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Fake Bride Who’ll Run Away Someday RAW novel - Chapter (1)
언젠가 도망칠 가짜 신부입니다 (1)화(1/91)
<1화>
‘……거기서도 미움받으면 어떡하지?’
우울한 얼굴로, 에리카가 생각했다.
마차가 심하게 덜컹거려 마른 몸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으나, 그런다고 에리카의 생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두려워. 겁이 나.’
블랑체 후작가에서 수도의 대신전까지는 그리 먼 길이 아닌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늦게 도착했으면 했다.
덜컹!
그때 또 한 번 마차가 크게 흔들렸다.
배긴 엉덩이가 어딘가에 잘못 부딪혀 에리카의 눈에 찔끔 눈물이 고였다.
소녀가 심각하게 말라서 더 아픈 탓도 있겠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마차였다.
후작가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질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마부가 일부러 험한 길만 골라서 가기라도 하는 건지, 덜컹거림은 그 후로도 쭉 이어졌다.
에리카의 걱정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만약 실수라도 한다면…….’
그저 가정만 했을 뿐인데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식은땀도 비죽 솟아올라, 새벽부터 곱게 단장한 것도 무색하게 앞머리가 이마에 찰싹 달라붙었다.
술렁대는 마음이 영 가라앉지를 않았다.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직 어린 그녀에겐 상당히 벅찬 임무였다.
그렇기 때문일까?
한번 두려움을 인식하자, 안 그래도 별로 없던 자신감이 땅굴을 파고들었고, 머릿속엔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이 이어졌다.
‘어, 어떡하지? 만약 실수하면, 그러다가 들키면……!’
암담함에 에리카가 마차 벽에 콩, 콩 제 머리를 찧었을 때였다.
콰악!
커다란 손이 소녀의 어깨를 힘주어 움켜쥐었다.
“아……!”
깜짝 놀란 에리카가 서둘러 정신을 차렸다.
소녀가 동그래진 눈으로 제 옆을 돌아보자, 미간에 세로로 주름살이 접힐 정도로 인상을 쓰고 있는 봉피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보, 봉피쥬 님…….”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은 에리카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입이 바싹 말랐다. 그녀는 봉피쥬, 후작가의 하녀장이자 후작의 최측근인 사람이었기에 에리카에겐 무척이나 어려운 사람이었다.
봉피쥬는 짜증스러운 기색을 숨기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들키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 같군요.”
이 마차엔 에리카와 봉피쥬, 단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봉피쥬는 다소 과할 정도로 에리카를 노려보았다.
주눅이 든 소녀가 벌벌 떨리는 입술로 변명하려 했다.
“그, 그게 아니라…….”
“말대답하다니. 또 그 못된 버릇이 도지는가 봅니다.”
꽈악!
아직 소녀의 어깨를 잡고 있던 봉피쥬의 손에 더욱 강한 힘이 실렸다.
“죄, 죄송해요.”
에리카가 잔뜩 어깨를 움츠리며 두 눈을 질끈 감자, 뒤이어 봉피쥬의 서늘한 질책이 뒤따랐다.
“가르쳐 드렸을 텐데요. 한숨을 내쉬는 것은 경박한 일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자세를 똑바로 하십시오.”
“아……. 죄, 죄송해요.”
에리카는 하녀장에 불과한 봉피쥬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고귀한 아가씨 옷을 입고 있다고 해서, 자신이 진짜 아가씨는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한편 에리카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봉피쥬는 서늘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어지는 그녀의 잔뜩 날이 선 목소리에 에리카는 더더욱 움츠러들었다.
“명심하고 또 명심하십시오. 당신은 지금 블랑체 후작가를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것을요. 뼈에 새기면 더 좋고요.”
“……네.”
에리카가 곧장 대답했으나 영 믿음직스럽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이 일을 받아들인 이상, 당신에게도 의무가 있다는 걸 제대로 이해해요. 성인식을 치르기 전까지, 진짜 에리카 아가씨 노릇을 완벽하게 해내어서 부디 블랑체 후작가의 체면이 상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세요.”
봉피쥬는 재차 말을 이었다.
“절대, 아클리프 대공가에 티끌만 한 꼬투리도 절대 잡혀선 안 됩니다. 제 말, 알아들었나요?”
“네, 봉피쥬 님.”
에리카가 순종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그 순간, 봉피쥬가 ‘쯧’하고 혀를 찼다.
“고개 끄덕이지 마세요. 귀족가의 어느 영애도 그렇게 천박하게 대답하지 않으니까요.”
천박하다.
모욕을 안겨 주려고 일부러 힘주어 내뱉은 것이 분명한, 의도가 빤히 읽히는 그 어감에, 에리카의 어깨가 더욱 움츠러들었다.
소녀는 치맛자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가, 이내 이 옷의 가격을 떠올리곤 손가락에서 힘을 풀었다.
대신, 입안의 여린 살을 힘껏 깨물었다가 놓으며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봉피쥬는 어지간히도 짜증이 난다는 듯 작게 혀를 찬 뒤 거듭 당부했다.
