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59
#459화
저벅. 저벅.
길을 걷는 한 남자.
웬 무리가 30분째 그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남자를 대놓고 쫓아가던 미우라의 수하가 물었다.
“형님. 언제까지 따라갑니까? 저놈, 계속 걷기만 하는데요.”
그들의 미행을 눈치챈 건지, 남자는 이 근방을 빙빙 돌기만 하는 중이었다.
그에 미우라는 더더욱 수상함을 느꼈다.
굳이 길을 돌아갈 이유가 없는데, 저자는 아까부터 명확한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은 채로 걷고 있었다.
“일단 계속 따라간다.”
스가와라가 말했듯, 괜히 소란을 피웠다가 경찰이 뜨면 상당히 곤란해질 수가 있다.
그들이 하는 짓이 스토킹이라는 범죄인 것까진 알아채지 못한 미우라였다.
타닷!
“엇!?”
그때, 앞에서 걸어가던 남자가 달리기 시작했다.
미우라는 황급히 수하들에게 지시했다.
“쫒아!”
그들은 다급히 남자를 쫓아갔다.
“저 새끼, 너무 빠릅니다!”
“두 명은 골목으로 돈다!”
“그냥 우리가 따라와서 도망가는 거면 어쩝니까?!”
“일단 잡고 봐!”
탁탁탁.
미우라는 빠른 속도로 땅을 박차며 달려 나갔다.
“어이! 거기! 잠깐 서라!”
한국어로 소리쳤지만, 남자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젠장! 더럽게 빠르군!”
운동을 보통 한 사람의 스피드가 아니었다.
미우라가 상체를 낮추고 팔다리를 더 빠르게 휘저었다.
타닷!
코너를 몇 번 돌았음에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던 그때, 옆의 골목에서 수하 둘이 확 튀어나왔다.
“덮쳐!”
쫓기던 남자, 홍기동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는 야쿠자가 뻗는 손을 쳐냈다.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야쿠자.
그러나 다른 사람이 홍기동의 허리를 휘감으며 태클을 날렸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홍기동은 야쿠자와 얽힌 채 바닥을 굴렀다.
쿠당탕!
홍기동은 이를 악물고 야쿠자의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며, 그를 향해 달려오는 이들을 살폈다.
가까운 데 둘, 먼 쪽이 셋.
순식간에 판단을 마친 홍기동은 허리춤에서 작은 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서걱!
“크악!”
손을 깊숙이 베인 야쿠자가 비명을 질렀다.
치명상을 입힐 시간까진 없었기에, 홍기동은 뒤돌아 도망가려고 했다.
그런 그의 뒤통수 쪽에서 살벌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릴 새도 없이, 다급하게 허리를 굽혔다.
파악!
뒷머리를 스치는 바람.
홍기동은 튕기듯 앞으로 몇 발짝 나아갔다.
빠르게 상황을 살피니, 어느새 너클을 낀 미우라가 그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이어지는 매서운 주먹.
홍기동이 상체를 비틀어 피했다.
주먹에 끼워진 너클의 무게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공격이었다.
쉬익!
칼날이 손목을 노리고 날아갔다.
미우라는 빠르게 주먹을 회수했다.
그의 표정은 잔뜩 굳은 채였다.
‘늦게 반응했으면 손목 절반은 날아갔겠군.’
급소를 정확히 노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분명 관악산에 숨어있던 선생의 수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 확신한 미우라는 수하들이 볼 수 있게 둘러싸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홍기동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머릿속으로 판단했다.
계속 도망간다 하더라도 이들을 전부 따돌리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휘릭.
나이프를 고쳐잡은 홍기동은 시야를 가리는 벙거지를 벗어 야상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러면 얼굴이 드러날 수밖에 없지만, 그건 본 사람을 전부 없애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야쿠자들은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산 밑에서 수상한 놈 하나를 찾았다. 다들 여기로…!”
홍기동은 미우라가 지원 요청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해고 움직였다.
탓!
포위망이 가장 느슨해 보이는 곳으로 몸을 던지자, 칼을 보고 긴장하고 있던 야쿠자가 흠칫했다.
혹시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그들은 칼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홍기동은 추격자들이 연장을 꺼내지 않는 것을 보고 이미 그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과감한 수를 던졌다.
휘익!
얼굴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시늉을 하자, 야쿠자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며 몸을 움츠렸다.
