니다.”
“허허허. 다행입니다. 자, 한잔 받으시지요.”
술잔이 오갔다. 얼핏 보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친목을 다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의 두뇌는 앞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셈하느라 바쁘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이 술도 마셔보시지요. 원소주라고, 작년부터 인기입니다.”
“증류주군요. 어디.”
반면, 그들이 입은 호의적인 말들을 내뱉으며 웃었다.
그로부터 더 시간이 흐르고, 자정이 가까워졌다.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에 홍콩으로 올 일이 있으시다면, 그땐 제가 좋은 것들로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허허. 듣기만 해도 기대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했다.
물론 명함을 교환하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부릉-.
장쉬안이 차에 오르고, 이내 그들 일행이 먼저 식당을 떠났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조병철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정우가 그 손에 담배를 들려준 뒤,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치익-.
조병철은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실장님.”
“후…. 왜 그러나.”
“아까 말씀 나누실 때, 건너편 저 건물에 언뜻 누굴 본 듯해서 직접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갔을 땐 아무도 없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수상해서 말입니다.”
“누구일 것 같던가?”
잠시 고민하던 김정우가 답했다.
“국정원… 쪽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항상 실장님을 주시하고 있을 테니까요.”
“또?”
“이주혁. 그놈일 수도 있습니다.”
“이주혁이라.”
조병철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의심하고 있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예. 그렇습니다.”
김정우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주혁이 선생을 족치기 위해 이를 갈고 있던 것을 말이다.
그리고 선생과 전면전을 벌였다. 승리했는지 선생은 그 후로 보이지 않았고.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선 선생의 대리인을 자청한다니.
과정을 지켜본 김정우로선 이해가 가지 않는 광경이었다.
“뭐, 이주혁이 보낸 사람일 수도 있겠지.”
“더 추적해 볼까요?”
“아니, 됐네. 굳이 그런 데 힘을 쓸 필요까지야.”
“그래도, 실장님과 장 사장이 만났다는 게 새어나가면….”
“제약회사 사장과 만난 것뿐인데, 문제 될 게 있나?”
“…알겠습니다.”
김정우가 고개를 숙이자, 조병철이 한 차례 더 연기를 뱉고서 말했다.
“물론 차영규, 그놈 귀에 들어갈 순 있겠지. 하지만 고작 그걸로 날 어떻게 할 순 없네.”
“맞는 말씀입니다.”
“우린 그저 다음으로 할 일만 준비하면 된다는 소릴세.”
탁. 탁.
조병철은 재를 턴 꽁초를 휴대용 재떨이에 넣고 몸을 돌렸다.
“우리도 가지.”
“예. 댁으로 모실까요?”
“아니.”
고개를 저은 그가 김정우를 향해 말했다.
“목까지 오는 곱슬머리에, 수염을 기르고 선글라스를 낀 남자. 이자를 찾아야 하네. 장 사장의 수하를 납치한 것 같다더군.”
“예. 수배해 놓겠습니다.”
조병철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쉬안과 만났다는 그 남자. 놈을 찾아야 한다.’
* * *
조병철과 장쉬안이 만났다.
난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성수….”
조병철이 저번에 나한테 말했었다.
성수를 장쉬안 쪽에 넘겨서 양산하면 어떻겠냐고.
아마 장쉬안이 한국으로 들어온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다만 마음에 걸리는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조병철이 성수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지.
그 양반이 사병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전장에서 활동하는 군인이나 용병들이 쓸 법한 약물을 왜 원하는 걸까.
“흠.”
뭐, 여기서 고민해봤자 결론이 날 문제는 아니었다.
정말 사용할 곳이 있어서 그랬거나….
‘장쉬안을 만나기 위한 명분이겠지.’
단순히 각성제 하나를 보고 삼합회와 접촉한다는 리스크를 질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 굳이 이유를 찾아본다면 이거였다.
그렇다면 삼합회를 통해 뭘 얻을 수 있길래?
스윽.
