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72
#472화
푸욱-!
칼날이 손바닥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스가와라는 고통을 이 악물고 참으며, 손으로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그렇게 한쪽 손을 묶어둔 그는, 남은 오른손에 든 칼을 찔러넣었다.
턱!
경호대원은 그의 손목을 붙잡고, 옆으로 강하게 뿌리쳤다.
그러자 열리는 공간.
경호대원의 주먹이, 스가와라의 오른편 얼굴을 강타했다.
퍼억-!
머리에 가해진 충격으로 스가와라가 휘청거렸다.
손에 박혀있던 칼날이 뽑혀 나가며, 경호대원은 그의 몸통에 발차기를 날렸다.
퍽!
몇 달 전, 칼을 맞았던 곳에 적중한 공격.
스가와라의 입에서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악…!”
그걸 본 미우라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 새끼가…!”
“어딜.”
스가와라 쪽에 합류하려 했지만, 다른 경호대원은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야쿠자 보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됐다고 했지.’
반면, 눈앞의 상대는 만전의 상태.
약한 쪽을 먼저 공략하고, 그런 다음 둘이 한 명을 처리하면 끝이다.
“큽.”
휘청이던 스가와라는 구멍이 뚫린 손을 움켜잡았다.
신경에 문제가 생긴 건지 왼손에 감각이 없었다.
‘빌어먹을.’
손이 뚫린 데다 내장이 꼬이는 듯한 고통이 더해지니, 시야가 약간 흐려졌다.
거기다 통증 때문에 칼을 쥔 손이 떨려왔다.
그런 모습을 눈치챈 경호대원이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아까 둘이서 뭐라 중얼거리던데… 그냥 곱게 죽어라.”
“…그럴 수야 없지.”
탓!
스가와라는 침착하게 상대의 움직임을 살폈다.
급소를 노리는 간결한 공격을 구사한다.
아마 상대는 전문적으로 살상 기술을 배운 군인 출신일 것이다.
그도 자위대 출신 아쿠자 동료에게 근접 격투술을 배운 적이 있었다.
스윽.
스가와라는 마치 펜싱을 하듯 몸을 옆으로 틀었다.
부상 탓에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좌반신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그 모습에 경호대원은 코웃음을 쳤다.
저렇게 나온다면, 그가 조심해야 할 것은 오른손에 들린 칼 하나밖에 없었다.
칵!
두 사람의 칼날이 맞부딪혔다.
‘손가락 두어 개부터 날리고 시작할까.’
양손을 잃으면, 상대는 5초가 지나기도 전에 난도질할 수 있었다.
스가와라가 칼을 휘두르자, 경호대원은 그 손을 노렸다.
그때, 그 사이로 스가와라의 왼팔이 들어왔다.
턱!
공격을 막음과 동시에, 경호대원의 얼굴을 노리고 칼이 날아왔다.
경호대원은 공격을 막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그의 오른 눈에 핏물이 살짝 들어갔다.
싸움이 시작할 당시, 너클에 스쳐 찢어진 머리에서 흐른 피였다.
그에 일시적으로 오른쪽의 시야가 가려졌고, 그건 스가와라에게 있어 행운이었다.
후욱!
그는 구멍이 난 왼쪽 주먹을 날렸다.
왼손은 쓰지 않을 거라는, 그런 상대의 방심을 노리고 던진 수였다.
그러나, 그는 이미 스가와라가 한 수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한쪽 손을 잃은 그로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아니면 승산이 없을 테니까.
경호대원은 억지로 눈을 부릅뜨며 칼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공격은 날아오지 않았다.
촤악-!
스가와라는 주먹을 뻗지 않고, 손에 난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를 얼굴에 뿌렸다.
그에 경호대원은 본능적으로 눈을 감으며 고개를 틀었다.
그러나 그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훕!”
스가와라는 상대의 고간을 노려 발로 찼다.
“X발!”
기겁한 경호대원이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의 뒤에서, 타이밍을 노리고 있던 미우라가 눈을 빛내며 주먹을 날렸다.
미우라를 붙잡고 있던 경호대원이 당황했다.
계속 뒤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 같길래 주의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튀어 나가니 막을 수가 없었다.
“…!!”
쩍-!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는 경호대원의 눈 위에, 너클을 낀 미우라의 주먹이 꽂혀 들어갔다.
“끅.”
