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91
090화
벽에는 권총부터 엽총, 기관단총, 볼트 액션식 소총까지 다양한 것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또 사격할 때 착용하는 건지 고글과 손목, 팔꿈치 보호대까지 보였다.
“이게 다 아버님이 모으신 거라고요?”
“네. 아끼시던 것들이에요. 한국에 있을 때도 총은 꼭 주기적으로 관리를 맡겼거든요.”
임유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총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니, 파손이나 훼손된 부분은 없었다.
텅 빈 탄창과 약실, 총구 안쪽도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
“저도 혼자 미국에서 지낼 땐 가끔 와서 가지고 놀았어요.”
“그래요?”
임유나는 그 말과 함께 익숙한 동작으로 권총의 탄창을 뽑아 안을 확인했다.
유나 씨의 이런 모습은 상상도 못 했는데.
“뭔가 잘 쏘실 것 같아서 기대되는데요? 한국 가면 사격장이나 같이 가시죠.”
찰칵.
총을 다시 조립한 임유나가 씩 미소를 지었다.
“뭐 하러 한국까지 가요?”
“네?”
“뒷마당에 사격장이 있어요.”
“아!”
맞다. 여기 사격 연습할 수 있는 곳도 있다고 했었지?
.
.
탕!
100미터 정도 거리의 표적 중앙에 총알이 박히고, 임유나가 총을 거뒀다.
짝짝짝.
“와. 진짜 잘 쏘시네요.”
“혼자 심심해서 연습 많이 했거든요.”
나도 어깨에 걸쳐 놓은 엽총을 어깨에 견착하고 표적을 조준했다.
유나 씨한테 지는 모습을 보여 줄 순 없지.
숨을 참고 총열을 목표와 정렬시킨 뒤,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퍽!
“와. 주혁 씨도 잘하시네요.”
“하하. 당연하죠. 2년 군대 갔다 왔는데.”
이번 생은 전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라 그런가, 폼이 아직 안 죽었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총구에서 나오는 연기를 훅 불었다.
-하나! 둘!
그때, 저 멀리서 어렴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 익숙한 구령에 설마 하는 마음으로 정문을 향했다.
“하나! 둘! 하나! 둘!”
“같이 갑시다!”
“저 괴물 같은 인간…….”
달려오던 속도를 줄인 라세흠 부장이 땀으로 번들번들해진 이마를 슥 훔치며 쾌활하게 웃었다.
설마 여기까지 뛰어온 거야? 진짜로?
“여기 맞네. 뛰어!”
“으아아!”
“썅!”
그 뒤로 기진맥진한 부대원들이 헉헉대며 하나둘 도착했다.
그 독한 정태섭과 백기준도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잔디 바닥에 털썩 드러누웠다.
“헉…….”
“씨……. 하아…….”
진짜 상상을 뛰어넘네.
땅덩어리 좁은 한국이면 몰라도, 무슨 미국 땅에서 달려서 이동해?
별로 지친 기색도 없는 라세흠 부장이 허리춤에 손을 얹고 호통쳤다.
“고작 40km 뛰었다. 마라톤도 이거보단 길어!”
아니, 왜 시키지도 않은 마라톤을 하고 그러세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자, 백기준이 힘겹게 머리만 들고 대꾸했다.
“누가 마라톤을 전력 질주로 뜁니까!”
“이 새끼들이 체력은 줄었는데 혓바닥만 길어졌네. 여기 저택 스무 바퀴를 뛰어 봐야 정신을…….”
“부장님, 잠깐만요.”
나는 슬슬 미친 호랑이 교관으로 돌아가려는 부장님을 말렸다.
이러다 작전 들어가기도 전에 애들 다 골로 보내겠어.
“조만간 총질해야 하는데 이렇게 굴려서 좋을 거 없잖습니까.”
“음.”
내가 라세흠 부장을 말리니 드러누워 있던 작전 팀원들이 초롱초롱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엄지를 들었다.
“역시 주혁이야.”
“대표님, 사랑합니다…….”
그렇지. 이제야 대표의 위엄이 사는구만.
“나머지는 한국 가서 마저 하시고, 일단 들어가서 회의부터 하시죠.”
그리고 이어지는 내 말에 라세흠 부장과 팀원들의 표정이 교차했다.
“야 이 새끼야! 그냥 닥치고 있어!”
“한국 가서는 무슨 한국 가서!”
