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23
#423화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나는 허리춤에 매어놓은 삼단봉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부장님이 말했다.
“뭘 그렇게 걱정이 많냐. 이런 거 없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잖아?”
“갑자기 칼이나 총 들고 우르르 덤벼들면 어떡합니까.”
“칼은 적당히 하나 뺏어서 쓰면 되고, 총 들고 오면 어차피 존나게 튀어야 될 텐데.”
틀린 소린 아니었다.
“그래도 최소한의 보험이죠. 괜히 몸에 기스 나면 슬프잖습니까.”
“그것도 그래.”
스윽.
뒤에 서 있는 팀원들과 유선화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들어갑시다.”
우리는 삼합회의 본진 건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입구 쪽으로 다가가자,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경계하듯 다가왔다.
“잠깐, 멈춰라!”
유선화를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이곤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유창한 중국어로 말했다.
“@#@ %^# #&#$%. @&^$%.”
물론 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춘식이한테 물어봤다.
“뭐라는 겁니까?”
“자기소개요.”
“아하.”
“지금은 원로들에게 할 말이 있어서 온 거라고 하네요.”
유선화의 설명을 들은 경비들은 무전을 통해 어디론가 연락하는 듯 중얼거렸다.
나는 긴장으로 침을 꿀꺽 삼키는 유선화의 옆으로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유선화 씨가 지부장인 이상, 여기서 해코지를 당할 일은 없습니다.”
잠시 대화를 나누는 것 같던 경비들이 유선화를 향해 무어라 지껄였다.
유선화의 신원을 확인했는지 예상대로 적대적인 태도는 아니었다.
“@%@^$.”
경비들의 말을 유선화가 전달했다.
“우선 따라오라네.”
“바로 만나게 해주진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뭐 베이징이나 상하이지부장 정도 되는 급이면 누군가 하나 정도는 튀어나올 만한데, 성남지부는 변방도 아닌 타국에 있다.
아마 지루한 절차를 밟아야 상층부에 의사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죽치고 앉아 기다리자고 찾아온 건 아니다.
“유선화 씨.”
“응?”
“이렇게 합시다.”
소곤소곤.
“미, 미쳤니?”
“방법이 없잖습니까. 그 원로라는 영감들이 유선화 씨가 할 말이 있다고 하면 회의라도 열어준답니까? 일단 질러서 무시 못 하게 해야죠.”
“그건….”
“자, 갑시다.”
나는 건물 안쪽으로 유선화의 등을 떠밀었다.
유선화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경비들을 따라 로비로 들어간 유선화는 잠시 좌우를 살피더니, 숨을 들이쉰 뒤 외쳤다.
“홍콩지부의 장쉬안, 그자를 전前 성남지부장 유선규의 죽음을 사주한 죄로 고발합니다!”
그러자 로비에 있던 이들이 이쪽을 홱 돌아봤다.
유선화는 프론트로 성큼성큼 다가가 어리둥절한 얼굴의 남자를 향해 말했다.
“제가 한 말, 원로들에게 똑똑히 전하세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전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연락했다.
“조만간 입질이 오겠네요.”
“…우리 다 묻어버리진 않겠지?”
“장쉬안 그놈이 대가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얘네가 다 한패는 아닐 겁니다. 이때다 싶어서 득달같이 달려드는 놈들도 있을걸요.”
유선화도 삼합회 내의 파벌 구도 정도는 전해 들어 알고 있을 거다.
그렇게 로비에 서서 팀원들과 주변을 경계하고 있자니, 저기 보이는 복도에서 안경을 쓴 한 중년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유선화 지부장?”
“네. 제가 유선화입니다.”
“전 산주의 비서이자, 잠시 권한 대리를 맡고 있는 차이진리라고 합니다.”
나는 춘식이 조용하게 통역해 주는 걸 들으며 상황을 살폈다.
차이진리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네모난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말씀하신 사건은 들었습니다. 유선화 지부장의 발언은 현 산주의 명예를 깎아내릴 수 있다는 것, 이해하고 있습니까?”
“네. 제가 증거도 없이 모함하려고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시나요?”