“어째서 당신이 블랑체 후작가의 얼굴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일이 이왕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어쩔 수 없네요. 부디 처신에 신경을 쓰도록 하세요.”
“……새겨듣겠습니다.”
목소리도 자꾸만 움츠러든다.
기어코 고개를 떨구고 만 에리카가 바닥을 바라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번에도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 뻔했지만, 다행히 중간에 정신을 차리고 머리에 힘을 주었다.
봉피쥬는 여전히 에리카라는 존재가 못마땅한 듯 보였지만, 다행스럽게도 더 꼬투리를 잡지는 않았다.
“잘하세요.”
봉피쥬가 소녀의 어깨를 놓아주며 매섭게 경고했다.
그녀는 못마땅한 눈빛을 에리카를 향해 길게 흘리다가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휴.’
그제야 봉피쥬로부터 자유로워진 에리카는 조금이나마 긴장을 덜 수 있었다.
소녀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시선을 내려트렸다.
행여 귀한 드레스에 주름이라도 생길까, 차마 옷감을 부여잡지는 못하고 손가락 끝만 만지작만지작 얽어대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마차의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벌써…… 대신전 근처에 왔구나.’
목적지에 다다랐음을 깨달은 에리카가 두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가 떴다.
‘이제 정말 방법이 없어.’
그래. 사실은 에리카도 알고 있었다. 이 마차에 오른 이상, 더 이상 제게 도망갈 길이 남아있지 않음을.
‘어떻게든 해내야만 해.’
도사리는 불안함이 지워지지 않는데도 소녀는 조용히 마른침을 삼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오늘은 에리카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 * *
에리카 블랑체.
블랑체 가문의 무남독녀 외동딸.
하지만 달수를 채우지 못하고 조산한 까닭 때문인지 날 때부터 허약했다.
난산이었기 때문에 후작 부인 역시 딸을 낳다가 죽었다.
어렵게 얻은 아이를 후작가의 사람들은 애지중지 키웠다.
행여 바람결에 생채기라도 날까, 모든 사람이 전전긍긍하며 떠받들듯이 키우자 아이는 당연히 안하무인으로 자라났다.
도무지 어린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포악했고, 그 탓에 수없이 유모가 바뀌었다.
양육자가 계속 교체되자 아이도 안정된 삶과 멀어졌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구한 인물이 바로 줄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평민이었다.
한데 신기한 일이었다.
그 젊은 유모에게도 에리카 블랑체와 같은 나이의 딸이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딸의 이름마저 ‘에리카’. 둘이 똑같았다.
그래서 에리카 블랑체 후작 영애는 유모의 딸을 몹시도 싫어했다.
“넌 그 이름 쓰지 마! 그건 내 이름이야! 감히 너 따위가 쓸 수 있는 이름이 아니라고!”
말도 안 되는 억지라는 것을 그녀도 알고 모두가 알았다.
하지만 에리카 블랑체는 어렸고, 그래서 억지를 부릴 수 있었다.
어리고 아픈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고 싶었던 블랑체 후작은 유모를 불렀다.
“줄리아. 자네 딸 이름을 바꾸면 어떻겠나? 사람들이 헷갈리기도 하고 말이야. 아직 어리니, 지금부터 새 이름으로 불러도 금세 익숙해질 거야.”
물론 권유를 가장한 압박이었다.
“아이 아빠가 남긴 유일한 것이에요. 죄송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보상금을 챙겨 주겠네. 왜 그리 고집이야? 고작 이름 하나로.”
“죄송합니다, 후작님.”
그러나 유모는 단호했고, 블랑체 후작이 계속해서 이름 바꾸길 종용한다면 사직을 하겠다는 뜻을 강경하게 내비쳤다.
“쯧…….”
하지만 에리카 블랑체가 젊은 유모에게 보이는 애착이 상당했다.
그녀를 내보내는 것보단 옆에 데리고 있는 것이 제 딸에게 더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판단에, 블랑체 후작은 어쩔 수 없이 한 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거 원. 이렇게까지 강경할 줄 몰랐네. 좋아, 아이 이름은 계속 쓰게나. 하지만 내 딸 앞에선 자네 딸 이름을 경솔히 불러 자극하는 일만큼은 삼갔으면 좋겠는데.”
“…….”
고심 끝에 줄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 앞에선 조심하겠습니다.”
그래서 소녀의 원래 이름인 에리카 대신, ‘유모 딸’이라거나 ‘리리’, ‘리카’ 등으로 불렸다.
유모의 딸이었던 어린 에리카는 많이 섭섭했다.
줄리아 말고는 더 이상 그 누구도 불러주지 않는 이름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불만 따윈 꾹 눌러 참을 수밖에 없었다.
후작가는 엄마의 직장이었고, 저 역시 얹혀사는 처지에 불과했으므로.
그렇게 블랑체 후작가에서 몇 년을 숨죽이며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후작님께서 저를 찾으신다고요?”
유모의 딸 에리카가 블랑체 후작에게서 갑작스러운 부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