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64
#464화
스가와라가 눈을 크게 치떴다.
“설마, 그놈이 또 회장님을…!”
나는 분개하는 스가와라를 향해 말했다.
“아직 그건 모르는 일이지. 그놈도 섣불리 움직이진 않을 거다.”
선생이 일본에 도착했다.
이 소식이 야쿠자들 귀에 들어가면, 바로 비상이 걸릴 거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놈을 찾아 죽이기 위해서 혈안이 되겠지.
“그러니까 급하게 일본으로 넘어갈 필요는 없어.”
“…….”
스가와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일단 회장께 알려드려야겠군. 확실한 정보 맞겠지?”
“본인 입으로 말했으니 그럴 거다.”
“흐음….”
고뇌하는 듯 침음을 내던 스가와라가 내 옆에 앉았다.
“정말 선생 곁에 스파이를 심어뒀다고? 자기 사람이 아니면 곁에 두지 않는 그자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 말을… 아니, 내가 널 믿어도 되겠나?”
스가와라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복잡한 심정이 담긴 눈빛을 마주하고 말했다.
“난 네 뒤통수를 칠 생각 없고, 선생을 잡겠다는 것도 진심이다.”
“….”
“그 두 가지만은 믿어주면 좋겠어.”
고민하던 스가와라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보여준 게 있으니, 일단은 믿도록 하지.”
“그래. 그것참 고맙네.”
스가와라가 피로한 기색으로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날 믿고 따라온 녀석들이 잘못된 터라, 조금 예민했나 보군.”
“이해한다.”
“그래서, 선생이 어디 있는진 알고 있나?”
“아니. 아쉽게도 모른다. 우리 쪽 스파이가 들켜버렸거든.”
“이런…. 그럼 이제 선생의 정보는 입수할 수 없다는 소리인가?”
“그렇다고 봐야지.”
관계가 틀어진 이상, 그놈한테 뭔가를 더 뜯어낼 순 없다.
경호대 같은 내부 인원을 포섭할 수도 없을 테니, 민지훈의 위치를 특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관악산에서 언제 차를 바꿔치기한 건진 몰라도, 그 많은 사람과 차량을 일일이 조사해 행선지를 알아내야 했으니까.
아무리 해킹 실력이 좋은 고세운이라도, 그런 방법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선생을 추적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뭐지?”
“그놈이 일본에 가서 뭐부터 할까.”
“음…. 일단 지낼 곳을 구할 테고, 현지에서 사용할 자금을 마련하겠지.”
“그 말은 뭐겠어. 뒷골목만 잘 주시하면 흔적을 찾을 수도 있다는 소리야. 거기다 들어올 방법이 항구밖에 없고.”
내 말에 스가와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쪽을 위주로 수소문을 해보란 뜻이군.”
“물론 그걸로 그놈 위치가 특정될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단서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거다.”
“이해했네. 참고하도록 하지.”
“오케이. 그럼 이건 됐고… 어제 일, 어떻게 된 건지는 들었나?”
“그래. 지금 병원에 있는 녀석들이 말해주더군.”
“경호대였다던가?”
산에서 조용히 내려와, 야쿠자들을 처리하고 유유히 도망갈 능력이 있는 민지훈의 부하.
당장 생각나는 건 경호대밖에 없었다.
“아마 그럴 걸세. 복면과 방검복 같은 걸 입은 데다가, 칼을 쓰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었다고 하더군.”
“그럼 경호대가 맞겠네.”
경호대원들은 전부 특수부대나 용병 같은 군사 훈련을 받은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으니까.
야쿠자만 죽었다면 단순히 유감으로 끝이었겠지만, 우리 SA흥신소에서 일하던 직원 한 명도 놈들에게 당했다.
그러니 고용주로서 손 놓고 있을 순 없는 노릇.
우리가 전부 일본으로 넘어가진 못하니, 얘네가 민지훈을 쫓도록 최대한 도와주는 것이다.
“부산으로 넘어간 이나가와카이 녀석들에게 연락해 봐야겠군. 선생 일이라면 도와주겠지.”
스윽.
스가와라가 몸을 일으켰다.
“이만 가보겠네. 오늘은 실례했어.”
“혼자 왔나?”
“밖에서 기다리고 있지. 미우라 소식은 들었나?”
“다쳤다던데. 안부 전해줘.”
“음.”
스가와라를 돌려보낸 뒤 나도 로비를 떠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어제 일로 분위기가 흉흉해지긴 했지만, 선생만큼이나 조병철을 잡는 것도 중요했다.
