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56
#456화
조병철의 저택에서 훔쳐 온, 모임의 치부와 비리들에 관한 정보가 담긴 파일.
차영규에게 넘기긴 했지만, 이미 그 내용은 전부 복사해서 보관해 둔 상태였다.
“여깄습니다.”
“이미 다 가지고 있었구만.”
“예. 어떻게 하다 보니.”
남의 집을 털어먹은 거라, 입수 경로를 정확히 밝히긴 조금 뻘쭘해서 말 안 했다.
“한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어. 나도 봐야겠다.”
팔랑-.
박건은 중앙의 테이블에 앉아 프린트해 둔 서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허어….”
내용을 확인한 박건의 표정이 심각하게 바뀌었다.
약 10분 정도가 지나고.
박건은 대강 다 읽었는지 고개를 들었다.
“…이거, 생각보다 양이 많네.”
“저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으으음….”
머리를 긁적이던 박건이 파일을 탁 내려놓았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의지가 살짝 꺾였나 싶은 걱정에 물어보니, 박건이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오히려 좋아. 정보의 양이 많을수록 걸릴 혐의가 많다는 뜻이겠지.”
저 말도 맞았다.
놈들의 치부가 이렇게 방대하다면, 그만큼 증거를 찾아서 족치기도 편할 테니까.
“이거, 내가 가져가도 되냐? 서 검사님이랑 같이 보려는데.”
“아, 예. 얼마든지요. 어차피 컴퓨터로 다 스캔 떠놨습니다.”
“고맙다. 큰 도움이 되겠어.”
박건이 보기 드문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억지로 만들어 낸 듯한 웃음이었다.
‘머리가 복잡하겠지.’
최근 일어난 사건들이 어디 보통 일인가.
국정원장이 기자회견장에서 체포됐고, 그 입에서 ‘모임’의 존재가 까발려졌다.
이것만 해도 비상사태인데, 선생이라는 존재와 모임의 실세가 조병철이라는 것까지 알게 됐으니.
‘사실 그걸 알고도 맞서 싸우겠다는 생각을 하는 게 대단한 거니까.’
박건 과장도, 서해결 검사도.
두 사람 다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다.
‘이 성격이면, 이 양반도 전생에서 한가닥 했을 것 같은데.’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파일들을 챙긴 박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이것들 확인하러 가봐야겠어. 자료 고맙다.”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부르셔도 됩니다.”
“알았다. 돌아가서 연락할게.”
“예. 조심히 가십쇼.”
탁.
박건이 문을 닫고 나갔다.
저 양반, 아마 조만간 서해결 검사랑 같이 하나씩 리스트에 있는 놈들을 잡아넣으려고 움직일 거다.
그럼 난 최대한 둘을 도와야겠지.
아무리 열정이 있다 하더라도, 윗선에서 끊어 버리면 답이 없으니까.
그리고 좀 더 극단적으로 갈 시엔, 그 사람들을 제거하려 들 수도 있었다.
‘민지훈, 그놈이 입국하기도 했으니까 말이지.’
박건이 계속 귀찮게 굴다간, 조병철에게 파리처럼 때려 잡힐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까 내가 뒤에서 서포트해야 된다는 소리였다.
솔직히 법적으로 들어가게 되면 이쪽에서 할 게 별로 없으니, 이런 쪽에서 최대한 막아줘야 했다.
‘혹시 모르니까 몇 명 붙여놓는 게 좋겠어.’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둬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꾹. 꾹.
적당한 인선을 찾기 위해 핸드폰의 연락처를 뒤적거리던 그때.
끼익-!
창밖 저 아래에서 차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콰앙!
근처에 뭔가가 강하게 충돌하는 굉음이 터졌다.
“뭐야?!”
깜짝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갔다.
‘설마, 아니겠지?’
순간 머릿속에 불길한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방금 박건 과장이 내려갔는데…?’
* * *
저벅.
파일을 가지고 로비로 내려온 박건은, 서로 돌아가 자료를 다시 상세하게 살펴볼 생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우….”
