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20
#420화
호정기획의 최상층에 있는 회의장. 그곳에 모인 이들은 대책을 세웠다.
지난달 체포당했던 주성재의 입에서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연예인의 이름이 나오게 만든다.
거기다 몇 주 뒤에 2006 독일 월드컵이 열린다.
아직 2002년의 열기가 남아있을 테니, 사람들은 이번 월드컵을 잔뜩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적당히 언론을 통해 시민들의 시선을 돌리면, 자연히 정치인들의 청문회나 재판에 관심을 가지기 어려워진다.
“그러니 최대한 조용히 넘어갈 수 있도록, 알아서들 처신합시다.”
조병철의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고작 이런 방식으로 어영부영 넘어갈 순 없겠지만,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이들은 적당히 잠재울 수 있을 터.
“역시 현명하십니다.”
몇몇 이들이 아부성 대사를 날렸다.
그에 조병철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 자리는 여기서 마무리하는 걸로 하지요. 박 사장.”
“예. 실장님.”
“다른 안건은 있나?”
호정기획의 사장, 박광훈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없습니다.”
“그렇군. 정리하게.”
“알겠습니다.”
회의가 파하고, 다들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바쁘게 자리를 나섰다.
묵묵히 앉아있던 차영규도 몸을 일으키려 했다.
“잠깐. 차 원장.”
“…무슨 일이십니까.”
“잠깐 이야기 좀 하지.”
그 말에 차영규는 다시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급한 사안입니까?”
“왜, 바쁜 일이라도 있나?”
“…골치 아픈 일이 생겨서 말입니다.”
차영규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국정원의 실력 있는 요원, 홍기동이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배신의 정황이 있기에 최대한 빨리 잡아 와야 했는데, 어째서인지 그의 흔적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사람을 의심하고 있던 차영규가 먼저 그 일을 언급한 것이었다.
“자네도 그런가? 요즘 다들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야.”
그러나 조병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반응했다.
물론 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에 속진 않았다.
감정을 숨기고, 자신의 의도는 드러내지 않으면서 남의 생각은 귀신같이 읽어낸다.
조병철은 그런 인간이었으니 방심하지 않는 건 당연했다.
조용히 입맛을 다신 조병철이 화두를 던졌다.
“차 원장.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뭡니까? 말씀하시죠.”
“얼마 전에, 내 저택에 도둑이 든 것 같아.”
그 말에 차영규는 표정을 관리했다.
“실장님 집에 도둑이 들었단 말입니까?”
“내가 사는 곳은 아니고, 가끔 자식들 맞이할 때 쓰는 저택이지.”
“경찰에는 신고하셨습니까?”
“물론. 다만 경찰이 그 도둑을 언제 잡을지 모르잖나? 그래서 자네가 좀 도와줬으면 해.”
끄덕.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스윽.
박광훈은 조병철의 시선을 받고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났다.
“편하게 대화 나누시죠.”
“고맙네. 박 사장.”
박광훈이 회의장을 나서자 조병철이 말했다.
“내가 꽤 중요한 걸 도둑맞았네.”
“어떤 겁니까?”
“자네가 물어다 준 저치들 약점.”
“….”
차영규는 이주혁에게 받은 파일들을 떠올렸다.
“그걸 자네가 회수해줬으면 좋겠군.”
“…당장은 힘들 수도 있습니다. 저희도 상황이 별로 좋지 않은 터라.”
“무슨 일이길래 그러나?”
조병철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차영규는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블랙 하나가 배신했습니다.”
“배신이라고?”
“예. 아직 추적 중입니다만, 워낙 신출귀몰한 놈이라 흔적을 찾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특히 홍기동은 더러운 일을 자주 맡아 하던 요원이다.
어디 가서 나발을 불기라도 한다면 상당히 곤란해질 가능성이 있었기에, 차영규는 그를 추적하느라 곤욕을 겪고 있었다.
설명을 들은 조병철은 묘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본인뿐만 아니라, 병원에 있던 노모까지 들키지 않고 데려갔단 말이지….’
