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90
089화
코네티컷의 공항.
“이 대표-!”
“오셨습니까, 부장님.”
라세흠 부장이 하와이안 셔츠를 펄럭이며 걸어왔다.
아니, 이 양반은 춥지도 않나? 이 겨울에 무슨 저런 옷을 입어?
“안 추워요?”
“웃통 까고 얼음물 들어가던 시절 다 까먹었나 보네. 사회가 편하긴 했나?”
그러고 보니 또 그렇네.
저 인간은 한겨울 얼음물에도 웃으며 들어가던 인간이니까.
부장 뒤로 보이는 우리 직원들의 패션도 가관이었다.
우르르-.
“하.”
정태섭은 어울리지도 않는 핑크색 후드티 차림이었고, 고문 성애자 백기준은 레옹 코스프레를 하는지 비니에 동그란 선글라스,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 꼴 보기 싫은 모습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다들 여행 안 가 봤냐?”
“네가 뭘 모르네.”
백기준이 히죽거리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레옹’ 안 봤냐? 영화 좀 보고 살아라.”
“아예 화분도 들고 오지 그랬냐.”
“비행기에 들고 탈 순 없더라고.”
“미친놈.”
이놈도 성격만 멀쩡하면 참 괜찮았을 텐데…….
라세흠 부장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앞장서 걸었다.
“가자고. 일단 밥부터 먹자.”
“그럽시다.”
“아, 마종석이 따라오고 싶어 하더라?”
“그놈이요?”
몰락하고 있는 강남파를 손절 쳤다는 건 대충 알았지만, 우리한테 협조할 줄은 몰랐는데?
“안 보이는데요.”
“내가 놓고 왔다. 아무래도 해외 용병 출신이니까, 혹시나 미국 연줄을 이용해서 다른 짓을 꾸밀까 봐.”
“그래요?”
마종석이 왔다면 그놈을 이용해 무기를 좀 구할 수 있었을 거 같은데, 부장님 말도 틀린 건 아니니까.
아무래도 한국 가서 일대일 면담을 좀 해 봐야겠네.
습, 일단 직원들 밥부터 먹이러 가야겠다.
“스테이크 썰러 가자!”
“가자!”
“X바, 스테이크!”
우르르 몰려가는 녀석들을 보며 슬쩍 시선을 돌렸다.
정말,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직원들이다.
.
.
“이야……. 이게 미국 음식?”
“김치 없냐, 김치.”
“새꺄, 미국 와서 김치는 무슨……. 이 맛으로 먹는 거지.”
“와. 국밥충 부장님이랑만 먹다가 이런 거 먹으니까…….”
“뭐 이 새끼야?”
퍽!
백기준의 뒤통수를 때린 라세흠 부장이 중얼거렸다.
“근데 나는 뭐, 레스토랑 이런 데 갈 줄 알았는데……. 주혁이가 생각보다 통이 작네.”
이 양반이. 공짜 밥 먹으면서 말이 많으시네.
나는 우재성과 처음 만났던 식당으로 직원들을 데리고 왔다.
졸지에 바이크를 잃은 주방장이 날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그래도 두둑하게 챙겨 줬으니 새 바이크를 뽑으면 될 거다.
“스테이크 원 모어, 플리즈!”
어설픈 영어로 음식을 더 주문한 라세흠 부장이 날 돌아보며 물었다.
“근데 주혁아. 갱이랑은 어쩌다가 엮인 거냐?”
“제가 미국에 왜 온 줄은 아시는 거죠?”
“누구 만나러 간다고 들은 것 같은데.”
“네. 인재 하나 스카우트하러 왔는데, 그 친구가 갱단에게 위협을 받길래 좀 다퉜습니다.”
“총질까지 하면서?”
“뭐, 그놈들이 먼저 쐈으니까요.”
라세흠 부장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네. 총은 있고?”
“없어요. 그놈들 거 뺏어 쓸 바엔 그냥 새로 구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그렇긴 하지. 그런 놈들이 성능 좋은 총을 쓸 리는 없으니까.”
“일단 제가 알아볼 테니까, 슬슬 정리하고 가시죠.”
“음?”
직원들이 일제히 날 쳐다봤다.
왜, 먹을 만큼 처먹었잖아?
고문 성애자 백기준이 낄낄대며 손짓했다.
“주혁아. 그냥 지갑 놓고 가라.”
이 새끼가, 내 지갑도 고문할 생각이냐?
나는 어쩔 수 없이 넉넉하게 환전한 돈을 넘겨주고 나왔다.
앞으로 위험한 작전을 펼칠 녀석들이니 이 정도는 내가 지원해 줘야지.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탔다.
