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60
059화
조용한 룸 안.
어딘가 퇴폐적인 조명 아래, 나라 국(國)자가 적힌 뱃지를 찬 남자가 술병을 들었다.
“한 잔 받게.”
“아, 예.”
최용달은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양주를 쭉 들이켰다.
“크…….”
“맛이 괜찮지? 비싼 거야.”
“예, 맛있습니다. 의원님.”
의원이라 불린 중년이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졸졸졸.
최용달은 괜히 손을 꼼지락대며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최 사장. 내가 오늘 최 사장을 왜 부른 것 같애?”
그의 말에 이마에서 땀이 한 방울 흘렀다.
“그, 그게…….”
“내가 우리 최 사장, 좋은 술 마시자고 부른 건 아니겠지?”
“예, 예.”
“최 사장. 우리가 몇 년 봤나.”
“한 10년 뵌 것 같습니다.”
꿀꺽.
의원은 단숨에 술을 마셨다.
탁!
“최 사장이 10년 동안 나 등에 업고 한 짓, 내가 다 가지고 있다는 건 알지?”
최용달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여당 의원, 최철호.
동향에 동문. 그 인연으로 안면을 튼 사람이다.
뒤를 닦아 주며 받아먹은 콩고물도 있고, 크고 작은 사고들도 몇 번 덮어 줬기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당연히 알지요. 제가 의원님 덕을 얼마나 봤…….”
최용달은 최 의원이 팔을 번쩍 드는 걸 보고 황급히 몸을 움츠렸다.
쨍그랑!
잔이 귓가를 스치고 날아가 벽에 맞았다.
‘X발…….’
욱하는 성질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최 의원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답이 없다.
“야, 최용달이.”
“……예, 의원님.”
“사흘 준다. 그전까지 풍원요정 일 끝내. 안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이틀 안에 마무리 짓겠습니다.”
드르륵.
말없이 일어난 최 의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마치 벌레를 보는 그것이었다.
“병신 같은 놈.”
최용달은 분을 꾹 눌러 삼키며 일어나 허리를 깊게 숙였다.
“들어가십쇼!”
탁.
최 의원이 나가자 룸에는 정적이 흘렀다.
“개, 씹!”
잔을 던지려 들어 올리다 멈칫했다.
“후…….”
이대로면 완전히 나가리다.
최 의원이라는 뒷배를 믿고 벌려 놓은 일이 얼만데, 이렇게 말아먹을 순 없었다.
이 끈이 떨어지면 조직끼리의 이권 다툼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원한을 가진 놈들까지 밤손님을 보낼 것이다.
최용달은 품에서 담배를 꺼내며 털썩 주저앉았다.
팅! 치익.
풍원요정. 원래 주인장 딸내미가 제멋대로 한정식집으로 바꿔 버린 그곳.
최철호가 거기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었다.
정치인들이 더러운 밀담을 나누던 그곳에 최철호의 약점이 있으니까.
그래서 거액으로 영입한 복서 출신 해결사까지 보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X발 놈. 갑자기 차에는 왜 치인 거야?’
해결사라는 놈은 대가리가 깨져서 병원에 누워 있고, 한정식집으로 바뀐 요정에는 함부로 애들을 풀어 놓을 수도 없었다.
이 상황에 최 의원한테까지 불려와서 욕이나 들어먹으니, 기분이 아주 뭣 같았다.
그래도 다행히 최 의원의 분노를 잠재우는 데 약발이 좋은 게 하나 있었다.
“X이발. 돈이나 더 맥여야지. 개 같은 거.”
쌍욕을 뱉은 최용달이 핸드폰을 들었다.
이럴 상황을 대비해 준비해 놓은 게 좀 있긴 하지만…….
슬슬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던 참이라, 다음을 생각하니 속이 답답해졌다.
담배를 깊게 빤 최용달이 한숨을 쉬듯 연기를 내뿜었다.
‘X발. 이제 돈 나올 구석도 없는데……. 최철호 이 개X끼…….’
***
“여긴가…….”
인적이 드문 거리의 한 상가 건물.
나는 용달파의 사무실의 주소로 찾아왔다.
기준이가 가져온 정보니 확실하겠지.
저벅.
삐걱대는 계단을 쭉 올라가자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은 문 하나가 보였다.
나는 얼굴을 가린 마스크를 더듬거렸다.
‘라세흠 부장이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우선 사무실을 한번 밀어 버릴 생각이다.
덩치와 돼지가 말하길, 용달파는 우리 SA시큐리티의 명함을 거절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통 깡패 놈들은 자존심이 강해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우리 명함을 받았다?
아마 최용달은 자신의 안전을 중시하는 성격일 것이다.
그 조심스러운 성격에, 이틀 만에 두 번의 습격을 당한 것이다.
심지어 그 습격자가 나와 라세흠 정도의 강자?
‘이건 못 참지.’
강북도끼파를 없애 버렸다고 소문이 도는 SA시큐리티.
바로 우리 사무실에 연락을 안 하고는 못 배길 것이다.