홍기동은 내려오는 머리를 노리고 무릎을 쳐올렸다.
쩌억-!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니킥을 제대로 맞은 야쿠자의 목이 뒤로 꺾였다.
뒤이어 달려드는 둘.
홍기동은 나이프를 길게 쥐고,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견제하듯 휘둘렀다.
한 명은 움츠러들었지만, 나머지 하나는 칼날을 피하며 접근했다.
그의 얼굴에 팔꿈치를 찔러넣으며 고간을 올려 찼다.
“끄어억!”
홍기동은 그의 뒷덜미를 붙잡고 던졌다.
그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 든 야쿠자가 당황하는 사이, 달려가 왼발 코로 갈비뼈를 찍어버렸다.
으직!
수하들이 당하는 걸 지켜보기만 할 수 없던 미우라가 으득 소리를 내며 땅을 박찼다.
부웅-!
너클이 끼워진 주먹.
급소에 제대로 맞으면 즉사할 수도 있었다.
홍기동은 스텝을 밟으며 오히려 미우라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이어 왼손으로 너클을 낀 팔의 옷깃을 붙잡고, 미우라의 배로 칼을 찔러넣었다.
카드득.
“큭!”
미우라가 칼날을 붙잡았다.
다행히 반대쪽 손에도 너클이 있었기에 손이 베이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다.
홍기동은 잡힌 칼을 놓고, 미우라의 울대를 향해 접은 손가락의 관절 부분을 내질렀다.
퍽!
“큭!”
흠칫한 미우라는 몸을 틀어 정타를 피했지만, 목 부분을 맞은 탓에 순간적으로 호흡을 잃었다.
휘청하는 미우라.
홍기동은 그의 허벅지 혈관을 노리고 칼을 휘둘렀다.
“이 자식이!”
야쿠자 하나가 달려들어 홍기동에게 발길질을 했다.
콱!
홍기동은 겨드랑이 사이로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아킬레스건을 그대로 그어버렸다.
촤악-!
“끄아아악!”
미우라는 피를 쏟는 수하를 밀치는 홍기동의 머리통을 노리고 주먹을 날렸다.
그에 반응한 홍기동이 몸을 살짝 낮췄으나, 미우라는 팔을 끝까지 뻗지 않고 반 바퀴 돌았다.
부웅!
얼굴로 날아오는 백스핀 블로우.
따악!
손등이 가드를 때렸다.
홍기동은 미우라의 몸이 반대쪽을 향한 틈을 타 옆구리를 길게 베었다.
촤악- 소리와 함께 살이 길게 찢어나갔다.
“큭!”
붉은 선혈이 바닥에 투둑 떨어졌다.
그러나 미우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왼손을 뻗어 홍기동의 옷깃을 잡아챘다.
홍기동이 순식간에 텅 빈 옆구리를 세 번 쑤셨다.
푹! 푹! 푹!
하지만 칼침은 옆구리가 아닌, 몸통에 딱 붙이고 있던 미우라의 왼쪽 팔에 들어갔다.
왼손으로 잡고 있던 홍기동의 옷깃을 자기 쪽으로 확 잡아당긴 탓이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미우라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주먹을 날렸다.
“…!”
홍기동이 다급하게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뻐억-!
너클을 낀 주먹에 손등뼈가 으스러지며, 안면에 충격을 받은 홍기동은 작게 신음하며 비틀거렸다.
“후웁!”
피를 본 미우라는 눈이 붉어진 채 그에게 재차 달려들었다.
그러던 그는 홍기동과 눈이 마주쳤다.
‘죽는다…!’
한 발짝만 더 들어가면, 당장이라도 목에 칼이 박힐 것 같은 본능적인 느낌.
미우라가 멈칫하니, 홍기동은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닷!
“어딜 도망가!”
야쿠자 둘이 그를 다시 붙잡기 위해 덤볐지만.
휘릭!
홍기동은 몸을 회전하며 칼을 휘둘렀다.
그러자 야쿠자들의 팔과 얼굴에 창상創傷이 생겨났다.
“크악!”
“윽! 제기랄!”
순식간에 두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홍기동은 후다닥 도망쳤다.
미우라는 그를 쫓으려 했으나, 바닥에 쓰러진 수하들을 보고 멈칫했다.
유일하게 서 있는 수하가 그에게 다가왔다.
