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36
#436화
“실패했다고요.”
“예. 죄송합니다.”
“아뇨. 대장님이 죄송할 게 뭐가 있겠어요.”
경호대장, 육진모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적극적으로 개입했어야 했는데, 저의 실책입니다.”
“아닙니다. 잘하셨어요. 괜히 나서서 좋을 건 없죠.”
그로선 리신페이가 죽든 말든 크게 상관이 없었다.
죽었다면 잘라내야 할 머리가 하나 줄어드는 것이었지만, 살아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리신페이는 류비엔을 힘들이지 않고 축출할 좋은 패였으니 말이다.
‘장쉬안은 내가 뒤통수를 쳤다 생각할지도 모르겠군.’
이번 일로 어느 정도의 신뢰는 잃었을 것이다.
약속된 사항이 지켜지지 않았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차피 끝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만… 벌써 버리긴 아쉽단 말이지.’
장쉬안은 나름 쓸 만한 사람이었다.
금전적 감각도 있고, 사람을 다루는 재주도 있었다.
거기다 제약회사라는 수단을 통해 다른 나라로 통하는 길도 뚫어놨으니, 필요하다면 그 루트를 이용해 약이나 무기를 들여오기도 편했다.
하지만 최근에 문제가 생겼다.
장쉬안이 유통하려던 각성제의 관한 정보가 경찰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정확히 누군진 몰라도, 아마 삼합회 내부자 짓일 테고.’
한번 경찰의 타깃이 된 이상 완전히 의심을 풀기는 무리일 게 분명하다.
마음 놓고 마약 성분이 들어간 물건을 팔 수 없는 상황이란 뜻이었다.
쿵.
그 순간, 갑작스럽게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쿵. 쿵. 쿵.
“….”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예…. 걱정하지 마세요.”
그의 고통 어린 표정을 본 육진모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선생, 민지훈은 길게 숨을 내쉬며 책상 위에 있던 알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꿀꺽.
“후우….”
그리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가사 상태로 만드는 약을 먹고, 바다에 10분 가까이 빠져있었다.
그 일로 인해 몸의 상태, 특히 심장이 많이 상해버렸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건만.’
민지훈은 가슴이 조여드는 감각을 느끼며 육진모에게 말했다.
“대장님.”
“예. 말씀하십시오.”
“아무래도, 계획을 조금 변경해야겠습니다.”
과연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그건 그로선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믿을 수 있었다.
민지훈은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대신할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군….”
* * *
한편, 담배꽁초를 버린 장쉬안은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저, 사장님.”
“음?”
다급한 표정으로 다가온 수하가 그에게 말했다.
“회사 편으로 메일이 하나 왔는데…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길래 그러나?”
척.
장쉬안은 수하가 말한 메일의 제목을 확인했다.
[命運制药的不正之风(명운제약의 비리)]“…?”
장쉬안은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내용까지 읽어 내려갔다.
[장쉬안. 우리는 당신이 저지른 짓들을 알고 있다. 지금 당장 경찰에 자수해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그에 걸맞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뭐가 더 있나 했는데, 내용은 이게 전부였다.
장쉬안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수하를 돌아봤다.
“이게 뭔가? 왜 미친놈이 쓴 메일을 그리 다급하게 들고 왔나?”
“저도 처음에는 그냥 넘기려고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요즘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허베이지부장도 바로 아침에 암살당할 뻔했잖습니까.”
그 말에 장쉬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평소에 이런 악의적인 장난 메일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수하가 말한 대로 지금 상황과 결부시켜 생각해 보니, 적당히 간과하고 넘어갔다가 괜히 피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엇다.
“틀린 소린 아니네. 다만 메일을 누가 보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지 않나.”
“제가 한번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경호도 강화하게.”
“알겠습니다.”
수하에게 그리 지시한 장쉬안은 다시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원로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몰렸다.
장쉬안은 순간 역겨움을 느꼈다.
일선에 나서진 않으면서, 권력을 잡은 이에게 빌붙어 기생하는 늙은이들.
‘네놈들도 조만간이다.’
장쉬안이 산주가 되면 하려고 했던 계획 중 하나가 바로, 원로회라는 적폐 조직을 없애는 것이었다.
“이보게, 산주. 리신페이, 그놈은 어떻게 할 건가?”
“일단 지부장 자리를 박탈해야겠지요.”
“그건 당연한 일이고.”
척.
“허베이지부장을 해치려고 했는데, 당연히 목숨으로 사죄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도 류비엔이 삼합회에 공헌한 바가 적지 않습니다만,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닐지요.”
“허, 심하다고? 그놈은 한 식구를 죽이려고 러시아 킬러들까지 고용한 놈일세! 20년 전이었으면 당장 찢어 죽여도 모자랐단 소리야!”
장쉬안은 좌중을 살폈다.
나머지 원로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몇 이들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서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잘 알겠습니다. 그럼 어떤 방식으로 그를 처벌할지 논의해 봅시다.”
“무얼 고민하나. 옛날 방식으로 가면 되지.”
원로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가 말한 옛날 방식이란, 드럼통 같은 것에 콘크리트를 발라 물에 던지는 것이었다.
당하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뒤처리도 깔끔한 방식이었지만, 처음에 목숨으로 사죄하라고 했던 원로가 강경하게 말했다.
“그건 안 될 말씀. 그놈이 부리는 사람 수가 몇이나 되는지 알고 하는 소리요? 다른 데로 옮기다간 허베이지부장, 그 꼴 날 거요.”
“크흠. 그럼 여기서 처리하잔 말이오?”
“안 될 거 뭐 있소이까?”
상황은 점점 뒤탈 없게 여기서 류비엔을 처리하자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자자, 진정들 하십시오.”
