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86
#486화
광수대의 강력팀장.
유석형은 전기실로 들어서며 인상을 구겼다.
“아직도 못 고쳤어?”
“아, 예. 이게 합선인 줄 알았는데, 선이 아예 끊겨있습니다.”
“선이?”
“예. 한번 보십쇼.”
“…뭐야. 이거. 진짜로 누가 끊은 건가?”
안의 구리선이 드러나는 정도가 아니라, 펜치 같은 걸로 잘라버린 듯한 모습.
그 광경을 본 유석형이 불안함을 느꼈다.
대체 누가 이걸 끊어버렸단 말인가?
아무리 봐도 짐승 같은 게 한 짓은 아닌 것 같았다.
‘설마…?’
강력팀의 눈에 띄지 않고 누군가 침입했을 가능성.
배제할 순 없었다.
수십 명의 인력이 깔려있던 것도 아니고, 전기실은 중앙에서 꽤 먼 곳에 떨어져 있었으니까.
스윽.
유석형은 굳은 표정으로 경찰용 리볼버를 꺼냈다.
그리고 조병철의 방을 향해 황급히 달려갔다.
조금 전에 확인했을 땐 별일 없었지만, 침입자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이상 방비를 허투루 할 순 없었다.
그렇게 복도로 진입하던 순간.
타앙-!
귓전을 거세게 울리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
유석형은 총을 가슴 앞에 든 채로 이를 악물고 빠르게 다리를 움직였다.
조병철이 총을 쐈다는 건, 무슨 일이 생겨도 단단히 생겼다는 뜻.
“무슨 일이십니까!?”
복도를 달려간 유석형이 문을 벌컥 열었다.
“시, 실장님!”
그러자 충격적인 현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타다닷!
유석형은 처참한 조병철에게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머리에 난 구멍에서 피가 잔뜩 쏟아져 있었다.
반론의 여지 없는 즉사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손에 들린 총. 그리고 앉은 자세로 쓰러진 시신.
누가 봐도 자살이라고 생각할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넘어가기엔 걸리는 점이 많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거라면, 왜 굳이 그들을 불러서 안가를 지키게 했겠는가?
거기다 끊어진 전기실의 배선들까지.
휙!
유석형은 내부에 들어올 만한 구석이 없나 살폈다.
“실장님이 사망했다. 다시 한번 말한다. 실장님이 사망했다. 여길 빠져나가는 사람을 찾아라.”
그와 동시에 무전기로 비상사태를 알렸다.
‘창문!’
창가로 다가가 창틀을 살폈다.
창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드륵-.
총을 들고, 창문을 열어 바깥을 살폈다.
그러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X발….”
다시 조병철에게로 돌아오자, 그의 책상 위에 올려진 봉투를 발견했다.
그에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곱게 접힌 종이에 무언가가 적혀있었다.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국민을 속이고….]사죄부터 시작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내용.
그걸 본 유석형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현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유서의 내용을 보고, 그는 조병철이 절대 자살한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이 인간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리가 없으니까.
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진 못하지만, 조병철 같은 부류는 웬만해선 죽음을 택하지 않는다.
끝에 끝까지 몰린 상황도 아닐뿐더러, 조용한 안가까지 와서 이런 선택을 할 이유가 있나.
‘분명히 누가 왔다. 그런데 왜 아무 소리도 안 들린 거지?’
보통이라면, 총성이 울리기 전 비명이든 뭐든 소란이 있었을 터.
아무 저항도 없이 당했다는 게 의문이었다.
꾸욱.
어찌 됐든 간에, 논란에 중심이었던 사람이 자택에서 사망한 사건이다.
그 현장에 있던 그들도 꽤나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게 분명했다.
유석형은 미간을 구기며 이마를 짚었다.
“아주 X 됐구만….”
* * *
다음 날.
나는 아침부터 로비에 내려와서 TV를 보고 있었다.
‘운 좋게도… 어제는 무사히 돌아왔지.’
거길 지키던 경찰들에게 걸릴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애초에 깊게 침투한 인원이 나밖에 없었으니까.
경찰 인원이 많지 않았다는 것도 한몫했다.
‘아직 신고를 안 한 건가?’