그때 서서히 작업을 치면서 용달파와 정치권의 커넥션을 알아보면 되겠지.
임유나의 안전을 위해선, 이 연대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쿵쿵쿵.
사람을 부르기 위해 지저분한 문을 두드렸다.
“누구쇼?”
문 안에서 깡패의 정석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문에 대고 뻔뻔하게 소리쳤다.
“배달이요.”
“뭐? 시킨 사람 없으니까 꺼져.”
습. 문지기부터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네.
일단 너부터다.
나는 문을 거칠게 발로 차며 놈에게 배달해 줬다.
쾅!
“억!”
쿠당탕!
코를 맞았는지 놈이 피를 줄줄 흘리며 벌떡 일어났다.
“이, 이 X발! 뭐야!”
“배달이라니까.”
“저 새끼 뭐야!”
“어떤 놈이여?”
음……. 사무실이라더니, 역시 깡패 소굴이었구만.
익숙한 실루엣의 덩치들이 책상으로 두고 둘러앉아 라면을 먹고 있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던데, 조금 미안하네.
“이 개새끼가!”
얼굴을 일그러뜨린 녀석이 피를 닦으며 품에서 작은 칼을 꺼내 들었다.
“뒈지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이 새끼야.”
굳이 말을 더 섞을 필요는 없겠지.
혹시 얘네가 내 목소리를 기억할 수도 있으니까.
탓.
나는 도약해 깡패의 가슴팍에 발차기를 꽂았다.
“컵.”
쏜살같이 허공을 가른 놈이 사무실 중앙에 놓인 책상에 날아가 꽂혔다.
와장창!
“이런 썅!”
그걸 본 깡패들이 벌떡 일어나 손에 뭔가 하나씩 쥐고 달려들었다.
젓가락, 칼, 냄비.
중간에 이상한 것들이 껴 있긴 했지만, 문제는 없었다.
“훕.”
칼을 찔러오는 손을 피하고, 그대로 팔꿈치로 턱을 올려 쳤다.
퍽!
그러자 대머리의 눈이 돌아가며 큰 덩치가 허물어졌다.
쓰러지는 몸을 붙잡고 옆에서 달려들던 녀석에게 그대로 집어 던졌다.
“으악!”
휙! 깡!
얼굴로 날아오는 냄비를 옆으로 쳐냈다.
젠장, 국물 튀었네.
“뒤져!”
뒤에서 날아오는 주먹을 어깨 사이로 흘린 뒤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허리를 틀며 앞으로 메쳤다.
쾅!
“끄륵…….”
땅에 부딪힌 녀석이 입에 거품을 물었다.
친구가 당하는 걸 보고 달려오던 놈을 하나 더 발견하고, 몸을 뒤로 젖히며 무릎을 발로 차 줬다.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지던 얼굴을 그대로 잡고 무릎으로 올려 쳤다.
쩍 소리와 함께 놈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엎어졌다.
목이 조금 돌아간 것 같은데……. 괜찮겠지?
“이런 씨…….”
“어디서 온 놈이야?!”
깡패들은 침입자의 실력에 당황했는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오합지졸이라 당황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애들을 데리고 정치인 밑에 붙어 있다니.
아마 보스가 수완이 좋은 놈이거나…….
온갖 더러운 일을 가리지 않고 도맡아 처리하는 놈들이겠지.
이 새끼들 면상이나, 처음부터 칼 꺼내 드는 거 보면 후자일 확률이 높았다.
뭐, 내가 먼저 패서 꺼내 든 거긴 하지만.
“뭐 하냐. 새끼들아.”
그때,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비리비리한 놈이 하나 튀어나왔다.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빙빙 돌리고 있는 걸 보니…… 칼잡이인가.
나름대로 가오는 잡는데, 몸이 너무 빈약해서 그런지 전혀 위협적이지가 않았다.
“한꺼번에 덮치면 되잖아. 이렇게 대가리가 안 돌아가서야……. 내가 신호하면 달려들어서 팔다리 하나씩은 붙잡아라. 그럼 내가 쑤실 테니까.”
“예, 형님.”
“예!”
미끼로 애들을 던진 뒤 자기가 막타를 치겠다는 작전이군.
용달파의 이인자쯤 되나 본데, 조금 기대되네.
목을 좌우로 한 번씩 꺾고 천천히 걸어가자, 비리비리가 혀로 칼날을 쓱 핥았다.
드럽게.
“잡아!”
“으아아!”
신호와 함께 깡패들이 날 붙잡기 위해 몸을 낮추고 달려왔다.
멍청하긴.
이렇게 대놓고 달려오면 누가 잡혀 준대?
탓!
책상을 밟고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놈들의 얼빠진 표정이 참 볼 만했다.
“하.”
이럴 때 쓰기 좋은 게 또 ITF 태권도지.
파바박!
“악!”
“읍!”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깡패들의 머리를 지르밟아 줬다.
마치 징검다리를 밟듯 계속해서 머리를 딛으며 허공을 걸었다.
“X발! 저 새끼 잡으라고!”
