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76
#476화
드르륵- 탁!
밴의 문이 닫혔다.
“자. 여러분. 지금부터 진솔한 대화를 한번 나눠봅시다.”
“읍! 읍!”
내 선언에, 결박당한 채 뒷좌석에 구겨진 세 사람이 합창했다.
나는 가운데에 있는 남자의 입을 막고 있던 재갈을 풀었다.
“이, 이 미친 새끼! 감히 경찰을 폭행하고, 이젠 납치까지 해?!”
“큰 소리 내면 다시 막습니다.”
“또라이 같은 새…!”
스윽.
나는 백기준에게 전기충격기를 건네받아, 그대로 시끄럽게 구는 놈의 목에 대고 버튼을 눌렀다.
따다다닥!
“끄그그그그극!”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아가리 닥치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 주세요.”
“컥. 허억!”
“마재용 씨. 강남서 지원1팀 소속, 맞습니까?”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는지, 마재용은 반쯤 풀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맞다.”
“당신들은 지난 몇 주간 풍원한정식 근처를 맴돌며 감시했습니다. 맞습니까?”
“감시가 아니라….”
“아니면 뭡니까?”
“…….”
뭐라 중얼거리던 놈이 입을 다물었다.
“마재용 씨. 당신들 나 알지.”
“…뭐라고?”
“강남서 안에 몇 번 왔다 갔다 했는데, 본 적 없어요?”
“없다.”
척.
나는 공무원증을 꺼내 보여줬다.
“특수국 소속 이주혁입니다. 인사가 늦었네요.”
“…….”
놈들은 내 공무원증을 힐끗 보고선 날 노려봤다.
그걸 통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이미 날 알고 있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같은 경찰국 소속의 인물이 자신들을 납치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놈들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내 정보와 소속을 눈치채고 있었으니, 당연히 당황하지 않을 수밖에.
그렇단 건, 누군가 나에 관한 정보를 이미 넘겼다는 소리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누구 지십니까?”
“…….”
놈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의리는 아닐 거고, 돈을 받아먹었거나 자기 생계가 걸린 일이라 그렇겠지.
“입 다물고 있어서 좋을 거 없을 텐데요.”
“….”
“혹시 아는지 모르겠는데, 난 당신들 입을 강제로 열 수도 있어. 그리고 그 일을 묻어버릴 방법도 있지.”
재갈 때문에 말을 할 순 없었지만,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눈빛으로 느껴졌다.
그에 나는 옆에 있던 서류를 들고, 고세운이 보내준 놈들의 치부를 쭉 불러줬다.
“셋 다 조폭들한테 돈을 꽤 받아 드셨네? 김보경 씨는 불법 안마시술소 단골에, 뒤도 봐주는 중이고… 이대환 씨는 주기적으로 약사랑 만나시나 봐?”
“……!”
양 끝에 앉은 경찰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지막으로 전기찜질을 당한, 중간에 있는 놈을 향해 말했다.
“마재용 씨. 당신은 예전에 강압 수사 때문에 용의자가 자살했다면서. 그래서 한 계급 강등당하고 좌천됐다던데.”
“…….”
“아직도 그 알량한 경찰 신분이 당신들을 지켜줄 것 같아?”
세 사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가 본인들의 약점을 쥐고 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가 복잡할 거다.
“자. 그렇다고 내가 여러분 경찰 인생을 끝장내겠다는 건 아닙니다. 솔직히 우리가 그 정도로 원한이 있는 관계는 아니잖아요?”
여기서, 희망을 던져준다.
“누가, 뭘 하라고 시켰는지. 그것만 말하세요. 그럼 이건.”
팔랑팔랑.
“못 본 척해드리겠습니다.”
“…정말이냐?”
“정말이라고 하면 바로 믿을 겁니까? 본인이 판단하세요.”
경찰들은 고뇌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자신들의 치부를 세상에 드러낼 것이냐.
아니면 정보를 불고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느냐.
선택의 여지는 없을 거다.
“…그래. 말하겠다.”
이들의 리더로 보이던 마재용이 착잡한 얼굴로 설명했다.
“우린… 서장님의 지시를 받았다.”
나름대로 큰 정보랍시고 뱉은 것 같은데, 저 정도는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말단일 테니 서장 위에 있는 인물은 모르고 있겠지.
내가 정말 궁금한 건 이유였다.
목표가 풍원한정식인지, 아니면 유나 씨인지.
