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98
#498화
저벅.
나와 배상훈, 백기준은 조용한 건물의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경호대원의 심문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문의 스페셜리스트인 백기준이 같이 있기도 했지만, 경호대도 마냥 민지훈에게 충성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놈이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면 조금 곤란해졌을 거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경호대원은 선생에게서 마음이 조금 뜬 느낌이었다.
현재 상황이 힘든 건지, 받는 대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끼익-.
나는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배상훈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한 층, 또 한 층. 우리는 최대한 조용하게 훑으며 올라가는 중이었다.
심문한 경호대원은 5층이라고 했지만, 확신할 순 없었다.
마지막으로 엿을 먹이기 위해 한 거짓말이었을지도 모르니까.
저벅.
그렇게 천천히 건물을 수색하던 우리는 결국 5층에 도착했다.
그놈의 말대로라면, 민지훈은 이곳에 있다.
복도는 일자 형태의 복도였다.
스윽-.
나는 권총을 몸에 딱 붙인 채로 걸음을 옮겼다.
한참 떨어진 공장과 달리, 여기는 근처에 주민이 사는 주거지였다.
섣불리 총을 쐈다간,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웬만하면 총 없이 해결한다.’
척.
우리는 복도에 있는 방에 하나씩 귀를 대가며 움직였다.
평범한 가정집의 소리나 일하는 소리가 들리는 곳은 지나쳤다.
그러다 보니, 복도 맨 끝의 마지막 방문 앞까지 도달했다.
까딱.
내가 신호를 보내자, 백기준이 문손잡이를 천천히 돌렸다.
찰칵.
당연히 잠겨 있을 줄 알았는데, 문이 열리는 게 아닌가.
‘뭐지?’
나는 두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단숨에 들어간다.’
눈을 마주친 백기준은, 권총을 겨누며 문을 홱 열었다.
그와 동시에, 총알이 빗발쳤다.
투두두둥-!
백기준이 뒤로 튕겨 나가며 바닥을 굴렀다.
쿠당탕!
“백기준!”
쓰러진 녀석이 총에 맞지 않게 문 옆으로 끌어냈다.
“괜찮냐?”
“끄으…….”
백기준은 바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일부러 정보를 흘린 건가……!’
인상을 구기며 백기준의 상태를 살피는데, 문 안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 굳이 인원을 따로 배치했다는 것은,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이 안에 진짜 민지훈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여기서 잡는다……!’
* * *
피잉-!
총알이 귓전을 스치며 이명을 만들어 낸다.
라세흠은 몸을 낮춘 채 빠르게 움직였다.
파바박!
공장 바닥에 총알이 부딪치며 파편이 튄다.
숨을 참은 라세흠이 전방에 보이는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
전쟁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전투에, 그는 예전의 감각이 돌아오고 있는 걸 느꼈다.
펄쩍!
라세흠은 컨베이어 벨트를 뛰어넘었다.
그 모습을 본 경호대원의 눈이 커졌다.
“흡!”
“……!”
팍!
경호대원의 총구가 라세흠의 발차기를 맞고 돌아갔다.
그에 대원은 침착하게 그에게 파고들며 대응했다.
척.
총구를 손으로 붙잡고, 부무장을 꺼내기 위해 반대 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그걸 두고 볼 상대가 아니었다.
라세흠은 발로 적의 오금을 걷어찬 뒤, 휘청이는 그의 얼굴로 개머리판을 찔러넣었다.
텁!
기함한 경호대원이 개머리판을 손으로 붙잡았다.
그에 라세흠은 총을 잡아당겨 빼내고선, 힘을 줘 상대를 밀어 찼다.
퍼억-!
그리고 비틀대는 상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
한편, 다른 이들도 치열하게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합!”
고상미가 머리를 노리고 다리를 내리찍었다.
옆으로 피한 대원은 그녀에게 칼을 휘둘렀다.
소총은 탄창이 분리되었고, 권총은 무장 해제당한 탓에 강제로 근접전에 돌입한 것이었다.
고상미는 상대에게 장전할 시간을 주지 않고 밀어붙였다.
경호대원, 이재화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이 건방진 년이……!”
생물학적으로, 남녀 간에는 좁힐 수 없는 완력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나 이재화는 그런 사상이 더욱 강했기에, 자신에게 덤벼드는 고상미를 단숨에 죽일 생각으로 스텝을 밟았다.
‘급소 두 군데로 보내버린다!’
무기 다루는 기교가 꽤 괜찮긴 하지만, 계속해서 실전을 겪어 온 자신에겐 안 된다.
