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4
043화
휙. 휙.
놈이 나이프를 들고 나를 맞히려 휘두르고 있다.
하지만, 어설픈 아마추어의 몸놀림.
이딴 칼놀림에 맞아 줄 내가 아니다.
‘이 새끼를 어떻게 처리한다?’
돌이켜보니, 스토킹 범죄의 잔혹함을 잊고 있었다.
스토킹은 최악의 범죄 중 하나다.
집착에서 시작된 그것은 망상과 집념을 낳고, 누군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여기까지도 심각한데, 더한 문제는 그 집착의 끝이 좋지 않다는 거였다.
스토킹 범죄 처벌법은 2021년에서나 생기는 법률이다.
그전까지는 법의 제재가 없기에 경찰이 안이하게 대응한다.
그냥 돌아가시라, 이러면 안 된다는 식의 경우도 있고, 적반하장으로 여자한테 이 정도면, 남자의 마음을 받아 주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일도 있다.
‘그건 진짜 아니지.’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싫다는 사람한테 마음을 열라고 강요하는 게 어딨어?
이런 식으로 경찰이 대응하다가, 결국 사건이 터진다.
여자를 납치한다거나, 죽인다거나, 여자가 보는 앞에서 일가족을 몰살한다거나.
이런 극단적인 사건이 수십 차례나 이어지고 나서야, 국회에서 법률이 제정되고 실행된다.
‘쯧. 경찰이나 국회의원이나…….’
이건 둘 다 잘못한 거다.
사람의 집착이 얼마나 무서운 건데, 2021년에나 법률을 만들다니.
하지만, 내 기억엔 그것도 별로 효과가 없다.
피해자가 신변 보호 요청을 하고, 가해자에게 일정 구역 이상 다가가지 말라고 제재를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아무리 피해자가 신변 보호를 위해 지급받은 스마트 워치로 긴급 신호를 보내면 뭐 하나?
사건은 순식간에 일어나기 마련인데.
늦장 대응과 안일한 대응.
사전에 스토킹을 차단하는 원천적인 해결책이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법률이다.
그래서, 스토킹 처벌법이 실행됐던 시대에도 사건은 계속 일어났다.
휙. 휙.
난 다시 놈의 나이프를 피하며 물었다.
“칼로 유나 씨를 협박할 생각이었냐?”
“씨X! 네가 무슨 상관이야?!”
눈이 돌아가 있다.
이 정도면 확실하다.
이놈은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임유나를 칼로 협박해 납치라도 하려고 했을 거다.
거기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지.
임유나가 완강하게 저항했다면, 칼에 상처를 입는 최악의 일도 생길 수 있었다.
“너. 이대로는 안 되겠다.”
“뭐?”
스토킹은 싹을 잘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놈에겐 임유나에 대한 어마어마한 집착이 있기에, 여기서 내가 때려눕힌다고 해도 다시 찾아올 게 뻔했다.
그렇다고 나나, 우리 직원들이 24시간 임유나를 경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면, 집착을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인간에게 통하는 방식을 써야겠다.
툭!
난 놈의 뒷목을 갈겨 기절시켰다.
그러고는 어깨에 둘러업으며, 임유나를 바라봤다.
“외상값은 다음에 갚을게요.”
“……예?”
“그럼, 전 이만.”
난 황급히 차로 돌아가, 뒷좌석에 놈을 대충 내팽개쳐 두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젠장. 오늘도 외상값을 못 갚다니…….
이 스토커 새끼.
오늘 넌 하루 종일 같은 말을 할 거다.
제발, 죽여 달라고.
.
.
“아따, 행님. 임마는 뭡니꺼? 연예인입니꺼? 남자 연예인은 왜 납치해 오셨으예?”
“야……. 난쟁아. 내가 납치한 걸로 보이냐?”
“네. 완전 그래 보이는데예.”
아. 생각해 보니 그렇네.
난데없이 사무실로 정신 잃은 남자 놈을 데리고 왔으니까.
“신경 끄고 집에 가라.”
“에이. 행님이 퇴근 안 했는데, 제가 우째 퇴근함니꺼?”
“그냥 가라면 가.”
“…….”
“너 요즘 말 안 듣는다. 맞을래?”
“아, 아입니다.”
사무실에 홀로 남은 난쟁이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다가, 이내 고개를 틀어 나를 바라봤다.
“행님. 혹시……. 그쪽은 아니지예?”
“뭐?”
“그……. 남자를 좋아하는……. 게이…….”
“야이! 개쉑……!”
난쟁이가 후다닥 도망친다.
아주 잡아서 오뉴월에 서리 내릴 때까지 쥐어패고 싶은데, 혹시라도 스토커 새끼가 깨어날까 봐 참았다.
