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94
#494화
우리는 스미요시카이의 회장을 데리고 빈 건물 안쪽으로 향했다.
이놈을 심문해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짝!
뺨을 때리자, 회장이 눈가를 파르르 떨며 눈을 떴다.
“으으….”
고무탄을 머리에 직격당한 탓인지, 아직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콰악.
나한테 협력한 스가와라를 배신자로 치부하고, 미우라도 죽여버렸다.
좋은 감정이 생길래야 생길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이대로 정보도 얻지 않고 여길 뜰 순 없는 노릇이었다.
“회장. 정신이 드나?”
“……원하는 게 뭐지.”
“원하는 거?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왜 다리를 놔준 스가와라를 쳐냈지? 나와의 거래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어쩔 수 없었다.”
“개소리하지 말고. 사실을 얘기해.”
“그럼 살려주기라도 할 건가?”
“입을 다물면, 고민의 여지도 없을 거다.”
회장이 고개를 들었다.
“…선생이 찾아왔다. 난 협박을 당했지.”
“협박이라고? 아니, 선생 그놈이 당신을 찾아갔단 소리야?”
“그래.”
말이 안 되는데.
야쿠자들은 선생을 잡아 죽이려는 놈들이다.
그런데 그 야쿠자의 수장 중 하나를 자기 발로 찾아갔다니?
“사람이 몇 명인데, 그놈이 직접 왔다고 협박에 당했다는 소린가?”
“놈들은 총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로선 대항할 수 없었고.”
“집어치워라. 바깥에 있던 당신 부하들은 억지로 나서는 눈치가 아니었어. 분명히 회장의 명령이라고 했지.”
“…….”
나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선생과… 손을 잡았던 거냐?”
“오해다.”
“오해. 오해라고. 분명히 미우라가 보고했을 거다. 선생의 수하들이 스가와라를 죽였다고. 그런데도 그놈과 협력해?”
“아니라고 했잖나.”
“가족 같은 사람을 죽였는데도 협박에 당해줬다고? 어떻게든 맞서 싸우려는 게 아니라?”
큰 실망감이 느껴졌다.
야쿠자라는 정체성과는 별개로, 이들 간의 신뢰는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 조직의 수장이라는 자가 이렇게 졸렬한 인간일 줄이야.
“마지막 질문이다. 선생은 지금 어디에 있지?”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정말 모른다.”
스윽.
나는 옆에 떨어진 칼을 집어 들고, 그대로 놈의 허벅지에 찔러넣었다.
푸욱!
“크아악…!”
“한 번만 더 거짓말하면, 다음은 어딜 쑤실지 장담할 수 없다.”
“끄윽…!”
회장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결국 놈은 사실대로 실토했다.
“선생은… 따로 볼일이 있다며 떠났다. 그의 행방은 나도 정말 몰라…!”
“모른다고.”
“그래!”
“사람을 풀어서 찾을 순 없나?”
“바깥에 있는 녀석들이 멀쩡하다면 도와주지.”
“저놈들이 다는 아닐 텐데?”
회장은 분노가 새어 나오는지 이를 부득 갈았다.
“우린 여기서 대책을 회의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던 이들은 스미요시카이의 중진들이었고.”
한마디로, 조직의 수뇌부가 모여있을 때 친 덕에 스미요시카이가 망해버렸다는 소리였다.
나는 회장의 눈빛에 담긴 적대감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이놈을 이용해 먹으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뒤통수를 칠 궁리를 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구만.”
쑤욱!
내가 다리에 꽂힌 칼을 뽑아버리자, 회장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악!”
출혈을 억제하고 있던 칼날이 빠져나왔다.
줄줄.
“크으으…! 구급… 구급차를 불러다오…!”
“당신이 불러. 아니다. 어차피 곧 경찰이 올 텐데, 그 사람들이 알아서 병원에 데려다주지 않겠어?”
“이 개자식이…!”
회장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죽든 살든, 이제 내 알 바는 아니었다.
“가시죠.”
“저대로 두고?”
내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부장님이 조용히 물었다.
“우리 얼굴 봤잖아. 이름도 알고. 경찰한테 나발 불면 곤란하지 않겠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툭.
“머리가 나갔거든요.”
근접한 상황에서 머리에 고무탄을 정통으로 맞았다.
각성 비슷한 상태에서 멀쩡히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아마 뇌진탕 또는 그 이상의 부상일 거다.
