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89
#489화
철컥-.
열쇠를 꽂아 돌리자, 커다란 자물쇠가 열렸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힘을 줘 당겼다.
끼이익-.
쇳소리와 함께 커다란 문이 열렸다.
이곳의 정체는, 우리 SA시큐리티의 지하에 있는 비밀 창고.
일반 창고도 따로 있었지만, 남들에게 보여서 좋을 거 없는 물건들을 보관하는 장소였다.
압수한 마약의 일부, 강탈한 금괴나 현금 등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내가 여길 찾은 목적은 따로 있었다.
‘이거지.’
15평 정도 되는 면적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것들.
바로, 선생의 총기들이었다.
민지훈이 부산의 국제파를 통해 러시아산 무기들을 들여왔고.
그 무기를 이용해 교회의 세뇌된 신자들을 병사로 육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린 신도들을 제압한 뒤, 교회에서 보관하고 있던 이것들을 가져온 거다.
어차피 경찰에 넘겨봤자 증거물로 쓸 건 차고 넘칠 테니까.
‘좋은 곳에 쓰려고 주머니에 챙겼는데… 결국 꺼내는 날이 오는구만.’
나는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지는 걸 느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우리 팀원들을 무장시키면, 그놈들이 아무리 좋은 장비를 가졌다 해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최신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링 위에 올라갈 수준은 충분히 되니까.
찰칵. 찰칵.
총기의 상태도 썩 나쁘진 않았다.
창고에 있던 시기가 길긴 한데, 주기적으로 애들 몇 명이 내려와서 관리한 모양이다.
슬라이드도 부드럽고, 내부 부품도 괜찮네.
이 정도면 충분히 실전에서도 제 역할을 다해줄 거다.
권총과 공기총만으로 그놈들을 상대할 필요는 없어졌다는 소리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배편인데…….’
뒤가 구린 몇몇을 포함해, 상당히 많은 총기를 싣고 일본으로 넘어가야 했다.
정상적인 루트로는 불가능하겠지.
밀항을 해야 하는 상황이나, 그것도 쉽진 않았다.
‘지켜보는 눈이 너무 많아.’
민지훈이 어떻게 금방 넘어간 건진 모르겠는데, 현재 동해안에는 해경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러시아 놈들이 부산으로 들어와 개판을 놓은 후로, 밀항의 단속이 더욱 강화된 거다.
그땐 좋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몰래 나가야 하는 입장이 되니 상당히 난감했다.
다른 일처럼 고세운의 해킹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정보를 조작하는 게 아닌, ‘배’라는 실제 물건이 필요했으니까.
그래도 배를 몰 줄 아는 사람이 있어서, 선장까지는 필요 없다는 게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어쩌지?’
그러한 고민은, 고상미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정말요?”
-응. 그쪽에 아는 선장이 있어. 나 필리핀에서 들어올 때 도와줬거든. 지금도 거기 있을진 모르겠네. 한번 연락해 볼게.
“감사합니다. 고상미 씨.”
-고마울 것까지야. 서로 돕는 거 아니겠어?
그렇게 배편은 임시로 해결.
고상미에게서 확답만 돌아오면, 바로 출발할 수 있게 준비를 마쳐뒀다.
‘그놈만 데리고 오면 진짜 끝이다.’
유현. 일명 레이븐이라고 하던가.
고상미와의 오해로 잠시 적대했었지만, 그래도 실력은 확실한 놈이다.
오해가 풀리고 나선, 자신의 복수를 거들어준 고상미의 복수를 돕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그때였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기에 감방에 처넣긴 했으나, 그놈을 꺼낼 방법은 존재했다.
‘담당하던 사람들에겐 좀 미안하네.’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데려가야 하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인성과 별개로 그놈의 실력은 진짜였다.
러시아 킬러 집단에서도 최상위 실력자였고, 총기와 근접 전투 모두에 능숙했다.
킬러 출신이라 잠입과 암살에도 능했으니, 경호대를 상대할 때 충분히 활약할 만한 사람이었다.
‘지금쯤 시작했으려나.’
나는 고상미에게서 온 연락을 확인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하나둘씩 맞춰지고 있던 퍼즐.
