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37
#437화
삼합회 본단의 한 복도.
그곳에서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푸욱-!
“커억!”
미쳐서 날뛰는 류비엔에게 조직원 하나가 더 당했다.
조직원들은 당황한 채 주춤대며 동료들이 무기를 들고 오기를 기다렸다.
“후우….”
“끄으윽…!”
인질로 한 명을 붙잡은 류비엔이 숨을 골랐다.
‘이 정도면 그 녀석들도 알아차렸겠지.’
어차피 이런 일을 저지른 이상 무사히 빠져나가긴 글렀다.
부하들이 자신이 잘못된 걸 알고 지시해 둔 일을 진행하기를 바라야만 했다.
“크아앗!”
삼합회의 불명예로 남을 것이다.
동료의 암살을 사주했고, 그 일로 잡히자 같은 조직원을 죽이고 탈출을 시도한 배신자.
류비엔은 그렇게 기억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불명예를 얻더라도, 혼자 모든 걸 떠안고 죽어줄 생각은 없었다.
타닷-!
‘지금쯤 증거를 가지고 경찰에게 갔겠지.’
조직원들이 긴장한 얼굴로 점점 거리를 좁혀왔다.
어느새 그가 처리한 사람이 다섯이 넘어갔다.
복도가 좁아 한꺼번에 덮치기가 힘든 탓에, 칼부림을 하는 류비엔을 쉽사리 제압하기가 힘들었다.
“다들 중지!”
치료 중 소식을 듣고 온 리신페이가 류비엔을 노려보며 말했다.
“류비엔.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감히 본단에서 이런 짓을 벌여?”
“흐흐…. 네놈도 알고 있잖냐. 내가 한 게 아니라는 걸.”
그 말에 리신페이는 코웃음을 쳤다.
“멍청한 놈. 가만히 있으면 곱게 죽여줄 것을. 네 시체는 개 먹이로 던져질 거다.”
류비엔이 조용히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15년 전, 산주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동생들은 나를 더 잘 따르잖냐. 그러니까 산주는 내가 하고, 넌 돈 버는 재주가 있으니까 자금을 마련하는 거야.
-나더러 창고나 채워놓으라는 말이냐?
-그게 아니지. 우리가 이끌 삼합회를 위해 네가 돈을 버는 거라니까?
-꿈도 크다.
류비엔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봐.”
까딱.
그가 무어라 말을 꺼냈지만, 리신페이는 그를 무시하며 칼을 들고 온 조직원들에게 손짓했다.
“가라.”
꽈악.
류비엔은 달려오는 남자들을 노려보며 붙잡고 있던 조직원의 다리를 찔렀다.
푹!
“크악…!”
그리고 기합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으아아-!”
.
.
.
“…….”
리신페이는 류비엔의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봤다.
“쿨럭….”
벽에 기대 주저앉은 그의 몸에는 칼 여러 자루가 꽂혀있었다.
“훅. 흐으….”
스윽.
흥건하게 흘러나온 피가 바닥에 고여 웅덩이를 만들 무렵.
류비엔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신페이….”
“이름 부르지 마라. 마음 약해지니까.”
턱.
리신페이는 몸을 숙여 류비엔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러게 왜 그랬냐.”
“흐…. 나는….”
까딱.
리신페이가 손짓하자, 거친 숨을 내쉬고 있던 조직원이 그에게 칼을 건넸다.
“그래도 옛정이 있으니 이쯤 하마.”
텁.
류비엔의 머리를 옆으로 젖힌 리신페이가 칼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그의 목에 꽂아 넣으려 했다.
콱!
그때, 류비엔이 리신페이의 멱살을 잡았다.
“야.”
“…?”
“이렇게 된 거… 그냥 네가 해라….”
스윽.
류비엔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장쉬안은 내가 데려갈 테니까.”
“…….”
표정을 굳히고 있던 류비엔이 피식 웃었다.
“알았다. 쉬어라.”
푸욱!
“…!”
류비엔의 팔다리가 움찔 떨리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복잡한 표정으로 다시 일어난 리신페이가 신음성을 흘렸다.
아직 교통사고의 후유증이 남아있는데도 몸을 움직인 탓이었다.
하지만 리신페이로서도 다른 사람 손에 그가 죽게 두고 싶진 않았다.