조병철의 소식은 아직 뉴스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총소리를 들었으니 분명히 현장은 봤을 텐데.
신고를 아직 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조사가 늦어지고 있어서 그런지.
아마, 이 사건이 알려지면 파장이 작지 않을 거다.
우리가 준비한 가짜 유서엔, 조병철이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는 내용을 적어뒀으니 말이다.
물론 그곳을 지키던 사람들은 이상함을 느끼겠지.
‘집을 지키라 해놓고, 뜬금없이 본인이 죽어버렸으니까.’
하지만 타살이라는 주장을 하기는 힘들다.
딱히 증거도 없을 거고, 무엇보다 사건을 파헤치려고 하지 않을 터.
그 경호 인력들의 입을 막기도 어렵지 않을 테고.
일이 커지지를 원치 않는 다른 ‘높으신 분’들에 의해, 결국 이 일은 금방 덮이게 될 거다.
[최근 민생당 최철호 의원이 폭로한 판교신도시 비리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된,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병철 씨가 지난밤 사망한 채 발견됐습니다.]뉴스를 계속 보고 있자니, 앵커가 기다리던 소식을 전해왔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로 인해 현재 경찰은 사인을 자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쭉 들어봤는데, 총기를 사용했다는 언급은 딱히 없었다.
그리고 침입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소식도 마찬가지.
정확히 어디까지 조사할진 모르겠지만, 아마 진상이 밝혀질 일은 없을 거다.
스윽.
뉴스를 보는 내 옆에 춘식이가 앉았다.
“대표님.”
“다친 데는 좀 어때요?”
“어유. 괜찮습니다.”
바로 어젯밤, 쳐들어온 김정우에 의해 다리에 칼을 맞았다.
그때 당시엔 피도 많이 흘리고 해서, 급하게 부른 신 닥터에게 치료를 부탁했다.
뒷세계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의사인데, 면허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다.
그래도 실력 하나는 확실했기에, 조폭들의 몰락으로 수입이 줄어든 신 닥터는 거의 우리 전담이 된 상황.
작전 도중 크고 작은 부상을 치료할 수 있던 것도 그 양반 덕분이었다.
“좀 깊게 베이긴 했는데, 큼직한 혈관은 피해 갔답니다.”
“다행이네요.”
“대신, 당분간 뛰지는 말라고….”
“그거야 뭐, 당연하죠.”
내 말에, 춘식이는 주변을 슬쩍 살피고선 조용히 속삭였다.
“그래도 제가 나름 중축을 맡고 있지 않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리 팀원들 사이에서도 춘식이는 꽤 상위권에 속하는 실력자였다.
DS컴퍼니에서 현역으로 뛰던 킬러 출신이니까.
거기다 몸 성히 은퇴했다는 건, 뒷감당을 할 만한 능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실력도 좋고 머리도 잘 굴리는 편이라, 솔직히 고용하는 데 든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죄송하네요. 받은 것만큼은 일해야 하는데….”
“설마 제가 다친 사람까지 굴리겠습니까. 다리 회복할 때까진 좀 쉬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머쓱하게 웃은 춘식이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아차. 대표님도 조금 쉬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다치신 걸로 아는데.”
“스크래치 약간 난 겁니다. 크게 지장은 없어요.”
나는 소매를 걷어 상처를 보여줬다.
팔뚝을 가로지르는 환부에 감아둔 붕대.
이미 어느 정도 아문 탓에 피는 더 이상 배어 나오지 않는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저는 그놈이 안쪽을 그어버려서 걷기가 좀 힘들거든요. 조금만 각도가 돌아갔으면… 어유.”
“여자친구도 없지 않아요?”
“뭐, 그렇긴 하지만요. 사실 자식은 있거든요.”
“…진짜요?”
“예. 이건 비밀인데, 지금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춘식이의 흥미진진한 가정사를 듣던 와중.
[다음 소식입니다. 미국 휴스턴시의 한 행사장에서 유독 가스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당국은 이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였으며, 현장에서 사망한 20대 남성을 용의자로….]뉴스에도 새로운 소식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테러라고?’
불과 5년 전, 미국에선 3,000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낸 911테러가 일어났었다.
한창 테러에 대해 예민한 시기란 뜻이다.
