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2
041화
[가락동 청과물 창고에서 대형 화재 발생.] [불길은 5시간 만에 잡혀. 재산 손실은 1억 원대로 추정, 인명 피해는 없어.] [송파소방서, 화재 원인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틱.
뉴스를 보던 주철수가 TV를 껐다.
주철수의 옆에는 마종석 이사와 그의 수하들이 있었고, 고개를 푹 숙인 외눈 한인석 변호사가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한 변호사.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그, 그게 사장님. 정상적으로 코카인을 밀수했고, 예정대로 각 총책에게 분배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화염병이 날아들어서…….”
“아니. 아니지. 그게 아니라,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묻고 있잖아. 이번 계획은 자네하고 마 이사, 그리고 서울광목파 핵심 인원밖에 모르는 중요한 건이었어. 조직에 프락치가 숨어있을지도 몰라서 우리끼리 몰래 진행한 일이지. 새어 나갈 구멍이라곤 없었네. 근데, 어떻게 안 걸까? 그것도 정체불명의 인간들이 말이야.”
“…….”
주철수 무리는 SA시큐리티가 이런 대규모 밀수 건에 초를 쳤다는 사실을 몰랐다.
검은 마스크를 쓴 무리들.
그놈들이 갑자기 나타나, 화염병을 던지고 연기를 피해 밖으로 나오는 조직원들을 습격했다.
그것 외에는 한인석 변호사도 아는 게 없었다.
짜악-!
고요했던 사무실에 뺨을 후려치는 소리가 울렸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강하게 맞은 한인석이 아픔을 참고 최대한 자세를 잡을 때였다.
“적어도 내 사무실에 들어올 때는 누구 짓인지는 알아야지. 아보카도 컨테이너까지 도둑맞았다면서, 그냥 기어들어 와?”
“죄, 죄송합니다. 누군가 작정하고 저희 꼬리를 밟은 거 같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알아보겠습니다.”
“쯧.”
주철수가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자네한테 신뢰가 안 가는구만. 못 믿겠어. 불안해서 자네한테 맡길 수가 없네.”
“사, 사장님.”
“조만간 소방서에서 마약의 흔적을 발견할 거야. 그때, 한 변호사가 책임지고 들어가게. 모든 과업은 자네가 짊어지게나.”
“……사장님. 제발 제 실수를 바로 잡을 시간을…….”
“시간은 감방에서 많이 가지게.”
불길이 번지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하필이면 마약을 숨긴, 아보카도 상자가 몇 박스 남아 있었고 그걸 회수하지 못했다.
송파소방서에서 작정하고 화재 원인을 밝히기로 한 이상, 세밀한 감정에 들어갈 거고 창고 안에서 마약의 흔적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주철수는 미리 한인석 변호사에게 모든 책임을 지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단독으로 벌인 일이며, 혼자서 마약 밀수를 했고 유통까지 하려고 했다는 식으로.
주철수의 꼬리 자르기였다.
타고 타고 올라오다가, 자신의 이름이 나오기 전에 미리 꼬리를 잘라 안전을 도모하는 방식이다.
그걸 알고 있기에 한인석 변호사는 바짓가랑이라도 잡으려 했다.
“저한테 시간을 조금만 주시면, 배후에 누가 있는지 찾아내겠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해내겠습니다.”
“자네, 말이 다르지 않은가? 저번엔 분명 이번 일이 실패하면 책임지겠다고 한 거 같은데?”
“그땐, 이런 변수가 생길지 몰랐습니다. 다시, 제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흠…….”
콧소리를 뱉어 낸 주철수가 한인석 변호사를 내려다보았다.
“첫째가 올해 고등학교 들어가고, 둘째가 중2라고 했나? 둘 다 딸이라고?”
“……!!”
“모두 책임지고 감방으로 가지. 평생 입 다물고 있으면, 나도 가만히 있겠네.”
“…….”
한인석 변호사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 사태를 책임지지 않으면, 가족들이 다친다.
그냥 다치는 것도 아니고, 평생을 주철수라는 손아귀에 잡혀 처절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의 밑에서 일한 한인석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제,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아내와 애들은…….”
“아무 짓도 안 한다니까. 자네만 입 다물고 있으면 말이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나가 봐.”
“예.”
축 늘어진 어깨로 사무실을 나서는 한인석.
악의 축에 빌붙어 살았던 법조인은 평생 교도소에서 콩밥이나 먹어야 하는 인생으로 바뀌었다.
한인석 변호사가 떠나자.
주철수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마종석 이사를 쳐다봤다.