지금은 틀어져도 너무 틀어져 버린 관계였으나, 적어도 그의 목숨은 직접 가져가는 게 도리였다.
“치워라. 다친 녀석들은 바로 치료실로 옮기고.”
“예. 알겠습니다.”
옷에 피가 묻은 남자들이 쓰러진 이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흠….”
한편, 생각에 잠긴 리신페이는 의아함을 느꼈다.
조직원 열 명 가까이 치명상을 입었다.
만약 류비엔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칼을 든 사람 여럿과 싸워 이겼다는 것 자체로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류비엔은 보통 놈이 아니다.
젊은 시절에도 칼과 주먹으로 사천 일대를 제패한 남자다.
지금 소룡방小龍幇에 몸담은 이들도 대부분은 류비엔의 실력에 반해서 들어온 이들이었다.
‘그런 놈이 이렇게 맥없이 당했다라….’
좁은 복도에 손에 칼을 쥔 이상, 적어도 30분 이상은 혼자 버텼어야 하는 게 맞았다.
‘일부러 죽었을 리는 없고….’
리신페이는 고개를 떨군 류비엔의 시신을 향해 바라봤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거냐. 정신 나간 자식.’
그가 왜 이런 미친 짓을 저질렀는지.
그로선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 *
한편 그 시각, 한국.
대통령비서실장, 조병철은 미심쩍은 얼굴로 책상을 두드리고 있었다.
탁. 탁. 탁.
지난주, 그는 한국으로 넘어온 삼합회의 수장 장쉬안과 협상을 진행했다.
그가 한국의 뒷세계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허가해 주는 대신, 그 수익의 20%를 받기로 했었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생겼다.
중국으로 돌아가면 연락하겠다고 한 장쉬안이 감감무소식이었던 것이다.
“흐음….”
불쾌하긴 했으나, 먼저 연락하는 건 너무 조급하게 보일 수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그 일은 잠시 미뤄두고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 그는 국정원장에게서 한 가지 자료를 받았다.
조병철의 저택에 침입해 기밀 서류를 훔쳐간 자들과 관련된 정보였다.
거기 적힌 내용은 이러했다.
‘국정원의 열정 넘치는 한 파트장이, 독단적으로 사람들을 고용해 저지른 일이라고.’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침입한 경로며, 경비들을 제압한 솜씨며.
누굴 고용한 건지는 몰라도, 어지간한 전문가가 아니면 거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순 없었다.
게다가, 그의 경호실장인 박춘배도 현장에서 당해 현재 혼수상태다.
잠깐 조폭에 몸담았던 격투기 선수 출신이라 실력이 꽤 좋았지만, 그마저도 당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이 자료는 아마 차영규, 국정원장이 일을 덮기 위해 거짓으로 꾸며낸 보고일 터.
“개새끼가,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주인을 물려고 해?”
돈도 빽도 없던 지방대 검사 나부랭이를, 무려 국정원장이라는 요직에 앉혀놓은 게 바로 조병철이다.
그런데 그런 놈이 뒤에선 이런 짓을 저지르고 거짓말까지 하다니.
상당히 불쾌한 처사였다.
척.
조병철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대원일보의 사장, 민재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민 사장. 잠깐 통화 가능한가.”
-아, 예. 실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내가 건수 하나를 물어와서 말일세.”
-실장님 스토리라면 언제든 환영이지요.
“차 원장 관련된 일인데.”
그 말에 민재형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보통 조병철은 누군가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사회적으로 묻어버리고자 할 때 기삿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차영규는 같은 모임에 속한 이였으니, 그로선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차 원장이라면… 국정원장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국정원장.”
-음…. 예.
“왜, 해외 파견 공무원 변사 사건 있잖은가.”
-아아, 그 사건이요.
2주쯤 전, 베이징에 파견을 나가 있던 공무원들이 실종되었다가 시신으로 발견된 일이 있었다.
그들의 신원은 국정원에서 일하는 요원들이었지만, 대외적으론 파견직으로 알려진 상황이었다.
“그 공무원들이 사실, 본인의 비리를 입막음하려고 한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했다면.”
-…비리요? 위에선 조직폭력배나 인신매매단에게 살해당한 걸로 추측하고 있던데요.
“사실은, 차 원장이 그들을 죽인 걸세.”
민재형이 혀를 내두르며 물었다.
