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27
#427화
“러시아의 킬러 조직, 글라자. 들어보셨습니까?”
민지훈의 물음에 장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리가 있나.”
장쉬안과 마찬가지로, 글라자도 서클의 회의에 참석하곤 했다.
보통은 조용히 이야기만 듣고 가는, 차가운 인상의 노인이 그쪽 대표였다.
“최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들었네만.”
“그렇습니다. 내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서, 간부 전원이 사망하고 조직은 분열됐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혹시 아는 거 있나?”
“글쎄요. 원래도 금전적인 문제로 상황이 좋지 않았으니… 작은 불씨로도 얼마든지 그런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군.”
실상은 민지훈의 지시로 내부에 들어간 경호대가 전부 쓸어버린 것이었지만, 장쉬안은 거기까지 파악하진 못했다.
“그래서, 그자들이 류비엔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미하일이라고, 글라자의 간부 중 하나가 류비엔과 협력 관계였습니다.”
그 말에 장쉬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증거가 있나?”
“예. 두 사람이 연락한 정황이 있습니다.”
“…자네의 정보력은 무서울 정도로군. 자네라면 날 얼마든지 산주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하하. 무슨 그런 말씀을.”
민지훈은 웃어넘겼지만, 장쉬안은 실제로 섬뜩함을 느꼈다.
각성제를 비롯한 장쉬안의 약점 다수를 알고 있는 게 그였으니,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증거가 남은 일로 인해 선생을 의심하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말이다.
“하던 이야기 계속해 보게.”
“리신페이의 죽음을 사주한 사람이 바로 미하일, 그자입니다.”
“음. 그럼, 류비엔 그놈이 리신페이를 죽이라고 지시했다는 소리군.”
“그렇습니다. 레이븐이라고 유명한 킬러가 있는데, 미하일은 그자를 리신페이에게 보냈죠.”
“허, 그 일에 그런 사정이 있었던 건가.”
수하들이 가득한 장소에 혼자 들어가 리신페이에게 치명상을 입힌 정체 모를 괴한.
그가 뛰어난 실력의 암살자였다면, 그 상황에서도 무사히 몸을 빼낸 것도 영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총기로 무장한 이들 스무 명 이상과 단신으로 맞서 싸우고도 살아남은 일은 잘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말이다.
‘뭐, 운이 좋아서 빠져나간 거겠지.’
장쉬안은 민지훈을 향해 물었다.
“그거면 확실히 류비엔을 보내버릴 수 있겠나?”
“물론이죠. 류비엔은 의리 있고 조직원들을 챙기는 성격으로 자기편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이게 알려지면 큰 타격을 입을 겁니다.”
“그렇겠군.”
류비엔의 파벌은 신뢰를 통해 그를 중심으로 뭉친 이들이었기에, 동료를 해쳤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그 증거는 자네가 가지고 있는 건가?”
“네.”
스윽.
민지훈은 옆에 놓아뒀던 서류 봉투를 건넸다.
“받으시지요.”
봉투를 받아 든 장쉬안이 내용을 확인했다.
거기엔 리신페이를 제거하라는 내용이 적힌 글라자의 지령서가 들어있었다.
여기에 더해, 글라자의 간부와 류비엔이 금전을 주고받은 내역이 담긴 문서가 있었다.
“우선 그걸로 떡밥부터 던지십시오. 그 정도만 있으면 현재 상황은 적당히 덮을 수 있을 겁니다.”
“고맙네. 잘 쓰도록 하지.”
장쉬안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럼 가 보겠네. 준비할 게 많겠어.”
“예. 그러시지요.”
“아, 그렇지. 하나 더.”
문을 열고 나가려던 장쉬안이 다시 시트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
“이주혁은 어떻게 됐나? 그놈이 유선화와 함께 있는 이유가 뭐지?”
“유선화를 도와서 뭔가를 하려는 것 같은데, 정확히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흐음…. 그놈은 큰 변수가 될지도 모르는 놈이네. 자네도 한번 당했지 않나.”
그 말에 민지훈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뭐, 자네 계획의 일부였겠지만… 한국에 있는 인프라를 모두 버릴 만큼 급한 상황은 아니었을 테지. 안 그런가?”
