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53
052화
한국을 대표하는 술.
내가 부해양조를 통해 추구하는 방향은 한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소주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다는 거였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글로벌로.’
단순히 시장에 푸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의 주류 시장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후에 바로 해외로 수출시킬 거다.
세계 모든 마트에서 부해양조의 프리미엄 소주를 찾을 수 있고, 구입해서 장식장 한구석을 차지하게 만들 예정이다.
“이주혁 대표님이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꾸려갈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요? 부해양조는 이제 막 저도수 소주로 대중의 인기를 얻은 회사입니다. 이제 막 한국 주류 시장에 진입한 신생아라고도 할 수 있죠.”
신생아라는 표현까지 들며, 애널리스트 박찬구 실장은 이 프로젝트가 무모할 거라고 말하고 있다.
“제가 종종 이런 경우를 봤습니다. 한 분야에서 잘나가는 회사가, 그 성공을 믿고 사업을 키우는 경우를요. 그럴 때마다 결과가 어땠는지 아십니까?”
“안 봐도 뻔하죠. 실패했겠죠.”
“잘 아시는군요. 보통 그런 기업들의 말로는 같았습니다. 사업을 확장하고 무리하게 차입해서 규모를 늘려서 결국엔 그 빚을 갚지 못하고 망하고 말았습니다. IMF 때도 그랬고, IT 버블 때도 그랬죠.”
나도 그런 케이스 많이 알아.
가장 유명한 회사는 한보그룹이지.
건설로 잘 나가던 회사가 기자재인 철강까지 건드려서 망해 버린 기업.
IMF의 시발점을 찍었던 한보그룹이 제일 잘 알려진 케이스다.
박찬구 실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 대표님.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까 기분 나쁘게 듣지 마십시오.”
보통 이런 말을 꺼내면, 탁자를 넘기고 싶을 정도로 기분 나쁜 말이 나오지만, 뭐 들어나 보자.
“부해양조는 저도수 소주 시장에 전념해야 합니다. 기반을 만들고 든든하게 초석도 다졌습니다. 매출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고, 주류 시장에서 인지도도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최근에 홍대나 압구정 가 보셨습니까? 거기 젊은 친구들은 다들 ‘좋은날’만 찾습니다. 독한 소주는 이제 그만 마시고 싶고, 순하고 입에 맞는 소주를 즐기고 싶어 하니까요.”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
“대표님은 시장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프리미엄 소주를 만들 때가 아니라, 주류 시장에서 부해양조의 포지션을 더욱 견고해야 할 시기입니다. 다른 곳에 눈독 들이다가는……. 가지고 있는 것도 지키지 못합니다.”
능력 있는 애널리스트라 그런지, 확실히 현실을 볼 줄 아네.
당신 말대로 지금은 이대로 ‘좋은날’ 생산을 늘리고 부해양조의 매출을 끌어 올릴 시기야.
그런데, 내 사정이 좀 급해졌어.
당장, 돈이 필요한데, 나올 구석이 부해양조밖에 없거든.
그러기 위해선 부해양조의 주가를 올려야 하고.
박찬구 실장의 표정이 가관이다.
제발 헛짓거리로 회사의 가치를 떨어트리지 말라고 애원하는 듯한 얼굴을 짓고 있다.
설마 내가 회사를 말아먹는 재벌 2세쯤으로 보이는 건가?
‘나를 천지 분간도 못 하는 망아지로 알고 있네.’
나보다 현실 직시를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박찬구 실장님.”
“……예.”
“뭔가 잘못 알고 계시는군요.”
“네?”
“저는 프리미엄 소주 브랜드를 만든다고 했지, 대규모 투자를 할 거라고 하진 않았습니다.”
“……??”
‘아’ 다르고 ‘어’ 다른 거야.
당신이 걱정하는 건, 젊고 패기 넘치는 기업인이 회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할까 봐 걱정하는 거고.
내가 말하고 있은 건, 프리미엄 소주를 만들어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다는 거다.
“부해양조와 거래하는 지역특산주 제조 회사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증류식 주조 기술은 일반적인 양산형 소주 회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맛과 향을 자랑하죠. 혹시, 드셔 보셨는지 모르겠군요. 아! 안동소주는 드셔 보셨죠?”
“안동소주는 한 번씩…….”
