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500
#500화
“총 내려. 머리에 구멍 나는 거 보기 싫으면.”
민지훈이 차갑게 경고했다.
-쏴. 아니, 쏘지 마. X발. 쏴!
붙잡힌 배상훈이 입 모양으로 의사를 전했지만, 저 말대로 신경 쓰지 않고 쏴버릴 순 없었다.
만약 잘못된다면 배상훈의 목숨이 날아갈 테니까.
스윽.
턱에 힘을 준 채 총을 천천히 내렸다.
민지훈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옆에 서 있던 백기준에게도 고개를 까딱했다.
“안 내리나?”
“X발….”
백기준도 결국 바닥으로 총구를 향했다.
그에, 민지훈이 좌우로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저쪽에 합류하는 게 좋았을 텐데. 지금쯤 공장에 있는 인원은 전부 당했을 거다.”
“너희 경호대가 당했겠지. 우리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거 아닌가?”
“이쪽이 할 말이다만.”
솔직히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나는 팀원들을 믿는다.
민지훈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와 백기준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우리가 들어온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와 백기준이 슬쩍 따라가자, 민지훈이 한 번 더 말했다.
“경고한다.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걸 들은 배상훈이 식은땀을 흘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지랄. 네가 쏠 수 있을 것 같냐?”
“뭐?”
“넌 네 목숨이 제일 중요하지? 날 쏘면 넌 바로 벌집이 될 텐데, 정말 내 머리통을 날릴 수 있겠어?”
“…….”
민지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민지훈은 어지간한 사람보다 훨씬 더 강한 신념을 가진 놈이다.
그런 인간이 인질과 함께 죽는 걸 선택한다?
‘말도 안 되지. 저놈이라면 절대 배상훈을 쏘지 못해.’
하지만 너무 자극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기에, 우리는 섣불리 총을 들지 않고 있었다.
뻐끔.
그때, 붙잡힌 배상훈이 몰래 입을 열었다.
뭐라 말을 하는데, 정확히 알아듣긴 힘들었다.
“이주혁. 이번엔 날 죽이러 온 건가?”
그래서, 우선은 민지훈의 말에 대꾸했다.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이유가 뭐지? 정말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냐?”
“그래.”
“후우…. 약속하지. 이대로 돌아간다면, 앞으로 절대 널 건드리지 않겠다.”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눈매를 좁힌 나는 놈과 눈을 마주치며 쏘아붙였다.
“난 널 절대 안 믿어. 언제라도 뒤통수를 칠 놈이지.”
“그래? 그럼 끈을 벗고 가진 무기를 전부 바닥에 내려놔.”
민지훈은 약간 초조한 듯 보였다.
뻐끔뻐끔.
배상훈을 곁눈질로 보다 보니, 대충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것 같았다.
스으-.
배상훈이 허리춤의 칼집에서 나이프를 몰래 뽑고 있었다.
그걸 본 나와 백기준은, 머리 위로 총끈을 빼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숙였다.
긴장이 감도는 정적 속, 배상훈이 벌컥 소리쳤다.
“지금!”
배상훈이 고개를 틀고, 우리는 총을 들어 올렸다.
이내, 동시에 총성이 터져 나왔다.
탕-!
민지훈과 배상훈.
두 사람이 동시에 피를 뿜으며 쏟아졌다.
“큭…!”
배상훈이 뒤통수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나는 백기준이 녀석을 챙기는 걸 보고, 쓰러진 민지훈을 향해 다가갔다.
“…….”
민지훈의 상태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순간적인 집중력 덕인지, 내 총알이 민지훈의 한쪽 눈에 적중한 상태였다.
“그….”
하나만 남은 민지훈의 눈동자가 나를 정확히 쳐다봤다.
주륵-.
“주….”
툭.
뭐라 말하려던 민지훈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죽었나?”
끈질기게 살아남아 음모를 꾸미던 놈이라기엔, 꽤나 허무한 최후였다.
아니,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지금도 경호대가 우리 팀원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을 테니까.
