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30
#430화
15년 전. 중국 랴오닝성의 성도, 선양시의 한 뒷골목.
그곳에서 두 남자가 담배를 나눠 피우고 있었다.
“하, X팔…. 뒤질 뻔했네.”
땀과 피로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긴 남자, 젊은 시절의 류비엔이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그의 팔을 비롯한 몸 여러 곳에는 날붙이에 의한 생채기가 남아있었다.
“넌 좀 괜찮냐?”
그 반면, 차분한 인상의 리신페이는 큰 상처 없이 담배 연기를 뱉었다.
“어.”
“에이, 썅. 내가 항상 앞장서니까 그렇겠지. 내놔.”
탁!
류비엔이 손에서 빼앗은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였다.
“후…. 야. 형님은 다른 말씀 없으시냐?”
“어.”
“개새끼. 저렇게 많을 거라곤 얘기 안 했잖아.”
스윽.
류비엔은 자신의 옷을 들쳤다.
그러자 몸통 쪽에 천으로 꽁꽁 묶어뒀던 두꺼운 책이 드러났다.
책은 흉흉한 칼자국이 난 채 넝마가 되어있었다.
“이거 없었으면 뒈졌다고.”
“뭐, 그럼 그만두던지.”
“말을 섭섭하게 하네. 개 같은 놈. 넌 야망도 없냐? 끝까지 살아남아서 위로 올라가야지 않겠어?”
“위는 지랄. 돈 벌려고 하는 일인데.”
“야. 높은 사람이 되면 돈은 알아서 따라오는 법이다.”
류비엔이 피가 잔뜩 튄 얼굴로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난 보스가 될 거다.”
“보스는 지랄.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싸움 하나는 잘하잖아? 의리도 있고. 솔직히 나 정도면 리더 감 아니냐?”
“하, 보스는 아무나 하나.”
“원래 꿈은 크게 가지는 거다. 이 새끼야.”
류비엔은 리신페이에게 담배를 넘겨주며 말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난 나만의 조직을 만들 거야. 동생들은 날 위해 싸우고, 난 동생들을 위해 싸우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삼합회, 이 개 같은 놈들도 내 발밑에 둘 수 있겠지.”
그걸 들은 리신페이가 담배를 꼬나물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쯧쯧. 야망 없는 놈. 너희 형이 잘 나간다고 그러냐? 넌 그냥 평생 수전노처럼 살아라.”
“그러는 넌 평생 헛된 꿈이나 꾸면서 살아라.”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리신페이는 머릿속으로 나름 계획을 세워보고 있었다.
실적을 쌓아 삼합회의 간부까지 올라간 다음, 돈을 최대한 많이 번다.
수단은 뭐가 좋을지, 삼합회 조직의 위계질서는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렇게 젊은 시절의 두 사람은, 골목길에서 각자의 미래를 그렸다.
* * *
그리고 현재.
수하 둘과 함께 회의장으로 들어선 류비엔은 눈앞의 남자를 마주쳤다.
“왜 허튼 짓을 하고 다니냐.”
리신페이의 그 물음에, 류비엔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뒤통수를 친 주제에, 허튼 짓이라고?”
“뭐? 뒤통수? 푸흐흐흐….”
리신페이가 이마를 짚으며 실소를 흘렸다.
“아가리 놀리는 솜씨가 늘었어.”
“개소리를.”
“내 친구, 류비엔.”
툭.
류비엔의 어깨에 손을 얹은 리신페이가 입꼬리를 올린 채 말했다.
“눈에 다 보이는 개짓거리 그만하고, 그냥 받아들여.”
“장난질 집어치워라.”
두 사람의 대립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원로들은 당황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당연히 죄를 지은 류비엔이 굽히고 들어오리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당당하게 나올 줄은 몰랐던 탓이다.
물론 류비엔도 그 나름의 생각이 있어서 이리 배짱을 부리는 것이었다.
자신이 리신페이의 살인을 사주했다는 증거?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잡아떼며 정면으로 돌파한다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장쉬안도 확실한 증거가 없어 우물쭈물하는 상황인데, 그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건 안 될 일이었으니 말이다.
“으음.”
중재자 역할을 맡고 있던 차이진리도 진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우선, 두 분의 주장이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으니… 판단은 보류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군요.”
