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33
#433화
한 차례의 살벌한 공방.
구경하던 이들은 각자 다른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존나 세네. 이주혁이 저렇게 처맞을 정도라고?’
배상훈은 긴장했다.
‘역시 대장님. 인간 최강이야.’
경호대의 이름 모를 대원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라….”
라세흠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경호대의 대장, 육진모의 움직임을 살폈다.
딱히 정해지지 않은 무술 스타일.
하지만 체계가 확실히 잡혀있다.
각 무술의 장점만 살린 기술들과 정점에 달한 테크닉.
그리고 그 소프트웨어를 100% 활용할 수 있는, 극한으로 단련된 육체까지.
‘최정상급의 실력자야. 저런 놈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예전에 용병 출신인 마종석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야. 너희 업계에선 누가 탑이냐?
그 질문에 마종석은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우선, 같이 일하는 고상미. 실력으론 애매하지만, 이름값과 실적으로는 최상급이지. 조직 뒤통수를 치고 나갔다는 큰 흠이 있긴 해도.
-또?
-뭐 미국, 러시아… 기라성 같은 놈들은 많다. 세상은 넓으니까. 내 스승님도 대륙 정상급이고.
-그때 봤던 그 아저씨?
-그래. 거기다 나까지 포함.
-지랄은….
라세흠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럼 그 경호대. 그놈들에 대해서 아는 건 없냐?
-경호대라…. 소문은 익히 들었지. 각지의 최정예 전투인력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그 정도야? 거기 대장은 누군데.
마종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대장? 그 인간은 알려진 정보가 없다.
-뭐라고? 정보가 없어?
-이름 아는 사람도 몇 명 없고, 뭐 하던 사람인지 알려지지도 않았지.
그걸 들은 라세흠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었다.
그리고 그의 의문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저만한 새끼가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한편, 육진모는 자세를 바로 하는 이주혁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 짧은 시간에 대처했군.’
손바닥으로만 막았으면 갈비뼈가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맞는 순간 박차고 뛰면서 충격을 최대한으로 줄였다.
이론적으로 알고 있다 해도, 실전에서 써먹긴 힘든 요령이었다.
“한 방 먹었네.”
육진모는 옷을 툭툭 터는 이주혁을 보며 갈등했다.
‘여기서 죽일까?’
사실, 제거하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총격전이 일어난다 한들, 무장 상태가 뛰어난 이쪽이 저들을 제압할 수 있을 터.
그러나 아군도 피해가 없진 않을 것이기에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다.
거기다 이주혁을 죽이라는 지시도 내려오지 않았다.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반드시 선보고 후조치를 고수하던 그였다.
‘전력 확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만….’
감이 좋지 않다.
육진모는 이주혁은 무조건 한 번 더 걸림돌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함에도 그는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을 택했다.
“이쯤 하지. 더 했다간 둘 중 하나는 크게 다칠 것 같군.”
그 말을 들은 이주혁이 고개를 까딱하며 대꾸했다.
“네 얘기냐? 난 멀쩡한데.”
“…굳이 자초하겠다면 말릴 필요는 없겠지.”
일촉즉발의 긴장 속, 경호대원들은 슬쩍 미소지었다.
본인들의 대장이 질 리가 없다는 확실한 믿음 때문이었다.
이주혁도 그러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있었다.
‘확실히 그럴 만해. 우리가 부장님이 어디 가서 맞고 다닐 거라고 생각 안 하는 거랑 마찬가지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이 정도 실력자와 손을 나누는 건 오랜만이다.
과거로 돌아오고 약 1년. 지금까지 그가 붙은 놈들은 다 해볼 만한 상대였다.
강남파 보스 주철수는 이미 40대 중반의 나이였고, 이로운이 있던 킬러 양성소의 교관들도 충분히 두들겨 팰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이 남자는 확실히 레벨이 달랐다.
‘설렁설렁 간만 보다가는 당한다.’
통증이 가라앉은 걸 느낀 이주혁은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이번엔 자신이 공세였다.
관자놀이, 울대, 간. 급소를 노린 공격이 쇄도했다.
육진모는 날카로운 주먹을 침착하게 막거나 쳐냈다.
