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45
#445화
박건의 문자를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이미 차영규에 대한 수색영장은 나왔고, 물증이 있어서 체포영장도 충분히 가능하단다.
그리고 이번 수사의 책임을 박건, 그 양반이 맡았다는데.
[…래서, 뭔가 느낌이 이상해 부탁드립니다. 혹시 이 일을 조사하는 데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까? 부담 줄 생각은 아닙니다만, 여건이 되지 않으신다면 거절해주십시오. 괜히 고민거리를 만든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럼 이만 줄일 테니, 확인하시고 답장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이 양반은 왜 이렇게 날 조심스럽게 대하는 거야?
애초에 직급상 본인이 더 상관인데 말이지.
내가 진짜 경찰이 아니라 그런가, 조금 예의가 과해서 오히려 부담스러운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신체 나이론 내가 거의 스무 살 가까이 어리니까.
애초에 회귀 전으로 따져도 나보다 윗사람이다.
[물론 좋습니다. 안 그래도 저도 궁금하던 참이었습니다.] [박건 과장님 – 다행입니다. 일단 자세한 건 만나서 말씀드릴까 하는데, 괜찮으십니까?] [예.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어디십니까?] [여기가…….]박건에게서 주소를 받은 나는 옆에서 대기 중인 팀원들에게 말했다.
“나 잠시 박 과장 좀 만나고 와야 할 것 같은데.”
“뭐? 그럼 우리는?”
“그거 있잖냐. 내가 가져온 거.”
“음? 아, 어어. 그거.”
“특수국에 좀 갖다줘라.”
마약으로 추정되는 흰 덩어리와, 장쉬안이 지하실에서 제작한 각성제.
그것들을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원본을 그대로 받았으면 굳이 실험실에서 뭔가를 할 필요가 없을 테니, 분명히 뭔가를 더 한 거겠지.
그러니 특수과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만났다가 언제 오는데? 뭐 거창하게 할 것처럼 말하더니만, 우린 그냥 가면 되는 거냐?”
부장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섦여했다.
“일단은요. 저도 우선 상황을 좀 알아봐야 돼서요.”
“그래. 알았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가 택시를 잡기 위해 길가로 나가자, 후배 녀석들이 후다닥 달려왔다.
“행님. 오늘은 저희가 따라갈까예?”
“아냐. 중요한 얘기할 거라.”
“그라니까 따라가야지예. 머선 일이 생길지 모르잖습니꺼.”
“그럴 일 없다.”
“행님.”
조심스럽게 다가온 난쟁이가 내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그, 형수님이 말씀하셨다 아입니꺼. 절대로 혼자 다니지는 말라고.”
“…….”
아, 맞다.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
혼자 다니다 암살자들한테 습격당한 이후로, 유나 씨가 걱정하는 마음에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한동안 황성빈, 그 녀석을 데리고 다녔다.
“…그래. 그럼 뭐, 같이 가자.”
“요쓰!”
“행님! 철저하게 모시겠십니더!”
“됐다. 타기나 해.”
우리는 택시를 잡아서 탔다.
내가 조수석에 앉고, 녀석들이 뒷좌석에 억지로 끼여 탔다.
“죄송합니다.”
“아, 예….”
기사님의 은근한 눈초리가 따가웠지만, 다행히 별일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처음에 박건 과장과 약속한 장소는 아니었다.
[옛날국밥]“오셨습니까.”
“아, 예. 과장님. 오랜만입니다.”
박건이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밥을 안 먹었다길래, 끼니도 때우고 대화도 나눌 겸 식당을 찾았다.
“돼지 하나 주십쇼.”
박건이 주문하니, 저 뒤쪽 테이블에 앉은 후배 녀석들도 손을 들었다.
“저희도 돼지 세 개예!”
“돼지가 돼지를 먹노.”
“닥치라. 씨.”
쟤네, 분명 제육볶음에 밥을 최소 두 공기씩은 먹었던 것 같은데.
저러고도 또 국밥이 들어가나?
‘젊은 게 좋다. 좋아.’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앞으로 돌아보자, 박건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저분들도 직원들인 겁니까?”
