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ion Sword Battle RAW novel - Chapter 201
202.
#백중세 (2)
“사황이었군. 근데 여기에는 왜 왔지?”
사황 위태극.
절대천마가 방금 정상에 올라온 사령신군 섭무악에게 백 년 전의 호칭을 부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에 사령신군은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천기가 이리 요동치니 궁금해서 와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천기를 헤아리게 되니 천하가 흘러가는 게 또 재미있더군.”
“후후. 그게 재미있었나 보군. 나라면 혼령이 너덜너덜하니 탈경에 오르기 막막해서 걱정만 잔뜩 생겼을 텐데 말이야. 아! 올라갈 수 없으니 거기서 즐기기로 한 건가?”
“천마가 나를 다 생각해줄 줄은 몰랐네만,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편할 대로 생각해. 억지로라도 그만큼 살았으면 충분히 오래 살았지.”
절대천마와 사령신군이 서로를 빈정거렸으나, 그들은 불쾌한 낯빛 한 점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이 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인사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사령신군이 검노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진인이 이승에 있을 줄은 몰랐소. 이게 대체 무슨 조화요?”
[순천의 조화다. 그러는 네놈은 무슨 생각으로 선천의 도를 어긴 것이냐?]
“그게 순천이오? 정말로?”
[후천의 술로써 선천의 도를 속여 역천을 행했으니, 순천의 조화를 모를 수밖에!]
“말도 안 되는군. 하늘도 정말 불공평하지. 나는 이토록 궁구해도 천명을 모르겠는데, 진인에게는 천리(天理)의 문을 활짝 열어두기라도 한 모양이오.”
검노야가 사령신군을 꾸짖자, 사령신군이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그때, 절대천마가 사령신군을 비아냥거렸다.
“나도 알겠는데 정말 모르나 보군.”
“네놈도 안다고?”
“별것도 없어. 방문좌도의 술법 따위를 집대성해왔으니, 그 꼴인 거지.”
“무시하지 마라. 그 술법으로 천리를 역행한 이 몸이시다! 그러는 네놈은 뭐가 그리 잘났느냐? 네놈에게도 역천의 인이 빛나고 있거늘!”
사령신군이 눈을 부라리며 성을 낸 순간, 절대천마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비웃었다.
“그게 보였어? 후후후. 하지만 상관없어. 너와 다르게 나는 탈마경까지 올라갈 수 있으니까.”
“뭐, 뭐라고?”
“내 혼령을 봐서 알잖아. 난 당신처럼 구질구질하게 살아오지 않아서 탈경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야.”
“말도 안 돼!”
“그게 수준 차이다.”
절대천마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비로소 뜻한 바를 이루었는지, 얄미울 정도로 으스대고 있었다.
이는 절대천마가 사령신군과 은연중에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그와는 다르다는 알량한 자존심 싸움의 승리에서 나온 모습이었다.
그때, 검노야가 탄식했다.
[둘 다 후천의 술로써 천지조화의 순리를 어겼거늘, 아무도 낯부끄러워할 줄을 모르는구나! 허!]
“왜 낯부끄러워해야 하오? 마(魔)는 원래 순리를 거스르는 자의 것이오. 진인은 너무 융통성이 없소.”
[닥쳐라.]
“진인. 내 생각도 그렇소. 살아서 이루고 싶은 게 많아 노력했을 뿐인데, 그게 어찌 문제가 된단 말이오? 죽으면 이룰 수 없지 않소?”
[한낱 궤변일 뿐이다.]
절대천마와 사령신군이 검노야에게 연이어 반박해왔다.
그러더니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
“……!”
상황을 주시하던 진우선이 섬뜩한 느낌에 급히 눈을 부릅떴다.
‘스승님!’
[그때와 똑같구나! 둘의 마음이 통했다!]
‘아!’
진우선이 검노야의 말을 들은 것과 동시에 금빛 기운을 잔뜩 피워 올렸다.
콰앙-!
콰콰쾅-!
절대천마와 사령신군의 신형이 사라졌다.
아니, 그걸 알아채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암격이 쏘아졌다.
출렁-!
패왕금룡신공의 황금빛 호신강기가 움푹 파여나가고 세차게 물결쳤다. 찰나의 차이로 먼저 피어오르지 않았다면, 감당해내지 못했으리라.
“역시 이걸 펼쳐내는군. 진을 파훼하느라 후천의 내공은 다 바닥난 거겠지?”
“이 힘도 가지고 있었다고?”