이제 마지막 조각을 가져올 차례였다.
* * *
부우웅-.
레이븐, 유현은 호송 차량 안에서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앞쪽에 앉은 교도관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은퇴한 민정수석을 암살한 사람을 호송하는 일이다.
눈앞에 앉은 차가운 인상의 이 남자가, 언제 돌변해 공격할지 모른다는 불길한 상상.
그 상상이 그들이 마음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스윽.
유현이 시트 뒤로 기대자, 교도관들은 괜스레 움찔했다.
그들이 이 수감자를 호송하는 이유는, 그가 외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심장의 문제라고 들었지만,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심장병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건 아니어도, 외부로 나갈 만큼 상태가 심각한 것 같진 않았다.
그러던 그때, 갑자기 호송 차량이 급격히 쏠렸다.
“윽?!”
“뭐야…?”
의문을 내뱉는 동시에, 거대한 충격이 그들을 덮쳤다.
콰앙-!
옆으로 튕겨 나간 호송 차량이 뒤집힌 채 미끄러졌다.
쉬이이-.
연기를 내뱉는 차량의 문을 열고, 유현이 힘겹게 기어 나왔다.
“큭…….”
순간적으로 몸을 웅크려 충격을 줄이긴 했으나, 벽에 이리저리 부딪힌 탓에 곳곳이 쑤셨다.
그런 그에게 한 사람이 다가갔다.
느슨해진 포승줄을 벗은 유현은 곧바로 경계 태세를 취했다.
“……!”
하지만, 그는 이내 상대의 얼굴을 보고 손을 내렸다.
“현아. 괜찮아?”
“…이게 그 방법이었어?”
트럭을 몰아 호송 차량을 들이받은 사람.
고상미가 유현의 몸 상태를 살폈다.
“어디 부러진 데 없지?”
“그래. 운 좋게도.”
유현의 면회를 간 고상미가 말했었다.
-복수하러 가게 됐어. 너도 데려가기로 했고.
-생각보다 빠르네. 근데 지금 내 상황으론 도와주기 힘들 것 같은데.
-방법이 있으니까 찾아왔지. 너도 10년 동안 여기 있긴 싫잖아?
-…말해봐.
-널 병원으로 옮기는 길에 빼낼 거야. 그러니까 대비하고 있어.
그것 외엔 전달받은 게 없었기에, 유현은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이런 무식한 방식일 줄은 몰랐는데…. 이건 탈옥 아닌가? 잡히면 형량이 더 늘잖아.”
“안 잡히면 되지.”
“이주혁, 그 인간이 날 가만히 놔두겠어? 분명히 또 죗값을 치르라고 할 텐데.”
“너무 걱정하지 마. 이번에 무사히 일 끝나게 도와주면, 일본에서 풀어주겠대.”
일본이라.
연고 없는 나라이긴 하나, 그래도 지명수배가 내려질 한국에 남아 있는 것보단 나으리라.
손해 볼 건 없는 제안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유현이 뒤집힌 차량을 보며 물었다.
“저 사람들은 어떡할 거지?”
“아, 맞다!”
고상미는 황급히 달려가, 의식을 잃은 운전자와 교도관들을 바깥으로 끌고 나왔다.
“휴….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네.”
“…직접 들이박은 사람이 할 말인가.”
트럭을 사용한 고전적인 탈옥.
이주혁이 허락하긴 했지만, 죽거나 심하게 다치는 사람은 없게 하라는 당부가 있었다.
관계없는 사람이 휘말리는 걸 싫어하는 그였기에, 고상미는 최대한 탑승자에게 충격이 가지 않게 박았다.
물론 트럭으로 어딜 치든 안에 탄 사람은 위험하겠지만, 고상미는 약자를 배려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치료받으면 일주일 안에 일어날 정도니까.’
교도관들의 상태를 확인한 고상미가 유현을 향해 말했다.
“일단 빨리 뜨자. 금방 소식이 퍼질 테니까.”
“어.”
불과 몇 달 전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사건의 범인이 탈옥했다.
보통 일이 아닌 만큼, 경찰은 이 일에 더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본격적으로 수색이 시작되기 전, 유현을 데리고 빠르게 한국을 뜰 필요가 있었다.