“…이주혁은 위험합니다.”
민지훈은 무표정하게 본론을 꺼냈다.
“데리고 있는 인원의 실력도 뛰어나고, 가진 자본도 꽤 많습니다. 아마 서클에 속해있는 조직과도 맞설 수 있겠죠.”
“그 정도란 말인가…. 그런 놈이 그 여자 편에 붙었다니.”
“하지만 너무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좋은 방도라도 있나?”
민지훈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지켜보면 알게 되실 겁니다.”
“그래. 자네 믿고 기다려 보겠네.”
달칵.
차 문을 열고 내리던 장쉬안이 멈칫하더니,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선생.”
“네?”
“우리 관계는 아직 그대로인가?”
그 질문을 들은 민지훈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걱정도 많으십니다.”
“….”
“우린 아직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안심이 되는군. 허허. 그럼 들어가게.”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문이 닫혔다.
텅.
잠시 침묵하고 있던 민지훈이 조용히 운전석에 앉아있던 사내를 향해 말했다.
“날 믿고 있지 않네요.”
그 말에 경호대의 대장, 육진모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호응했다.
“증거가 남았다는 점에서 선생님을 의심하는 모양입니다.”
“뭐, 저라도 의심할 테니까요.”
민지훈이 곧게 유지하고 있던 자세를 풀며 생각했다.
‘처음부터 내가 유선화한테 접근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으니 자꾸 이런 변수가 생기는군.’
유선화를 적당히 총알받이로 쓰면서 장쉬안의 민심을 떨어뜨린 뒤, 원로들이 그 대체자로 고려할 류비엔도 보내버린다.
그러면 삼합회의 원로와 지부장들은 혼란에 빠질 테고, 그때 장쉬안을 도와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그대로만 흘러갔다면 장쉬안에게 큰 빚을 지워 조금 더 손쉽게 다룰 수 있었을뿐더러, 그에게 의심받을 확률도 낮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아쉬운 감정은 옆으로 치워두고, 지금은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할 때였다.
원래 장쉬안이 골치를 앓고 있던 각성제의 문제.
유선화라는 폭탄의 등장으로 뒷전이 된 느낌이긴 하지만, 중국 경찰은 여전히 명운제약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단순히 돈을 먹인다고 해결될 건 아닌데 말이지….’
기실, 장쉬안이 각성제를 생산하든 말든 큰 상관은 없었다.
단지 그가 경찰에 물려 버리면 자신의 계획도 틀어지는 것이었기에, 적당한 해결 방법은 마련해 둬야 했다.
“경찰을 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뜬구름 잡는 듯한 질문이었지만, 그를 오랜 시간 보좌한 육진모는 거기 담긴 뜻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꼬리를 만들어서 자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좋은 생각이긴 한데, 남은 꼬리가 몇 없단 말이죠.”
왕후성은 진작 한국에서 죽었고, 장쉬안을 아버지처럼 따르던 장룡도 이주혁 무리에게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른 수하들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대신 잡혀가게 된다면 반드시 사형대에 올라갈 것이다.
아무리 믿고 따른다 하더라도, 대신 죽어주는 건 다른 문제였으니까.
“하아.”
혹시 이런 상황이 생길 것을 대비해 장쉬안의 자리를 대체할 사람도 구해뒀다.
그러나 그 남자, 허베이지부의 리신페이는 지금 레이븐에게 피습 당해 병상에 누워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손해를 메꾸기 위해 레이븐을 목숨의 빚을 통해 이용하려고 했지만, 그는 난데없이 한국에서 경찰에 자수해 버렸다.
결국 들인 시간과 돈을 날린 것이었다.
꾸욱.
민지훈은 구겨진 미간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생각했다.
이주혁. 처음에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다는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에 동질감을 느꼈다.
꽤 공을 들은 강남파를 무너뜨리는 모습에 분노한 것과 별개로, 그를 죽이려고 하지 않는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의 이주혁은 너무나 큰 변수였다.
민지훈이 세운 계획의 큰 얼개들은 모두 미래 지식에 근간해 있다.