섣불리 결정을 내렸다가 괜히 다 뒤집어 쓸 가능성이 컸으니, 그의 선택은 지금으로선 최선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누구의 주장이 사실인지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증거가 본인이 뱉은 말밖에 없는 류비엔과는 달리, 리신페이는 실제로 괴한에게 습격을 당해 한 달 동안 의식을 잃은 채 지냈다.
거기다 러시아의 킬러 집단과 연락했다는 증거도 존재했다.
다만 류비엔의 주장을 무시하기엔 그의 영향력이 작지 않았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시간 끌기에 불과한 행동이다.’
리신페이는 류비엔의 당당한 얼굴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대체 무슨 생각이냐….’
* * *
“그래서, 불명예전역은 무슨 소립니까?”
내 물음에 부장님이 기억을 더듬으려는 듯 눈을 감았다.
“으음.”
“저 살벌한 면상을 가진 사람이 정말 우리 부대 출신입니까?”
“그건 맞을 거다. 부대 안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름 중에 저 이름이 있었거든. 위정천.”
부장님이 팔짱끼고 있던 팔을 풀며 설명했다.
“불명예전역도 내부에서 도는 소문인데. 듣기론 그 사람이 임무 하나를 거하게 망친 모양이더라고.”
“그걸로 불명예전역 처리가 됐다고요?”
“기밀 사항이라 나도 자세히는 몰라. 근데 무슨 일이 있긴 있었겠지.”
“흐음….”
위정천이라.
이거, 변수가 될 만한 새로운 인물이 또 추가됐구만.
술집 창고에 온갖 무기들을 보관해 둘 때부터 대충 알아보긴 했지만, 역시 보통 인간은 아니었다.
얼굴을 세로로 가르는 커다란 흉터도 그렇고.
대강의 정보를 전해 들은 나는 한쪽에서 잠자코 기다리고 있던 유선화를 불렀다.
“유선화 씨.”
“응?”
“아무래도, 복수에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더 시급한 일이 생겨서요.”
내가 양해를 구하자, 유선화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해. 어차피 장쉬안은 당분간 베이징을 떠나지 못할 테니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장님? 인원 추립시다.”
우리 총원은 유선화 제외 열 명.
호텔에서 유선화를 경호하며 동태를 살필 사람 다섯.
그리고 민지훈의 부탁대로 놈들의 작전에 어울려 줄 사람이 다섯. 이렇게 나누기로 결정했다.
인원은 내가 적절히 뽑았다.
“나, 부장님, 배상훈, 백기준, 춘식 씨. 이렇게 갑니다.”
그러자 배상훈이 씩 웃으며 말했다.
“늘 먹던 그 맛이구만.”
“그러게 말이다.”
절그럭..
그에 나는 재킷을 살짝 젖히며 대꾸했다.
“대신, 이번엔 조금 매울 수도 있다.”
방심하지 말라고 한 말이었지만, 부장님은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간만에 실전 감 좀 찾겠네. 그리고 그 양반이 위험한 일은 없다고 그랬잖아?”
“그놈 계획에 순순히 따라주면 그렇겠죠.”
“따로 움직일 거냐?”
우리가 요청받은 일은 리신페이가 갈 곳에 대기하는 것.
만약 리신페이가 민지훈 쪽 인원이 있는 장소로 향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거다.
하지만 나는 리신페이가 놈들에게 쉽게 제거당하게 둘 생각은 없었다.
민지훈이 리신페이를 죽여버리려고 한다면, 놈이 살아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테니까.
“대신,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빠질 겁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어디까지나 장쉬안을 제거하는 거다.
굳이 필요 없는 다른 일에 매달리다가 원래 해야 할 일까지 못하게 되는 건 어불성설이지.
“갑시다.”
나는 내가 선정한 인원들을 데리고 객실을 나섰다.
“거지들 만나러.”
우선 필요한 건, 정보였다.
.
.
.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니, 생각보다 볼일을 처리하는 게 오래 걸렸다.
우리가 춘식이가 얻어온 나무패를 통해 개방에게 알아내려고 한 정보는, 현재 돌아가고 있는 삼합회의 내부 사정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원하는 걸 손쉽게 얻을 순 없었다.