그의 머릿속으로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국정원이 관리하던 병원에서 환자를 몰래 빼낼 수 있고, 능력 있는 인재를 스카우트해 자기 사람으로 만다는 데 탁월한 자.
‘설마, 그 녀석인가?’
조병철은 유력한 가설을 세웠지만, 차영규에게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짐작 가는 배후는 없나? 독단적인 행동은 아닐 것 같네만.”
“아직 확인된 건 없습니다.”
차영규는 속으로 한 마디를 삼켰다.
‘의심 가는 사람은 있지만.’
입 밖으로 내기엔 그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조병철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차피 어디 가서 입을 열진 못하지 않겠나?”
“아는 게 많습니다. 모임에 관한 정보를 떠벌릴 수도 있어요.”
물론 차영규가 홍기동을 추적하는 이유는 단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베이징에서 가져온 정보와 각성제. 그것들을 손에 넣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있어야 조병철을 공격할 수단이 생길 테니까.
그러한 이유 탓에 어떻게든 조병철에게 관련 내용을 숨겨야 했다.
만약 그가 알게 된다면, 지금까지 계획해온 모든 게 물거품이 되어버릴 것이다.
“자네 상황은 알겠지만, 내가 도둑맞은 물건도 꽤 중요한 거라 말이지.”
조병철도 자신의 의도를 숨기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저택을 털어간 의문의 괴한들. 그는 얼굴을 가린 그 남자들의 정체를 국정원의 요원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를 기만하는 이 상황에서, 먼저 한발 물러난 것은 차영규였다.
“정 그러시다면, 일단 말씀하신 것부터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스윽.
조병철은 어느새 꺼내든 서류를 그에게 내밀었다.
“카메라에 찍힌 차량번호를 조회해 봤네만, 가짜 번호판이더군.”
“다른 정보는 없습니까?”
“얼굴도 가리고, 지문 같은 것도 남기지 않았네.”
“철저하군요.”
이주혁이 증거를 남겨두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혹시 뭐라도 나왔다면, 그와 힘을 합쳐 조병철을 무너뜨리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졌을 테니 말이다.
“근처 CCTV를 전부 뜯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렇지. 다만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고 싶어서 말일세.”
조병철이 미소를 지었다.
“자네라면 내가 믿을 수 있지. 안 그런가?”
차영규도 마주 입꼬리를 올렸다.
‘자기 가족도 믿지 못하는 인간이….’
드륵.
차영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 도둑들은 저희 쪽에서 조사해보겠습니다.”
“고맙네. 국정원에서 조사하면 놈들도 머지않아 잡히겠지.”
조병철의 말에 담긴 뜻은 이러했다.
국정원이 나섰는데도 범인을 잡지 못하면, 그땐 너희들이 한 짓이라고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그걸 눈치챈 차영규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소식 있을 겁니다.”
저벅.
차영규는 발걸음을 돌렸다.
조병철이 이렇게 나오면 외통수였다.
진짜 범인은 이주혁이라고 지목할 수도 없고, 그렇다 해서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하면 차영규가 의심받게 된다.
둘 중 어떤 걸 고르든 나쁜 선택지라면 차악을 택해야 했다.
“….”
복도를 걸으며 곰곰이 생각하던 차영규는 방안을 생각해냈다.
‘미끼를 던져줘야겠어.’
일단 의심을 불식시키는 게 우선.
그러기 위해선 적당히 잘라낼 꼬리가 필요했다.
‘내가 잘려 나갈 순 없으니.’
차영규는 한숨을 내쉬며 국정원 내부에서 이 일을 뒤집어 써줄 사람을 고민했다.
‘미안하게 됐군.’
* * *
삼합회 홍콩지부장이자 명운제약의 사장, 장쉬안은 본토에 있는 수하에게 연락을 받았다.
“…그게 정말인가?”
장쉬안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그러자 명운제약의 이사가 난감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정말 큰일 났습니다!
