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62
#462화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아니, 더 심하지. 모든 인간을 도구로 보고, 자기만 세상을 바꿀 선택받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정신병자니까.
“…뭐라고?”
-착각하지 마라. 남들이 보기엔, 너도 똑같은 쓰레기일 뿐이니까.
그 말과 함께 전화가 뚝 끊겼다.
“…….”
민지훈은 굳은 표정으로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똑같다니. 그게 무슨.”
꾸욱.
가만히 선 민지훈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개소리를….”
핸드폰을 책상에 거칠게 내려둔 민지훈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 타고난 사람들을 휘두르는 능력.
그리고 악惡을 손안에 넣고 통제하겠다는 확고한 신념까지.
‘내가 다른 쓰레기들과 같다고?’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는, 흔들리지 않는 명제하에 본인의 에고를 유지하던 민지훈.
이주혁이 한 말은 그에겐 역린이라고 할 수 있었다.
“후우….”
민지훈은 흔들리려는 이성을 붙잡았다.
저기에 휘둘리는 건 지금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평정심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한 말에 동요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이 없었으니까.
툭. 툭.
민지훈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생각이 필요할 때마다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이주혁과 하려고 했던 거래.
그자가 원하는 정보를 넘겨주는 대신, 일본으로 향할 거란 사실을 야쿠자 쪽에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주혁과의 관계가 어긋난 상황이다.
원래는 동맹의 해체를 통보한 뒤, 이번 거래만 이행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주혁이 약속을 지킬지가 의문이군.’
정보만 뜯기고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민지훈은 머릿속으로 셈을 이어 나갔다.
“어차피 상관없나…. 대장님?”
달칵.
문이 열리고, 경호대장 육진모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조병철 판교 자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죠?”
“예. 그럴 겁니다.”
“이주혁한테 넘겨주세요.”
그 지시를 들은 육진모가 미간을 슬쩍 좁혔다.
“예? 이주혁에게 말입니까?”
“네.”
“다른 건 몰라도… 그걸 넘기는 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거래를 했거든요. 넘기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고, 전부 온전히 빼내려면 그래도 빚을 지워두는 게 낫죠.”
“위험합니다. 선생님. 조병철은 이주혁이 모임에서 독주하는 걸 막을 유일한 사람입니다.”
민지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약점이긴 하지만, 고작 그거 가지고 조병철을 어떻게 하진 못할 거예요.”
“하지만, 생각지 못한 변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 일을 대신 해주는 거잖아요?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맙시다.”
그의 태도에 의문을 느낀 육진모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사소한 변수도 신경 쓰고 의식하는 성격이었는데, 이상하게 낙관적이라고 느껴진 탓이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육진모가 너무 예민한 것일 수도 있었다.
사회적 평판이 있는 조병철과는 달리, 이주혁은 말 그대로 조용히 제거해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
이내 납득한 육진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주혁 말인데요. 지난번에 말씀하신 걸 검토해 봤어요.”
유일하다시피 한 변수인 이주혁.
육진모는 그를 최대한 빨리 제거하자는 의견을 낸 바 있었다.
“일시적 동맹은 이 시간부로 끝났습니다. 조병철 쪽 대미지 컨트롤이 적당히 됐다 싶으면 처리하세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이 그렇게 되면, 호정기획 박 사장한테 접촉하세요.”
“박광훈 사장 말씀이십니까?”
호정그룹의 부회장이자, 호정기획의 사장 직책을 맡고 있는 유능한 기업인.
‘모임’의 장소 제공자이며, 민지훈의 계획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도 하다.
그가 현재 이주혁과 어떠한 관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선생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바로 돌아설 것이다.
“홍기동 뒤에 붙은 추적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쉽게 잡히진 않을 테니, 다시 합류시켜야죠.”
“알겠습니다.”
“정 안 되면 이쪽에서 사람을 보냅시다.”
국정원의 블랙요원 출신 홍기동.
국정원 산하 병원에서 모친을 빼내면서까지 그를 포섭한 이유는 명확했다.
수십 회의 작전 경험을 하며 관으로 넣은 사람이 어림잡아도 오십 가까이 된다.
사람 죽이는 전문가인 홍기동을 쓸 곳은 정해져 있었다.