일전에 패왕금룡신공을 겪어본 사령신군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 반해 절대천마는 묵색 강기를 풀풀 피워댄 채, 놀란 눈빛을 감추고 서늘한 눈초리로 진우선을 바라보았다.
“아주 작심하고 키운 거였군. 검선과 패왕의 무공을 이었을 줄이야!”
패왕(霸王)은 무천 이전에 불렸던 조문신의 옛 별호였다. 정무맹이 창설되고 강호를 안정시키기 전까지 널리 불렸던 것으로, 신마황의 대결 이전의 강호인이라면 패왕이 익숙할 터였다.
어쨌건, 사령신군과 절대천마가 재차 공격을 터트렸다. 진우선에게 잠시의 틈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쐐애액-!
사령신군에게서 피보다 짙은 강렬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흡!”
진우선이 다급하게 숨을 들이마시며, 광륜검으로 핏빛 섬광을 쳐냈다.
그때 사령신군의 가슴팍에서 심혼마저 섬찟할 요사한 구체가 솟아 나왔다. 극사마저 넘어선 사기가 지독하게 뿜어지고 있었다.
‘혈옥!’
진우선이 단박에 알아챘다.
한데 시뻘건 혈옥의 모습이 일전과는 사뭇 달랐다. 정련된 핏기를 짙게 머금은 채, 심장이 뛰듯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고 있었다.
‘사사지옥혈공의 정수다!’
여의혈옥(如意血玉)이었다.
진우선은 비록 초식의 이름까진 몰랐으나, 그 정체를 대번에 알아챘다.
여의혈옥이 맹렬히 숨을 쉬었다. 팽창과 수축을 거칠게 거듭하면서, 사방으로 극악무도한 사기의 섬광을 마구 뿜어댔다.
푸슥!
흐르륵-.
진우선이 신묘한 보법으로 여의혈옥의 섬광을 피하자, 꿰뚫린 땅 거죽이 그대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직경만 오 장여의 구덩이가 삽시간에 생기고 있었다.
‘이게 무슨!’
하지만 놀라기도 잠시였다.
푸스스슥!
섬광이 마구 쏘아지자, 평범한 산꼭대기의 지반 곳곳에 용암이 흐르는 듯 녹아들었다. 발 디딜 곳이 없어 보였다.
‘막아야 한다!’
피하기만 해서야 끝이 없으리라.
스릉-!
광륜검의 검신에서 금빛 선기가 은은하게 피어올랐다. 그와 함께 진우선의 검초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금선무였다.
퍼퍼펑-!
진우선의 너울거리는 검초에 여의혈옥에서부터 뿜어지는 섬광들이 한없이 말려들더니, 둘둘 감겼다고 느껴질 때쯤 광륜검이 섬광을 베었다.
마치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핏빛 섬광을 소멸시키는 한 초식이었다.
그때였다.
“이것도 어디 한번 견뎌봐라!”
콰콰콰쾅-!
여의혈옥이 부르르 떨면서 혈무(血霧)를 피워내더니, 그 혈무 속에서 작은 알갱이들이 빗줄기 쏟아지듯이 터져 나왔다. 가히 혈우(血雨)나 다름없었다.
후웅-!
그에 진우선에게서 금빛이 어린 바람이 일었다. 미풍이 곱게 주변을 감싸 안을 때, 금룡이 파리를 트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곧, 진우선의 검초를 따라 금룡이 하늘로 올랐다.
그와 함께 혈우가 단박에 금룡에 파묻혀 소멸했다. 혈우가 넓게 퍼져서 쏟아져 내렸음에도 한 점 티끌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데 바로 그 순간.
섬뜩!
‘뭐지?’
심혼이 부르르 떨려왔다. 오감을 벗어난 숨막히는 살기가 온몸을 짓눌러왔다.
쿠웅-.
거대한 망치로 내려치는 듯한 충격이 심혼을 때렸다. 몸이 순식간에 휘청이며 허공을 날아 뒤로 멀어져갔다.
‘절대천마!’
진우선이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암중에서 심혼을 후려치는 무공이 있다니!
진우선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떠내려가는 몸을 붙들었다.
그리고 일어서서 얼얼한 얼굴로 절대천마를 바라보았다. 직전의 한 수를 받아내는 순간, 그의 위치를 알아챈 상황이었다.
한데, 절대천마 역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한 진우선보다 공격한 자기가 더 놀란 얼굴이었다.
“허어-! 패왕금룡신공이 파천마혼을 견뎌낼 줄이야! 선기가 어리니 별것이 다 되는구나!”
“역시 파천마혼이었군!”