둘 중 뭐든 간에, 이유를 알아야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을 테니까.
“따로 이유를 들은 적은 없습니까?”
“…나도 정확히는 몰라.”
“이유도 모르면서, 시키는 대로 했다는 겁니까?”
“높으신 분이 우리한테 다 설명할 리가 없잖아?”
“그럼, 맡은 역할은 단순히 풍원한정식의 감시였습니까?”
마재용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근처에서 가게를 지켜봤었던 건… 던지기를 위해서였다.”
“던지기? 내가 아는 그 던지기 말입니까?”
“그래.”
던지기란, 마약을 거래할 때 쓰는 용어다.
판매자가 어딘가에 물건을 놓고, 구매자가 나중에 그 장소에 와 찾아가는.
일종의 비대면 거래 방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게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내 안쪽 주머니에 USB가 하나 있다. 거기엔 누군가의 비밀 장부가 들어있지.”
“비밀 장부?”
“임성국. 풍원요정 사장의 장부다.”
그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원래 고위층을 접대하는 장소였던 풍원요정.
그 풍원요정을 유나 씨가 리모델링 한 게, 바로 지금의 풍원한정식이었다.
그리고, 유나 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가게를 물려받았다.
한 마디로.
‘이건… 유나 씨 아버지의 비밀 장부다.’
솔직히 임성국이라는 사람에게 치부가 없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경찰들이 장부를 왜 가지고 있으며.
이걸 가지고 뭘 하려고 한 건지.
“그 USB는 어디다 쓸 생각이었습니까?”
“이걸… 그 사장에게 보여주라는 지시를 받았다.”
“보여줘서 어쩌려고.”
“임성국의 자식이 장부를 확인하게 만든 다음… 가게를 폐업시키라고 하셨다.”
“….”
풍원한정식은, 유나 씨의 꿈과 목표가 담긴 곳이다.
그런 가게를 없애려 했다고?
“정확히 어떻게 하려고 했지?”
“마약을 숨겨둔 뒤, 제보를 받았다며 조사를 진행할 생각이었다. 그럼 자연스럽게 손님이 끊기겠지. 거기다 지금 사장이 살고 있는 부동산도 문제가 있던데….”
“그만. 이해했습니다.”
가게를 운영하지 못하게 한 뒤, 유나 씨의 생활 환경까지 망친다.
그게 놈들의 목적인 것 같았다.
‘조병철. 그놈의 지시가 분명하다.’
조병철은 과거, 풍원한정식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유나 씨의 아버지와도 아는 사이였다고 직접 말했었다.
이 정도면 모르는 게 바보다.
이건 조병철의 경고였다.
내가 대놓고 뒤통수를 쳤다면, 놈은 고민 없이 유나 씨를 해치려 했을 수도 있다.
‘확실하지 않으니 아직 건드리지 않았겠지.’
어쩌면 내가 눈치챌 거라 생각하고, 해명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럼 보여줘야겠다.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인지.
조병철. 아마 꼬리만 잘라내고 도망갈 계획일 거다.
하지만 어림도 없다.
‘끝까지 물고 늘어져 주마.’
경고?
나는 그런 거 키울 생각 없다.
* * *
어두운 시각.
인천 외곽에 있는 한 항구.
“여기다.”
라세흠 일행은 조용히 움직여 그곳에 도착했다.
고상미 쪽이든, 이쪽이든.
도망친 경호대원들이 둘 중 한 장소로 오리라 생각했기에, 라세흠은 주변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러다 근처의 흙바닥에서 무언가의 흔적을 발견하곤, 그와 함께 온 남자를 불렀다.
“음. 샤키야. 컴 히어.”
“무슨 일이야?”
“여기, 발자국 찾았다. 군화 같지?”
“…그렇네. 파인 깊이나 특유의 패턴을 봤을 때, 그자들일 확률이 높겠어.”
“오케이.”
그들은 발자국이 향한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항구에 정박한 고기잡이배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휙. 휙.
라세흠이 수신호에 따라 일행은 흩어졌다.
우선 적의 수를 파악한 뒤, 배가 출발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사사삭.
기척을 최대한 줄인 채 다가가던 라세흠의 귀에, 초소 안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 온 거 맞아?”
“그래. 슬슬 출발해야 된다. 경찰이 포위망을 좁히고 있어.”
“해경들은 확실히 배제해도 되는 거겠지?”