“아, 예. 뭐 따지자면 그런데… 고향 후배들입니다.”
“후배라. 이주혁 씨를 많이 따르는 모양입니다.”
잠깐 봐도 그게 느껴지나 보지?
“너무 들러붙어서 문제죠.”
“하하…. 참, 중국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별일은 없었습니까?”
“음.”
경호대장이랑 한판 붙었다가, 술집 때려 부수는 조폭들도 조지고.
지하 실험실에 내려가서 총격전 끝에 삼합회 수장을 없애버렸지.
“예. 걱정하실 만큼 큰일은 없었네요.”
“다행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박건이 갑자기 표정을 굳히더니, 주변을 슬쩍 둘러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이번에 연락드린 그 일 때문에 가신 겁니까?”
“아,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개인적인 볼일이었습니다.”
“아아.”
박건은 자연스럽게 본론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 제가 말씀드린 그 일 말입니다만.”
“예.”
“부담스러우시다거나, 혹시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면 도와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생각해보면 이런 말이 더 부담이겠네요.”
“잠깐만요. 과장님.”
그의 태도에서 이상함을 느낀 내가 말을 끊었다.
“특수국 관련 일할 때는 그래도 편하게 말씀하시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과례하시는 겁니까? 그냥 지인 겸 부하 직원이다 생각하세요.”
“그래도….”
“그래도는 뭐가 그래돕니까. 저보다 한참 오래 사신 분한테 극존칭 듣는 거, 그게 더 불편합니다.”
예전에는 몇 번 말도 놓고 하더니, 잠깐 안 봤다고 왜 이렇게 거리감이 생긴 거야?
“아…. 그럼, 예.”
“그 송 과장님이 저 대하는 거 봤죠? 완전 막말하잖습니까. 편하게 지냅시다. 그래야 일도 편해져요.”
그 말을 들은 박건이 아차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는 말씀입니다.”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그냥 반말하세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음. 그럼, 그럴까?”
“혹시 뭐, 저랑 선 그으시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니…지. 뭔가,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가…. 존댓말이 나오네.”
“존경이요?”
나한테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고?
솔직히 믿을 수가 없는 소리였다.
나쁜 놈이면 위아래 안 따지고 갖다 박는 데다가, 뒤로는 더러운 윗놈들과 주기적으로 만나는 사인데.
“사실 나도 나쁜 놈들을 잡고 싶었다지만, 이주혁 씨…. 아니, 너는 실제로 행동에 옮겼잖아. 게다가 목적도 이뤘고.”
박건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비하면 난 입만 산 놈이 아닐까… 싶지. 그래서 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거고.”
“과장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가 본데요.”
나는 아주머니와 할머니 사이의 인상 좋은 사장님이 가져다준 깍두기를 아그작 씹으며 말했다.
“저요. 과장님이 생각하시는 만큼 좋은 사람 아닙니다.”
“….”
“조폭들 협박해서 부려 먹은 적은 셀 수도 없고, 특수폭행이랑 거짓말도 어지간히 하고 다녔습니다.”
그러자 박건이 피식 웃었다.
“물론 나도 완전히 합법적인 방법만 사용해서 선생까지 닿았다곤 생각 안 하지.”
“그럼….”
“난 네 의지와 실행력이 존경스럽다는 거다. 어쩌면 도중에 살해당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고.”
“…….”
쭈욱.
박건은 소주 대신 물을 들이켰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무언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가 쉽지 않다. 그게 어려운 일일수록 의지는 쉽게 꺾이지.”
“….”
“하지만 넌 결국 성공했잖냐.”
꾸욱.
…왜인지는 몰라도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회귀하고 나서 거의 처음으로, 진심을 담은 위로를 듣는 느낌이랄까.
유나 씨는 아무래도 날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고, 부장님이랑 팀원들도 왜 내가 이렇게 이 악물고 ‘서클’을 조지려는 건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으니까.
“어디 놔드릴까요?”
“아, 제 쪽에 놔주시면 됩니다.”
“예~.”