박건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주혁의 예상대로, 그는 이 일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대쪽같은 성격을 가진 그라고 해도, 국정원장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물을 적대한다고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했다.
작년에 비행 청소년들에 의해 순직한 서한결 경위. 그 죽음의 배후도 선생이었다.
자신이라고 그와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은 없었기에,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남들보단 좀 더 튼튼하긴 해도…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죽는 법이지.’
스윽.
박건은 파일이 든 묵직한 봉투를 들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러던 그때.
부우웅-!
저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심상치 않은 속도로 달려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낀 박건이 황급히 인도 안으로 물러섰지만, 달려오던 차량은 그를 따라가듯 방향을 틀었다.
‘이런…!’
끼이익!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박건은 그대로 뛰어오르며 몸을 웅크렸다.
터엉-!
몸을 뒤흔드는 충격.
박건은 뒤로 튕기듯 날아간 뒤, 땅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쿠당탕!
“큭…!”
팔다리와 등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박건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낙법을 제대로 친 덕인지 뼈가 부러지진 않은 것 같았다.
“흡.”
작게 신음을 내며 일어난 박건은, 가로수를 들이받은 차량을 향해 다가갔다.
“후우….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턱.
박건은 운전석 손잡이를 잡고 벌컥 열었다.
그러자 에어백에 머리를 박고 있는 운전자가 앓는 소리를 냈다.
“끄으….”
“선생님. 선생님!”
차에 치인 사람보다, 친 사람이 더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뻐근한 어깨를 돌린 박건은 술 냄새를 맡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술 드셨습니까?”
조수석에 대놓고 놓여있는 초록색의 술병 하나.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한다?
척 봐도 수상한 상황이었다.
‘…사주를 받은 건가?’
박건은 온몸이 슬슬 욱신거리는 것을 참으며 물었다.
“누가 시킨 겁니까? 선생님. 정신 차리세요, 선생님!”
“으으…. 난 몰러…. 암것도 몰러…….”
“하아, 이거….”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 그가 인상을 찌푸리자, 근처에 있던 행인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저, 저기. 괜찮으세요?”
“아, 예. 119에 신고만 좀 해주시겠습니까.”
“넵.”
“음주운전이에요?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박건은 현장으로 슬금슬금 몰려드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혹시 이중에 운전자를 사주한 범인이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이건 너무 비약인가.’
확인이 필요하다면 어디 안 보이는 곳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지, 대놓고 여기 나와 있진 않을 것이다.
“박 과장님!”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이주혁이 다급한 얼굴을 한 채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친 데는 없으십니까?”
“어. 치이긴 했는데, 살았으면 됐지.”
“치였다고요?”
이주혁이 당황하며 박건을 위아래로 훑었다.
바닥을 구르긴 했는지 곳곳에 먼지가 묻어있었지만, 차에 치였다기엔 멀쩡히 서서 걸어 다니고 있었으니까.
그걸 본 박건이 피식하며 말했다.
“낙법을 잘 쳐서,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다.”
“예……?”
* * *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빙글 돌리는 박건.
그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졌으나, 내색하지 않고 옆으로 다가가 부축해 줬다.
“아니, 그게 낙법으로…. 일단 병원부터 가시죠.”
“그래야지. 시민분께서 앰뷸런스는 불러주셨다”
“어휴. 간 떨어질 뻔했습니다. 대체 어떤 새끼가 운전을 이따위로 한 겁니까?”
“…그게 말이다.”
“저 인간, 술 마셨죠?”
박건이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으로 놀랐다.
그에 나는 아는 대로 설명했다.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채무자한테 사주하는 거죠. 빚을 전부 탕감해주는 대신, 술 먹고 사람 하나만 담그라고.”
이런 작업은 전생의 언더커버 시절 질리도록 봤다.
채무자는 음주로 감형된 형기만 채우고 나오며, 사주한 놈들은 손 안 대고 코 푸는 방식.
솔직히 이건 알고 있다 하더라도 당할 수밖에 없다.
막말로, 술 마시고 실수했다고 주장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 채무자가 사주를 받았다는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하면, 그냥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는 거다.