“중국 어선들 핑계로 순찰 루트를 바꿨다고 들었다.”
스윽.
라세흠은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삼단봉을 꺼냈다.
그리고 개조한 에어소프트 권총을 꺼내 한 손에 들었다.
‘우선 눈앞에 둘부터 처리한다.’
팟! 촤라락!
초소 벽 뒤에 숨어있던 라세흠이 삼단봉을 펼치며 안으로 진입했다.
그와 동시에, 왼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상대의 머리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퓩! 퓩! 퓩!
“크아악!”
고무탄에 맞은 한 사람이 얼굴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무슨…!”
라세흠은 나머지 하나가 허리 쪽으로 손을 가져가는 걸 확인했다.
그곳엔 아마 실탄이 들었을 권총이 있었다.
그에 라세흠은 총을 뽑은 그의 손을 향해 삼단봉을 내리쳤다.
“흡!”
총을 꺼내 들려던 손이 멈칫했다.
그 틈을 타, 라세흠은 그에게도 고무탄을 갈겼다.
퍽! 퍽! 퍽!
“크윽!”
그때, 얼굴에 탄을 맞은 경호대원이 정신을 차리고 칼을 뽑았다.
두 사람 모두 총기를 소지하고 있지 않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퓩!
방아쇠를 더 당기려 했지만, 경호대원은 그의 총구를 붙잡아 돌렸다.
7발 들이 탄창이었기에, 라세흠은 미련 없이 손에 총을 놓았다.
그리고 다시 권총을 꺼내려는 상대를 발로 밀어 찬 뒤, 동시에 삼단봉으로 칼을 막았다.
퍼억!
“큭!”
이어 빈손으로 칼집에서 칼을 뽑고, 그대로 상대의 손목과 겨드랑이를 그었다.
촤악-!
“끄윽…!”
순간적으로 물러나는 상대를 두고, 라세흠은 황급히 몸을 낮췄다.
퓩-!
그런 그의 머리카락을 실탄이 스치고 지나갔다.
“후웁!”
라세흠은 그대로 돌진해 총을 든 경호대원을 덮쳤다.
퍽-! 쾅!
“커헉!”
초소 벽에 처박힌 경호대원은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손목을 꺾어 라세흠의 옆구리에 총알을 박아 넣으려 했다.
하지만 라세흠의 칼이 총구를 틀었다.
카득!
그리고 뒤로 젖힌 라세흠의 무릎이 그의 고간을 강타했다.
뻐억-!
“…!!”
경호대원의 몸이 경련했다.
“이런 씹…!”
손목이 베였던 경호대원은,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 라세흠의 등을 찔렀다.
쿠욱!
하지만, 그가 입고 있는 방검복을 뚫진 못했다.
순간 당황한 경호대원의 턱에, 라세흠의 팔꿈치가 날아와 직격했다.
쩍-!
급소를 적중당한 경호대원의 다리가 풀렸다.
휘청- 쿵.
“끄르륵….”
라세흠은 중요 부위를 붙잡은 채 거품을 물고 있는 상대도 머리통을 걷어찼다.
뻑!
오래 걸리지 않아 두 사람을 제압한 라세흠이 길게 호흡을 골랐다.
“후우….”
가까운 거리에서의 박투전은 그의 특기.
좁은 초소 안에서 기습한 것이었기에, 큰 어려움 없이 훈련받은 인원 둘을 처리할 수 있었다.
-…!
-…!!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어렴풋이 소란이 이는 걸 보니, 다른 쪽에서도 적과 충돌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스윽.
바깥으로 나오자, 고기잡이배에서 한 사람이 바다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끄아악…!”
풍덩-!
그리고, 그 배 위에는 샤키야가 쿠크리를 들고 서 있었다.
적당히 상황이 정리된 것 같아, 라세흠은 샤키야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몇 놈 있었냐?”
“배 위에 둘. 초소에 있던 둘은 처리한 거지?”
“어. 네 명이 다인가?”
“아마 그런 것 같다.”
생각보다 싱겁게 끝난 작전에, 라세흠은 어딘가 떨떠름한 느낌을 받았다.
“인원이 적을 거라곤 생각했는데… 예상보다도 더 없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 주변 더 찾아봐.”
라세흠은 핸드폰을 꺼내며 일행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고상미 쪽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경호대원들이 이쪽에 있었으니, 거긴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상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라세흠이 눈썹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뭐 하는 중이길래 안 받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