치명타를 날린 미우라의 등에 칼이 꽂혔다.
푹!
“크읍!”
미우라는 뒤로 몸을 회전하며 주먹을 날렸지만, 경호대원은 칼을 뽑으며 뒤로 물러났다.
쿠당탕!
스가와라는 주먹을 맞고 쓰러진 경호대원의 상태를 살폈다.
왼쪽 눈 주위가 함몰된 채로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끄으윽….”
얼굴 한쪽이 거의 박살 났으니, 당연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걸 확인한 스가와라는 망설임 없이 그의 뒤로 돌아갔다.
방검복을 입고 있었기에, 몸통을 찌르는 정도로는 치명상을 입힐 수 없었다.
콱.
몸을 일으키는 그의 머리를 붙잡은 스가와라는, 상대의 뒷목을 향해 칼을 내리찍었다.
콱!
그와 동시에, 칼을 반대 손으로 옮긴 경호대원이 최후의 발악을 했다.
콰득!
목에 치명상을 입은 것과 함께, 스가와라의 무릎에 칼이 박혔다.
“크윽…!”
무릎 아래쪽에 찌르르한 통증이 흐르며, 순식간에 감각이 옅어졌다.
다리에 힘이 풀린 스가와라가 털썩 주저앉았다.
콰득!
한편, 남은 경호대원은 아직도 미우라를 뚫지 못하고 있었다.
스가와라 습격 사건 이후로 두 사람 다 방검복을 입고 다녔기에, 팔의 상처만 있을 뿐 심한 부상은 없었다.
경호대원은 초조해졌다.
고작 야쿠자 둘. 금방 처리하고 현장을 빠져나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두 사람의 저항이 거셌다.
‘X발…. 종혁이 저 새끼, 죽은 건가?’
바닥에 엎어져 미동도 하지 않는 동료.
그리고 상대해야 하는 건 둘.
경호대원은 자세를 낮추고 달려들었다.
상대는 한 방 한 방이 강력한 슬러거 타입의 타격가.
야쿠자 보스는 사실상 전투 불능 상태가 됐으니, 공격 사이사이 빈틈을 노리면 충분히 잡을 만하다.
부웅-!
또 크게 날아오는 공격.
경호대원은 날카로운 칼질로 그의 겨드랑이를 노렸다.
핏.
상대가 피한 탓에 팔을 스치는 칼날.
그에 미우라가 손을 뻗어 그를 붙잡으려던 순간.
“…!”
퓩!
미우라는 등에 충격을 받고 휘청거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경호대원은 그의 옆구리를 수 차례 쑤셨다.
푹! 푹! 푹!
“커헉…!”
미우라는 이 악물고 몸을 비틀어 빠져나갔다.
난데없는 충격. 아마 소음기를 단 권총을 쏜 것 같았다.
피가 쏠린 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칼에 당한 부상. 상대의 무장 상태.
어느 것을 고려해도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빠드득.
하지만 미우라는 이를 갈며 몸을 일으켰다.
퍽!
“크억!”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끄으….”
다리에 총을 맞은 미우라가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혀, 형님. 형님이라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의지만으로 돌아가진 않는 법이었다.
저벅. 저벅.
묵직한 발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힘겹게 고개를 들자, 냉혹한 눈빛의 남자가 그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런 그를, 미우라와 싸우던 경호대원이 만류했다.
“잠깐.”
“왜?”
“총은 안 돼. 흔적이 남는다.”
“흔적은…. 니들이 빨리 처리 못 해서 대기하다가 온 거 아냐.”
총을 든 경호대원은 바닥을 슥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 X발, 김종혁, 이 병신은 왜 이러고 있냐?”
“…내가 실수했다.”
“하…. 골치 아프게 됐네. 이러면 한 명 더 묻어야 되잖아. X발 거.”
동료가 죽었다고는 보기 힘든 태도로, 경호대원은 권총을 조끼 안에 다시 집어넣었다.
“옮기자.”
유혈 사태가 일어났으니, 당연히 경찰이 이곳을 수사할 것이다.
여기서 총상이 남은 시신이 발견되면 곤란했기에, 총에 맞은 미우라를 다른 장소로 옮길 작정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야쿠자 둘을 마무리하려던 그때.
애애앵-!
바깥에서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X발.”
“큰일인데.”
“큰일이 아니라 X 된 거야. 대충 마무리하고 튀어야겠다.”