“후……. 넌 집에 가서 보자.”
사라진 난쟁이를 보며 중얼거리곤, 핸드폰을 들었다.
이놈에겐 기술자가 필요하다.
집착과 집념을 없애 줄 기술자가.
그쪽 방면으로 우리 직원 중에 출중한 인물이 있다.
“기준아.”
-어. 주혁아.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혹시, 뭐라도 터졌어? 바로 출동해?
우리 회사 직원이자, 15명의 인간 병기 중 한 명.
HID 동기인 백기준이다.
“아니. 그건 아니고. 네가 해줬으면 하는 게 있어서. 지금 사무실로 와 줄 수 있어?”
-뭐, 고용주가 오라면 가야지. 근데, 무슨 일인데?
“네 주특기를 발휘할 일.”
-내 주특기?
“어. 제대로 준비해서 와라.”
-크크크큭. 알겠다. 내가 아주 확실히 준비해서 갈게.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다.
이놈의 주특기는 대인격투, 스나이핑 그리고…….
‘고문.’
적에게 참기 힘든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주는 바로 그것이, 백기준이 HID 시절 갈고 닦은 주특기다.
***
“행님. 요즘 기준이 행님이 안 보임니더.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니겠지예?”
“아니야. 내가 따로 시켜 놓은 일이 있어서 그래.”
난쟁이의 물음에 답해줬다.
백기준은 지하실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집착이란 건, 그냥 두들겨 팬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거든.
완벽한 정신 개조가 필요한 작업이다.
그렇기에 며칠째 백기준은 지하실에서 살고 있다.
‘스토커 새끼. 안 됐네.’
백기준이 스토커를 둘러업고 지하실로 내려갔을 때, 그 표정을 봤어야 한다.
잔혹무도하면서도 희열에 넘치는 그 표정.
으……. 다시 떠올리니, 팔에 소름이 돋아난다.
“출장 가신 거네예. 알겠슴니더. 근태는 그렇게 처리할게예.”
“그래. 아! 그건 그렇고, 얼굴은 좀 괜찮냐?”
안대를 쓰고 있는 난쟁이에게 물었다.
“조, 좋아지고 있슴니더.”
“그러냐? 알겠다. 이제부터 말조심하자.”
“아……. 알겠슴니더.”
나의 성 정체성을 의심한 난쟁이 자식.
내가 얼마나 건강하고 남잔데? 어?! 아침마다 얼마나 건강하게 일어나는데? 어?!
모태솔로인 것도 서럽구만, 나의 성 정체성을 농락하다니.
그래서 집에 가자마자, 한 대 갈겨줬는데 눈탱이가 밤탱이가 됐다.
직원을 때린 고용주가 될 수 없으니, 안대를 사주고 다래끼가 생겼다고 거짓말을 하라고 했다.
악덕 고용주로 낙인찍힐 수 없어서, 강구해 낸 임기응변이었다.
난쟁이가 쭈글한 모습으로 자리에 돌아갈 때,
-가락동 청과물점, 마약 유통에 추가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TV에서 마약 밀수 사건이 보도됐다.
“난쟁아. TV 소리 좀 올려 봐.”
“예. 행님.”
-어제 전해드린 아보카도를 이용한 마약 밀수에 많은 시청자분들이 놀라셨을 겁니다. 남미에서나 쓰는 방식이 한국에도 적용된 이번 사건에 경찰청은 분개하며, 대대적인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경찰청이 분개는 무슨.
밑에서 뒷돈 받아먹는 놈들이나 조져라.
-그런 와중, 금일 오전 10시경. 주범인 한인석이 자수했다고 합니다. 자세한 소식은 박상구 기자가 전해 드리겠습니다. 박상구 기자?
-네. 박상구 기잡니다.
-주범이 자수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거죠?
-오전 10시경, 한인석이 자신이 아보카도를 통한 마약 밀수를 추진했다며, 경찰청에 자수했습니다. 놀라운 부분은 주범의 직업인데요. 사법연수원 28기 출신의 변호사라는 점입니다.
-변호사요? 변호사가 마약 밀수를 주도했다는 겁니까?
-네. 진술 내용으로는 남미 여행 중 마약 밀수하는 방법을 보고, 한국에서도 통하겠다고 직접 추진했다고 합니다. 이번 사건으로 대중은 물론, 법조계에도 큰 파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국, 한인석으로 꼬리 자르기를 하는구나.’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시나리오다.
한인석 변호사를 넘겨주며, 그에게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쓰라고 지시했을 것이다.
아마도 가족을 인질로 삼지 않았을까 싶다.
주철수라면,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니까.
“와따마. 저 변호사 양반을 팔아 넘기 뿌네.”
“꼬리를 자른 거지. 도마뱀처럼.”