탁.
“후. 정신이 하나도 없네.”
그동안은 과잉 전력이라 같이 활동할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렇게 녀석들이랑 몇 시간만 부대꼈음에도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부대에선 어떻게 지냈나 몰라.
라세흠 교관이라는 공공의 적이 있어서 그나마 잘 지냈던 건가?
그래도, 같이 있으니 확실히 뒤가 든든한 느낌이네.
‘자, 그럼 이제.’
총을 구하러 가 볼까.
***
우재성이 나와 유나 씨가 묵는 숙소의 카페테리아에 찾아왔다.
“어라? 여긴 어쩐 일입니까?”
조용한 데서 유나 씨와 단둘이 식사하고 싶어서 일부러 직원들이랑 밥도 안 먹고 왔는데, 이번엔 뜬금없이 우재성이라니.
“그냥 학교에 있으시지…. 올 때 감시 안 붙었어요? 함부로 돌아다니다가 또 납치당하면 어쩌시려고.”
“그래서 온 겁니다. 학교 안이라고 안전한 게 아니니까요.”
뻔뻔하게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따라 앉은 우재성이 캐리어를 옆에 내려놨다.
짐을 뭐 이렇게 많이 들고 온 거야?
“설마 숙소를 옮길 생각입니까?”
“네. 이주혁 씨와 가까이 있는 게 기숙사보다 안전할 것 같아서요.”
“예일대 기숙사면 그래도 경비가 철저한 편 아닙니까?”
우재성이 피곤한 표정으로 도시락통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경찰도 매수하는 놈들인데 경비 하나 못 뚫겠습니까.”
“그 정도면 거의 집착인데요. 놈들이 그렇게까지 할까요?”
“자기네 조직원들이 절 데리러 갔다가 총을 맞고 돌아왔으니, 절 데리고 오든 죽이든 해서 체면을 차리려 할 겁니다. 그런 부류는 프라이드가 전부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다.
보통 조폭들은 가오에 살고 가오에 죽는 놈들이니까.
우재성은 도시락통의 뚜껑을 열고 샌드위치를 꺼냈다.
“그건 뭡니까. 직접 만드신 거예요?”
“치킨 아보카도입니다. 간단한 요리가 취미라서요.”
그리고 우재성은 샌드위치를 꺼낸 접시 위에 올려놓고 나이프로 썰기 시작했다.
그래, 어차피 물어볼 게 있었는데 잘 찾아왔네.
“우재성 씨.”
“예?”
“혹시 아는 총기상 있습니까?”
“쿨럭.”
우재성이 입을 가리고 당황했다.
“총기상을 제가 어떻게 압니까?!”
“모르면 모르는 거지, 왜 성질을 내요?”
“성질이 아니라……. 그냥, 총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나? 이러면 좀 곤란한데.
앞으로 더한 일을 할 거거든.
“주혁 씨.”
“네?”
옆에서 조용히 식사하던 임유나가 나를 불렀다.
“혹시, 총이 필요하신 거예요?”
“예?”
“아니, 총기상 얘기를 하시길래…….”
“음. 유나 씨가 신경 쓰실 부분은…….”
괜히 임유나가 위험한 일에 엮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나중에 다시 얘기할까 했는데…….
“제가 미국에서 지내던 별장에 총이 있거든요.”
“총이요?”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 주말마다 놀러 가던 곳이에요. 그래서 숙소 얘기 나왔을 때 별장에 묵자고 말씀드릴까 고민했는데…… 직접 관리한 지 시간이 꽤 지나서. 주혁 씨 데려가기엔 조금 그렇더라구요.”
아니, 지금 별장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것보다 총이 왜 있는 거예요?”
“아, 아버지 취미가 사격이었거든요. 특히 수집 쪽에도 관심이 있으셔서 모아 둔 물건들이 있어요.”
“…….”
“외진 곳에 있기도 하고, 총기 신고가 된 상태라 사격 연습도 가능할 거예요. 수렵 허가도 있거든요.”
만약 저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훈련하기도 좋을 것 같은데.
과연 어떤 곳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일단 한번 가 봐야 할 것 같다.
“그럼 혹시, 당분간 저희 팀원들이 유나 씨 별장에서 지내도 될까요? 다들 머리만 대면 잘 수 있어서 공간만 제공해 주시면 돼요.”
“당연히 되죠. 얼마든지 편하게 지내셔도 상관없어요.”
“고마워요.”
이 열여섯 명의 괴수들을 어디 수용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별장 같은 데라면 괜찮을 것 같네.
나는 샌드위치를 돈가스 먹듯 썰어 먹는 우재성에게 말했다.