라세흠 부장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 나머지 60km는 한국 가서 하도록 하지.”
털썩. 털썩.
팀원들의 분노가 이제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부장님! 저 새끼도 같이해야죠!”
“같이 안 하면 저도 안 합니다!”
이 새끼들이 어디 발목을 붙잡으려고.
살포시 가운뎃손가락을 들며 최대한 얄미운 표정을 지어 줬다.
“꼬우면 대표하든가.”
나는 낄낄대며 시뻘게진 직원들에게 손짓했다.
“환영은 생략하고, 일단 작전부터 짜 봅시다.”
놈들을 무너뜨릴 계획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
-어. 더 이상은 뭐 나오는 게 없네. 그런데 이 사람은 왜 조사하는 거야? 용의자?
“아니야. 그냥 궁금한 게 있어서. 고맙다, 한결아.”
-어. 다음에 밥이나 한 끼 사.
뚝.
서해결 검사는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남서 형사지원팀 팀장인 동생에게 이주혁의 신상정보를 요구했다.
하지만 특별히 나오는 건 없었다.
군 생활을 좀 특별한 곳에서 하긴 했는데, 단순히 그걸로 사람을 의심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냥 착각인가.’
속을 알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선한 편에 서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 방법은 선하다고 할 수 없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분명히 마음이 가는 사람이었지만,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
게다가 배성복 서장에게 들은 말이 있으니, 최소한의 확인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결이가 최근 서울에서 뜨는 흥신소가 하나 있다고는 했는데.’
이주혁이 흥신소를 이용했다고 한 소리 한 게 엊그제였기에, 이런 정보 조직을 이용하는 건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알아보니 애초에 업체 이름이 SA흥신소였다.
이주혁이 운영하는 경호, 보안업체 또한 SA. 아마 SA흥신소도 이주혁의 소유가 아닐까.
그렇기에 아무 데서나 이주혁의 정보를 구할 수 없었다.
그 바닥에선 정보를 사 간 사람의 정보도 거래하기 일쑤니.
‘그냥 직접 발로 뛰어야겠어.’
아무래도 항상 하던 방식이 편할 것 같다.
어차피 이주혁도 누군가를 직접 대면했을 테니까, 조사하다 보면 나올 거다.
믿어도 될 사람인지, 아니면 항상 의심해야 할 사람인지 말이다.
서해결 검사는 풍원한정식으로 향했다.
***
“오오.”
“와. 미국에는 이런 데가 진짜 있네. 우리 할매 집 몇 배야?”
“크다.”
“뭔가 으스스한데.”
어느새 대충 회복한 팀원들이 임유나의 별장 안을 둘러보며 불을 처음 발견한 유인원처럼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래. 기껏해야 이제 이십 대 초반인 녀석들이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겠지.
나는 손뼉을 쳐 시선을 모았다.
“여러분은 대충 방 하나씩 잡아서 숙식하시면 됩니다. 침대가 다 있는 건 아니니까, 없으면 대충 이불 깔고 주무시고.”
“야, 비바람 안 들어오는 게 어디야.”
“아주 좋은 자셉니다. 부장님.”
훅훅 대는 팀원들에게서 조금 떨어져 서 있던 임유나가 말을 보탰다.
“식재료는 제가 사람 시켜서 채워 놨으니까 편하게 드시면 돼요.”
잠깐, 편하게 먹게 두면 안 될 텐데?
나는 혹시 해서 조용히 물었다.
“유나 씨. 노파심에서 여쭤보는 건데, 이 사람들 최소 5인분은 먹습니다.”
“네, 네?”
“냉장고나 찬장에 자물쇠 걸어 놔야 돼요. 진짭니다. 우리 회사 탕비실 비품도 남아나질 않아요.”
그걸 들었는지 팀원들이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하며 입을 모아 날 비난했다.
“우우-.”
“우-. 이주혁!”
“SA시큐리티 대표는 식재료를 충당하라!”
“충당하라!”
이 밥 먹는 하마 새끼들.
“그래. 시간 날 때 채워 둘 테니까, 일단 통성명부터 하자. 앞으로 며칠 간은 같이 지내야 하니까.”
“그러자고. 임 사장님. 전 기억하시죠?”
라세흠 부장의 물음에 임유나가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죠. 라세흠 부장님 아니세요?”
“오! 호호호. 기억하시네요?”
“이름이 특이하셔서 기억에 남네요. 아, 처음 뵙는 분도 계시니까……. 저는 풍원한정식을 운영하는 임유나라고 합니다.”