탁.
망가진 트럭 대신, 두 사람은 근처에 준비해놓은 차에 탑승했다.
추적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위조한 번호판을 달아놓은 것이었다.
부릉-.
고상미는 차의 시동을 걸며 물었다.
“현아. 이번 일이 끝나면… 혹시 어디로 갈 거야?”
“그건 왜.”
“왜긴. 우리도 같이 갈까 해서 그러지.”
“쓸데없는 소리를. 고세운이 얌전히 따라오겠나? 그 부장이라는 인간은 어떻고.”
고상미가 입맛을 다시며 입을 다물었다.
그녀도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더 이상 유현에게 다른 사람의 보호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젠 정말 독립할 때가 된 것이다.
그리 생각한 고상미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뭐, 연락도 안 할 건 아니잖아? 가끔 만나면 되니까.”
“…….”
그 물음에, 류현은 피식 웃었다.
“글쎄.”
“그, 글쎄? 야. 현이 네가 이러면 안 되지……!”
허무한 복수 이후.
유현이 잠자코 감옥에 있던 건, 고상미의 복수를 돕겠다는 약속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 이후의 일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끝나고 얘기하자.”
“어, 응.”
고상미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뭐지……?’
왜인지, 그가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듯한 느낌이 들었다.
* * *
사각. 사각.
인적 드문 모텔 안.
경호대의 전 부대장, 위정천은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이주혁. HID 전역. 추정 2급.] [라세흠. 전 HID 교관. 북파공작원 출신. 1급.] [배상훈. HID 전역. 2급.]SA시큐리티의 이주혁. 그리고 그의 수하들에 관한 정보였다.
수월한 일 처리를 위해 선생이 남겨두고 간 자료들로, 위정천은 그 내용을 자신의 수첩에 옮기는 중이었다.
앞으로 그들을 상대해야 할 테니까.
스윽.
위정천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선생에게서 온 문자.
그 내용은, ‘이주혁의 조직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라’였다.
아마 그가 지시한 것은 요주의 인물 암살 정도였을 터.
그러나, 고작 거기서 그칠 생각은 없었다.
‘타격 정도로는 안 되지.’
선생에게 직접 물어본 결과, 이주혁과 삼합회의 현재 수장은 동맹을 맺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의 숙부를 치라고 제안한 것도 바로 이주혁이었다.
사실 그건 약간의 조작과 과장이 들어간 정보였지만, 분노에 사로잡힌 그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임유나. 풍원한정식 사장. 이주혁의 연인으로 추정.]탁.
수첩에 점을 찍은 위정천이 서늘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주혁은 누가 죽었을 때 가장 고통스러워할까.
동료? 친구? 아마 아닐 것이다.
“…….”
위정천은 임유나라는 여자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식당을 운영하는 여자. 자료에서 확인한 바로는, 이런 쪽의 일은 아마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 여자에게 유감은 없었다. 그저 분풀이일 뿐.
선생의 지시라는 기폭제.
그리고, 그의 안은 분노라는 화약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윽.
위정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겼다.
출발할 준비는 이미 끝내놓은 상황.
바로 일에 착수하면 될 것이다.
모든 복수를 끝내고 나면, 선생에게 받은 보수로 다시 가게를 차릴 계획이었다.
한국은 힘들 테고, 미국이 괜찮으려나.
어렴풋한 생각을 이어나가던 위정천이 멈칫했다.
‘선생은 이주혁이 숙부를 치라고 제안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알아낼 방법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또 하나의 의문점이 있었다.
이주혁이 그의 숙부를 제거해야 할 이유가 있나?
그가 알기론, 숙부는 이주혁의 수하들과 정보를 거래한 사이였다.
정보 제공자와 의뢰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혈육을 잃은 분노로 어지럽혀져 있던 그의 머릿속이 맑아졌다.
‘설마….’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정보가 사실이든 아니든, 이주혁과 삼합회는 파멸해야 한다.
각각 의뢰와 복수라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임유나를 먼저 처리하고, 평정을 잃은 이주혁을 죽인다.’
끼익-.
위정천은 방문을 열고 나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