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62
061화
씨익.
나는 미소를 지으며 최용달의 얼빠진 얼굴을 감상했다.
자기 사무실을 습격했던 놈이랑 몇십 분 동안 수다를 떨었으니…….
“이런 씨…….”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건 당연하겠지.
최용달은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앞에 앉은 최철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의원님. 넓은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음? 하하, 그래. 용건은 이게 단가?”
“예. 제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은 것 같아 죄송합니다.”
“괜찮네. 그럴 수 있지. 내가 최 사장한테 이 정도 시간도 못 낼까.”
자리에서 일어난 최철호가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걸음을 옮겼다.
“사과는 늘 받던 거기 두게. 간만에 비타민 충전 좀 하겠어?”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이제 탁자에서는 내려오고, 언제까지 있을 생각이야? 하하.”
“하하……. 옙.”
탁.
최철호가 룸을 나갔다.
자, 이제 둘만의 시간이군.
나는 최용달과 지긋이 눈을 맞추며 축하를 건넸다.
“형님. 이야기가 잘 돼서 다행입니다.”
“…….”
“기껏 축하해 주는데, 리액션 좀 하시죠.”
내 핀잔에 최용달이 이빨을 드러내며 짓씹듯 말했다.
“너……, 누구냐?”
“상훈인데요?”
“지랄 말고, 이 새끼야.”
“상훈이라니까요.”
“지랄하지 말라고!”
참다 참다 터졌는지, 최용달이 탁자에서 내려왔다.
왜 화를 내고 그래, 신입한테.
“이 개새끼. 네가 우리 사무실 뒤집었다는 놈이지?”
“그러면 어쩌시게?”
“하……. X발.”
최용달은 정신이 혼미한지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나에게 제안했다.
“누가 보냈냐? 아니, 얼마 받았어? 내가 그 두 배로 주지.”
“음.”
“별로냐? 혹시 나한테 원한이 있어? 아니면 용달파에? 이러는 이유나 들어 보자.”
나는 턱을 매만지며 슬쩍 말을 흘렸다.
“원한은 없고……, 원하는 건 있는데.”
최용달이 침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를 원하나.”
“얼마? 얼마를 줘야 할 것 같은데.”
“음.”
“네 사과 박스 안에 담긴 게 우리 회사 회식비랑 비슷해.”
“……대체 뭘 처먹은 거냐? 아니, 이게 아니라. 그럼 원하는 게 뭐냐?”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최철호 의원의 약점이 담긴 정보.”
그걸 들은 최용달의 표정이 굳었다.
“미안한데, 나도 모른다.”
“몰라? 아까는 녹음기라며.”
“대충만 아는 거지,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쯧. 그래도 뭐 들은 게 있을 거 아냐?”
“진짜 몰라. 날 두들겨 패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어떻게 잘 두들겨 패면 나오긴 하던데…….”
저 표정은 진짜 모르는 표정인데.
나는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이걸 죽여, 말아…….”
내 중얼거림에 최용달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 거기에 대한 정보는 내가 최대한 알아볼게. 죽이지 마라. 대신 나한테 시킬 게 있으면 말해. 하나는 들어주마.”
“그럼……, 풍원한정식에는 손 떼라.”
“뭐? 거기서 손을 떼면 녹음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가져오라고?”
“최철호한테 물어봐.”
“X발. 그게 말이냐?”
최용달이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뭔가를 알아챘다는 듯이 나를 향해 고개를 휙 들었다.
“X바. 김태수 니가 담근 거였냐?”
“김태수? 아, 복싱? 손님 응대가 별로여서 손을 좀 봐줬지.”
“지랄. 그래도 사람을 병신으로 만드냐?”
“싸워서 이기긴 했는데, 차로 친 건 나 아니다.”
“그럼…….”
“누군지는 나도 모르지.”
내가 복싱을 이겼다는 말에 최용달의 표정이 달라졌다.