유선화가 그리 대꾸하자, 차이진리는 낭패라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걸 증명할 만한 자료가 있다면, 같이 가서 확인하시지요.”
“좋아요.”
유선화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하려던 차이진리가 뒤따르는 우리를 제지했다.
“일행분들은 여기서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춘식이 통역했다.
“우린 여기 남으랍니다.”
“뭐?”
그건 불가능했다.
유선화만 데리고 가서 제압한 다음 증거를 뺏어버리면 그대로 끝이었으니까.
내가 미간을 좁히며 나서려는데, 유선화가 한발 앞서 입을 열었다.
“이 사람들은 제 경호원들이에요. 동행하지 못할 이유가 있나요?”
“경호원이 필요할 일은 없습니다.”
“그건 모르는 거죠.”
“…알겠습니다. 대신 무기를 들고 안으로 들어갈 순 없으니, 몸수색을 하겠습니다.”
스윽.
슬쩍 나와 눈을 마주친 유선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차이진리가 손짓하자, 아까 봤던 경비를 포함한 이들이 우르르 다가와 우리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거의 공항 검색대 수준으로 우리 주머니를 털던 경비들은 삼단봉들을 발견했다.
그대로 유일한 호신용품을 압수당할 뻔했지만.
“삼단봉 정도는 가지고 있게 해주세요. 최소한의 보험은 필요하잖아요?”
“…알겠습니다. 그냥 두십시오.”
유선화의 말에 차이진리가 동의하면서 넘어갈 수 있었다.
저 남자도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서 괜한 트집은 잡지 않는 거다.
저벅.
다시 삼단봉을 품 안에 집어넣은 나는 유선화와 남자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그놈이 어떻게 나오려나.’
여기서 우리를 담가버리려 할 가능성은 절대 배제할 수 없었다.
놈이 어지간히 방심하고 있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럴 리는 없지.’
40년 가까이 삼합회라는 조직에서 살아남아, 결국 수장 자리까지 꿰찬 인간이 바로 장쉬안이다.
어떻게 보면 강남파의 주철수, 이런 놈들보다 더한 빠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지금쯤 소식 듣고 헐레벌떡 오고 있겠구만.’
다만 주철수와 다른 점은, 우린 주철수를 생포했다.
법의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장쉬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우린 놈을 감옥에 보낼 만한 명분이 없으니까.’
굳이 그럴 필요 없이, 깔끔하게 처리하면 되는 거다.
민지훈에게 한 방 먹일 수 있게 말이지.
* * *
끼익-.
삼합회 본단 건물 앞에 검은색 세단이 멈춰 섰다.
탁.
그리고 그 안에서 한 노인이 내렸다.
삼합회의 수장, 장쉬안은 평소와 다른 다급한 몸짓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망할 년이, 정신이 나갔군…!’
본단에 있던 사람에게 전해 듣기론, 유선화가 장쉬안을 고발했다고 한다.
전 성남지부장, 유선규의 살해를 지시했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입증할 수 있는 증거도 없을 텐데.’
정말 정신이 나간 게 아닌 이상, 여기까지 날아와서 그런 폭탄을 터뜨릴 리가 없었다.
뭔가가 있으니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리라.
저벅.
본단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그를 향해 우르르 몰려왔다.
“장 사장!”
“유 형.”
“장 사장.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그 물음에, 장쉬안이 표정을 굳히며 대꾸했다.
“여기서 난 사장이 아니오. 유 형.”
“아… 미안하네.”
“그 여자, 지금 어딨소?”
“그게… 차이진리와 대화 중일세.”
차이진리. 삼합회라는 조직이 잘 굴러갈 수 있게 해주는 참모 역할을 맡고 있으며, 전 산주의 비서였던 인물이다.
성큼성큼.
장쉬안은 곧장 그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벌컥!
회의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차이진리가 마침 잘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셨습니까. 안 그래도 다들 모여달라고 전하려던 참이었습니다만.”
“이봐. 진리.”
장쉬안이 한쪽에 서 있는 여성을 가리키며 물었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지?”
