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8
047화
임유나가 운영하는 풍원한정식.
난 저번과 마찬가지로 모두 퇴근하고 임유나가 나오길 기다렸다.
‘어?’
그런데, 의외다.
임유나가 마지막까지 마무리하는 건 같지만, 이번에는 직원들도 함께였다.
일전에 스토킹범 새끼가 다녀간 이후로 적잖은 충격을 받은 거 같다.
저 멘탈 강한 사람이 직원들과 함께할 정도면.
‘이제 그런 일은 없겠지만.’
임유나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은 반드시, 외상값을 갚아 주고 스토킹범 새끼가 찾아오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난 일전에 챙겨 놨던 5,000만 원이 들어있는 샤넬 가방을 가지고 차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머쓱하게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쭈뼛쭈뼛 다가가자, 임유나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 주혁씨.”
“저……. 외상값 갚으러 왔습니다. 너무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뻘쭘하고 창피하고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다.
가오로 똘똘 뭉친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그것도 직원들이 모여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피부를 타고 느껴질 정도다.
“아……. 네.”
어색하게 가방을 받아 간 그녀가 잠시 눈치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직원들에게 말했다.
“먼저 들어가세요. 전 이분하고 할 얘기가 있어서요.”
“아. 네. 사장님.”
빨리 보내 줘서 다행이다.
“우리 둘이서 와인이라도 한잔할까요?”
“두, 둘이서요?”
“할 얘기 많잖아요. 여기 서서 할 순 없으니까, 와인 바라도 같이 가요.”
“아! 네. 그러죠.”
.
.
적당한 노란색 조명이 테이블을 비추는 와인 바.
클래식한 피아노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그런 곳이다.
임유나가 평소 자주 오는 와인 바라고 하는데, 사람은 역시 자기 옷에 맞는 곳을 찾아가나 보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독식한 그녀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곳이었다.
“어떤 와인이 좋아요?”
“전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음……. 그럼, 스파클링으로 할까요? 탄산이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거든요.”
“좋죠.”
스파클링 와인과 간단한 치즈 안주가 테이블을 채웠다.
임유나가 와인 한 잔을 마시고는 가만히 와인 잔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애써 말을 뱉어 냈다.
“정말 고마워요.”
“……??”
“폭력배들한테서 구해 준 것도 고맙고, 스토킹하는 그 사람한테서 구해 준 것도 고맙고요.”
얼굴이 서서히 붉어지고 있다.
평생 고맙다는 말을 거의 해 본 적이 없을 거다.
이제까지 봐 왔던 계산적인 모습과 웃음 한 번 짓지 않는 차가운 표정을 기억한다.
임유나는 금전적으로는 풍족하게 살았을지 몰라도 살아온 인생은 척박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기에 고맙다는 말을 하며, 얼굴이 홍시처럼 달아오르게 이해된다.
“남자라면, 응당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위기에 처한 여성분을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는 없죠.”
“보통은……. 안 그러죠. 기사도보다는 자기 안위가 우선이니까요.”
보통 사람은 그럴 수 있지만, 난 아니다.
기사도로 똘똘 뭉친 사람이 나 이주혁 아닌가?
아리따운 여성분을 위기에 놔둘 만큼 비겁하고 치졸한 인간이 아니다.
‘많이 쑥스러운가?’
임유나는 고개를 숙이고 와인 잔을 연신 기울이고 있다.
고맙다는 말이 그녀를 많이 창피하게 만드는 거 같다.
그럴 때도 기사도를 발휘해야지.
“유나 씨. 제 팔뚝 보이십니까?”
일부러 옷을 걷어붙이며, 알통을 만들어냈다.
이런 퍼포먼스 정도는 해 줘야지.
“제가 특수부대 출신에 건강 하나는 타고난 놈입니다. 군대에서도 훈장을 휩쓸다시피 한 놈이고요.”
“아……. 그래요?”
“원래 꿈은 경찰이었습니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하고 있지만……. 어쨌든, 전 기사도가 넘치는 그런 인간입니다.”
경찰이었지. 지금은 정의의 빌런이고.
“원래 아름다운 꽃에는 벌들이 많이 달라붙잖습니까? 유나 씨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독식한 꽃이니, 벌레 같은 것들이 많이 달려들겠죠. 전 그때마다 유나 씨를 구해 드리겠습니다. 위기에 처하면, 언제든 유나 씨를 지켜 드리겠습니다.”