“빨리 공장으로 가자. 배상훈 상태는 어때?”
배상훈의 뒤통수를 살피던 백기준이 대꾸했다.
“가죽이 찢어지긴 했는데, 머리통은 멀쩡하다.”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X발. 머리통에 빵꾸 날 뻔했네.”
“붕대 있지? 피 많이 나니까 빨리 감아라.”
“어. 더럽게 따갑네….”
배상훈은 백기준의 도움을 받아서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았다.
“바로 공장으로 간다.”
팀원들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의 지원이 늦으면 늦을수록 그쪽이 위험해질 테니, 최대한 빠르게 이동해야 했다.
“가자.”
타닷-!
대강 처치를 마친 뒤, 우리는 곧바로 공장으로 달려갔다.
거실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민지훈의 몸뚱이를 스쳐 지나가자니, 어쩐지 기분이 묘해졌다.
마치 앓던 이가 빠진 듯, 가슴 한구석이 시원한 느낌이었다.
‘지긋지긋한 새끼.’
길었던 악연의 끝이었다.
* * *
우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우라가 목숨을 잃긴 했지만, 나머지는 모두 무사히 복귀헸다.
총격전이 일어난 장소가 외진 곳의 공장이기도 하고, 일을 빨리 끝낸 덕에 일본 경찰에게 걸리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파편이 많이 박히긴 했는데, 상처가 깊진 않았소. 생명에 지장은 없을 거요.”
신 닥터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로운이와 황성빈. 비록 기간을 짧지만, 나와 함께한 이들이다.
거기다 유나 씨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했다.
“정말 다행이네요.”
신 닥터의 의료 밴에 함께 와 있던 유나 씨가 가슴을 쓸었다.
그곳에서 참혹한 모습을 직접 봤으니, 충격이 상당했을 거다.
참고로, 풍원한정식을 습격했던 베이징 호프집 사장은 현장에서 죽었다.
춘식이 말하길, 생포해둘 여유가 없었단다.
물론 나도 유나 씨를 죽이려 한 그놈을 멀쩡히 두진 않았을 테니까,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
황성빈 여동생의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졌다.
또 오빠를 다치게 한 게 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야. 왜 대표님을 그렇게 쳐다봐?”
황성빈이 그런 동생을 나무랐다.
“…저 사람 때문에 다친 거잖아.”
“에이. 무슨 소리야. 대표님이 날 이렇게 만든 것도 아닌데. 안 그러냐, 로운아?”
“아, 네. 그렇죠.”
두 사람은, 다행히도 우리가 돌아오기 전에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
“오빠는 누구 편이야?”
“당연히…….”
황성빈이 나를 힐끔 쳐다봤다.
동생의 학비, 생활비, 월급.
모든 걸 지원해주는 게 나다 보니,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린 간다. 몸 잘 추스르고.”
“아, 예. 대표님.”
“조심히 가세요. 형.”
나와 유나 씨는 신 닥터의 밴을 나섰다.
“유나 씨는 다친 데 없죠?”
“네. 전 괜찮은데… 저분들이 걱정되네요.”
유나 씨는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저 두 사람이 다친 데 본인 탓이 어느 정도 있다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시간이 지나고, 둘이 완전히 회복하면 조금 나아지겠지.
“가게는 언제 다시 연다고 했죠?”
“천장, 벽, 바닥 할 거 없이 부서진 부분이 많아서… 아마 두 달 정도는 공사해야 할 것 같아요.”
“으음. 그래요?”
또 휴업이라니.
자꾸 우리 일에 엮여서 장사를 제대로 못 하는 게 미안했다.
그래도, 이제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거다.
선생 일당은 끝났고, 국내의 조폭 대부분은 몰락했다.
남은 잔당들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서울광목파 선에서 정리할 수 있었다.
정보를 들어보니, 삼합회도 정부의 철퇴를 맞고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라고 한다.
러시아 킬러들과 야쿠자도 마찬가지.
‘한국 안에선 찍소리도 못하게 됐지.’
