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84
#484화
김정우가 SA시큐리티의 지하실로 끌려가던 그 시각.
조병철은 자신의 집에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주혁…. 그놈이 과연 호락호락하게 당해줄까?’
선생의 사업체인 강남파와 새사람 교회 등, 규모가 큰 이들과 맞섰는데도 아직 무사한 놈이다.
이주혁과 선생이 지금은 협력한다지만, 그때는 눈속임으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으니까.
거기다 그쪽 직원들 대부분은 특임대 출신이었다.
‘그래서 전부 흩어져 있을 때는 노린 거지.’
혹시라도 살해당할 걸 걱정했는지, 이주혁은 자신을 돕는 이들에게 경호 인력을 붙여놨다.
임유나, 송태석, 서해결 검사까지.
조병철은 그 틈을 노렸다.
직원들이 전부 경호를 위해 빠졌고, 가장 큰 걸림돌인 라세흠도 서울을 벗어났다는 소식.
그러한 소식을 듣자마자 김정우를 보낸 것이었다.
‘지금, 놈의 곁에는 이렇다 할 전력이 없다.’
그자가 고용한 용병. 그리고 일반 직원으로 보이는 몇 명 정도.
지금껏 조용한 임무를 맡아온 김정우라면 혼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주차장에 몰래 들어가는 놈들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그 변수가 나쁘게 작용하진 않을 거다.’
계획을 세우던 중, SA시큐리티의 주차장으로 숨어드는 수상한 이들을 발견했다.
원거리에서 감시 카메라를 무력화시킨 뒤 잠입하는 걸로 봐선, 그들도 같은 목표를 노리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이 이주혁의 상황을 알고 온 건진 몰라도, 우연히 계획이 겹쳐버린 것이다.
이주혁의 제거라는 목적이 동일하니, 굳이 건드릴 이유는 없었다.
‘그놈만 없애면 된다.’
일종의 보복이자, 싹을 자른다고 해야 할까.
선생과 손잡고 자신을 끌어내린 것에 대한 복수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해가며 이주혁을 없애려는 건, 놈이 계속 뒤를 쫓을 거란 예감 때문이었다.
팅-.
담뱃불을 붙인 조병철이 미간을 좁혔다.
‘집요하고 끈질긴 놈이야.’
대한민국 최대의 조직, 강남파와 정면으로 맞붙어 깨부쉈다.
재정적으로 말리고, 주먹으로 때리고.
온갖 방법을 동원한 끝에, 결국 강남파는 파멸을 맞았다.
선생의 자금줄 중 하나였던 새사람교회도 마찬가지.
절대 그냥 넘어가는 일 없이, 교회의 수장까지 감방에 처넣었다.
그 외에도 그자에 의해 몰락하거나 감방에 간 인간들이 적지 않았다.
‘미친개지. 한 번 문 건 절대 놓지 않으니.’
그러한 이유로, 이주혁을 아예 처리해 버리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러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길들이기만 하면 최고의 패가 되어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이주혁을 계속 지켜본 바론, 그놈은 절대로 누군가에게 굽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대로 두면, 나도 끝까지 쫓아와서 모든 걸 잃게 만들겠지.’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들.
그가 가진 것들.
전부 뱉어놓고 빈손으로 감방에 들어갈 때까지, 이주혁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강한 예감이 들었다.
“후우….”
띠링.
고뇌하는 얼굴로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는데, 올려뒀던 핸드폰으로 문자가 날아왔다.
[마무리했습니다. 이주혁은 확실히 처리했습니다.]김정우가 보낸, 일의 성공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꾸욱.
담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좋았어.”
이주혁이 생각보다 쉽게 죽어줬다.
다행히 변수들이 잘 맞아떨어져 준 모양이었다.
하지만 기뻐하는 것도 잠시.
“…잠깐.”
조병철의 직감. 그리고 오랜 기간 정치판에서 구르며 단련한 추론 능력이 무언가 위화감을 감지했다.
김정우는 일을 마무리하면 항상 사진을 보낸다.
이미 살해한 시신이든, 결박해 둔 사람이든.
주기적으로 데이터를 삭제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 받은, 주차장에 눈을 감은 채 쓰러져 있는 이주혁의 사진.
‘뭔가… 이상하다.’
이런 감각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하던 조병철은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사진을 어떻게 찍은 거지?’
주차장엔 이주혁의 일행을 비롯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같이 있었을 터.
그런 와중에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다니.