그렇게 철석같이 믿고 있던 이재화는, 이어지는 고상미의 움직임에 눈을 부릅떴다.
고상미는 상체를 땅에 닿을 듯이 숙이며, 유연한 고관절을 이용해 한 바퀴 돌았다.
“X발!”
변칙적인 각도로 머리를 노리는 뒤꿈치에, 이재화는 기겁하며 팔을 들어 막았다.
하지만, 고상미의 노림수는 따로 있었다.
텁.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낚아챈 고상미가 이재화를 다리를 조준했다.
타앙!
탄환이 정강이뼈를 부수고 들어갔다.
“크악……!”
이재화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온 쇳덩어리에 의해 살이 터져나간 것이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이런 부상은 여러 번 겪어봤다.
이를 악물고 참은 이재화가 조끼에 달린 탄창을 뽑았다.
그리고 얼굴 쪽을 총으로 가리며 탄창을 꽂았다.
탕! 철컥!
그 사이, 이재화의 남은 다리에도 총알이 박혀 들었다.
“끅……!”
이재화는 앞으로 엎어지며 방아쇠를 당겼다.
투타타타-!
그러자 고상미는 황급히 엄폐물 뒤로 몸을 피했다.
“X발……. X발년이……!”
지익-.
팔과 몸통으로 바닥을 밀며 움직이던 이재화의 머리가 앞으로 홱 젖혀졌다.
퍽!
한 명을 더 사살한 유현은, 옆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슬라이딩으로 피했다.
철컥.
유현이 남은 탄약을 확인했다.
그는 킬러로 살며 쌓은 암살 경험을 살려, 시선의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다니며 이주혁의 팀원들을 조용히 서포트하고 있었다.
욱신.
유현은 옆구리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턱 근육을 꿈틀했다.
두 달 전, 리신페이에게 복수하는 과정에서 총을 맞은 자리였다.
아물긴 했어도, 초기에 제대로 처치를 하지 못한 탓에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것이었다.
탕-! 타다당!
슬쩍 고개를 내민 유현은 전황을 살폈다.
백중세였다. 양측 다 부상자가 점점 늘어나고는 있었지만, 아군의 사망자는 아직 나오지 않은 듯했다.
“야! 까마귀!”
그런 유현을 라세흠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불렀다.
참고로 까마귀는, 레이븐이라는 코드네임을 듣고 라세흠이 멋대로 붙인 별명이었다.
“2층을 뚫어야 돼!”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공장의 2층 구조물.
이 위에서 사격하는 적들이 꽤 있었다.
그들 때문에 동선이 너무 많이 제한되고 있었다.
제대로 싸울 수가 없을 지경이니, 2층의 인원을 빨리 처리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공장에 갇혀 말라죽게 될 터.
“저기로 올라가야 하는데… 무작정 가기엔 너무 위험해.”
라세흠이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위로 향하는 계단이 두 개이긴 하나, 당연히 양쪽에서 계단을 경계하고 있을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유현이 입을 열었다.
“생각이 있다.”
“뭔데?”
“내가 시선을 끌겠다.”
“미끼가 되겠단 소리냐?”
끄덕.
“현재 아군은 몸을 숨기며 소극적으로 싸우고 있다. 적이 화망火網을 구축했기 때문이겠지.”
“그래. 섣불리 움직였다간 벌집이 될 거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면 시선을 돌릴 수 있다.”
요컨대, 전장에 혼란을 가져오겠다는 소리였다.
“물론 나 혼자는 불가능하다.”
“……이해했다. 타이밍에 맞춰서 팀원들의 엄호를 지시하지.”
엄폐한 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고상미가 소리쳤다.
“나도 같이 갈게!”
라세흠의 감정은 우려를 표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두 사람이 시선을 끄는 사이, 내가 2층으로 침투한다.”
“할 수 있겠나?”
“못 할 게 뭐 있어?”
뚜둑.
라세흠이 관절을 돌렸다.
계단으로 올라갈 생각은 아니었다.
자세히 보면, 공장 내부에 커다란 지게차가 하나 있었다.
거길 밟고 뛰어오른다면, 2층 구조물의 난간을 잡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저 정도면 충분히 할 만하다.’
물론 실패하면 벌집이 되겠지만, 그건 나머지 팀원들이 알아서 커버해 줄 것이다.
그리 생각한 라세흠과 눈을 마주친 유현이 신호를 보냈다.
그와 동시에, 라세흠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2층, 까마귀 엄호해!”
타앗-!
유현이 엄폐물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그러자 고상미도 반대쪽으로 달렸다.
타타타-!