“…….”
팔뚝을 탕탕! 치며 말했는데.
‘왜 더 얼굴이 붉어지지?’
그녀는 오히려 얼굴을 더 못 들고 있고, 빨개지고 있다.
이유를 모르겠다.
위험할 때마다 지켜 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남자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냐?
“말이라도……. 감사해요.”
“에이. 말뿐이겠습니까? 진심입니다. 제 전화번호 아시죠? 위험한 순간이 오면, 언제든 통화 버튼 한 번만 눌러 주세요.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그 스토킹하는 개새……. 아니, 그 친구는 제가 잘 타일렀습니다. 다시는 유나 씨 곁에 가지 못하게 아주 잘! 타일렀습니다.”
타이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억에서 임유나란 이름을 삭제시켰지.
우리 직원이자, 고문기술자인 백기준이 그런 쪽으론 도가 튼 놈이라.
3일을 안 재우면서 정신을 개조했다고 하는데……. 으……. 백기준 그놈도 대단하긴 하다.
“요즘 연락이 안 오긴 하더라고요. 평소 같으면 하루에 문자를 수백 통씩 보내고, 전화도 수십 번씩 하는데, 최근엔 아예 연락이 없어요.”
“하하하. 그만큼 잘 타이른 거죠.”
임유나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뀐다.
의심이 삐져나오는 얼굴이었다.
“타이른다고 듣던가요? 그 사람. 집착이 정말 심한 사람이었는데…….”
“우리 회사 직원 중에 정신 상담을 잘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거의 정신과 전문의 수준이죠. 그 친구가 직접 스토킹하는 그 친구의 마인드를 바꿔줬습니다. 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어쨌든 유나 씨에 대한 집착이 잘못된 걸 깨닫고 이제 그런 짓은 안 하기로 했죠.”
정신과 전문의를 뛰어넘은 인간이지.
사과가 바다에서 잡는 거라고 해도 믿게 만들 인간이다.
“잘 처리됐나 보네요.”
“물론이죠. 이젠 그 인간이 다시 찾아올 일은 없을 겁니다. 앞으로도 그런 놈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제가 만들 거고요. SA시큐리티의 이주혁이 책임지고 유나 씨를 지켜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분위기 반전을 위해, 일부러 가슴을 치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그럴수록, 임유나의 얼굴은 더욱 달아올랐다.
‘홍조증이라도 있는 건가?’
와인 바에 오고 나서부터 그녀의 얼굴이 이상하다.
계속 울긋불긋한 게, 무슨 병이라도 있는 건가?
“혹시 몸이 안 좋으세요?”
“예?”
“얼굴이 빨개져서요. 아니면, 술이 안 받으시는 체질이에요?”
“아! 아니…….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녀가 고개를 돌려 버리기까지 했다.
술이 약한가 보네.
그걸 안 들키려고 이러는 거야.
난 확신이 생겼다.
‘자존심이 강하니까 더 그렇겠지.’
강한 여성을 표방하는 여자다.
혼자의 힘으로 요정이었던 곳을 강북에서 알아주는 한정식집으로 바꾼 여성이기도 하고.
그런 임유나는 취기가 올라온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은 거다.
‘이럴 때는 멋있게 자리를 떠나 줘야지.’
멋을 아는 남자.
그게 바로 나 이주혁이다.
“전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예? 왜, 왜요?”
“훗. 늦었잖아요. 밤이 어두워졌으니까요. 유나 씨는 좀 더 드시다가 가세요.”
“그…….”
쿨한 남자는 여운을 남기지 않는다.
멋있게 뒷모습을 보여 줘야지.
“그럼, 회식하러 또 찾아가겠습니다. 아! 그리고 카드 한도 올려 놨으니까 다음엔 외상할 일 없을 겁니다. 하하.”
그러면서, 난 와인바를 떠났다.
계산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지배인에게 팁을 챙겨주며 자리가 마무리될 즈음엔, 택시를 불러달라고도 했다.
역시, 나란 남자. 멋있어.
***
임유나가 집에 도착하자, 대문까지 남동생이 마중을 나왔다.
“누나. 표정이 왜 그래?”
임유나의 동생, 임지훈은 누나의 얼굴을 보곤 의아함을 느꼈다.
평소에 당당한 모습이 사라졌고,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그냥, 기분이 좀 그래서.”