“지시 사항은 끝입니다. 따로 궁금한 거 있나요?”
“블랙맘바 말입니다.”
“아, 네.”
“주기적으로 연락은 취하고 있습니다만, 넘기는 정보에 딱히 영양가가 없습니다. 내부에 자주 들락거리는 것 치곤 유용하지 않은 것이….”
“수상하다는 거죠?”
육진모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쪽 조건이 더 좋았나…. 확실히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겐 정보를 오픈하지 않는 걸 수도 있으니, 일단 두고 봅시다.”
“알겠습니다.”
“그 대신, 우리도 그쪽을 감시하는 인원을 늘려야 되겠죠. 이제 이주혁에게 접근하긴 더 어려울 테니까요.”
“말씀하신 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좋네요.”
민지훈이 다리를 꼬며 물었다.
“관악산 근처에 아직 사람들이 깔려있나요?”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다시 한번 더 확인해 보겠습니다.”
“홍기동에게 붙은 걸 빼고도 그 정도라면… 본토에서 야쿠자들을 더 데려왔나 보네요.”
“보고 상으론 대략 120에서 150명 가까이가 야쿠자로 추정되고, 총 10명을 제거했습니다.”
“슬슬 은신처는 버리는 게 좋겠죠?”
“제 의견으로는, 그렇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민지훈이 지시했다.
“관악산에 있는 인원, 오늘 자정 이후로 전부 빠져나가는 걸로 합시다.”
그 말에 육진모가 머리를 숙였다.
“그렇게 지시하겠습니다.”
* * *
민지훈이 일본으로 간다.
이게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거래 조건으로 내건 만큼 거짓말은 아닐 거다.
‘근데 어떻게 간다는 건지 모르겠네.’
현재 놈들은 관악산 어딘가에 갇혀있는 상황.
그 와중에 바다 건너 일본행이라니.
항공편은 어불성설.
남은 건 밀항 정도인데, 사실 그것도 쉽지 않다.
항구가 많은 부산은 마피아 총격 사건 이후로 밀입국 단속이 크게 강화됐으니까.
어쩌면 다른 곳에 숨겨둔 배를 사용할 수도 있는 노릇이고.
“흐음.”
내가 그 모든 항구를 단속하진 못한다.
정부 관리 아래에서도 밀항이 이루어지는데, 고작 사조직으로 물 샐 틈 없이 막을 수 있을 리가.
어차피 관악산 주변만 꽉 틀어막고 있으면 상관없겠지만.
부우웅-.
“야. 아까부터 왜 그렇게 표정이 심각해?”
뒷좌석에 나와 같이 앉아있던 라세흠 부장님이 물었다.
나는 슬쩍 앞을 쳐다봤다.
운전대를 잡은 사발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춘식이.
미안하긴 한데, 솔직히 두 사람을 완전히 신뢰할 순 없다.
처음부터 날 믿고 함께한 부장님이라면 몰라도.
사각사각.
재킷 안에 있던 수첩을 꺼내, 민지훈과 통화했던 내용과 내 의문점을 요약해 보여줬다.
“….”
부장님은 집중해서 내가 쓴 글을 읽더니, 고개를 들며 조용히 말했다.
“이 새끼…. 이미 튄 거 아니냐?”
“네?”
“그 은신처에 없는 거 아니냐고.”
“…설마요.”
“왜, 모르는 거잖아? 이미 밖에 있으니까, 일본에 가니 뭐니 하는 거지.”
“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죠.”
인천공항에서 내린 민지훈 일행이 관악산으로 들어갔으니 거기 있다고 추정한 것이지, 확실하게 얼굴까지 확인한 건 아니었으니까.
고세운이 그놈 위치까지 딸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추적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여럿 썼는지 통 나오질 않는단다.
“어쩌면 처음부터 부하들만 관악산으로 보냈을 수도 있겠어요.”
“자기 혼자 몇 명이랑 쏙 빠져나가고, 이제 일본으로 몰래 넘어가려는 게 아닐까. 난 뭐, 그런 생각이다.”
“일리가 있네요.”
혹시 하는 마음은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해주니 확실히 의심스러웠다.
부장님이 육체파긴 해도, 전술적으로는 베테랑이거든.