“으아아!”
악에 받친 녀석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저런 허접한 손짓에 잡힐 내가 아니지.
퍽!
“꾸억!”
머리 하나를 밟고 뛰며 비리비리에게 뛰어들었다.
“이런 개……!”
당황했는지 녀석이 칼을 공중에 뜬 내 쪽으로 찔러 왔다.
허공에선 움직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나 본데, 어림도 없다.
몸을 비틀었다 튕기며 비리비리의 팔을 두 다리로 감고, 회전력을 이용해 그대로 팔을 꺾어 버렸다.
우드득!
소리 좋고.
“끄아아악……!”
이어 떨어지는 나이프를 잡아채 비리비리의 손에 박아 넣었다.
쾅!
“아, 아아악!”
움찔.
그 장면에 위축됐는지 덩치들이 머뭇거리며 다가오지 못했다.
비리비리는 손이 책상과 하나가 된 감각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새끼야, 칼을 쓸 거면 칼 맞을 각오는 해야지.
나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다 꺼져. 죽여 버리기 전에.”
물론 진짜로 죽일 생각은 없지만.
게다가 몇 놈은 진작에 도망간 상태였다.
깡다구로 버티는 녀석들은 수작업으로 재워 줬다.
잠이 부족했는지 푹 자네.
나는 사무실을 쭉 둘러봤다.
이왕 습격한 거, 뭐라도 털어 가야겠어.
그런데 주변에 보이는 건 라면이나 싸구려 시계 따위밖에 없었다.
최용달의 자리에 놓인 서류들도 쓱 훑어봤지만, 딱히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쯧.”
그냥 돌아가려 하던 때, 시선에 하나가 들어왔다.
책장 옆 구석에 손잡이 같은 게 하나 있었다.
딱 촉이 왔다. 저 안에 분명 뭐가 있어.
가까이 다가가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당겨 봤다.
끼익.
“음?”
그러자 문은 허무하게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웬 상자 같은 것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 박스에 적힌 건, 깡패들과 어울리지 않는 상큼한 단어였다.
청송 사과?
마침 사과가 땡겼는데, 잘 됐다.
대충 붙여진 테이프를 좍좍 뜯어 버렸다.
안을 살펴보니, 신선한 사과는 온데간데없고 웬 배춧잎만 가득했다.
“아하.”
아마 최용달이 의원의 돈세탁도 했거나, 잘 봐달라고 찔러 넣는 뇌물일 거다.
씨익.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한 가지 계획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의원과 최용달, 둘 모두에게 큰 엿을 먹여 줄 계획이 말이다.
따르릉-!
그때, 갑자기 최용달의 책상 위 전화가 울렸다.
나는 다가가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혹시 몰라 일부러 코맹맹이 소리로 목소리를 변조했다.
“아, 여보세요?”
-어. 거기 윤한이 좀 바꿔 봐라.
음. 아마 이건 최용달이겠지?
목소리도 묵직하고 미끄러운 게 사람들 참 잘 구워삶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기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를 들었는지, 손이 책상에 박혀 있던 비리비리가 소리를 빽빽 질렀다.
저놈이 윤한인가?
“혀, 형님! 형님! 침입……!”
깡!
재떨이를 던져 윤한이를 재운 뒤, 다시 전화에 집중했다.
-뭐야, 무슨 소리야?
“아, TV를 틀어 놔서요. 어쩐 일로 전화하셨습니까?”
-용태 좀 데려…… 아, 용태는 고향 내려갔지. 윤한이는. 없어?
나는 기절한 비리비리를 슥 쳐다봤다.
“윤한이 형님은 주무십니다.”
-뭐? 빨리 깨우…… 근데 누구냐? 처음 듣는 목소린데.
예리한데?
일단 급한 대로 이름 하나를 댔다.
“저 상훈입니다, 형님. 막내요.”
미안하다, 상훈아.
우리 중엔 네 이름이 제일 만만하다 야.
-……상훈이? 성훈이 아니었냐?
다행히 비슷한 이름이 하나 있나 보다.
“상훈입니다, 형님.”
-그래 뭐, 상훈아. 너 창고에 박스 있는 거 알지?
당연히 알죠, 형님.
제가 방금 열어 보고 왔는데요.
-그거 절대 열어 보지 말고, 트럭에 싹 다 실어라. 조용히. 윤한이 새끼는 비리비리해서 혼자 못 할 거다. 거기 애들 더 있지? 걔네들도 시켜.
“아, 전부 다요?”
이런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몇 놈은 재우지 말 걸 그랬다.
“어디로 갈까요?”
-어……. 일단 내가 불러 주는 주소로 와라. 쓸데없이 애들 데려오진 말고. 의원님 드릴 거니까, 조심히 운전해라.
의원님? 설마 내가 찾던 그 의원?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지금 내 얼굴은 아마 라세흠 부장이 전투를 앞뒀을 때의 표정이지 않을까.
나는 사과 박스가 든 창고를 힐끗 보며 최용달에게 믿음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지금 출발합니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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