“알았다. 거기서는 손 뗄 테니까, 하루만 시간을 줘. 내가 애들 데리고 와서 딱 하루만 찾아볼게.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 아니냐?”
“하. 깡패 놈들 우르르 데리고 와서 가게 안을 돌아다니겠다고? 장사 참 잘 되겠네.”
“그날은 휴무하면 되잖아.”
“거기 장사 잘된다. 하루 매출이 얼만 줄 알아?”
“내가 돈 줄게.”
“얼마 주게.”
최용달이 다급하게 품 안에 손을 넣었다.
“내가 가진 현금이 좀 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며 손을 내밀었다.
“간절함을 보여 줘야지.”
“잠깐, 지갑이……이!”
재킷 안을 뒤적거리던 최용달이, 번개같이 칼을 뽑아 내 목을 향해 휘둘렀다.
그 모습을 무표정하게 쳐다보던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움직였다.
“느려.”
나는 왼팔을 바깥쪽으로 돌리며 손등으로 최용달의 팔을 흘려 낸 뒤, 그대로 얼굴을 잡고 다리를 걸어 탁자에 박아 버렸다.
쾅-!
***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최철호 의원이 인상을 찌푸렸다.
“옆에서 뭘 하는 거야?”
지 부하랑 멱살잡이라도 하는 건지.
최철호 의원은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좋은 제안이라는 게 뭐요?”
앞에 앉은 깔끔한 인상의 중년, 류수혁이 고개를 들었다.
지방의 큰 조직에 있다가 강남파에 영입된 놈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깡패 주제에 나랏일하는 국회의원 앞에서도 고개가 아주 빳빳했다.
최철호 의원이 불편한 심기를 티 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와인을 홀짝 마시더니 본론을 꺼냈다.
“의원님이 원하시는 거, 제가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철호는 순간 흠칫했지만, 태연하게 잔으로 입술을 적셨다.
“내가 원하는 거라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소만.”
류수혁이 입꼬리를 슥 올렸다.
사람들이 호감을 느낄 만한 수려한 미소였지만, 그것은 섬뜩할 정도로 만들어진 미소였다.
그걸 느낀 최철호 의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녹음기, 말하는 겁니다. 의원님. 최 의원님의 뇌물수수 증거가 담긴…….”
‘이 새끼가 이걸 어떻게……!’
그의 말에 최철호는 다급하게 손을 들었다.
“그만, 거기까지 하시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요? 돈이오?”
류수혁이 이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금전적인 것도 포함이 되겠지요. 하지만 제가 원하는 건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잠깐, 그 전에.”
최철호가 류수혁의 말을 끊었다.
“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건,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 아니오?”
“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잊으셨습니까?”
“…….”
최철호는 턱을 매만지며 다시 뒤로 기댔다.
‘구할 수 있긴 개뿔. 이 새끼, 이미 지 손에 가지고 있구만.’
아마 그걸 빌미로 무언가를 뜯어내려는 속셈일 터.
남자는 변함없이 미소를 지으며 최철호 의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최철호 의원은 착잡한 마음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래서, 돈 말고 뭘 원하는 거요?”
“인맥.”
“인맥?”
류수혁이 와인으로 다시 목을 축였다.
“제가 리스트를 드리겠습니다. 여기 적힌 사람들한테 다리를 좀 놔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리라……. 뭐, 어려운 일은 아니긴 한데.”
“그럼 저도 최대한 빨리, 의원님이 원하시던 걸 찾아오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의 이놈을 믿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싹싹하고 말 잘 듣는 최용달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놈은 너무 일 처리가 스마트하지 못했다.
슬슬 큰물에서 노는 것들한테 줄을 대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최철호 의원은 내심 결정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알겠소. 내 다음에 그쪽으로 연락하리다.”
“저한테 개인적으로 연락 주시죠.”
“음?”
최철호는 류수혁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새끼 이거…….’
최철호도 지금까지 더러운 정치판에서 살아남은 인물이다.
아마 류수혁은 주철수 모르게 자금을 모으고 세력을 넓히려는 속셈일 것이다.