“앞에 두 건은 제대로 처리했지?”
“예. 그건 문제없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첫 건부터 들켰으면, 손실이 엄청날 뻔했어.”
이미 두 차례 아보카도 수입으로 마약을 들여온 주철수였다.
마지막 건인 세 번째에서 틀어지긴 했지만, 이미 앞선 밀수에서 상당히 재미를 본 상태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인석이 살아서 이 방을 나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컨테이너는 누가 가지고 갔는지 모른다고?”
“애들은 풀어 놨습니다. 뇌물 받은 경찰들을 풀어서 CCTV도 확보하고 있는 상탭니다. 조만간 꼬리가 잡힐 겁니다.”
“그래. 이런 건 마 이사가 잘 처리하니까 기다리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의자에 몸을 눕혔다.
“내 밑에 마 이사 같은 친구만 있으면 좋겠어. 누굴 시켜 먹으려고 해도 하나 같이 덜 떨어져서 시켜 먹지를 못하겠네.”
“…….”
“내가 자네 믿는 거 알지?”
“물론입니다. 사장님.”
“좋아. 그래서 말인데, 컨테이너 찾는 건 애들한테 시키고, 자네 식구들은 일 하나 따로 처리해 줄 수 있겠는가?”
“말씀만 하십시오.”
마종석 이사는 용병 출신이다.
돈에 움직이는 사람이지만, 돈을 주면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주철수 밑에 있는 그는, 명령만 내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오늘 밤, 서울광목파 부두목을 만나려고 하네.”
“……?”
“서울광목파를 부두목 중심으로 재편하려고 해.”
“!!”
평소 표정 변화가 없는 마종석 이사가 이번엔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지금 주철수가 하는 말은 협업 관계에 있는 서울광목파를 친다는 말이다.
서울광목파의 두목, 고광목을 제끼고 부두목을 통해 서울광목파를 새로 세운다는 거다.
이후로는 뻔하다.
부두목 중심으로 재건된 서울광목파는 강남파 아래의 분파로 들어올 거다.
서울의 3대 세력 중 하나인 서울광목파를 흡수 합병한다는 소리였다.
“사장님. 전 반댑니다.”
“왜?”
“명분이 없습니다. 고광목을 제낀다고 해도, 명분이 없으면 밑에 애들이 부두목 밑으로 모이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냉혹한 조폭의 세계라고 해도 명분이 없으면, 그냥 반란일 뿐이다.
고광목이 죽고, 부두목 중심으로 조직을 합치려고 해도 명분이 없으면, 밑에서 일하는 조직원들은 납득하지 않는다.
오히려 봉기를 일으킬 확률이 높았다.
“훗.”
그런 자기 생각과는 달리, 주철수는 피식 웃어 보였다.
“명분이 없으면,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
“트럭 두 대는 빠져나갔다고 했지?”
“네. 한 대는 대구로, 다른 한 대는 부산에 도착했답니다.”
“거기 물건 내리지 말고 올라오라고 해.”
“??”
“종로에 가면, 고광목 소유의 개인 상가 건물이 있다. 거기 주차해 놓으라고 전해.”
“……!!”
마종석이 주철수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눈썹을 치켜떴다.
이 사건의 배후를 고광목 개인의 욕심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다.
아보카도를 통한 마약 밀수가 돈이 되니까, 고광목이 단독으로 일을 벌이고 마약을 챙긴 것으로 만들려는 그림이다.
‘치밀한 사람.’
마약을 실은 트럭 두 대가 원래 목적지가 아니라, 고광목 개인 명의의 건물로 간다면, 그의 식구들도 의심할 게 뻔했다.
대구와 부산으로 흘러 들어가야 할 물량이 왜 여기에 있냐는 물음과 함께, 컨테이너에 실은 마약도 고광목이 꿀꺽했다는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걸 서울광목파의 부두목이 잡고 늘어지면, 고광목의 등에 칼을 꽂을 명분이 생긴다.
자기 식구들은 챙기지 않고, 제 잇속만 챙기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거다.
“일전에 보니까 부두목 그 친구가 욕심이 많더구만. 고광목 밑에서 일하는 걸 별로 내켜 하지도 않고 말이야. 우리가 미끼만 제대로 건네주면, 부두목이 알아서 낚싯대를 던질 걸세. 그때, 자네가 고광목을 처리하게.”
“……예.”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전쟁터에서 살아온 그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주철수는 큰 그림을 보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득이 아니라, 서울 전체, 경기도 일대, 그 너머의 전국구를 통합하려는 야망을 차근차근 실행하고 있는 무서운 인간이었다.