의자에서 일어나 사무실 안을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당장에 생각나는 이유는, 뒤처리를 맡아줄 조직이 필요해서.
국내 조폭은 현재 숨을 죽인 채 얌전히 지내고 있다.
조폭 담당이라는 명목하에 등장한 특수수사국은 러시아 킬러도 때려잡으며 실적을 쌓는 중이다.
괜히 나서서 까불다가 콩밥 먹고 싶은 또라이는 없을 테니, 조폭들이 조용한 건 당연했다.
심지어 서울의 조직들은 나한테 협조하는 고광목이 휘어잡았고 말이지.
저벅.
물론 그런 고광목에게 접근한 놈들도 몇 있었다.
원하는 건 적당히 들어주라고 해뒀지만, 선을 넘거나 일반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은 거절하라고 말해놓은 상황.
그러니 몇몇 정치인이나 기업은 사람들 등골을 빼먹거나 위험한 일을 맡아줄 조직이 필요했을 거다.
‘안 그래도 슬슬 떡밥을 던져주려고 했는데… 이러면 조금 더 기다려 봐야겠어.’
이쪽 입맛대로 꾸린 특수수사국이 금방 생긴 이유는, 이전의 강남파처럼 모임의 구성원들이 뒤처리를 맡길 수 있는 조직을 엄선하겠다는 내 제안이 유효했기 때문.
하지만 현재 특수국은 범죄자 소탕만 할 뿐,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일은 아직 진행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슬슬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 난, 춘식이 쪽 애들이나 고상미 동생들을 모아 새로운 조폭이라며 소개할 생각이었다.
그 상황에서 조병철이 삼합회와 접선했다.
섣불리 일을 진행하기엔, 두 사람의 거래가 변수가 될 확률이 낮지 않았다.
-아, 정말입니까?
그러한 내용을 복귀 중인 춘식이에게 전달하자, 녀석은 약간 실망한 듯 말했다.
-안 그래도 조폭 출신이 많은지라 실감 나게 할 수 있었는데, 아쉽네요.
춘식이네를 이용해 그들의 정보를 얻으려던 나도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조병철과 장쉬안이 다이렉트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면, 우리 쪽에선 그 내용을 알 방법이 전무했으니까.
그놈들이 있는 곳에 도청기라도 설치하는 게 아닌 이상.
“흠….”
그래. 일단 이 문제는 당장 해결할 필요는 없다. 해결하기도 어렵고.
단지 어디까지나 약간의 차질이 생겼을 뿐, 계획이 틀어진 건 아니었다.
슥.
나는 조금 전 선생, 민지훈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개새끼 – 논의할 게 있으니, 가능할 때 통화 주세요.]꾹.
통화 버튼을 누르자, 신호음이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이 전화를 받았다.
-타이밍이 좋군요. 마침 시간이 나던 참이었는데.
“논의할 게 뭐지?”
-그 전에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유선화, 이주혁 씨 짓입니까?
성남지부의 갑작스러운 폭로. 그걸 주도한 게 나냐는 질문이었다.
그에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래. 문제라도 있나?”
-아뇨. 오히려 나로선 반가운 상황입니다. 반대파를 집결시킬 명분이 생겼으니까요.
“반대파라면, 장쉬안 외에 다른 사람을 추대하려던 사람들?”
-맞습니다. 장쉬안은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잡니다. 자신을 반대했던 이들을 끝까지 안고 갈 만큼 아량이 넓지도 않고요.
“숙청이 있을 거란 소리군.”
-어디까지나 정치적으로겠지만, 확실합니다. 안 해도 내가 지시할 테니까요.
척.
걸음을 옮기던 발을 멈추고 물었다.
“혹시 해서 묻는데, 유선화를 방패막이로 내세울 생각이냐?”
-방패막이가 아닙니다. 반대파의 유일한 희망이죠.
“말장난은 좋아하지 않아. 특히나 너와 하는 건 더더욱 말이지.”
-그것참 아쉽군요.
전혀 아쉽지 않은 말투였다.