협박을 통해 뜯어 낸 돈으로 다른 인맥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는 계획이다.
나쁜 생각은 아니었지만, 너무 얕은 수였다.
과연 강남파를 지금의 위치까지 올려놓은 주철수가 그거 하나를 눈치채지 못할까.
‘야망은 큰데……, 치밀하지는 못한 놈이군.’
최철호 의원은 고민하다 결국 결정을 보류했다.
‘완전히 갈아탈까 했는데, 이놈 독단이라면 믿을 수 없지.’
“내일 연락 주겠소.”
“좋습니다. 한 잔 받으시죠.”
쪼르륵.
최철호는 남자에게 와인을 받으면서도 착잡함에 입안에서 혀를 굴렸다.
이대로면 녹음기를 빌미로 계속해서 돈을 갖다 바쳐야 할 것이다.
‘이 깡패 새끼들……. 싹 다 잡아 처넣어야 하는데…….’
***
탁자에 머리와 등으로 떨어진 최용달이 바람이 빠지는 소리를 냈다.
“컥……!”
되겠냐?
라세흠 부장 정도의 실력이 아니면, 나한테 기습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나는 머리 뒤로 주먹을 치켜들며 고개를 저었다.
“거 참, 거짓말을 하면 쓰나.”
그러자 최용달이 다급하게 손을 휘저었다.
“자, 자, 잠깐! 잠깐만! 내가, 내가 잘못했다!”
“뭐 이렇게 깡다구가 없어. 나 죽이려고 한 거 아냐?”
“미안하다. 미안! 내가 실수했다.”
“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최용달이 지금까지 어떻게 조직을 키웠는지 이 상황 하나로 알 것 같았다.
“용달아. 네가 지금 상황 판단이 잘 안 되나 본데, 이렇게 나와 봤자 손해 보는 건 너야.”
“…….”
“그럼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슬쩍 손을 떼니, 최용달이 뒤통수를 문지르며 일어났다.
그리고 옷을 툭툭 털더니,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무릎이 쉬운 남자네.”
최용달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내가 뭘 하면 되나.”
씨익.
웃으면서 내 계획을 말하자, 최용달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왜, 별로야?”
“……만약 잘못되면, 나는 어떡하고?”
“잘하면 잘못되진 않지 않을까?”
“내가 먹여 살리는 놈들만 수십이다. 자비를 좀 베풀 생각은 없어?”
나는 표정을 싹 굳히며 목소리를 깔았다.
“트럭에서 네 모가지를 안 따고, 여기서 그 칼로 널 안 쑤신 건 자비가 아니냐?”
“그렇네. 미안하다.”
조금만 위협하면 바로 꼬리를 내리네. 아주 웃긴 놈이야.
“그럼 가서 그대로 전해. 알았지?”
“알았다.”
나는 최용달과 함께 룸을 나섰다.
그리고 3번 룸 앞에서 최철호 의원이 나올 때까지 대기했다.
최용달은 불안한지 계속해서 다리를 달달 떨며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다리 좀 떨지 마라. 똥 마려운 개새끼처럼 왜 이래?”
“개새끼라니. 내가 너보다 스무 살은 더 살았어.”
“여기서 뒈지고 싶냐?”
“X발. 미안하다.”
달칵.
그렇게 최용달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최철호가 룸 바깥으로 나왔다.
“뭐야? 최 사장. 집에 안 갔어?”
“아, 예! 급하게 말씀드릴 게 있어서.”
나는 그 틈을 타 3번 룸 안을 훔쳐봤다.
‘음?’
최 의원이 누구랑 대화를 나눴나 확인해 봤더니, 웬 느끼하게 생긴 중년 남자가 나와 눈을 맞췄다.
기분이 썩 좋진 않은데?
“뭐가 그리 급해?”
“차, 찾은 것 같습니다.”
“뭐?”
“의원님이 찾으라고 하신 거, 찾았답니다.”
“뭔 개소리야?”