국밥을 받아 든 박건이 깊은 눈빛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그러니까, 너무 자기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마라. 스스로를 긍정해 줄 사람이 그래도 한 명은 있어야지.”
“…….”
“그리고, 어쨌든 넌 선의로 하는 일이잖아. 안 그래?”
“하.”
갑자기 이유 없는 웃음이 튀어나왔다.
내가 아직은 조금 어색한, 험상궂은 근육 중년 남자한테 이런 감동을 느낄 줄이야.
흐흐흐.
“예에.”
간만에 걱정 없는 웃음을 흘린 나나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 맛있게 하십쇼. 과장님.”
.
.
.
“잘 먹었습니다.”
박건이 숟가락을 내려놨다.
그걸 보고 뒤쪽에 앉아있던 후배 녀석들에게 조용히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빠릿하게 알아들은 난쟁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식사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미뤄뒀던 화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주혁이…. 너는 어떻게 생각해?”
“누가 작업 친 게 아닌지 말이죠?”
“그래.”
“무조건 작업입니다.”
애초에 차영규가 어떤 사람인가.
대화를 그리 많이 나눠본 건 아니지만, 잠깐으로도 알 수 있는 그 사람의 성향이 있었다.
차영규는 자신의 약점을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조병철의 지시를 받으며 구린 짓을 몇 개 하긴 한 모양인데, 그래도 기본적으로 부패한 정치인의 느낌은 아니란 말이지.
최소한 본인만의 선은 있는 듯했다.
물론 조병철을 실각시키려는 게 사사로운 이득을 위한 건지, 아니면 정말 공익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서도.
“그럼 그 작업을 누가 쳤는질 알아내야 하는데….”
“대충 짐작 가는 사람은 있습니다.”
“뭐? 누구?”
그때, 우리 테이블로 다가온 난쟁이가 자판기 커피를 하나씩 놔줬다.
탁. 탁.
“아, 후배분. 고맙습니다.”
그사이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박건은 호정기획 최상층의 ‘모임’에 관해 알지 못하니까 그렇다 치고, 적어도 나는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다.
모임에 속한 경찰청장 이기성과 차영규, 조병철.
그리고 조병철의 뒤통수를 칠 계획을 꾸미고 있던 차영규가 갑자기 공격당했다.
이렇게 되면 솔직히 뻔한 시나리오지.
“조병철. 그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매우.”
“…조병철? 설마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나?”
“맞을 겁니다. 비서실장.”
“허, 참. 이게….”
단어가 되지 못한 감탄사들을 중얼거리던 박건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대체 그 사람이 왜…. 아니지. 넌 왜 조병철 실장이 그 배후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 주려면, 지금껏 말하지 않고 있던 것들을 공개해야 했다.
외부인에게 알려줄 순 없다고 생각해 여태까지 숨겨온 거지만, 적어도 이 사람이라면 내 비밀을 남에게 말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사실, 거기 관련해서 제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결국, 난 모임이라는 것과 조병철과 차영규의 대략적인 관계를 말해줬다.
그 모임에 나도 잠입해 정보를 빼내고 있다고도 설명했고.
“으음….”
박건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조병철, 차영규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주기적으로 가지는 모임이 있고, 아마 거기서 차영규가 축출되는 것 같다. 이거지?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가?”
“예. 맞습니다.”
생각보다 스케일이 큰 이야기였는지, 박건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청장님까지 한패였다라…. 이거, 완전히 이용당할 뻔했어.”
“그놈들 성격상, 과장님도 분명히 곤란해지실 겁니다.”
모든 책임을 떠안고 좌천당하든, 진급해서 놈들의 꼭두각시가 되든.
둘 중 어떤 선택지라도 박건에게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그럼 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최대한 시간을 끌어 봐?”
“아뇨.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려고?”
차영규가 현재 조병철의 대항마긴 하지만, 만약 기사로 나온 게 정말이라면 그놈도 똑같이 끌어내려야 할 사람이다.
“제가 차 원장한테 직접 접근해 보겠습니다.”
우선, 이 커다란 사건의 진실을 좀 알아봐야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