유나 씨가 수줍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와 동시에,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팀원들이 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지금은 주철수 곁에 남아있는 배상훈까지 있었으면 진작에 개판이 나도 백 번 났을 분위기다.
그나저나 아직 연락이 없네. 한국 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우오오-!”
“예뻐요-!”
“임유나! 임유나! 임유나!”
라세흠 부장이 흥분한 채 연신 임유나를 연호하던 녀석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억.”
“야. 제수씨 되실 분이다.”
“예? 진짜요?”
“아, 부장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니까요. 총 쏘기 싫으시죠?”
“쏘리. 이 대표.”
힐끗 옆을 보니 유나 씨의 얼굴이 엄청나게 붉어져 있었다.
그래. 민망하겠지. 이런 시커먼 악성 우결충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해 버렸으니.
나중에 따로 사과드려야겠네.
“흠흠.”
그때, 고문 성애자 백기준이 땀에 젖은 머리를 비니로 가리며 튀어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SA시큐리티 작전팀의 에이스, 백기준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이 새끼가?
느끼한 소개에 내가 한 소리 하기도 전에 팀원들의 야유가 폭주했다.
“지랄 염병을 한다.”
“이 새끼 위험한 놈입니다.”
“막 사람 괴롭히는 거 좋아하는 새낍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 하하.”
슬슬 커트해야겠다. 이것들이 끝을 모르네.
“어차피 유나 씨는 니들한테 관심 없으니까 자기소개는 집어치우고, 이번 작전의 키(key)가 될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나는 뭘 하는지 몰라도 아직 방에 짱박혀 있는 우재성을 큰 목소리로 불렀다.
“우재성 씨-!”
잠시 기다리자, 장갑을 낀 우재성이 마스크를 벗으며 계단을 내려왔다.
“위에서 뭐 하고 계셨습니까?”
“방 청소 중이었습니다. 먼지가 좀 남아 있어서요.”
청결에 좀 민감한가 보네.
고개를 끄덕이고 팀원들에게 우재성을 소개했다.
“여긴 우재성 씨. 예일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수석이자 천재 중 천재, 무려 거대 갱단이 탐내는 초특급 인재지.”
“오. 경영?”
“지금은 갱단한테 쫓기고 있는 몸이긴 하지만, 우리 작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겁니다.”
내 말을 듣던 라세흠 부장이 우재성에게는 보이지 않게 손으로 가린 채 입 모양으로 물었다.
‘미끼?’
끄덕.
마주 고개를 끄덕인 라세흠 부장이 우재성을 위아래로 쓱 훑어봤다.
“이쪽은 우리 회사 경호사업부 부장님.”
내 소개에 우재성이 라세흠 부장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우재성입니다. 여기선 제이슨 우라고 불리니 편한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라세흠입니다.”
턱.
라세흠이 자기 손에 비하면 도자기같이 여린 우재성의 손을 꽉 붙잡았다.
“음.”
“……뭐 하는.”
“힘이 너무 없으시네.”
“예?”
“이런 몸 상태로는 갱단한테서 살아남기 힘들 겁니다.”
우재성은 무슨 말이냐는 듯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미리 애도를 표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라세흠 부장이 씩 웃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런 몸으론 제대로 저항도 못 하고 당할 거란 말입니다. 하체는 그나마 낫긴 한데 여전히 부족하고, 상체는 너무 멸치네요.”
“뭐라고요?”
턱.
우재성의 어깨 위에 라세흠 부장의 커다란 손이 얹혔다.
“같이 운동 좀 하자는 말입니다.”
불쾌한 기색을 보이던 우재성이 당황한 표정으로 라세흠의 몸과 날 번갈아 돌아봤다.
이 인간이랑 함께 운동하는 게 맞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안 그러냐, 주혁아?”
“맞죠.”
“예? 이주혁 씨.”
“크흠.”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봤다.
미안하다. 이건 나도 어떻게 방법이 없네.
그러게 평소에 운동 좀 하지 그랬어?
“그럼, 가실까요.”
“아니, 잠깐. 이주혁 씨! 이게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어떻게 좀…….”
“잘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팀원들도 음흉한 표정으로 둘을 보고 있었다.
재밌는 놀잇감을 찾은 맹수들의 표정이었다.
이 상황에 내가 우재성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우재성 씨, 파이팅!”
넌 할 수 있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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