엄폐물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는 그들에게 총알이 쏟아졌다.
그에 맞춰, 팀원들은 계속 성가시던 2층의 경호대원들을 노렸다.
라세흠은 눈만 빼꼼 내밀고, 적의 시선이 두 사람과 팀원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걸 확인했다.
후욱!
마치 귀신 같은 움직임으로, 라세흠은 지게차 쪽을 향해 달려갔다.
순간적으로 놓친 틈.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라세흠은 지게차를 밟으며 뛰어올랐다.
파앗! 덥석!
구조물이 생각보다 높아, 난간이 아닌 바닥이 손에 잡혔다.
“흡!”
그대로 몸을 튕기며 위로 올라가자, 뒤늦게 눈치챈 적이 돌아보는 게 눈에 들어왔다.
휘릭!
그에 난간을 넘던 다리를 그의 목에 휘감은 뒤, 몸을 홱 비틀었다.
“크윽……!”
쿠당탕!
상대를 바닥에 눕히고선, 들고 있는 총의 탄창을 빼고 안전장치를 걸었다.
“이 개…… 컥!”
권총을 쥔 손으로 얻어맞은 경호대원의 코가 부러졌다.
라세흠은 그를 들어 올려 방패로 삼았다.
“……!”
그 모습을 본 대원들이
아무리 경험이 풍부하더라도, 동료를 망설임 없이 쏘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시간을 들여 조준 사격을 할 수도 없었다.
캉-!
아래쪽에서 총알이 계속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저놈은……!’
라세흠은 저 앞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경호대를 이끄는 수장, 육진모였다.
섬뜩.
목에 칼이 들어온 듯한 느낌에, 달려가던 라세흠은 옆에 있던 나무 상자의 뚜껑을 낚아챘다.
그리고 몸을 낮추며 육진모 쪽으로 던졌다.
육진모는 옆으로 이동하며 뚜껑을 피했다.
콰작-!
“!”
그러던 그의 시야를 가득 채우며, 부하의 몸뚱이가 쏜살같이 날아왔다.
터억!
어깨로 그를 받아넘긴 육진모는 얼굴로 날아오는 발차기를 총으로 막았다.
칵-!
충격과 함께 뒤로 넘어가는 양팔.
육진모는 발차기를 날린 라세흠의 손에 들려있는 권총을 보고선, 발을 옆으로 쭉 빼며 상대의 등 뒤로 이동했다.
그리고 총을 겨누려 했지만, 라세흠의 뒤꿈치가 총구를 쳐서 아래로 돌려버렸다.
육진모의 반응은 빨랐다.
소총을 들어 올리는 동안, 상대는 자신을 쏠 터.
그는 오히려 총에서 손을 떼고, 라세흠의 총을 붙잡았다.
퉁! 퉁!
라세흠은 상대의 완력에 깜짝 놀랐다.
‘이 새끼……!’
텁.
반대 손으로 칼을 뽑은 라세흠이 상대의 갈비뼈 사이를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하지만 육진모는 칼을 든 손목도 붙잡은 뒤, 라세흠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퍽!
눈가를 움찔한 라세흠은, 땅을 박차며 그를 밀어붙였다.
“흐읍!”
“……!”
육진모는 붙잡은 총의 버튼을 누른 뒤, 손을 옆으로 떨쳤다.
그러자 분리된 탄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부웅!
총을 버린 라세흠이 주먹을 날렸다.
육진모는 방탄모를 쓴 머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빠악-!
“큭?!”
라세흠이 움찔했다.
지잉-.
당황한 것은 육진모도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제대로 된 주먹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울리는 충격에 미간을 좁혔다.
라세흠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나이프를 휘둘렀다.
“훕!”
육진모가 칼을 빼 들며 대응했다.
카앙!
칼날이 부딪히며 소음을 냈다.
카드득!
라세흠이 밀어붙이자, 라세흠은 들고 있던 칼을 놓고 반대 손으로 낚아챘다.
그리고 상대의 복부를 향해 찔렀다.
라세흠은 몸을 살짝 띄우며 회전했다.
칼날이 라세흠의 조끼를 스치고, 그의 뒤돌려차기가 육진모를 강타했다.
퍼억-! 쿵!
뒤로 밀려난 육진모가 벽에 등을 부딪혔다.
“큽……!”
제대로 자세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당황스러울 정도의 위력이라니.
곁눈질로 살펴보니, 다른 대원들도 교전 중이었다.
‘일대일로 꺾어야겠군.’
육진모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라세흠을 향해 마주 돌진했다.
상대의 입꼬리는 왜인지 올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