그런데 저 사건을 테러로 규정했다는 건, 사실상 확실한 정황이 있다는 건데.
‘분명 이런 사건은 없었던 것 같단 말이지.’
회귀하기 전, 이때는 한창 술에 절어있다가 슬슬 정신을 차리던 시기다.
그래서 이 사건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좀 알아봐야겠어.’
현재 내가 가진 주식은 대부분 미국 주식.
저 일로 인해 주가가 요동친다면, 나한테까지 영향이 올 수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단순히 재산을 지키기 위한 건 아니다.
확신하진 못하겠지만, 미국에는 나도 아는 어둠의 조직이 있다.
DS컴퍼니.
고위층의 뒤를 닦아주는 일로 세력을 불렸고, 지금은 여러 분야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기업이다.
‘듣기론, 속은 완전히 썩어있다지.’
헨리. 일명 H.
그 미친놈은 수뇌부를 싹 다 밀어버린 뒤, 자기가 직접 회장 자리에 앉았다.
쿠데타 이후로 불안함을 느낀 전문 경영인이나 기술자들이 다수 DS의 회사를 빠져나갔다던데.
혹시 이번 테러에 그놈들이 한발 걸친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들었다.
‘물론 비약이긴 하지만.’
뉴스에 나온 대로, 단순 테러 집단의 준동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상하게 생각할 만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가장 큰 것은, 민지훈 그놈이 가지고 있던 생화학 무기를 직접 봤다는 점.
그때 확인한 건 자그마한 병에 담긴 액체 형태의 물건이었지만, 다른 게 없으리란 보장은 또 없으니까.
생화학 무기는 생물학 무기와 화학 무기를 아우르는 표현이다.
“유독 가스라니… 뜬금없이 이게 무슨 일인지.”
치클론 B, 겨자 가스, 사린 가스 등. 전부 화학 무기에 속하는 것들이다.
현장에서 사망자가 다수 나온 걸 보면, 꽤 강한 물건을 쓴 모양인데.
“…….”
머릿속에서 연결고리가 하나씩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위험한 무기를 개발해 가지고 있던 민지훈.
그리고 바다에 빠진 민지훈을 구해준 헨리.
이어 헨리는 미국의 기업은 DS컴퍼니를 차지했다.
‘정말 테러리스트들이 저지른 짓일까?’
이런 의문까지 들 정도였다.
벌떡.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런저런 추측을 하던 춘식이 의아한 듯 쳐다봤다.
“왜 그러세요?”
“저거, 조사해 봐야겠어요.”
“예? 테러리스트한테는 또 무슨 용건이 있으시길래….”
민지훈, 헨리.
그 두 놈이 이런 짓을 꾸밀 만큼 미친놈들인가?
답은 그렇다.
내가 미국 시민은 아니지만, 민지훈을 놓친 탓에 저런 일이 벌어진 거라면.
‘도의적인 책임은 져야지.’
나는 어정쩡하게 일어나는 춘식을 보며 말했다.
“일단, 선생부터 찾아야겠습니다.”
국내에 있는 위험 요소는 제거했다.
그러니, 미루고 있던 일본행을 다시 계획할 때다.
스가와라가 살해당한 탓에, 그쪽 회장과도 대화해야 하고 말이지.
‘일본에서 그놈을 마무리한다.’
* * *
DS컴퍼니의 최상층.
그곳에 있는 회장의 사무실에서, 수려한 금발의 남자가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덕분에 이번 일은 성공적으로 끝났소.
화면 속 상대의 말에, 헨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넓은 곳에서 실험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만… 생각보다 효과가 좋더군요.”
스무 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십의 부상자가 나온 행사장 가스 살포 사건.
그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헨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본인이 무기를 제공했기에 벌어진 일임에도 말이다.
“다음은 어디에서 하실 겁니까?”
-이제 우리의 존재를 정부 놈들도 알게 됐으니… 선전포고를 해야 하지 않겠소.
“선전포고라면?”
그의 물음에, 화면 속의 남자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우리의 진정한 의지를 보여줄 거요.
헨리는 그를 보며 마주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머릿속에, 자국이 공격받는다는 사실보다 우선되는 게 있었던 탓이다.
막대한 돈.
황금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을 느끼며, 헨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한번 보여주시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