파천마혼은 그 이름처럼 마혼으로써 상대의 심혼을 깨부수는 무공인 듯했다. 절대천마의 취향을 담아서인지, 참으로 직관적이라 할 수 있었다.
“크크크. 좋군! 재밌어! 역시 호적수가 있어야 싸울 맛이 나!”
절대천마가 온몸으로 묵빛 기운을 피워올리며, 광소를 흘렸다.
그는 사냥꾼의 눈을 한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싸움에 미친 자의 표정이 이러하리라.
[우선아. 괜찮으냐?]
검노야가 잠깐 생겨난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얼른 진우선에게 말을 걸었다.
‘스승님. 다 막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둘의 공격이 함께 들이닥치니 촌각의 틈마저 없습니다.’
[나도 보았다. 우선아, 명토의 기운을 내게 흘려주거라. 많지 않아도 된다.]
‘스승님! 오행진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부족하실 겁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수를 내보마!]
검노야가 눈을 빛냈다.
“후우.”
진우선이 숨을 크게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절대천마가 이죽거렸다.
“크큭! 숨이 거칠군. 진인에 앞서 먼저 넘어서라던 아까의 패기는 어디로 갔지?”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소.”
“그렇겠지. 진인이 뭔가 알려준 것 같은데, 들리지 않더군. 뭐, 어떻게 하든지 나를 더 즐겁게 해주면 좋겠어.”
진우선은 그에 대꾸하지 않은 채, 혈도를 휘돌던 광륜의 오행진기를 모두 끌어올렸다.
신마황동을 돌파하고 잔백마군마저 상대하느라 상당한 내공이 소모된 까닭에, 오행진기의 빛깔이 다소 옅었다.
후우욱-.
그중에 명토의 기운, 즉 명부의 영기가 검노야에게로 빠르게 흘러 갔다.
검노야의 영체에 짙은 영기가 어렸다. 그러자 보이지 않아야 할 영체가 인세에 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때, 검노야가 매섭게 외쳤다.
[나오너라.]
그 순간!
쿠르르릉-!
폭발적인 일진광풍이 터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고고한 기품의 잿빛검 한 자루가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에 절대천마와 사령신군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현, 현월검?”
“진인은 영체인데 그 검을 쓸 수 있단 말이오?”
하지만 검노야는 그들의 놀람에 대꾸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전에 없이 엄정하고 사나운 눈빛으로 둘을 노려보며 일갈했다.
[사와 마의 주인이었던 너희들은 그때와 변한 게 없구나! 선천의 도를 얻지 못한 것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인데, 역천을 행하고도 여전히 그러하구나. 내 어찌 너희들을 두고 볼 수 있을까!]
쿠쿠쿠쿠쿵-!
검노야의 외침과 함께 산천초목이 굉음을 내며 한없이 떨더니, 무지막지한 선천의 기운이 그에게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촤랏!
검노야가 현월검을 허공에 한 차례 튕겼다.
콰아앙-!
검에 어린 회색의 선기가 거친 파공음을 쏟아내며 허공을 찢어버렸다.
“진, 진인! 이 강대한 힘은 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잿빛 차가운 안광을 흘리는 검노야가 냉철하게 대꾸했다.
[너희들을 벨 힘이다!]
***
한편.
어둠이 가득한 밀실에서 손바닥만 한 동경(銅鏡)을 들여다보는 사내가 있었다.
“이로써 자하선옹도 얻었군. 흐흐흐흐.”
사내가 소름 끼치게 웃었다.
동경에서 무엇이 보이기에 그렇단 말인가!
그러더니 웃음을 감추고, 인간이 낼 수 없을 법한 극저음의 음성을 내뱉었다.
“옴 마유라 기랑데이 소와카!”
그 순간.
동경에서 뿜어지는 빛깔이 바뀌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믿을 수 없게도 동경 속에서 작은 인형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 아닌가.
“후후후! 그랬나?”
사내가 뜻 모를 말을 흘렸다.
그러면서 동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싸워라! 계속 싸워라!”
사내에게서 사나운 기세가 피어 올랐다. 누군가 곁에 있었다면 모골이 송연하여 몸서리쳤으리라.
어쨌거나, 사내가 잠시 후 고개를 들었다.
동경에서 흐릿하게 흘러나오는 빛이 그의 얼굴을 비치니, 황금빛 가면이 샛노란 빛을 반사했다.
이마에 새겨진 천(天)자도 얼핏 보였다.
“때가 거의 무르익었군!”
사내가 밀실의 한 벽을 밀고, 밖으로 나섰다.
“존자시여!”
사내를 부르는 수하의 음성이 밀실에 잠시 들어왔다가 갇혀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