“비슷하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경북과 안동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소주가 안동소주입니다. 전 그걸 좀 더 넓은 의미의 프리미엄 소주로 만들려고 하는 거죠. 지역 양조장이 가진 기술과 우리 부해양조가 유통 라인 그리고 자본을 하나로 합쳐서 프리미엄 소주 브랜드를 만들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난 검지 손가락을 들었다.
“일명 ‘원소주’. 지역 양조장과 함께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원소주’를 생산하려고 합니다.”
WON소주가 아니라 원(元)소주.
으뜸 원자를 쓴 한국 최고의 프리미엄 소주.
내가 만든 구상은 이거다.
뭣도 모르는 망아지의 패기 넘치는 도전이 아니라.
“박찬구 실장님이 뭘 걱정하고 있는지 압니다. 대규모 투자로 잘 나가고 있는 저도수 소주 시장에서 멀어질까 두려우신 거죠. 우리 부해양조에 관심도 많으시고 포트폴리오 1순위로 추천할만큼 애정도 가지고 계시니까요. 그런데, 저는 실장님이 걱정하시는 것만큼, 그렇게 멍청하지 않습니다. 진노그룹이 했던 실수를 되풀이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란 말이죠.”
과거를 잊은 자에게 영광은 없다.
진노그룹은 주류 생산 부문에서 최정상 기업이었다.
진노위스키, 풍헌양조, 고려양주, 진노발효, 진노지리산샘물 등등.
소주와 물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던 진노그룹은 부동의 1위를 지킨 기업이었다.
딱, 거기까지만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기업인데…….
문제는 욕심이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는 거다.
주류 회사가 건설사를 인수하고 조선소를 가져오더니, 백화점 사업에다가 엔지니어링에도 손을 대더니, 금융업에도 진출해 신용금고까지 계열을 늘렸다.
누구나 두꺼비 문양이 박힌 진로 소주를 먹고 있는데, 내부는 계열 확장으로 곪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IMF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온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고, 누구도 쉽사리 이겨 내지 못했던 그 순간이.
‘그때 휘청거리더니, 모든 계열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갔지.’
진노 소주는 그나마 좀 버텼다.
2003년 법정관리에 들어가서 2005년까지 버티다가 라이트맥주에 매각된다.
이런 역사를 뻔히 알고 있는 내가 욕심을 부릴 리가 있나?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
부해양조의 비전을 창창하게 만들어서 주가를 올리는 거다.
“제 나이가 젊다고 생각까지 어린 건 아닙니다. 진노그룹이 했던 것처럼, 막무가내로 사업을 확장하고 문어발식으로 계열사를 늘릴 생각은 없습니다. 부해양조가 잘하는 것. 그리고 중소형 주조 회사들이 잘하는 것들을 하나로 묶을 생각입 니다. 그 종착역에 프리미엄 소주인 ‘원소주’가 있습니다. 전문 주류 회사들이 모여서 부해양조라는 회사 이름으로 최고급 소주를 만들어서 공급하는 거죠.”
비전은 이만하면 충분히 전달한 거 같고, 이제 슬슬 임팩트를 줘야겠네.
“프리미엄 소주. ‘원소주’의 시작은 박찬구 실장님이 생각하시는 그 이상이 될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프리미엄. 한국어로 하면 웃돈이라는 뜻이죠. 웃돈을 주고 살 만큼 가치가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요?”
“그만한 가치를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곳이 어디일까요?”
“……?”
“백화점. 저는 프리미엄 소주, ‘원소주’를 백화점에서 런칭할 겁니다.”
“……?!!”
박찬구 실장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지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서민들을 위한 술이 소주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걸 백화점에서 런칭하겠다고?
“14,000원짜리 소주를 그냥 마트에 전시할 수는 없지요. 프리미엄이란 이름에 걸맞게 런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소주를 백화점에서 런칭한다는 건…….”
김재범은 실제로 그렇게 했어.
내가 그 시기를 15년 정도 당긴 거뿐이지.
“반대로 제가 물어보고 싶군요. 프리미엄 양주, 프리미엄 보드카는 백화점에서 런칭하면서, 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주는 백화점에서 런칭할 수 없을까요? 충분히 백화점을 통해 런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소주’만을 위한 전문 매장도 만들 수 있고요.”