얼굴을 맞은 적이 없는데도,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으니까.
거기다 허벅지의 큰 혈관이 끊겨 지금도 심한 출혈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멀쩡히 살아남긴 힘들 겁니다. 설령 목숨을 건진다 하더라도, 우리를 신고하기 전에 감옥에 들어가겠죠.”
“그렇겠네. 여기가 개판이 됐으니….”
총알이 오간 것은 물론, 죽은 사람도 몇 있겠지.
아마 다시 야쿠자 생활을 하긴 힘들 게 분명했다.
어떻게든 복귀해도 절대로 보스의 위세를 누리진 못할 거고.
“완전히 끝난 겁니다. 저놈은.”
원래는 손을 잡을 상대였으나, 결국 이렇게 될 줄이야.
‘서클’에 닿을 수단이었는데 이렇게 상황이 꼬여버리고 말았다.
‘뒷일보단, 일단 민지훈을 잡는 게 우선이다.’
지난번에 삼합회와 싸우면서, 발본색원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다.
한 조직을 뿌리 뽑기도 어려울뿐더러, 이미 갈라진 땅에는 금세 새로운 놈들이 뿌리내린다.
그래서 결론을 내린 거다. 민지훈을 우선으로 제거한 뒤 상황을 지켜보기로.
다만, 문제는 지금 그놈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점인데.
끼익-.
바깥으로 나오자, 팀원들이 엉망이 된 꼴로 우리를 맞이했다.
얼굴에 피가 튄 마종석이 슬쩍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됐나?”
“그놈도 위치는 모른단다.”
“큰일 났군.”
마종석의 말대로, 썩 달가운 상황은 아니다.
처음에 상정한 일본 체류 기간은, 대략 일주일.
그 정도면 사이토 회장의 도움을 받아 민지훈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우라가 연락했을 때, 분명히 선생의 대략적인 행방을 알고 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알고 보니 회장은 이미 놈과 손잡은 상황이었고, 선생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단다.
‘최악의 상황이 겹치고 있다.’
모든 게 잘 풀리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손해였다.
제대로 된 루트로 넘어온 것도 아니었을뿐더러, 무기까지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일이 조금 꼬이네. 그놈이 작정하고 숨으면 찾기 힘들잖아.”
“예. 그렇죠. 야쿠자들을 이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민지훈을 같이 찾아줄 회장은 당했고, 일본을 잘 아는 미우라는 죽고 말았다.
자칫하면 일본에 고립된 채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도 있었다.
“방법이 없네요. 플랜 B로 갑시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한 가지 방향을 더 고려해두긴 했다.
“마종석. 또 연락 온 건 없지?”
“그래.”
바로, 이중 스파이인 마종석을 이용하는 거였다.
플랜 A가 야쿠자와 함께 선생을 쫓는 정석적인 계획이었다면.
플랜 B는 마종석을 통해 정보를 교란한다.
물론 대놓고 어디론가 불러낼 순 없겠지. 그놈도 바보가 아니니까.
하지만 동선을 제한하고, 정보를 얻어낼 순 있었다.
우리가 어딜 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민지훈은 아마 그리로 사람을 보낼 거다.
‘자기를 잡으러 왔으니, 당연히 조심하려고 하겠지.’
놈은 현재 많은 걸 잃었다.
아니, 잃었다기보단 버리고 몸을 피했다고 볼 수 있다.
자금을 얻을 수단은 있겠지만, 물리적으로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인원의 한계는 존재한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시선을 모으는 법이니까.
그러니 우리와 접촉을 피하려고 할 터.
“정보를 흘려. 나랑 같이 일본으로 넘어가게 됐다고.”
“그래도 되나? 내 말을 의심할 텐데.”
“상관없어. 어차피 의심을 안 사는 방법은 없다.”
스파이 노릇을 하라고 제안은 했지만, 민지훈도 마종석의 정보를 완전히 신뢰하진 않을 게 분명하다.
“다들 이 근처에 보는 눈 없는 건 확인했죠?”
“너희 들어갔을 때 이 근처 싹 다 돌아보긴 했는데, 확실한 건 아니다.”
거짓 정보를 흘린다 하더라도, 만약 이 상황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면 의미가 없다.
이미 스미요시카이가 우리에게 털렸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테니까.
“일단 그놈한테 보고하고, 이후 일은 조금 지켜본 뒤에 진행합시다.”
민지훈이 눈치채고 있다면 또 다른 계획으로 넘어가야겠지.