홱!
“계속할 건가?”
고개를 젖혀 턱밑으로 주먹을 흘린 육진모가 말했다.
그 순간, 이주혁의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사고의 속도가 빨라지고, 몸이 100% 통제대로 움직이는 순간.
‘왔다.’
이주혁은 왼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빈틈을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정직하다 못해 뻔한 공격.
가드를 올리며 그대로 팔꿈치로 찍어버리려던 육진모는 순간 위화감을 느꼈다.
‘갑자기 왜 막 던지는 거지?’
지금까진 수싸움을 하며 신중하게 나오던 터라, 무언가 이상했다.
우선 본능적으로 주먹을 막던 그때.
휘릭!
이주혁이 한쪽 다리를 축으로 제자리에서 몸을 크게 돌렸다.
그리고 그 원심력을 이용해 뒤쪽으로 발을 올려 찼다.
퍼억-!
턱에 정확하게 꽂히는 발차기.
이주혁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내 올라가 있던 입매가 살짝 굳었다.
“음….”
육진모가 쓰러지지 않고 버틴 탓이었다.
‘잽싸군.’
그 짧은 찰나에 판단을 마치고 턱을 노리다니.
머리를 가리기 위해 들어 올린 가드 아래로 파고들었기에, 몸을 틀었음에도 완전히 피할 순 없었다.
“…….”
뚜둑.
육진모는 욱신거리는 턱을 매만지며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경호대원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씨익.
반면, 긴장한 채로 관전하고 있던 팀원들은 한 방 먹였다는 통쾌함에 낄낄 웃어댔다.
“역시, 일방적으로 당할 리가 없지.”
“흐흐.”
척.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육진모가 손바닥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여기까지 하지.”
“왜?”
육진모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더 했다간, 진심으로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심약한 사람이었다면 간담이 서늘했을 경고.
그러나 이주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다.
“지금까진 대충 했다, 뭐 그런 소린가? 스파링처럼?”
“….”
“그런 것 치곤 엄청나게 집중한 것 같던데.”
“돌아간다. 오늘 일은 선생님께 빠짐없이 보고하도록 하지.”
육진모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던 그의 귀에 누군가의 한마디가 들렸다.
“근데, 이러면 무승부인가? 1 대 1이잖아.”
꿈틀.
육진모의 내면에 눌러뒀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었다.
끽해봤자 20대 중반인 저 애송이와 15년 가까이 생사를 건 실전을 거치며 경험을 쌓아 온 자신.
이 차이가 ‘무승부’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지는 순간, 육진모는 꽤 오랜 시간 잊고 있던 감정을 느꼈다.
‘아… 열 받는군….’
* * *
육진모와 경호대가 돌아갔다.
억지로라도 뚫고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후우….”
털썩.
나는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뒤 숨을 골랐다.
짧은 시간 동안 극한으로 집중해서 그런가, 탈력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야. 왜 그래?”
내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자, 팀원들이 후다닥 달려와 물었다.
“괜찮냐?”
“갈비뼈 부러졌어?”
“아니, 아니….”
“그럼 뭔데?”
“긴장이 풀려서 그렇다.”
그 말에 배상훈이 얼굴을 찌푸렸다.
“에이, X팔. 난 또 무슨 일 생겼나 했네.”
“걱정했냐?”
“지랄. 빨리 일어나라.”
턱.
배상훈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나자, 다가온 부장님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내 장비를 챙겨줬다.
철컥.
“확실히 빡세네요.”
“그러게 말이다.”
부장님이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대체 뭐 하던 놈이야? 마종석이도 들어본 적 없다던데.”
자세를 보면 무조건 군인 출신이다. 아니면 경찰특공대라거나.
“뭐, 어쨌거나 걱정하던 일은 안 일어났네요.”
“당연하지. 우리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인마.”
경호대장이랑 싸우는 동안 혹시라도 다른 놈들이 공격할까 긴장했었는데, 의외로 순순히 돌아들 갔다.
그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다.
‘리신페이를 꼭 죽여야 할 필요가 없거나, 찾아낼 방법이 있거나.’
만약 리신페이가 발각되어서 죽어버린다면 조금 곤란하긴 했다.