‘통제할 수 없는 이주혁의 행동으로 어떤 나비효과가 발생할지 알 수 없지.’
지금이라도 이주혁을 제거해야 할 것인가.
민지훈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다른 문제와는 달리 답이 금방 나오지 않았다.
그와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방향만 잘 유도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주혁 말이에요.”
“예.”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대답은 곧장 나왔다.
“죽이시죠.”
“…이유는요?”
육진모는 그가 반문할 줄 몰랐다는 것처럼 의외인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변수는 최대한 배제하는 성격이시잖습니까. 두고 볼 만큼 봤다고 생각합니다.”
“이주혁을 지키는 사람들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그에 육진모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여차하면 제가 직접 나서겠습니다.”
“그럼, 그런 리스크를 지면서까지 제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선생님. 주제넘게 한 마디 드리자면….”
뒤로 고개를 돌린 육진모가 깊은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끊어낼 건, 확실하게 끊는 게 좋습니다.”
그 말에 민지훈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명심하죠.”
* * *
다음 날.
삼합회의 내부는 다시 한번 뒤집어졌다.
“이게 무슨 소리요! 류비엔, 그 녀석이 리신페이를 그리 만든 거라고?!”
장쉬안은 직접 이 일을 터뜨리지 않았다.
이 사건은 ‘우연히 지령서를 손에 넣게 된 리신페이의 수하’가 제보한 것이었다.
물론 거기엔 선생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지부장이 다른 지부장의 암살을 사주한 사건.
이전에도 없던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류비엔은 타국의 암살자의 손을 빌려 일을 처리했다.
같은 식구의 등을 찔렀고, 내부의 분쟁은 내부에서 해결하자는 규율도 어겼다.
장쉬안과 유선화 사이의 일에 이어 터진 사건들 탓에, 원로들은 절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당장 그놈을 여기로 불러들여야 하네. 그 미친 자식!”
“진정하시오. 아직 이게 사실이라고 확인된 것도 아니잖소.”
“여기 이렇게 증거가 있는데 확인은 무슨 확인! 그놈 뒷배여서 시간을 끌려는 수작 아닌가?!”
“뭐, 뭣? 지금 수작이라고 했소!”
“지금 우리끼리 이럴 때가 아닙니다.”
언성을 높이는 이들을 보다 못한 한 원로가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일단 소룡방주小龍幇主를 불러서 추궁하는 게 우선입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류비엔 그놈은 목숨으로 죄를 갚아야 할 걸세.”
조직 내부에서 정치적 알력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 당연한 생리다.
하지만 비겁하게 남의 손을 빌리는 건 손가락질 당할 만한 행위였다.
원로들이 장쉬안과 유선화의 일보다 이 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바로 조직의 위신과 명예 때문이었다.
“지금쯤 오고 있을 겁니다.”
“류비엔, 그놈마저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구먼.”
한 원로가 혀를 차며 다른 원로를 향해 핀잔하듯 말했다.
“양 형. 산주를 정할 땐 류비엔 그놈 성품이 대인大人이라 하지 않았소?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이오.”
“크흠. 나라고 이럴 줄 알았겠나.”
머쓱한 얼굴로 헛기침을 한 원로가 괜스레 목소리를 높였다.
“어쨌든, 그 둘 때문에 상황이 힘들어졌네.”
장쉬안, 그리고 류비엔.
이 두 사람은 모두 삼합회의 구심점이다.
그러나 현재 둘 모두 불미스러운 사건에 엮인 마당.
이들을 보고 모였던 사람 일부는 실망해서 떠날 것이고, 그것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로 삼합회는 당분간 내부 정리에 힘써야 할 터였다.
그렇게 원로들이 골머리를 썩히고 있던 그때.
벌컥!
원로들이 있던 회의장의 문을 열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전前 산주의 비서이자, 상황이 안정되지 전까지 권한 대리를 맡은 차이진리였다.
“원로님들.”
“무슨 일인가?”
다급하게 들어온 차이진리가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리신페이 지부장이 깨어났습니다.”
그걸 들은 원로들의 눈이 커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