해외에서 들어온 범죄 조직들이 사고를 꽤 많이 친 것도 있었고, 사회 분위기가 흉흉한지라 자연스럽게 단속도 강화되었다.
우리 같은 선량한 시민으로선 좋은 현상이었다.
그 말인즉슨, 이제 어지간하면 누군가의 위협을 받을 일은 없다는 뜻이었다.
‘조만간 SA시큐리티도 해체해야겠네.’
놔두고 있던 이유는, 무력을 쓰는 이들을 합법적으로 모아둘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적을 처리한 지금, SA시큐리티를 더 유지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이건 나중에 처리하면 돼.’
한국으로 돌아온 팀원들은 각자 부상을 치료했다.
칼에 베인 사람도, 총을 맞은 사람도 있었으니까.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건 정말 행운이었다.
‘다들 치료가 끝나는 대로 가족을 보러 갔지.’
부장님은 부모님의 가게로 갔고, 후배 녀석들을 포함한 나머지 팀원들도 가족들을 만나러 잠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상미는 원래 아지트로 복귀했으며, 춘식이네 애들은 필리핀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 태국에 자리를 잡는다며 떠났다.
마종석은 받은 돈과 함께 한국을 떴고, 유현 그놈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고상미한테는 행선지를 말한 모양인데, 딱히 궁금하진 않았기에 물어보진 않았다.
더 이상 킬러 일도 하지 않을 테니, 어디 조용한 곳에서 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 다 끝난 건가요?”
척.
유나 씨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는… 걱정할 일 없을 거예요.”
내 대답을 들은 유나 씨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잘됐네요. 정말….”
다가온 유나 씨가 내 품에 안겨왔다.
“오늘부터는, 항상 곁에 있을게요.”
유나 씨가 고개를 들며 눈부신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미소를 보고 마주 웃었다.
길고 길었던 고생 끝에.
우리에게 남은 건, 행복한 미래뿐이었다.
* * *
“준비는 끝났습니까?”
“네.”
JS투자증권의 대표이사, 우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2008년 9월 13일.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을 신청하기 바로 전날이다.
“그나저나, 이 사태를 어떻게 2년 전부터 예견하고 계셨던 겁니까?”
“예상한 다른 사람들도 꽤 있잖습니까. 그리고 재성 씨도 짐작하고 있었잖아요? 그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건.”
“대표님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 사람들은 전문가였죠.
피식 웃은 나는 우재성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대표님이라고 부를 겁니까? 대표 그만둔 지가 언젠데.”
SA시큐리티는 그날 이후로 문을 닫았다.
경호업체를 차린 이유는, 강남파에게 대항할 팀원들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큰일은 다 끝났으니, 굳이 더 회사를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 내 신분은 개인 투자자. 사실상 백수에 가까웠다.
이미 미래를 알고 있으니, 주식장 공부에 열 올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긴장되네요. 미국의 경제가 무너진다니……. 대공황 이후에 이 정도 규모는 처음이네요.”
“사람들에겐 힘든 시간이 될 겁니다.”
“우린 아니겠지만요.”
냉정한 듯한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
앞으로 벌어진 일로, 미리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은 큰 이득을 취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거… 자산이 너무 많아지는 거 아닌가 몰라.’
지금 가지고 있는 주식만 백억에 가까웠다.
그리고 트위터, 페이스북 등.
미래에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게 될 회사들의 지분을 먹어둔 상태다.
거기다 내년부터 생겨날 비트코인까지.
너무 액수가 커지니까 슬슬 현실성이 없어지고 있었다.
덜컹-.
의자에 앉으며 눈앞에 보이는 여러 대의 모니터를 바라봤다.
모니터엔 각 종목의 주가 그래프들이 띄워져 있었다.
빨간색, 파란색으로 움직이는 선들.
머지 않아 대부분의 그래프가 파란색이 될 거다.
씨익.
입꼬리를 올린 나는 우재성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디, 진짜 부자가 돼 봅시다.”
[완결>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