아무리 정보 조직이라고 한들 모든 일을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정보 수집은 사람의 눈과 귀를 통해 하는 거였으니까.
그 대신, 삼합회의 각 지부 상황을 대략적으로나마 알아낼 수 있었다.
‘먼저 홍콩의 명운제약.’
장쉬안이 보스 자리에 오른다는 호재가 있었지만, 현재 중국 경찰이 놈의 제약회사를 수사하고 있단다.
아마 각성제 때문이겠지.
그리고 류비엔. 그놈은 소룡방인지 뭔지 하는 조직의 수장이라던데.
그냥 주철수처럼 조폭 두목, 이런 느낌이었는데, 이번 일로 조직원들이 대거 이탈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주 개판이구만.’
혼란, 분열, 배신과 의심.
조직에서 무슨 큰일이 터지기 딱 좋은 상태였다.
“큰 도움이 됐습니다.”
“별 말씀을요.”
개방의 회원권이라고 할 수 있는 나무패를 가져온 춘식의 공이 컸다.
대략적인 세력 구도와 아지트의 위치 같은 정보는 이미 파악해 뒀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 돌아가는 꼴이 어떤지까지 알아낼 순 없으니 말이다.
“이제 이동하냐?”
“예. 그래야죠.”
부장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우리가 가서 근처에서 대기해야 할 장소는 따로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을 거다.
민지훈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에는, 리신페이가 이른 시일 안에 삼합회 본단에서 나올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상이 들어가 있었다.
삼합회 홈그라운드에서 지부장 급의 인사를 암살하고 무사히 도망갈 순 없으니, 아마 리신페이가 묵는 장소를 뚫고 암살할 작정이겠지.
우리에게 전달한 장소도 그가 자주 묵는 호텔 근처였다.
‘하지만 그놈이 거기로 올 것 같진 않단 말이지.’
자기 요새에서 지내는 것도 아니고, 지난번에 지부장 하나가 암살당한 호텔에서 숙박한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우리를 현장에서 떼어놓으려는 수작일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도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놈의 아지트로 갑니다.”
놈의 본진인 허베이시가 아닌, 베이징 외곽 쪽의 외진 곳에 위치한 저택.
우린 그곳으로 향할 거다.
그냥 본단 건물 근처에서 기다렸다가, 나오는 걸 보고 따라가면 되지 않냐고?
그러면 당연히 미행을 눈치챌 거고, 변수가 생기게 된다. 그러니까 우린 미리 가서 기다린다.
놈이 밖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면, 80% 이상의 확률로 그리로 올 테니까.
‘근거는 있어.’
당당하게 본단 건물에서 지낼 거였다면, 굳이 민지훈이 부탁할 이유가 없다.
또 아까 말했듯, 호텔에서 지내던 지부장 하나가 암살당한 일이 있었다.
그를 전해 들었을 테니, 굳이 호텔에 묵을 이유도 없었다.
그러니 남은 경우의 수는, 자신이 마련했고 믿을 수 있는 수하들이 지켜 줄 본인의 아지트뿐이었다.
‘물론 민지훈, 그놈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상관없었다.
안 그래도 이참에 놈의 뒤통수를 갈겨버릴 생각이었으니까.
* * *
어느덧 해가 질 무렵의 시간이 되었다.
리신페이는 차 뒷좌석에 탄 채 창문 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지금까지 논의를 해봤지만… 오늘 당장 결정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이니만큼 내부적인 상의를 조금 더 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장장 5시간 가까이 이어진 회의는 그렇게 별 소득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리신페이는 본단을 떠났다.
누가 적으로 돌아설지 모르는 이곳보단, 차라리 본인이 확실하게 관리하고 있는 장소가 더 안전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부웅-.
그렇게 리신페이는 자신의 수하에게 타고 온 것과 똑같이 생긴 차를 먼지 다른 곳으로 몰고 가게 지시했다.
혹시라도 미행이 붙을 것을 대비해 미끼를 던진 것이었다.
리신페이는 오늘 있었던 일을 복기하면서 안가安家로 향했다.
끼익-.
차에서 내려 저택으로 들어가는 리신페이.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의 지붕 위, 그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사람이 있었다.
“역시, 여기로 올 줄 알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