급박한 상황에는 사진을 생략할 때도 있었기에 더더욱 이상했다.
설마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죽진 않았을 테니까.
‘그 수상한 자들과 임시로 손을 잡았나? 그것도 말이 안 되는데….’
이렇다 단정 지을 순 없어도, 여러모로 걸리는 점이 있었다.
어쩌면 역으로 당한 뒤, 이주혁이 자신의 사진을 찍어서 보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뚜르르-.
잠시 고민하던 조병철은 김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미 상황이 마무리됐으니 연락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었다.
‘만약 받지 않는다면….’
김정우는 이주혁에게 당했다.
이렇게 받아들여도 되리라.
-예. 실장님.
그런 그의 예상이 빗나갔다.
“…문자는 확인했어. 놈은 확실히 처리한 게 맞겠지?”
-심장을 찔렀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근데 정우야.”
조병철은 결국 의문점을 뱉었다.
“사진은 어떻게 찍었어? 그 수상한 놈들과 손을 잡은 건가?”
-아…. 그놈들, 러시아에서 온 킬러들인 것 같았습니다.
“러시아?”
뜬금없이 나온 이름에 반문했다.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지만… 이주혁 힘을 빼준 덕에 손쉽게 처리했습니다.
“킬러들은 다 죽었고?”
-예. 아예 목격자를 남기지 않는 게 좋아서, 이주혁이 전부 쓰러뜨릴 때까지 놔뒀습니다.
“그래….”
별다른 특이사항은 느껴지지 않았다.
김정우의 목소리도 큰 이상 없어 보였고, 주변의 소음이 들리는 것도….
“정우야.”
-예.
“지금 어디냐?”
-…잠깐, 근처 상가에 숨어있습니다. 나오는 길에 복귀하는 놈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상가라고.”
조병철이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상가 건물 내부의 사진, 바로 찍어서 보내봐.”
-예…? 사진이라니… 설마, 절 의심하시는 겁니까?
상가라기엔 너무 고요했다.
늦은 시간이라지만, 대로에 있는 SA시큐리티 근처의 상가라면 지나다니는 자동차 소리라도 들려야 했다.
그러나 지금, 전화 너머로 들리는 건 김정우의 목소리밖에 없었다.
“그래. 그러니까 지금 보내.”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쇼.
뚝.
그리고 3분 정도 지났을까.
계단참의 창문을 통해 바깥의 도로를 찍은 듯한 사진이 전송됐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건가?”
그렇다기엔 사진 하나를 찍는 데 3분이나 걸렸다.
조병철이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는 사이, 누군가 바깥에서 문을 두드렸다.
똑똑.
“…!”
-접니다. 실장님.
조병철은 미간을 꿈틀했다.
‘내가 긴장했다고? 그런 애송이에게?’
솟아나는 짜증을 숨기며 방문자를 향해 말했다.
“들어오게.”
끼익-.
한 중년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특수국으로 전출 간 박건의 뒤를 이은, 광수대의 새로운 강력팀장.
유석형이 그에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실장님. 말씀드릴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뭔가?”
“그, 1층의 전등이 계속 깜빡거려서 말입니다.”
“전등이?”
그는 심기 불편해 보이는 조병철의 눈치를 살피며 설명했다.
“예. 합선이라도 된 건지 지직거립니다. 저희들끼리 고치려고 했는데, 전기실 열쇠가 없어서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말에 조병철은 서랍에서 열쇠 하나를 꺼냈다.
“여기 있네.”
“예. 고쳐두겠습니다. 별일은 아닌 것 같으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순찰 인원을 늘리게.”
“인원을… 예. 알겠습니다.”
경찰은 엄연한 공권력.
아무리 과격한 방식을 선호하는 놈들이라도, 함부로 경찰을 건드리진 못할 것이다.
탁.
유석형은 고개를 숙이고선 다시 방을 나갔다.
‘오래된 곳이라… 먼지가 좀 쌓였나.’
현재 조병철이 있는 장소는, 15년 전쯤 마련해 놓은 안가였다.
외진 곳에 있는 데다가, 들릴 일이 없어 관리가 조금 미흡했던 모양.
대수롭지 않게 넘긴 조병철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김정우에게선 아직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은 상태였다.
“흐음….”
불안감이 엄습했다.
김정우가 정말 포로로 잡힌 거라면, 과연 자신의 정보를 불지 않았을까?
만일을 대비해 그에게도 행선지를 알려주지 않은 게 정답이었다.