어쩌면, 민지훈이 이미 배를 타고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아직 은신처에 숨어있는 것처럼, 우리한테 혼란을 주기 위해 일본으로 간다는 말을 흘렸을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애초에 일본으로 갈 생각도 없던가.’
지금으로선 내가 확실하게 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었다.
그러니, 일단 할 수 있는 파트를 나눠서 움직여야겠다.
“부장님.”
“응?”
“선생 찾는 건 부장님한테 맡기겠습니다.”
그 말에 부장님이 깜짝 놀랐다.
“정말이냐? 그런 중책을 나한테 맡겨도 되겠어?”
“이런 중요한 걸, 부장님 아니면 누구한테 맡기겠습니까?”
“흐흐…. 그렇긴 하지?”
“그럼요. 자세한 건 회사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케이. 나만 믿어라.”
부장님의 기분이 좋아진 게 확 티가 났다.
선생 추적 건은 부장님한테 일임하고, 나는 조병철을 더 신경 쓸 생각이었다.
민지훈에게 너무 힘을 쏟으면 조병철을 잡는 데 차질이 생길 수도 있고, 그 반대엔 선생을 놓칠지도 몰랐다.
스윽.
트렁크에 고이 모셔둔 차영규의 금고.
거기서 꺼낸 조병철 관련 자료를 이용해서 다시 판을 짜봐야겠다.
과연 민지훈이 판교신도시 파일을 넘겨줄지가 문제인데….
솔직히 내가 마지막에 그러고 통화를 끊었으니, 그놈이 그걸 곱게 넘겨줄 리는 만무했다.
‘기대는 하지 말자.’
그게 없어도 조병철을 잡을 수 있게 최대한 해보자고.
물론 법조인도 아닌 나 혼자선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겠지만, 이건 잘 아는 사람들한테 도움을 받으면 되겠지.
주변에 도와줄 사람도 꽤 있고.
오랜만에 서해결 검사님이나 초대해 볼까.
나 혼자보단, 여러 명이 머리를 맞대는 게 나을 것이다.
.
.
.
회사에 도착하고.
나는 곧바로 내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차영규의 금고에서 꺼낸 서류들을 넓은 중앙의 테이블 위에 쫙 펼쳐놨다.
‘새로운 민정수석에, 국토부 차관에…. 당대표까지 있어? 아주 가관이구만.’
조병철의 측근.
그중에서도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의 인적 사항을 상세히 분석한 내용이었다.
국정원이 아니면 알아내지 못할, 아주 사소한 정보까지.
이 정도면 24시간 쫓아다니며 누굴 만나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전부 도청한 수준이었다.
‘뒤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었단 말이지?’
국정원의 정보 수집 능력.
무서울 정도였다.
팔랑. 팔랑.
급하게 나오느라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내용들을 꼼꼼히 읽었다.
파일 상위에 있던 놈들은, 전부 조병철을 대신하던 얼굴마담이었다.
매일 업무로 바쁜 조병철 대신 뇌물을 대신 받고, 기득권의 입맛에 맞는 법률이나 정책을 낸다.
반대할 사람이 없으니 문제 없이 발효되며, 결국 교묘하게 법의 빈틈을 만들어 이득을 취한다.
부동산계의 큰손, 사채 거물 등.
그들과 결탁해 서민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었다.
‘개새끼들이네, 이거.’
주철수랑 엮여있던 놈들도 어지간했지만, 얘네는 스케일이 달랐다.
차떼기는 기본에다, 북한과도 엮여있었다.
똑똑똑.
그때, 내가 부른 손님이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끼익.
“실례합니다.”
문이 열리고, 안경을 쓴 깡마른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외모와는 달리, 눈동자에선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입니다. 검사님.”
“예. 반갑… 이, 이게 다 뭡니까?”
날 보고 반갑게 인사하던 서해결 검사가 펼쳐놓은 자료들을 보고 흠칫했다.
“지금부터 우리가 같이 봐야 할 것들입니다.”
“예에…?”
“한번 보시죠.”
서해결 검사는 의아한 표정으로 서류 한 장을 집어 들었다.
“…!”
그 내용을 읽던 서해결의 얼굴에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이게 무슨…!”
서해결 검사가 분개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뭘 하면 되는 겁니까.”
그 말에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