“산주. 소식은 들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안경 뒤, 차이진리의 눈이 피로로 물들었다.
“유선화 지부장이 어떤 연유로 여기까지 온 건지, 알고 계시지요?”
그 말을 들은 장쉬안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설마, 저 여자의 말을 믿는 건가?”
“증거가 있으니, 사실관계는 확인해 보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
“유선화 지부장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곧 밝혀질 겁니다.”
그러니 떳떳하다면 가만히 있어라.
장쉬안은 차이진리가 뒷말을 삼킨 것을 알고 침음만을 낼 수밖에 없었다.
‘외통수로군….’
스윽.
유선화의 뒤편에는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자들 여럿이 서 있었다.
여기서 저 경호를 뚫고 그녀를 공격해 입막음한다 하더라도, 삼합회를 우선시하는 차이진리가 좌시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한 마디로 이 곤경을 빠져나가기 위해선, 유선화가 어떤 증거를 가지고 무슨 주장을 내놓든 그것을 모조리 묵살해야 한다.
확실하지 않은 건 발뺌하고, 허점이 보이면 파고들어 이 판을 엎는다.
그러니 이 일이 삼합회 내에서 공론화된 이상, 장쉬안의 이미지 실추는 피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차이진리는 안경을 올리며 상황을 정리했다.
“자, 일단 모두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그 말에 장쉬안과 원로들, 유선화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어쩌다 보니 재판 같은 형태가 됐군요. 우선, 유선화 지부장이 제기한 문제에 관해 설명해 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유선화가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원로님들. 성남지부장 유선화입니다.”
원로들은 무표정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힘 약한 성남지부인데다, 여자라는 것에 벌써 혀를 차는 원로도 있었다.
유선화는 압박감이 담긴 시선에 약간 위축되는 기분이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전 성남지부장, 유선규는 작년에 괴한들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본단에는 인근 조직과의 알력 다툼 과정에서 죽었다고 보고되었을 겁니다.”
“그런 일이 있었지.”
“그랬었나?”
원로들은 각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사실 유선규의 죽음을 사주한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척.
유선화가 손가락으로 장쉬안을 가리켰다.
“바로 당시 홍콩지부장이었던 저자입니다.”
스윽.
자리에서 일어난 장쉬안이 전혀 동요 없는 얼굴로 물었다.
“내가 지시했다는 증거가 있나?”
혹시 남았을지 모를 흔적은 이미 선생이 전부 없앴다.
장쉬안은 그녀가 대체 무슨 패를 쥐고 여기까지 온 건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당연히 있죠.”
“어이가 없군. 만약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내 명예에 먹칠을 하려는 속셈이었다면, 자네는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장쉬안이 섬뜩한 경고를 날렸지만, 유선화는 코웃음을 치며 받아넘겼다.
꿈틀.
그의 얼굴 근육이 경련하는 것을 본 유선화는 녹음기를 꺼냈다.
그리고 음성 파일을 재생했다.
-……X팔. 이 개새끼가… 넘어오자마자 이 지랄이냐.
거기서 흘러나온 것은 유선규의 목소리였다.
그 말에 대답한 사람은 다른 이의 음성이었다.
-유 사장. 본토에서 명령이 내려왔소. 미안하게 됐소.
녹음본을 듣고 있던 원로들이 술렁였다.
유선규가 다른 한국 조직과의 분쟁에서 살해당했다면, 여기서 본토라는 단어가 나올 이유가 없었다.
-너희들이 왕후성 밑에서 일하는 걸 내가 모를 것 같나?
이어 나온 새로운 인물의 이름.
-그래. 괜한 변명 말고 해야 하는 일이나 마저 해라.
그 뒤로는 기합과 비명이었다.
-흡!
-윽!
-크아악!
뚝.
유선화가 재생을 중지했다.
장쉬안은 입술을 깨물고 있는 그녀를 보곤 작게 웃었다.
“큭. 크하하하…!”
“…!”
참지 못하고 대소大笑를 터뜨린 장쉬안이 순간 정색하며 물었다.
“고작 이거였나?”
그에 유선화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며 말했다.
“그럴 리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