“우재성 씨도 같이 갑시다.”
“예?”
“작전의 핵심이신데 함께 하셔야죠.”
우재성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제가 핵심이라고요?”
“당연하죠. 자세한 건 나중에 알려드리겠습니다.”
핵심이긴 할 거다.
넌 놈들한테 좋은 미끼가 될 테니까.
***
비스트 갱의 보스, 빅 조지는 커다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X발!”
최근 계속해서 영입을 시도하던 인재, 제이슨 우.
그놈을 데리고 오라 보낸 놈들이 모조리 팔다리 하나씩 병신이 돼서 돌아왔다.
‘어떤 미친놈이 우릴 건드린 거지?’
코네티컷 안의 것들은 비스트 갱을 건드리지 못한다.
빅 조지의 인맥과 영향력으로 뒷골목 사업을 다 장악해 놨기에, 비스트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퍼져 있는 탓이었다.
그걸 미루어 봤을 때 이번 사건은 외부인의 소행이다.
‘경찰인가? 제이슨 놈 가문의 경호원?’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가 결론을 내리는 걸 가로막고 있었다.
‘한 놈.’
단 한 명에게 열하나가 박살이 났다. 그것도 무장한 놈들이.
아무리 날고 기는 놈이라도 총을 든 열하나를 제압하는 놈은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덤빌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게 실제로 벌어졌다.
‘용병을 고용했을 확률이 높겠군.’
뇌물을 처먹으며 배부른 돼지가 된 경찰들일 리는 없고, 총만 쏠 줄 알지 다 늙어빠진 경호원일 리도 없다.
분명히 현재진행형으로 사선을 넘나들던 놈일 것이다.
제이슨 우, 그놈이 사설 용병을 데려온 것이다.
‘X발. 그래도 한 명은 아니지. 무슨 터미네이터도 아니고.’
저격이나 지원이 있었는데 멍청한 부하 놈들이 겁을 먹고 확인하지 못했을 거다.
빅 조지는 불안한 상상을 애써 지워 내며 시가의 끝을 자르고 물었다.
칙-.
‘그래봤자 결국엔 물량이 다지.’
아무리 숙련된 놈들이라도, 이 코네티컷 안에선 비스트(Beast)의 마수를 피해 갈 수 없다.
‘일반인으로 위장한 부하들을 밤낮으로 길거리에 풀고, 제이슨 우, 그놈이 사는 학교 기숙사에도 사람을 넣어 봐야겠어.’
제이슨 우는 결국에 잡히게 될 거다.
그냥 잠적했다면 다른 사람을 구해 봤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비스트의 힘을 보여 줄 것이다.
가족, 친구, 명예, 그리고 본인의 몸뚱이.
놈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협박해도 응하지 않으면, 사지를 토막 내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빅 조지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외진 곳에 있는 임유나의 별장에 도착했다.
“와…….”
풍원한정식도 대감 집 느낌이었는데, 이 별장은 무슨 백작가 저택같이 고급스러웠다.
“여기가 진짜 유나 씨 별장이에요?”
“네. 아버지가 구해 주셨어요. 급하게 연락해서 정리하긴 했는데…….”
“에이, 괜찮습니다. 우리 직원들이 알아서 다 치워요.”
머뭇거리는 임유나를 지나 정문을 열었다.
덜컹.
“오, 넓은데요?”
내부의 바닥은 목재였다.
로비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고, 채광이 잘 되는지 조명이 꺼져있음에도 주변이 환했다.
유나 씨가 계속 걱정하길래 기대치를 점점 낮추고 있었는데, 이건 확실히 기대 이상이네.
“이 정도면 저희 직원들도 충분히 지낼 수 있겠네요.”
“다행이네요. 지내실 방들 한번 둘러보시겠어요?”
“혹시 먼저 장비부터 확인할 수 있을까요? 자는 건 맨바닥에서도 잘 수 있거든요.”
“아, 그럼 이쪽으로.”
임유나의 뒤를 따라가며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옛날 미국 공포영화 같은 데서 본 듯한 내부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여기예요.”
임유나가 문 하나를 가리켰다.
지하실인가? 이거 본격적인데.
과연 유나 씨의 아버지가 뭘 수집해 놨을지 기대된다.
손으로 밀자 오래된 소리와 함께 나무 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리고 어두운 계단이 아래로 이어졌다.
“호.”
딸깍.
불을 켠 임유나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자, 지하 창고의 광경이 보였다.
“……!”
벽과 선반 위에 보관한 총의 개수에 입이 쩍 벌어졌다.
이건 뭐, 거의 박물관이잖아?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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