극단적인 사상과 강력한 무기.
그리고 미래 지식 때문에 위험한 게 민지훈이라면, 조병철은 한 나라의 행정부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말 그대로의 권력權力이 문제였다.
안 그래도 어제부터 검사 두 명이 붙어서 자료를 검토 중이었다.
‘민지훈 그놈이 무슨 변덕인지 판교 자료까지 넘겨줬지.’
분석해야 할 게 늘었지만, 두 사람은 조병철의 숨통을 옥죄일 수단이 늘었다며 오히려 좋아했다.
지금쯤 이미 일어나서 자료들을 보고 있을 거다.
사실 어제 둘 다 여기서 자고 갔거든.
물론 내가 강요한 건 아니었다.
‘괜히 밖으로 반출했다가 눈에 띄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이대로 가면, 조병철의 수족과 함께 놈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위세 높은 권력자라 하더라도, 이런 대규모 비리를 직격으로 얻어맞으면 버틸 재간이 없다.
다른 것과는 달리, 판교신도시 건은 직접적으로 조병철과 연결된 게 몇 가지 있었다.
필요한 재료의 세팅은 전부 끝났으니, 이제 요리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얼마든지 자기를 이용하라고 했었지.’
뒤에서 칼로 찌르는 동안 얌전히 있어 줬으면 좋겠네.
* * *
선생에 이어 이주혁에게 고용된 용병, 마종석.
체력단련실에 있던 그는 조금 전에 온 문자 내용을 확인하고선 흠칫 놀랐다.
“…!”
마종석이 핸드폰을 슥 집어넣자,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덩치가 눈매를 좁혔다.
“저 뭐고. 수상한데.”
그러자 옆에 있던 난쟁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뭔데, 또.”
“아니, 핸드폰을 급하게 숨기는 게… 분명히 뭐가 있다.”
“이 쉐끼. 잠잠하드이 또 시작이가.”
난쟁이가 마종석의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이제 행님이랑 일한다 안 카나. 대체 언제까지 의심할 낀데.”
“마. 아군인지 적인지 니가 어떻게 아노? 점마가 지금 속으로 배신할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니까.”
“에이, 씨. 낸 모르겠다.”
난쟁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사라졌다.
“….”
그 둘의 인기척을 느낀 마종석은 무표정한 얼굴로 체력단련실을 나섰다.
‘슬슬 재촉하는군.’
그에게 온 문자는 선생 쪽에서 보낸 것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지금까지 보내준 정보가 너무 허접했으니, 이제부턴 제대로 된 걸 가져와라.
이런 뜻의 문자였다.
마종석은 고뇌하며 걸음을 옮겼다.
‘어떤 정보를 넘겨줘야 하는 거지?’
여태까진 적당히 중요하지 않은 것들만 그들에게 알려줬다.
이주혁 팀원의 숫자. SA시큐리티 건물 내부 구조.
이런 느낌으로,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들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건 먹히지 않았다.
‘한쪽을 택해야 하는 타이밍인가….’
이주혁과 선생의 승패를 확실하게 점칠 수 없다.
그게 선생과 내통하고 있던 이유였다.
이주혁이 당하면, 어차피 용병 신분인 마종석은 중간에 빠져나가면 된다.
만약 선생이 패배한다 해도, 이미 이주혁의 편에 붙어있으니 그대로 보수를 받아먹고 뜨면 그만이다.
선생이 이길 것을 대비해 언제든지 그쪽으로 전향할 수 있도록 끈을 만들어놨지만, 이제 그 끈이 떨어지게 생겼다.
적진에 들어와 있을뿐더러, 연락 수단이 있는데도 첩자 노릇 하나 제대로 못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제기랄. 어쩌지?’
이주혁이냐, 선생이냐.
남들이 보면 박쥐라 욕할지도 모르지만, 그에게는 생계가 달린 일이다.
용병계는 신뢰가 생명이다.
그러나 진짜 생명도 마찬가지로 중요했다.
‘어쩌다 이 둘 사이에 끼여 가지곤…. X발.’
마종석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고선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아까 그를 보고 있던 덩치가 따라온 것 같진 않았다.
“그래. 그냥 감대로 가자.”
선생은 이주혁에게 이미 한 번 밀려났다.
다만 음지와 용병계에 더 가까운 사람은 선생이었다.
가진 돈은 둘 다 많을 거고, 수하들의 실력도 비슷비슷하리라 생각된다.