“….”
소식을 들은 장쉬안이 핸드폰을 꽉 쥐며 이를 갈았다.
그는 얼마 전, 명운제약 지하에 있던 제조실을 옮겼었다.
언젠가 단속이 들어올 거라 예상했기에, 각성제를 계속 제조할 수 있는 장소를 공수해놓은 것이다.
그래서 금방 장소를 이전한 뒤 계속해서 각성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새로운 제조실의 위치가 발각되어버렸다.
그걸 아는 사람은 장쉬안을 비롯한 이사진들뿐.
“홍 이사.”
-예.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가지고 있는 자료와 장비, 연구원들을 챙기게. 만들어 놓은 물량보다 그것들이 우선이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부에서 정보를 흘린 게 누군지도 알아보게나.”
-맡겨주십시오.
장쉬안은 전화를 끊었다.
이십 년이 넘게 함께해온 홍 이사가 뒤통수를 쳤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라면 장쉬안이 배신자를 어떻게 다루는지 잘 알 테니까.
꾹.
장쉬안은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생각했다.
만약 이 일로 인해 각성제의 생산이 중단된다고 하더라도, 보위부에게 물량을 넘기기로 한 날짜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여러 곳에 있는 안전 가옥에서 다시 생산을 재개하면 그만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건, 이미 만들어 놓은 물건이 공안의 손에 넘어가는 것이었다.
‘성분을 분석하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메스암페타민, 그러니까 필로폰이라고 불리는 것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게 바로 각성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공안은, 어떻게든 제조자와 연루된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 성분이 분석되면 재료를 수급하는 일도 문제였다.
연금술사가 아닌 이상 원료가 되는 것들은 외부에서 공수해 와야 했고, 그들의 수사망에 들어와 있는 명운제약은 제1 타겟이 되어 집중적으로 조사받게 될 터.
‘그렇게 되면 거래고 뭐고 끝이다.’
보위부와는 신뢰를 잃게 될 것이고, 삼합회라는 거대 조직을 굴릴 자금도 부족해진다.
각성제라는 확실한 돈벌이 수단을 믿고 장쉬안을 밀어준 원로들도 있었기에, 앞으로의 입지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좋지 않군. 좋지 않아.”
대체 누가 배신했단 말인가.
어떠한 보수를 약속받았기에 삼합회 수장의 등을 찌른 것일까.
장쉬안은 한 사람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류비엔….’
산주 자리를 두고 경쟁한 사천지부의 지부장.
장쉬안이 모종의 이유로 실각한다면, 다음 산주로는 그가 유력했다.
그러면 장쉬안의 뒤통수를 친다 하더라도 삼합회 내에서 입지를 잃을 일은 없었다.
새로운 수장이 된 류비엔이 뒤를 봐줄 테니 말이다.
그가 아니라면 공안 쪽에 넘어간 것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작았다.
‘어차피 모든 이사의 약점은 내게 있다.’
이럴 상황을 대비해, 그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패를 준비해둔 것이다.
그러니, 그걸 이용한다면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을 순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본토로 돌아가야 한다.’
음지 장악을 위해 한국에 조금 더 머물 생각이었으나, 갑작스럽게 생긴 사건으로 인해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장쉬안은 다시 홍콩으로 돌아가는 티켓을 끊었다.
* * *
한편, 아직 베이징에 남아있던 류비엔은 한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게 정말이오? 그것만 해주면 내가 산주가 될 수 있다고?”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자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흐음….”
“장 사장이 고꾸라지면, 다음은 당연히 누구겠습니까.”
류비엔은 그의 말이 틀리진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과 경쟁하던 리신페이는 아직 깨어났다는 소식이 없었으니, 장쉬안만 어떻게 보낸다면 자연히 류비엔에게 차례가 돌아오는 것이다.
“호오….”
그가 머리를 굴리는 걸 지켜보던 남자, 민지훈이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어떻게, 원래 앉았어야 할 자리를 되찾으시겠습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