도마뱀처럼 계속 잘라 내라.
그럴 때마다 너희 힘은 계속 약해질 것이고, 다시 재생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난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을 테니, 긴장하는 게 좋을 거다.
정해진 순서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제, 구로구에 남겨 둔 아보카도 트럭으로 뭘 할지가 문제였다.
“행님! 저 왔슴니더.”
“어. 그래. 고생했다. 뭐, 특별한 일은 없었고?”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네예. 암것도 안 하고 트럭에서 먹고, 자고, 싸고 다 합니더.”
사무실로 들어온 덩치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지금 신경을 집중시켜야 하는 건, 남은 두 대의 트럭이다.
덩치와 돼지, 둘이서 24시간 감시할 수는 없기에, 다른 직원들과 교대해가며 감시하고 있다.
“근데예. 이거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거 같아예. 찜찜하그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게 꼭 폭풍전야 같아예.”
둔감한 덩치도 느낄 정도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주철수는 분명, 큰 걸 노리고 있는 거다.
덩치가 주머니에서 아보카도 하나를 꺼냈다.
“아따. 이거 뭐시 좋은 기라고 하는 깁니까?”
“너 그거 어디서 난 거야?”
“트럭이 미친 듯이 달리다가 상자가 쪼매 열렸는지 하나 떨어졌드라고예. 그래서, 제가 챙겼습니더.”
“더 떨어진 건?”
“없습니더.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쫓았잖아예. 이거 말고 떨어진 건 없으예.”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보카도 안에 있는 코카인은 절대 일반인이 주워 가면 안 된다.
코카인에는 각성 효과와 중독성이 있다.
호기심에라도 시작하면, 인생 조지는 거다.
덩치가 아보카도를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말했다.
“이 안에 있는 기 그리 위험한 겁니꺼?”
“위험한 수준을 넘어선 물건이지. 너 담배 피우지?”
“예. 피웁니더.”
“내가 너한테 담배 끊으라고 하면, 끊을 수 있겠냐?”
“힘들 긋지만은……. 행님 지시라면, 노력해 봐야지예.”
“그래. 담배는 노력이라도 할 수 있어. 근데, 마약은 노력으로 끝나지 않아. 치료를 받아야지. 중독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에 갇히는 거거든. 거길 벗어나려면,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아야 해. 근데, 퇴원해도 마약 생각이 나. 이미 맛 들인 인간들은 그 개미지옥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하거든. 그게 마약이야.”
주철수 밑에 있을 때, 마약으로 인생 종친 인간들을 무수히 많이 봤었다.
인간의 이성을 잃을 정도로 중독에 빠진 그들은 구제하기 힘들 정도였다.
“무서븐 기네예.”
“그래. 그러니까. 아보카도는 지하 창고에 갔다 넣어 놔라. 아예 건드릴 생각도 하지 말고.”
“알겠슴니더.”
덩치가 아보카도를 조심조심 들고 지하로 향하려 할 때였다.
띠리리링.
내 핸드폰이 울렸고, 트럭을 감시하고 있던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혁 선배님. 트럭 움직입니다.
“쫓아가. 들키지 않게 조심히.”
-알겠습니다.
“전화는 끊지 마. 나한테 실시간으로 보고해.”
-예.
두 대가 동시에 움직이고, 서울 안쪽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한참 동안, 트럭을 따라가던 직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선배님. 여기 종로의 상가 건물인데요. 트럭 둘 다,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갑니다.
“상가? 정확히 말해 봐. 어딘데?”
-청계천 위에 젊음의 거리 쪽입니다.
“!!”
거긴, 고광목의 본거지다.
그렇다는 말은…….
‘고광목한테, 마약을 던지려는 거야.’
서울광목파와 전면전을 펼칠 수는 없으니, 마약을 던지고 대가리인 고광목을 제끼려는 거다.
‘안 돼.’
서울 조폭삼분지계로 균형을 맞춰 놨는데, 지금 고광목이 무너지면 안 된다.
고광목이 제껴지는 순간, 서울광목파는 강남파 밑으로 흡수될 게 뻔하니까.
‘고광목이 보통 놈은 아닌데…….’
던지기를 한다고 해서, 당할 인물이 당할까?
힘으로 제압하지 않는다면, 분명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발버둥 칠 게 뻔한데.
아! 힘!
“부장님!”
“……어?”
태연하게 사과를 베어 물고 있는 라세흠 부장을 불렀다.
“종로로 가세요. 거기 그놈이 올 겁니다.”
“그놈이라면……. 마종석 이사?”
“네.”
“크크큭.”
입꼬리를 올리며 웃은 라세흠 부장이 한 손으로 사과를 즙으로 만들어 버리며 말했다.
“지금 만나러 간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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