가지고 있는 화기 등의 전투물자는 확연히 선생이 우세하나, 이주혁과는 달리 그는 자기 신분을 떳떳하게 사용할 수 없다.
두 사람의 조건을 따져봤을 때 그렇게 차이가 나진 않으니, 결국 선택은 본인에게 달려있었다.
“이런 X발…. 머리 아프군.”
* * *
“음?”
내 사무실로 올라가는 길.
혼자 중얼거리며 복도를 지나가는 마종석이 눈에 띄었다.
“무슨 일 있냐?”
가까이 다가가서 묻자, 마종석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주혁. 뭐 하나만 물어보자.”
“고용주를 부르는 호칭 문제는 일단 넘어간다. 물어봐.”
“너랑 선생. 이대로 가면 누가 이길 것 같나?”
“갑자기?”
장난으로 넘기기엔 마종석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했다.
“흐음….”
누가 이기냐라.
“이긴다의 기준이 뭔데. 단순히 누가 죽고 사냐는 말이냐?”
“그래.”
솔직히 그건 나도 장담할 순 없다.
내가 민지훈을 죽일 기회가 몇 번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그놈을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선생 못지않은 위험한 인간들이 우리를 건드릴 수도 있으니, 화근이 될 만한 놈들을 모두 없애버리기 위해서였다.
그놈들의 정보를 아는 민지훈을 이용하려고 살려둔 거란 말이지.
하지만 마종석의 질문처럼 단순히 생사만 따지자면, 지금 당장도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죽을 확률이 조금 더 높은 건 나지. 당장 저격총 들고 이 앞 건물에서 대기하다가, 내가 나올 때 쏘면 당하는 건데.”
“….”
“물론 항상 조심하곤 있지만, 따져보자면 그렇다는 거다. 근데 우리 싸움이 단순히 죽고 사는 걸로 끝나는 건 아니거든.”
민지훈 같은 부류는, 죽는 것보다 본인의 신념과 자존심이 중요한 경우가 많았다.
그놈이 죽은 척을 했을 때도 그래.
대체 어떤 미친놈이 자기를 족치려고 온 사람 앞에서 주사 꽂고 자살한 시늉을 해?
“아니, 그래서 그건 왜 물어보는 거냐고. 내가 진다고 했으니까, 이제 배신하게?”
“…….”
마종석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젠장…. 그래야 하나. 내가 받기로 한 보수, 지금 줄 순 없어?”
“너 같으면 주겠냐?”
배신하고 해외로 튈까 봐 일부러 일 끝날 때까지 미뤄놓은 건데.
“하아…. 사실, 할 말이 있다.”
“계약 파기면 안 들을란다.”
“아니, 아니고. 저번에 미국 갔을 때, 선생 만났다.”
“뭐?”
마종석이 연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보수는 잘 쳐줄 테니까, 다시 자기랑 일하지 않겠냐고… 여기 내부 정보를 넘겨달라더라.”
이 새끼, 조용히 그런 짓거리를 했단 말이지?
언젠가 뒤통수칠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전부터 작업을 쳤을 줄이야.
우리 중 가장 느슨한 연결고리가 마종석이니, 민지훈 입장에서도 이놈이 가장 배신에 적합한 대상이었을 거다.
나는 마종석을 지긋이 노려보며 물었다.
“나한테 그걸 얘기하는 이유는?”
“뭐겠나. 상황 꼬이기 전에 솔직히 말하려는 거지.”
“배신 안 하겠다고?”
“그래. 어차피 선생은 지는 해 아닌가? 대충 돌아가는 상황 보니까 계속 쫓고 있는 것 같던데.”
마종석이 자기 핸드폰을 꺼내 나한테 건넸다.
“발신자 표시 제안으로 온 문자 확인해 봐라.”
그 말대로 찾아보니까, 정말로 내부 정보를 넘기라는 내용의 문자가 와 있었다.
“근데 너 이 새끼…. 이미 저쪽에 뭘 많이 말해줬네?”
내가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자, 마종석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읽어봐라. 그쪽에서 알 만한 것들만 말해준 거다.”
“그러니까. 이거 양쪽 줄타기 하려고 간만 보고 있던 거 아냐?”
“….”
마종석이 입을 다물었다.
“그래. 뭐, 솔직히 말했으니까 문제 삼진 않을게. 대신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뭐지?”
나는 불안한 듯 쳐다보는 마종석을 향해 말했다.
“이제부터 가짜뉴스를 계속 보내는 거다.”
저쪽에서 배신자를 원하니, 내 입맛에 맞는 배신자를 만들어줘야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