‘어지간하면 이 방법이 먹혀야 할 텐데.’
야쿠자들과 협력하기로 했다니… 아마 지금쯤 바쁠 거다.
그러니, 이 근방에 사람을 심어놓지 않았기를 바란다.
나는 마종석의 핸드폰을 건네받고 문자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주혁 일행이 오늘 일본으로 넘어갈 겁니다. 인원은 저를 포함한 이주혁, 라세흠….]* * *
그 시각. 니가타현 북부의 한 항구.
그곳에서 두 무리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약속한 물량이니, 상태는 한번 확인해 보쇼.”
이국적인 생김새의 남성이 박스를 향해 고개를 까딱하자, 그 말을 들은 이가 옆을 돌아봤다.
그 옆에 서 있던 검은 복장의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남자는 칼을 꺼내 흰색의 가루를 감싼 랩을 살짝 찢은 뒤, 손가락으로 가루를 찍어 혀에 가져다 댔다.
“…꽤 괜찮은 편입니다.”
“그래요? 장난질을 치진 않은 모양이네요.”
물건을 확인해 본 경호대원의 말에, 그를 지켜보던 민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러시아어로 거래 상대에게 말했다.
“물건은 확인했습니다. 약속한 돈입니다.”
민지훈이 손짓하니, 다른 경호대원이 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가방을 박스 옆에 내려뒀다.
“총 만 달러. 액수는 정확하겠지?”
“의심스럽다면 확인해 봐도 상관없습니다.”
“아니, 됐수다. 돈 가지고 수작 부릴 사람은 아니니. 챙겨라.”
러시아인의 수하들이 와 돈가방을 가지고 갔다.
그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던 그가 물었다.
“그나저나, 당신이 왜 일본에서 이것들을 주문한 거요? 여기서 다시 사업을 시작할 생각인 건가?”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요.”
“뭐, 돈은 받았으니… 내가 신경 쓸 이유는 없겠지. 그럼 수고하쇼.”
러시아인은 미련 없이 돌아섰다.
“오래 있어서 좋을 건 없겠죠. 저희도 갑시다.”
“예.”
민지훈은 경호대원들과 함께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헨리는 일단 마무리했다.’
DS컴퍼니의 수장, 헨리.
더 이상 컨트롤할 수 없다는 생각에, 육진모에게 처리를 맡겼다.
그리고 몇 시간 전, 일이 마무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숨 돌렸군.’
만약 그가 계속해서 테러범들을 지원했다면, 그들의 테러 수위는 더욱 높아졌을 터.
그런 헨리를 그대로 둘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를 제거하고 무기를 회수하기로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이건 미국의 사회 분위기를 바꿀 만한 문제였고, 그건 민지훈이 알고 있는 미래를 충분히 뒤틀 수 있었으니까.
‘한국에서 소식이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인데….’
한국에 남은 위정천. 그가 바로 조커였다.
혹시 몰라 일본으로 데려오지 않았는데, 마침 마종석이 이주혁 일행이 자리를 비웠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래서 이주혁의 사람들을 치라는 지시를 내린 상황.
하지만 위정천에게서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고 있었다.
‘설마 당한 건가?’
은퇴했다지만, 경호대의 부대장을 맡았던 만큼 실력에는 손색이 없었다.
그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무기들도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도 실패했다는 건, 무언가 큰 변수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마종석이 그곳의 현재 상황을 전달해 줘야 할 텐데… 아직 소식이 없다.’
아직 양쪽 사이에서 간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일이 급하게 돌아가서 여유가 없는 건지.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우웅-.
“양반은 못 되나.”
“예?”
“아닙니다.”
이런 그의 생각을 알아챈 걸까.
마종석이 이주혁의 정보를 문자로 보내왔다.
[이주혁 일행이 오늘 일본으로 넘어갈 겁니다. 인원은 저를 포함한 이주혁, 라세흠….]“……!”
내용을 확인한 민지훈이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사람을 끌고 이리로 올 가능성은 크게 점치고 있지 않았던 탓이었다.
“다시 돌아가야겠네요.”
아마 이주혁은 사이토 회장과 만나려 할 것이다.
그동안 스가와라와 교류하기도 했고, 일본에 방문한 기록도 있으니까.
‘이참에 처리하면 되겠군.’
민지훈은 야쿠자들과 함께 이주혁 일당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들이 이미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당했다는 것을 모른 채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