장쉬안의 빈자리엔, 아예 모르는 놈보단 그래도 대화라도 해본 사람을 앉혀놓는 게 나을 테니까.
나는 열이 올랐던 머리가 식는 걸 느끼며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리신페이는 곧바로 본단으로 갈 겁니다.”
“우리도 갈 거냐?”
“네.”
“가서 어떻게 하려고?”
씨익.
“그놈을 괴뢰로, 정치판에 끼어들어야죠.”
* * *
-…그래서, 안가로 진입하는 건 보류했습니다.
“그래요?”
선생, 민지훈은 육진모의 보고를 듣고 생각에 잠겼다.
“그럼 리신페이는 놓친 겁니까?”
-갈 만한 곳을 수색 중입니다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할 건 없어요. 워낙 땅이 넓어야지.”
거기다 외곽은 CCTV도 없으니, 작정하고 숨으면 찾을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일단 알겠습니다. 수고해 주세요.”
-예.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뚝.
통신을 종료한 민지훈이 고민에 빠졌다.
“흐음….”
협력하기로 한 이후로, 이주혁이 이렇게 대놓고 그의 행사를 방해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뒤에서 이것저것 꾸민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등을 돌렸다.
‘목적이 뭐지?’
아무 이유 없이 경호대의 앞을 가로막았을 리가 없었다.
혹시 리신페이가 도주할 것을 대비해 근처의 약도를 비롯해 하수도가 이어지는 장소까지 전부 조사해 두긴 했다.
그러나 정말로 놓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경호대가 제때 진입했다면, 안가에 숨어있던 리신페이는 이미 제거됐을 테니 말이다.
“이런 변수가 생길 줄은….”
예상하고 있었다.
이주혁이 직접 중국으로 넘어왔다는 것은, 삼합회 내부에서도 큰 변혁이 일어난다는 것과 마찬가지.
리신페이를 제거하지 못했을 때 어떻게 할지 정도는 생각해 뒀다.
하지만 뭘 하려면 우선 리신페이를 찾아내야 했다.
끼익-.
그때, 그가 있던 룸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남루한 복장의 한 중년 남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크흠….”
남자는 자연스럽게 들어와 민지훈의 맞은편에 앉은 뒤, 테이블 위에 놓인 안주들을 집으며 물었다.
“베이징은 오랜만이구먼. 어쩐 일로 바쁜 몸을 여기까지 불렀소?”
그에 민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중국어로 대답했다.
“개방에서 조용히 지내고 계신다곤 들었습니다만, 잘 적응하신 모양입니다.”
“큭. 그래 보이나?”
피식 웃은 남자는 자신의 행색을 슬쩍 훑었다.
“뭐, 용건이나 얘기하쇼. 비싼 안주나 먹이자고 부른 건 아닐 테니.”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 말에 남자는 네모나게 잘린 수박을 입에 넣으며 되물었다.
“어떤 정보 말이오?”
“정확히는, 한 사람을 찾아줬으면 합니다.”
“음. 단계는?”
“천라지망天羅地網.”
과일을 우물대던 남자가 움찔했다.
“…비용이 꽤 셀 텐데, 원수라도 되는 거요?”
“자세한 건 묻지 마시고, 받으시렵니까?”
“그거야 뭐…. 비즈니스는 돈 받으면 하는 거 아니겠소?”
“흔쾌한 수락 감사드립니다. 그럼 부탁드리지요.”
“어째 가라는 눈치구먼.”
스윽.
글라스에 위스키를 가득 따라 들이킨 뒤, 과일 하나를 더 씹어 삼킨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치를 이리 주니 원. 난 가보리다.”
“멀리 안 나가겠습니다.”
“음.”
“아, 참. 선생.”
룸을 나서려던 남자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
“정천이는… 잘 지내나?”
“소식만 전해 듣지 마시고, 직접 찾아가 보시죠.”
“나도 염치가 있는지라.”
“잘 지냅니다.”
“…고맙다.”
탁.
남자가 문을 닫고 나갔다.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민지훈은, 슬쩍 웃으며 안주 접시를 옆으로 치웠다.
드르륵.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