“에이. 아닌데? 내가 누나를 몰라? 기분 안 좋으며, 옆 광대가 씰룩거려. 지금은 그런 얼굴이 아니야. 음……. 뭐라고 해야 할까? 다른 여자로 따지면, 실연당한 여자의 얼굴? 그렇게 보여.”
“…….”
“어? 뭐야? 왜 대답이 없어? 누나 진짜 실연당했어? 차인 거야? 아! 아니다. 누나 남자친구가 있었어?”
임지훈이 궁금증을 쏟아 내자, 임유나는 터벅거리며 집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나……. 여자로서 매력이 없나 봐.”
“엥? 누나가?”
가족끼리는 이성으로 보이지 않는 법이지만, 외모만큼은 단연 미스 유니버스 싸대기를 날릴 정도로 이쁜 사람이 누나였다.
그런 누나가 매력이 없다니?
“말도 안 돼. 누나가 왜 매력이 없어?”
“그러니까 말이야. 후……. 내가 너무 차갑나? 사근사근하게 성격을 바꿔야 하려나?”
“에이. 그건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될 거 같고.”
“야! 임지훈.”
“암튼, 나한테 얘기해 봐. 내가 상담해 줄게.”
“됐다. 들어가서 쉬어. 조만간 경찰대 복귀잖아? 쉴 수 있을 때, 많이 쉬어 둬.”
임유나는 터벅거리며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후…….”
그녀는 서서히 그린 라이트를 켜고 있었다.
자기를 지켜 준다는 이주혁에게 마음이 향하고 있었던 거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서로를 더 알아 가고 싶었는데, 바로 떠나 버렸다.
‘선을 긋는 건가?’
이주혁은 경호 회사 직원, 자기는 고객.
오늘 와인 바에서 만난 이주혁은 그 선을 확실히 긋는 걸로 보였다.
마음이 착잡하다.
처음으로 켜진 그린 라이트가 그에게 닿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털썩.
가방을 대충 던져 놓고 침대에 누운 임유나.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먼저 다가갈까?’
고민에 휩싸인 그녀였다.
***
임유나를 만난 다음 날.
백기준이 환한 얼굴로 오랜만에 지하실에서 올라왔다.
표정이 밝다.
근데, 그게 또 무섭다.
이 새끼. 같은 편이라 진짜 다행이다.
“주혁아. 마종석 이사가 소스 하나 꺼낸 게 있는데 말이야.”
고문기술자 백기준이 마종석의 입을 서서히 열고 있는 중이었다.
주철수가 앞으로 어떤 계획을 짜고 있는지 알아내고, 미리 준비하려는 거다.
“뭔데?”
“패러다이스 호텔에 카지노가 들어온다네. 거기 사업권을 주철수가 가져갈 거란다.”
“……?!”
카지노 사업권을 노린다고?
이건 쉬이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카지노 사업권만큼은 가져가게 놔둘 수 없다.
거기서 나오는 수입이 엄청나기에, 가만히 놔뒀다가는 주철수가 배를 채우게 된다.
‘그것도 엄청나게.’
카지노를 통해 자금줄이 채워지면, 다시 지방에서 고기방패들을 구할 테고 강북과 전면전을 준비할 거다.
지금 강북 세력은 혼돈의 시기다.
서울광목파의 고광목이 자기를 따르는 부하들을 모아 미추리파 밑으로 들어갔지만, 아직 체계가 잡히지는 않았다.
회사도 합병하면 분란과 문제가 생기는데, 거칠 것 없는 조폭들이 하나로 모이는 건 쉽지 않았다.
‘이 틈에 주철수가 움직이면…….’
주철수가 배를 불리고 세력을 키워서 강북에 쳐들어가면, 강북의 필패다.
서울이 주철수의 손아귀에 떨어진다는 말이고, 내가 건드릴 수 없는 막강한 조직이 만들어진다는 말이었다.
“후…….”
난 길게 한숨을 뱉고는 백기준을 보며 물었다.
“사업권을 받아 간다고 했지, 아직 받았다고는 안 했지?”
“응. 그것도 입찰해서 받아 가는 형태인가 보더라고. 뭐, 형식적으로 대충 입찰해도 될 만큼 판을 짜 두긴 했다는데, 아직 입찰받은 건 아니래.”
“그래? 오케이. 알겠어.”
아직 입찰전이면, 내게도 시간이 있다는 말이다.
나도 카지노 사업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거고.
‘시간은 있다.’
그리고 시간은 내 편이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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