-이야, 이거 사이즈가 너무 큰 것 같습니다만… 혹시 증명할 만한 게 있을까요?
“나한테 내부 자료가 있네. 차 원장이 여러 사람한테 돈을 먹였다는 증거.”
-증거가 있다면야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실장님만 괜찮으시다면 제가 한번 스토리를 짜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자네 솜씨는 내가 잘 알고 있는데.”
조병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기삿거리를 물어오고, 그걸 다른 중소 언론사에 하청을 맡겨 기사로 내게 한다.
어차피 그런 건 대중들의 눈을 돌리기 위한 기사들이 대부분인지라, 그게 찌라시든 팩트든 상관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찍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공은 대원일보가 세우고 욕은 하청 언론사가 먹게 된다.
이득은 민재형만 보는 구조였지만, 하청 언론사도 보수와 많은 조회수를 얻게 되니 윈윈이었다.
-그럼, 시나리오 완성되면 실장님께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시게.”
-아, 외람된 말씀이지만…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뭔가?”
민재형은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며 물었다.
-차 원장은 실장님이 직접 끌어 당겨주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런 기사를 내라는 거냐고?”
-그… 예. 그렇습니다.
“이유야 있지. 내가 그 친구를 너무 과소평가했거든.”
-예?
조병철이 의자 뒤로 기대며 중얼거렸다.
“이빨이 커졌다고, 나한테까지 들이댈 줄은 몰랐던 게지.”
* * *
리신페이에게 류비엔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장 세력이 큰 세 지부장 중 하나라고 했지.’
류비엔이 죽었고, 장쉬안도 곧 따라갈 예정이니.
결국 남는 건 리신페이 하나다.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
우리가 베이징에 온 목적이었던 유선화의 복수.
유선화가 목숨값은 목숨으로 받아내야 한다고 했기에, 우린 장쉬안을 제거할 계획이었다.
원래라면 삼합회 같은 거대 조직의 수장을 암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내는 곳의 경계도 삼엄할뿐더러, 접근하는 것 자체가 힘드니까.
하지만 유선화에게 듣기론, 장쉬안은 아직 체제를 공고히 하지 못했다.
‘내부 정리만으로도 바쁠 거란 말이지.’
거기다 리신페이, 그놈의 복귀와 류비엔의 죽음까지.
지금쯤 꽤나 골머리를 앓고 있을 거다.
다만 문제는, 장쉬안에게 어떻게 접근하는가였다.
우선, 장쉬안은 현재 삼합회 본단에서 지내는 중인 걸로 알고 있다.
아무래도 적의 본진이니만큼, 대뜸 들어가서 그놈을 처리해 버릴 순 없었다.
‘유선화 경호원으로 들어갈 순 있어도, 뒷감당은 또 다른 문제지.’
장쉬안 하나 없애겠다고 애꿎은 우리 팀원들과 유선화의 목숨을 위협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다른 방법을 찾고 말지.
‘장쉬안을 밖으로 꺼낼 방법이 없을까?’
우리가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보단, 놈을 나오게 만드는 게 더 나을 텐데 말이지.
하지만 장쉬안도 알고 있을 거다.
지금 시점에서 함부로 나돌아다니다간 피를 본다는 걸.
아마 어지간한 일로는 얼굴을 비추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한 마디로, 그놈을 불러내려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하나?”
“누구를? 그 노인네?”
“네. 그런 거 말곤 방법이 생각 안 나네요.”
“흠….”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는 부장님.
그 뒤에서 걷던 백기준이 손을 슬쩍 들며 말했다.
“그 사람, 가족은 없어?”
“아마 없을 텐데. 왜, 가족으로 협박하게?”
“그게 제일 확실하잖아.”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가족들은 죄가 없잖냐.”
쭈욱.
나는 결리는 어깨를 풀며 목적지로 향했다.
우리가 지금 가는 곳은 얼굴에 흉터가 있는 남자, 위정천이 운영하는 술집이었다.
민지훈은 이번에 리신페이를 죽이려다 실패했다.
그 상황에서 그놈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했다.
내가 계획을 망쳤다고 죽이려 들지,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지.
저벅.
그렇게 술집이 있는 위로 계단을 타고 가는데.
콰앙-!
위쪽에서 뭔가 부서지고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
“가자.”
우리는 빠르게 계단을 훌쩍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그땐 알지 못했다.
지금부터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갈지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