“전문……. 매장요?”
“프리미엄이 가지는 가장 큰 메리트가 차별성입니다. 그걸 직접 보여 주기에 제일 손쉬운 방법이 전문 매장이죠. 시음이 가능하고 ‘원소주’에 관해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 주는 매장을 오픈할 겁니다. 음식점에서 ‘여기 소주 한 병요.’하고 먹을 수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클래스를 보여 주는 거죠.”
“……!!”
프리미엄이란 이름에 걸맞은 멋을 보여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걸 위한 방편으로 백화점 런칭, 전문 매장 오픈이란 카드를 내밀었다.
여기서 하나 더. 임팩트는 확실하게 줘야지.
“‘원소주’의 모델은 남자 배우가 맡을 겁니다.”
“남자 배우요? 소주 모델에 남자 배우를 섭외할 거란 말입니까?”
“‘원소주’는 희소성과 차별성을 가집니다. 여배우가 장악한 소주 모델과 차별점을 두려면, 남자 배우가 딱이죠. 그것도 최근 한창 상한가를 치고 있는 배우로 말입니다.”
지금까지 소주 모델 하면, 여배우나 여가수가 맡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나야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남들과 달라야 우리한테 눈길이라도 한 번 더 주지.
“장동원. 최근 ‘울프의 유혹’으로 핫하게 떠오른 장동원을 모델로 기용할 겁니다.”
“장동원이라……. 아! 그 배우군요. 여자 주인공 우산 안으로 들어가서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던 그 배우요.”
“맞습니다. 영화관을 흔들 정도로 탄성을 만들어 냈던 그 배우죠. 산뜻한 이미지와 완벽한 외모 그리고 큰 키에서 나오는 아우라. 이 모든 게 프리미엄 브랜드 ‘원소주’를 빛나게 만들어 줄 겁니다.”
런칭부터 모델 기용까지.
모든 게 완벽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 정도로 밑밥을 깔아 놨으니, 박찬구 실장도 눈치챘겠지.
내가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는지.
그리고 이번 ‘원소주’ 프로젝트가 부해양조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우리 부해양조는 이번 ‘원소주’ 프로젝트를 철저하게 준비하고 실행할 예정입니다. 중간에 실패라는 단어조차 나올 수 없도록 완벽하게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몸을 바짝 당겨 박찬구 실장의 눈을 바라봤다.
“부해양조는 완벽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전 이 사실을 박찬구 실장님께 유일하게 알려 드린 거고요.”
“……!”
“애널리스트로서 이런 정보를 흘러 넘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찬구 실장님을 따르는 개인투자자들도 제가 준 좋은 정보를 함께 알아 가면 좋겠군요. 다다익선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알수록 서로에게 도움이 될 테죠.”
애널리스트를 만나 침샘이 마르도록 떠들었다.
이제 남은 건 박찬구 실장의 몫이다.
얼마나 우리의 비전을 화려하게 포장해서, 그를 따르는 광신도 같은 추종자들에게 알려 주는 일만 남았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박찬구 실장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잘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박 실장님은 제가 아는 최고의 애널리스트니까요.”
네가 잘해 줘야 해.
그래야 부해양조 주가를 뻥튀기시킬 수 있거든.
***
-데킬라, 럼, 보드카, 브랜디, 위스키. 이 술의 공통점을 알고 계십니까? 한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라는 겁니다. 그럼,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 우리나라에도 있을까요? 아니요. 없습니다.
이틀 뒤.
코리아 경제TV 전문 애널리스트 박찬구 실장은 하루의 주식 시황을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진행자를 보며 또박또박한 말투로 포문을 열었다.
-진행자님이 보시기엔 왜 없는 거 같나요?
-음……. 글쎄요.
-정답은 간단합니다. 아직 안 만들어서 그런 겁니다. 한국의 어떤 주류 회사도 세계를 상대로 문을 두드리려고 하지 않아서 그런 거죠.
카메라가 박찬구 실장을 원샷으로 찍었다.
화면 가득 박찬구의 진중한 얼굴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걸 ‘부해양조’가 시도하려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추천할 종목은 ‘부해양조’입니다.
박찬구 실장이 브리핑을 시작하자, 내 귓가에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부해양조’의 주가가 고공행진 하는 아름답고 청명한 소리가.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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