“이놈들은?”
그 말에, 총을 가진 경호대원은 사망한 동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복면을 벗긴 뒤, 가지고 있던 군용 나이프와 방검복을 벗겨 챙겼다.
이어 바닥에 떨어진 회칼을 주워 스가와라에게 다가갔다.
“젠장. 안 돼…!”
그 모습을 본 미우라가 애타게 손을 뻗었다.
스가와라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경호대원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크아앗!”
그러다, 마지막 힘을 다해 그에게 칼을 찔러넣으려고 했다.
덥석.
하지만 그의 저항은 맥없이 끝났다.
“이 새끼가, 귀찮게….”
칼을 든 손을 탁 쳐낸 경호대원은, 스가와라의 배에 회칼을 꽂았다.
푸욱!
“끄윽….”
“안 돼…!!”
미우라가 충혈된 눈으로 끓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폐에 칼이 꽂힌 스가와라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다만, ‘주마등’이라고 부르는 것을 체험할 뿐이었다.
과거 똘똘하다고 생각한 어린 놈을 만난 일.
그가 믿을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일.
그리고, 그가 야쿠자 전체를 적으로 돌린 일까지.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걸까.’
마지막 순간 든 의문은, 그런 뜬금없는 것이었다.
이내, 그의 의식이 꺼졌다.
.
.
.
지익.
상처를 입은 미우라는 바닥을 기었다.
그가 평생을 모시던 사람을 잃었다.
“형, 님….”
그의 눈에선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경호대원들은, 총에 맞은 흔적을 덮기 위해 소음기를 뺀 권총을 스가와라의 손에 쥐어준 상태였다.
이대로 두면, 미우라에게 총을 쏜 사람이 스가와라로 보일 것이다.
마지막 명예마저 더럽힐 수는 없었기에, 미우라는 그의 손에서 총을 빼내 바닥에 던졌다.
달그락!
그때, 복도를 달려온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허, 허억!”
“이게 무슨…!”
소란이 있다는 신고를 듣고 온 경찰들은 피범벅이 된 사무실을 보고 기겁했다.
미우라는 흥건하게 나온 자신의 피를 바라봤다.
“저, 저기요! 괜찮으세요?!”
“구급차! 일단 구급차 불러!”
이내 그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툭.
* * *
경찰서에 있던 나는 회사로 돌아왔다.
그러자 데스크에 있던 직원이 일어나며 나를 불렀다.
“저기, 주혁아!”
“음?”
풍원한정식에 일하던 여직원이자, 주말에는 우리 회사에 나오는 강예원이었다.
“혹시 사장님 연락 받았어?”
“유나 씨 말이야?”
“응. 아까 너 전화 안 받는다고 회사로 연락하셨던데.”
“아,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아까 확인한 것 중 유나 씨의 문자도 있었다.
아직 내가 경찰과 같이 갔다는 소식은 듣지 못한 건지, 오늘 저녁에 잠깐 시간 되냐는 내용이었다.
답장을 하려다 너무 바빠서 못 했는데, 그것 때문에 연락한 것 같았다.
“연락해 봐야겠네. 고맙다.”
“아냐. 근데 목소리가 별로 안 좋으시더라고. 얼른 전화하는 게 나을걸.”
“알았다. 알았어.”
나는 로비 구석의 소파에 앉아 유나 씨한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안 그래도 요새 만날 시간이 별로 없어서, 내심 미안하긴 했다.
그래도 머지않아 이런 생활도 끝날 테니,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낼 수 있겠지.
뚜르르-.
일하고 있을 시간이라 그런지, 전화가 바로 연결되지 않았다.
탁.
나는 가게 전화로 다시 걸었다.
-…네. 풍원한정식입니다.
“안녕하세요. 임유나 씨가 전화하셔서요. 죄송하지만, 이주혁이라고 전하면 알 겁니다.”
-아아, 네. 잠시만요.
핸드폰을 들고 잠시 기다렸다.
-여보세요. 주혁 씨?
“유나 씨. 전화하셨죠? 미안해요. 잠깐 일이 있어서 못 받았어요.”
-아, 그래요? 다른 게 아니라… 가게에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 찾아와서요.
꿈틀.
“이상한 사람이라고요?”
-네. 와서 음식도 안 시키고, 계속 쳐다보기만….
그 말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가겠습니다.”
이번엔, 또 어떤 새끼들이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