꾸욱.
조병철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누군가 그의 위치를 알고 쳐들어올 상황을 대비해, 광수대에게 안가의 경비를 맡겼다.
비록 규탄당하며 자리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썩어도 준치라.
광수대 팀 하나 정도를 움직이는 건 큰 문제 없었다.
‘…일단 이것들부터 정리해야겠군. 대책은 김정우가 복귀하지 않을 때 생각해도 된다.’
주식, 채권, 부동산.
그가 가진 재산들을 법망에 걸리지 않게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검찰에서 또 어떤 꼬투리를 잡을지 모르니, 현금화를 시켜 보관할 생각이었다.
사락.
그렇게 조병철이 장부를 펼치던 그때.
깜빡. 깜빡.
“……?”
자기들이 고친다더니, 뭔가를 잘못 건드린 건지.
그가 있는 방의 조명이 점멸했다.
미간을 좁히며 다시 시선을 내리려던 찰나.
지지- 직. 펑!
갑자기 전등이 스파크를 튀기며 꺼져버렸다.
“이게 뭐 하는….”
조병철은 인상을 구긴 채로 손을 뻗어, 책상 위에 놓인 스탠드 조명을 켰다.
탁.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글씨를 확인할 순 있을 정도의 밝기였다.
쿵.
종이를 넘기는데, 아래층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쯤 되자, 조병철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이곳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김정우를 포함, 그의 최측근에게도 그가 어디로 갈지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여기를 지키는 광수대 형사들도 서류상으론 다른 곳에 있다고 처리됐을 터.
“…….”
그저 기우일 뿐인가.
코앞까지 닥쳐온 위협인가.
딸깍.
조병철은 스탠드의 전원을 껐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뒤, 방문 쪽으로 향했다.
끼익.
마룻바닥을 밟는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리는 듯했다.
이어 조병철은 문으로 귓가를 가져다 댔지만, 복도에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왜 움직이는 소리가 안 들리는 거지?’
실수로 안가의 전등이 모두 꺼졌다면, 누군가는 이 일을 보고하러 와야 했다.
그러나.
“…….”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는커녕, 자신의 숨소리만이 귓전에 맴돌았다.
스윽.
결국, 최악의 상황을 가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찰칵.
최대한 조용히 잠금쇠를 걸고, 다시 자신의 책상으로 이동했다.
노쇠한 시력은 어둠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으나,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가며 도착했다.
‘이주혁…. 그놈이 온 게 분명하다…!’
서랍을 연 조병철은, 얼른 묵직한 쇳덩이를 꺼내 매만졌다.
약실에 실탄 여섯 발을 꽉 채워 넣은 리볼버였다.
‘지독한 놈….’
그의 명민한 두뇌가 저절로 상상을 시작했다.
바로, 자기 자신의 파멸을 말이다.
찰칵.
공이치기를 젖힌 그는 책상 아래로 들어갔다.
평소의 조병철이 봤다면 추하다고 생각할 만한 행위였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은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책상 밑에 몸을 구겨 넣은 채, 조병철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대체 어떻게…!’
그러던 그때.
똑똑똑.
누군가 다시 문을 두드렸다.
-실장님.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조병철은 총을 쥔 손아귀에 힘을 줬다.
조금 전 찾아왔던 유석형인지, 다른 사람인지.
문 너머에 있는 탓에 명확히 구별할 수가 없었다.
-실장님? 안에 계십니까?
똑똑똑.
-유석형입니다. 실장님.
입에서 나온 유석형의 이름.
조병철은 의심을 누그러뜨리지 않은 채로 책상 밑에서 몸을 빼냈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관절이 비명을 질렀으나, 조병철의 신경은 모두 문밖의 인물을 향해있었다.
대답할까, 말까.
똑똑똑.
-실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갈등을 이어가는데, 조금 더 명확해진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야 바깥의 인물이 진짜 유석형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자네인가?”
-엇. 안에 계셨군요.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니. 거기서 말하게.”
-아…. 예. 지금 이 집에 있는 전등이 다 나간 것 같아서….
“그럼 해결하면 되지 않나.”
-예. 옳은 말씀이십니다. 혹시 당황하셨을까 해서… 해결 방법을 찾고 다시 오겠습니다.
뚜벅.
발소리가 멀어졌다.
“후우….”
조병철은 안도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느껴졌다.
창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바람이라니.
“……!”
리볼버를 쥔 조병철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런 그의 뒤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오랜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