그리고 증거는 나올 리가 없지.
“잘 아네. 나도 너랑 같은 생각이다.”
“정말 큰일 날 뻔하셨습니다.”
만약 박건이 치여서 어떻게 되기라도 했다면….
상상만 해도 절망적이었다.
애애앵-.
그렇게 박건을 부축하고 기다리고 있자니, 저 멀리서 앰뷸런스가 오는 게 보였다.
“하아….”
나는 바닥에 떨어진 서류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제가 경호원 몇 명 붙여드리겠습니다.”
“경찰이 무슨 경호원이야?”
“오늘 일이 마지막이겠어요? 방심하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음. 크으….”
박건은 통증이 그제야 느껴지는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서 검사님도 예전부터 우리가 경호하고 있습니다. 바로 옆에서 같이 다니는 건 아니니까 거절하지 마십쇼.”
“…그래. 고맙다. 자꾸 신세만 지는구만.”
“신세는 무슨. 한 배를 탄 사이 아닙니까.”
요즘 들어 같은 배에 타는 사람이 자꾸 많아지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박건이 탄 건 진짜 내 배다.
조병철, 민지훈. 이놈들과 같이 오른 배는 타이타닉이지.
겉으로는 크고 화려했지만, 결국 암초에 걸려서 침몰하는 여객선.
나와 팀원들. 그리고 서해결과 박건.
이들이 모두 모인다면, 놈들을 가라앉힐 암초가 될 수 있을 거다.
턱.
서류 뭉치들을 챙겨 일어나자, 박건은 들것도 없이 혼자 구급차에 오르고 있었다.
“어지간히 튼튼하십니다.”
나도 같이 구급차에 타며 농담을 던지자, 박건이 작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군인이었거든. 너도 소문으로는 특수부대 출신이라던데.”
“누가 그럽니까?”
“송태석 과장님이.”
“참나. 말해준 적도 없는데 무슨….”
나보고 막 국정원의 비밀 요원, 이런 음모론을 펼치더니.
말해준 적도 않은 걸 막 떠벌리고 다니는구만.
“근데, 맞긴 합니다. HID.”
구급대원들에게 잘 들리지 않게 조용히 속삭이자 박건이 놀랐다.
“아, 진짜냐? 난 백호부대였다.”
“707이요?”
“어.”
“아, 어쩐지….”
보통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험악한 인상과 큰 덩치도 그렇고.
애초에 평범한 사람이면 차에 치이고도 이렇게 멀쩡할 수가 없지.
‘실력이 궁금하네.’
그쪽 부대 출신이면 우리에 못지않게 빡센 곳이었을 텐데.
“나중에 군 시절 이야기나 좀 해주십쇼. 궁금하네요.”
“그래. 알았다. 끙….”
박건이 허리를 붙잡으며 말했다.
“슬슬 쑤시네. 좀 누워있어야겠어….”
“아, 예. 지금은 괜찮아도 후유증이 남을 수 있어요. 누워계시는 게 좋습니다.”
그러자 구급대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차에 치였다는 사람이 자꾸 앉아서 얘기만 하고 있으니 원.
“…….”
나는 호흡기를 거절하는 박건을 설득하는 구급대원들을 면밀히 살폈다.
몸에 칼자국은 없는지. 품 안에 흉기를 숨기진 않았는지.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내 신경은 어느새 상당히 예민해져 있었다.
“쯧….”
조용히 이번 일의 배후가 누구일지 생각했다.
민지훈, 조병철. 둘 중 하나일 것 같긴 한데.
조병철은 일단은 서로의 속내를 밝히고 동맹을 맺었고, 민지훈도 아직까진 딱히 문제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박건을 제거할 이유는 있어.’
차영규의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 조병철은 박건이 자신의 뒤를 캘 거라 예상했을 터.
그에 비하면 민지훈은 굳이 이런 일에 품을 들일 이유가 없었다.
표면상으론 협력 관계인 둘.
이 중 하나가 몰래 내 뒤통수를 친 거다.
‘대체 누구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