“미끼를 무는 즉시, 고광목의 머리를 가져오겠습니다.”
“뭐, 이쁜 얼굴이라고 가져오나. 적당히 시멘트 채워서 바닥에 버려.”
“예. 사장님.”
담뱃불을 끈 주철수가 마 이사를 보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어떤 놈들이 우리 물건을 가져갔는지 확실히 알아봐야 하네. 그놈들 실력을 보니, 예사 놈들은 아니야. 계획적이고 과격해. 미추리파에서 이런 짓을 했을 리는 없고, 성남이나 인천에서 움직였을 수도 있으니, 그쪽으로 파 보게.”
“고광목 처리하고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자네만 믿겠네.”
주철수의 추측과는 달리, 마종석 이사는 성남이나 인천 쪽 조폭의 연관성을 배제했다.
그가 만난 남자는 전쟁터에서나 볼 수 있는 진정한 프로다.
목숨을 걸고 상대해야 하며, 찰나의 순간에 목숨이 날아갈 정도의 프로.
성남과 인천에는 그런 인간이 없다.
새로운 세력. 자기가 알지 못하는 세력이 꿈틀대고 있다는 말이다.
‘이건 아직 말하면 안 되지.’
다른 명령에는 복종하면서도 주철수에게 이 사실 만큼은 말하지 않았다.
이걸 알게 된다면, 주철수의 조직원들이 백방으로 움직일 게 뻔하니까.
그럼, 학수고대하는 그 인간과의 1대1 대결이 무산된다.
전사의 피가 흐르는 마종석 이사에게 그것만큼은 허용되지 않았다.
***
“으……. 대가리야…….”
마종석 이사가 칼을 갈고 있는 그 사람.
라세흠 부장은 이마에 얼음을 대고 부어오른 혹을 누르고 있었다.
마종석 이사의 플라잉 니킥을 이마로 받아 내고 얻은 상처였다.
“부장님!”
“아……. 왜? 대가리 아파. 소리 지르지 마.”
“제가 마종석 이사는 그냥 보내라고 했죠.”
“보냈어. 그냥은 아니지만.”
“하…….”
저 인간이 오다가 넘어져서 이마에 혹이 났을 리가 없다.
불 보듯이 눈에 보인다.
라세흠 부장은 용병 출신의 마종석 이사를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놈의 실력이 보고 싶었을 테고, 주먹이라도 나누고 싶었을 거다.
‘애초에 말한 내가 병신이지.’
아예 언질을 했으면 안 된다.
라세흠의 혈기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게 문제였다.
“그래서, 어떻던가요?”
“마 이사?”
“네.”
“음……. 네 기준으로 말해 주면, 네가 맨손으로 붙으면 백 프로 진다. 네가 쿠크리를 들고 싸우면, 막상막하는 될 거야.”
“……?!”
마종석 이사. 그 인간도 보통 괴물이 아니네.
“그나저나, 컨테이너는 어떻게 했냐?”
“김포 쓰레기 매립지 근처에 버렸습니다. 안에 있는 아보카도는 직원들이 차에 따로 실어서 뺑뺑이 돌리고 있고요.”
주철수의 경찰과 커넥션이 닿아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컨테이너를 찾아낼 테니, 안에 있는 내용물을 빼서 승용차, SUV, 트럭 등으로 돌리면서 흔적을 없애 가고 있다.
절대 찾을 수 없게, 돌리고 돌리다가…….
“한 3일 후면 여기로 올 겁니다.”
“아보카도를 여기 숨기겠다고?”
“네. 등잔 밑이 어두운 거 아닙니까? 그리고 그런 위험한 걸 아무 데나 놔둘 수도 없고요. 깔끔하게 흔적을 지우고 이 건물 지하 창고에 넣어 둘 겁니다.”
어찌 보면, 여기가 가장 안전하게 아보카도를 보관할 수 있는 장소다.
인간 병기 15명이 지키는 곳.
혹여, 지하 창고에 아보카도가 있다는 걸 들킨다고 해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다.
“음……. 근데, 그냥 버리는 게 낫지 않냐? 이러나저러나 마약이잖아. 우리가 들고 있어서 좋을 게 없을 거 같은데…….”
“쓸 데가 있습니다.”
“응? 어디에 쓰려고?”
“던지기 해야죠.”
“……??”
마약은 중범죄로 취급되는 물건이다.
이건 귀한 걸 얻었는데, 그냥 버릴 수야 있나?
“주철수한테 마약을 던질 겁니다.”
“!!”
된통 당하게 던져 줘야지.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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