-그래요. 객관적으로 보면 방패막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장쉬안이 타격을 입든, 반대파가 쓸려나가든 유선화와 성남지부는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요.
“새우등이 터져나갈 거란 말이네.”
-그러기 위해서 증거를 남겨놓은 거니까요.
나는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일부러 남겨놓은 거였나.”
유선화의 사촌 오빠이자 전 성남지부장, 유선규가 같은 삼합회에게 살해당했다는 증거.
이놈이 처리했는데 여태껏 남아있다는 게 이상하긴 했어.
-장쉬안을 보스로 만들긴 했지만, 삼합회 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게 놔둘 생각은 없습니다. 너무 덩치가 커지면 움직일 때 힘이 들거든요.
목줄로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사이즈를 조절하겠다는 뜻이구만.
-안 그래도 성남지부 쪽에 접촉할까 생각 중이었는데, 이주혁 씨가 일을 잘 처리해 주셨습니다.
“너 좋으라고 한 일은 아니다.”
-어쨌든 결과는 좋았죠.
잠시 고민했다.
삼합회 내부의 정보는 나보다 민지훈, 이놈이 더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리고 증거도 직접 남겨뒀으니, 그걸 이용해 장쉬안을 공격하기도 더 쉽겠지.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하나만 묻자.”
-얼마든지요.
“유선화와 성남지부엔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 수 있어?”
-글쎄요. 방법이야 찾아보면 있을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나는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이유는 있어. 내가 약속했거든.”
-…약속이라고요?
“그래. 협조하는 대가로, 성남지부의 안전은 확보해 주겠다고 했지.”
-그럼 직접 보호해 주면 되잖습니까.
“아니, 안 돼. 조직 내부에서의 최소한의 입지는 만들어줘. 발언권이라도 있게.”
-….
그 말에 잠시 침묵하던 민지훈이 물었다.
-조폭을 혐오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습니까?
“성남지부엔 평범한 상인들도 속해 있다. 원래는 삼합회가 아니었지만, 그 동네 조폭들에게 보호받기 위해 소속된 일반인들도 존재해.”
또 험악한 몇 놈을 제외하면, 성남지부는 사실상 싸울 수 있는 인원이 몇 되지 않았다.
그리고 유선화가 지부장이 된 이후로 온건한 성향이 더 강해져, 지금은 거의 상회나 연합 느낌의 조직이 된 상태였다.
-무르군요. 여전히 물러요.
“인간 된 도리라고 하는 거다. 이건.”
남에게 피해 주고 살아오지 않은 이들이, 단순히 삼합회에 소속되어 있었단 이유로 해코지를 당한다면.
유선화에게 그런 약속을 한 나는 죄책감을 느끼게 될 거다.
물론 성남지부가 타락하거나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때 가서 내가 처리하면 된다.
바보 같은 짓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적어도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방법을 한번 고민해 보죠.
“…그래.”
-노력은 해보겠습니다만, 그걸로 인해 일이 꼬인다면 기존의 방식대로 하겠습니다.
“알았다.”
-그럼 이만.
뚝.
전화를 끊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성남지부를 버려도 문제는 없다.
그러나 왜인지, 이대로 그 사람들을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
이내 그 이유를 깨달았다.
이 감정이 무뎌지면,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될 거라는 불안감. 그리고 두려움 때문이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 목숨을 파리 같이 생각하며 앞만 향해 달리는.
그런 인간으로 변하고 싶진 않았다. 내 사람들을 그런 놈 밑에서 일하게 두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후….”
마른세수를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성남지부엔 다양한 상인들을 포함해, 여러 기술자가 많았다.
거기다 우리 흥신소에 스카우트할 만한 정보원들도 꽤 있었다.
아예 성남지부를 물자 조달 같은 용도로 써먹어도 좋겠네.
나는 내려가 있던 입꼬리를 다시 올렸다.
‘일단… 빚을 좀 더 지워놓을까?’
그래야 당당하게 이것저것 시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씨익.
우리가 이렇게 도와주는데, 걔네도 그 정도는 협조해 줘야지 않겠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