개소리가 맞다.
최철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최용달에게 물었다.
“그새 찾았다고? 어디서?”
최용달은 내가 말한 시나리오를 읊기 시작했다.
“제가 태수. 그러니까 복싱한다던 그놈을 거기 취업시켰는데, 그 녀석이 가게 돌아다니다가 발견했답니다.”
피식.
그때, 갑자기 작은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열심히 구라 치는데 누가 재수 없게 웃고 지랄이야?
나는 소리가 난 3번 룸 안을 들여다봤다.
‘저 새끼가?’
안에 앉아 있던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깥으로 나왔다.
키가 큰 녀석이었다. 비율도 좋고.
대학교 훈남 선배가 20년 정도 늙으면 이렇게 될까?
“물건을 찾으셨다고요?”
목소리도 유들유들한 게, 말투에서 깡패티가 확 나는 최용달과는 급이 달랐다.
아무래도 보통 놈은 아닌 듯한데.
“혹시 그 물건, 어디서 찾으셨습니까?”
남자의 질문에 최용달이 태연하게 답했다.
“풍원한정식에서 찾았는데, 그건 왜 묻는 거요?”
“어떻게 생긴 건지는 아시고요?”
“…….”
예리한 질문에 최용달의 이마에 땀이 배어 나왔다.
나는 최철호 의원과 남자의 뒤에서 눈을 부릅뜨고 최용달을 노려봤다.
‘대답 잘해라.’
최용달은 눈알을 굴리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게, 웬 금고가 있다고……. 무조건 거기 안에 있을 거라고 했소.”
그걸 들은 최철호 의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질을 했다.
“최 사장. 이 새끼가……, 거짓말을 해?”
“아, 아닙니다. 진짭니다!”
최철호 의원은 룸 안쪽을 슥 돌아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그게 사실이면, 내일까지 내 눈앞으로 가져와. 만약 거짓말이면 넌 끝이야. 알았어?”
최철호는 혀를 쯧쯧 차고 멀어졌다.
최용달의 표정이 굴욕으로 일그러졌다.
남자가 그런 최용달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뭔가 저놈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기꾼의 냄새가 솔솔 난단 말이지.
녀석이 품을 뒤지더니, 고급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명함 하나를 빼 최용달에게 주곤, 최철호를 따라 자리를 떠났다.
“X발…….”
그가 복도 너머로 사라지자, 최용달은 명함을 구겨 땅에 던졌다.
“형님. 저도 봐야죠. 왜 상의도 없이 그걸 버려?”
“어? 아! 미안하다.”
“주워요.”
“썅…….”
최용달에게 구겨진 명함을 건네받아 손으로 쫙 폈다.
놈이 어디의 누군지는 알아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
나는 명함에 적힌 글씨를 본 순간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강남물류 실장 류수혁]강남물류. 강남물류?
나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시점에서 강남물류 실장은 이놈이 아니었다.
“뭐야.”
내가 정확히 기억한다.
지금 이 연도에 강남물류 실장을 맡고 있었던 사람.
‘정 상무.’
전생에서 날 죽였던 놈이었다.
부르릉-!
바깥의 차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를 들은 나는 복도의 창문을 뛰어넘었다.
“어어, 미친……!”
최용달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2층에서 뛰어내린 뒤, 창문틀과 배관을 밟으며 땅에 착지했다.
하지만 이미 류수혁의 차는 출발해 버린 상태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난 이내 몸을 바로 세웠다.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이거 흥미롭네.
설마 이런 식으로 과거, 아니 미래가 달라질 줄이야.
아직 죽기 직전에 맡았던 연탄 냄새가 진하게 남아 있는데 말이지.
나는 새로 등장한 류수혁의 느끼한 얼굴을 속으로 몇 번이고 곱씹었다.
그리고 정 상무의 더러운 인상을 떠올리며 웃었다.
히죽.
“그럼……. 우리 정 상무는 지금쯤 뭐 하고 있으려나?”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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