“큭…. 괜찮으십니까? 피가 많이 나십니다.”
“네 손부터 옷으로 감싸라. 상처가 깊다.”
“아닙니다. 형님부터 치료하셔야 합니다.”
수하는 미우라의 옆구리에 길게 난 상처를 걱정스러운 듯 살폈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왼쪽 상완上腕에도 깊은 자상이 세 개나 있었다.
미우라는 셔츠 자락을 길게 찢은 뒤, 피가 철철 흘러나오는 팔을 단단히 감았다.
그리고 다친 채 몸을 일으키는 수하들을 확인했다.
코가 뭉개지고 이빨이 부러졌지만, 다행히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치명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
미우라는 홍기동이 사라진 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드레날린 덕에 느끼지 못하고 있던 고통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전부 이렇게 강하단 말인가. 선생의 수하들은…?’
만약 그들이 전부 이렇다면, 선생을 찾는다 하더라도 그자를 잡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전의 피 튀기는 싸움 전 지원을 요청했다는 점이었다.
“우선 이 녀석들부터 챙겨라.”
“예. 알겠습니다.”
꾹. 꾹.
미우라는 남은 한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예!
“오고 있나?”
-지금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그 자식은 아직 거기 있는 겁니까?
“도망쳤다.”
-예!?
“혹시 마주치면 절대 덤벼들지 마라. 그놈도 다쳤으니, 어디로 가는지 확인만 하도록.”
그 말에 전화를 받은 수하가 혈기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다친 놈 하나 정도는 저희가 잡을 수 있습니다!
“건방 떨지 마라. 괜히 덤벼들었다가 놓치기라도 했을 땐, 네놈은 내 손에 죽을 거다.”
-예, 예. 알겠습니다!
미우라는 수하와의 통화를 종료하고서 다른 사람에게 연락했다.
[이주혁]그라면 이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뚝. 뚝.
미우라는 신경을 찌르르 울리는 왼 주먹을 쥐었다 펴며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 입은 몸과 자존심의 상처는 꽤 오래 갈 듯했다.
* * *
저벅.
나는 오랜만에 강남경찰서를 찾았다.
따로 건물을 만들긴 무리가 있었기에, 특수수사국의 임시 사무실도 이곳에 있었다.
하지만 오늘 여기 온 건 특수국 볼일 때문이 아니었다.
“왔어?”
“과장님.”
복도를 걷는데,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던 박건과 마주쳤다.
“한잔?”
“예. 잔돈 있으십니까?”
“안 그래도 온다길래 두 잔 뽑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박건이 건네는 커피를 받으며 물었다.
“차영규는 별일 없죠?”
“어. 내내 표정이 안 좋긴 하던데.”
살아있다니 다행이네.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전화를 받았다길래 걱정했었지만, 그래도 아직 판단력은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잠깐 만나도 되는 거 맞죠?”
“어. 나랑 동행하면 상관없어.”
슬쩍.
“눈이랑 귀가 꽤 많을 것 같은데요.”
“뭐, 없지야 않지. 그래도 특수국 권한으로 쳐낼 순 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차영규 리스트가 싹 다 까발려지면 특수국도 멀쩡하진 못할 겁니다.”
“뭐, 그렇겠지. 특수국이 뭘 하진 않았지만, 허가를 내준 게 그쪽이니까.”
애초에 불순한 목적으로 창설됐으니, 진상이 밝혀진다면 조직을 존속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내가 데려온 애들은 굳이 네가 신경 쓸 거 없다. 특수국 없어진다고 다 실직자 되는 건 아니거든.”
“괜히 마음에 좀 걸리네요.”
“걔네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뭘. 너무 걱정하지 마라.”
믹스커피를 홀짝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취조실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유리창 너머로 초췌한 인상의 차영규가 앉아있는 게 보였다.
“아까부터 저 상태로 멍하니 있다.”
“제가 들어가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그래. 10분 정도는 아무도 못 오게 해줄 수 있다.”
달칵.
취조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차영규가 깊게 들어간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드륵-.
그렇게 맞은편에 앉으려던 그때, 차영규가 갑작스럽게 말했다.
“…이주혁.”
“예.”
“내 사무실 책상 아래 바닥을 열면 금고가 하나 있다.”
“…?”
“거기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을 거다.”
그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진작 좀 말해줄 것이지….”
이거, 또 보물찾기를 해야겠구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