“산주. 내 말이 틀렸나?”
장쉬안은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긴 하나, 저도 양 원로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충성심이 강한 류비엔의 수하들은 분명히 무슨 일을 저지를 겁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양 원로가 불린 꼬장꼬장한 인상의 노인이 손을 내저었다.
“아! 다들 걱정하지 마시오. 이 일의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비난한 생각이거든 날 욕하시오.”
류비엔의 목숨값을 그가 지고 간다는 말에, 다른 원로들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들의 체면이 상할 일이 없으니, 그들로서도 굳이 한 마디 더 얹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알아도 되겠소? 산주.”
장쉬안은 복잡한 표정을 한 채 양 원로의 물음에 답했다.
“그리하도록 하지요.”
그러나, 그는 속으로 음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철컹.
한편, 외진 곳에 있는 감옥 형태의 방에 구금된 류비엔은 주저앉은 채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
그의 눈빛은 살벌했다.
“이 개자식들….”
류비엔은 분노 섞인 숨을 내쉬며 벽에 머리를 기댔다.
쿵.
러시아 킬러 집단의 간부, 미하일과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지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에게 금전적 도움과 조직에 자리잡는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조용히 사람 죽이는 데는 전문가인 미하일의 수하들.
류비엔은 그들을 물밑에서 움직이며 이득을 취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그의 경쟁자를 없애준다는 미하일의 제안을 마다하지 않았다.
알아서 떠먹여 준다는 걸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근데 이번 일은 아니라고!’
안 그래도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 미쳤다고 이 아침 도로에 암살자를 보내겠는가.
본단으로 향하는 리신페이를 습격한 것은 그가 아니었다.
“내가 뭐 하러 그런 짓을 해?”
하지만 그의 항변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류비엔과 리신페이, 둘 중 하나는 거짓을 말하고 있다.
그 상황에서 이런 일이 터졌으니, 원로들 입장에선 그냥 이참에 류비엔에게 모든 책임을 떠안기려는 것이었다.
으득.
류비엔은 분개하며 이를 갈았다.
“더러운 늙은이들. 감히 나를 이렇게 버린다 이거지?”
이곳에 오기 전에 수하들에게 미리 지시해 뒀다.
혹시 자신이 몇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을 시엔, 당장 장쉬안의 비리 증거를 가지고 경찰서로 향하라고 말이다.
“절대 나 혼자 죽진 않을 거다.”
그들이 자신을 동료의 암살을 지시한 사람으로 몰아간다면, 정말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밖에.
저벅.
그때, 누군가 복도를 걸어오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스윽.
고개를 들어 확인해 보니, 감옥처럼 작게 난 창살 너머로 한 남자가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소룡방주小龍幇主.”
벌떡.
그 목소리에 류비엔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를 찾아온 사람은, 전 산주의 비서를 맡던 차이진리였다.
“……형님.”
“류 방주, 당신은 이 시간부로 지부장직을 박탈당했습니다.”
“형님. 내가 한 게 아니오.”
“그리고 사건의 정확한 혐의가 밝혀진다면 거기 합당한 처벌을 받을 겁니다.”
“내가 한 게 아니라니까!”
쾅!
류비엔이 주먹으로 창살을 내리치며 소리를 지르자, 차이진리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류 방주. 이미 원로회에선 마음을 굳혔네.”
“…방법이 없겠소? 그래도 형님은 어르신 비서였잖소!”
차이진리는 착잡한 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명목상으로 그런 거지, 어르신이 돌아가신 이상 내가 가진 힘은 없네.”
“그래도 권한 대리 아뇨?”
“자네 건이 마무리되면 장 사장이 정식으로 새로운 산주가 되었다는 걸 공표할 걸세. 그럼 내 권한 대리라는 역할도 끝이지.”
잘근.
류비엔은 초조한 얼굴로 입술을 짓씹었다.
원로들이 마음을 돌리는 것이 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리고, 옛정이 있으니 미리 말해주는 거다만….”
“…?”
“원로들은 자네를 살려둘 생각이 없네.”
꽈악.
창살을 붙잡고 있던 류비엔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미안하네. 자네가 정말 억울하다 해도, 내 선에서 손쓸 방법은 없어.”
“…….”
차이진리가 떠나고, 류비엔은 그대로 문 앞에 선 채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그런 결정을 내렸다 해도, 보는 눈이 있으니 이곳에서 그를 죽이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류비엔이 초조함에 방 안을 서성이고 있던 그때.
뚜벅. 뚜벅.
이쪽으로 다가오는 여러 개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굳은 표정의 남자 서너 명이 류비엔이 있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철컹.
“가시지요.”
“…어디로?”
그 물음에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직원들이 팔을 붙잡기 위해 손을 뻗자, 류비엔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며 말했다.
“내 발로 직접 가겠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구두를 고쳐 신는 듯 신발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렇게 남자들을 순간 방심시킨 류비엔은, 발목 뒤에 숨겨뒀던 나이프를 꺼내 번개같이 달려들었다.
탓! 푸욱!
“컥!”
순식간에 폐를 찔린 조직원이 짧은 신음을 뱉었다.
“이런…!”
나머지 조직원들이 황급히 허리춤을 더듬었지만, 본단에는 무기를 가지고 출입할 수 없었기에 손은 허공을 갈랐다.
류비엔이 갑작스럽게 출두한 탓에, 몸수색을 철저히 할 시간이 없어 가지고 있던 칼을 놓치고 만 것이다.
칼을 뽑아 든 류비엔은 비틀대는 조직원의 목깃을 붙잡고 당황하는 이들을 향해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지 알고는 있나?”
씨익.
“들어와라. 개 같은 놈들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