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Fake Bride Who’ll Run Away Someday RAW novel - Chapter (15)
언젠가 도망칠 가짜 신부입니다 (15)화(15/91)
<15화>
“편식은 좋지 않은 습관이야.”
“……네.”
“아무래도 내가 뜯어 고쳐줘야겠군. 따라와.”
“……네. 네?”
“내 눈앞에서 한 그릇 다 먹어. 그때까진 못 잘 줄 알아.”
그가 덥썩 에리카의 손을 잡았다.
동그랗게 토끼 눈을 뜬 채 그를 올려다본 상태 그대로, 세바스티안의 손에 이끌려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순식간에 봉피쥬와의 거리가 멀어졌고, 에리카는 그렇게 식사 중인 대공가의 기사들 사이에 자리를 한 자리를 잡았다.
그녀를 앉히기 무섭게 그릇을 빼앗은 세바스티안은 직접 스튜를 가득 담아 내밀었다.
“어서 먹어.”
국물만 가득하던 그릇에 건더기가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우물쭈물하며 받아 든 에리카는 눈치를 보며 떠먹기 시작했다.
느릿느릿하던 속도는 조금씩 빨라졌다.
채소를 싫어하여 먹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렸다는 봉피쥬의 말과 달리, 에리카는 그날 밤 세바스티안이 보는 앞에서 제 몫의 스튜를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저기…… 저 다 먹었는데요.”
후작 영애의 몸가짐, 귀족 예법…….
그런 것들은 새카맣게 잊은 터였다.
에리카는 칭찬을 바라는 아이처럼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바닥까지 싹싹 긁은 빈 그릇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남는 거 있으면…… 더 주시면 안 돼요?”
* * *
그날 이후로 에리카는 기사들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세바스티안과 함께하게 된 것이다.
오늘따라 스푼으로 스튜를 깨작깨작 뒤적거리던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세바스티안이 지적하듯 말했다.
“팍팍 먹어. 제대로 안 먹으니까 그렇게 작지.”
“……네.”
벌서 며칠째 이어지고 있는 구박이지만 에리카는 상처받지 않았다.
그 말에 악의가 담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거북하지 않은 까닭이다.
“로투족도 너보단 클 거야.”
그 순간 에리카의 볼에 바람이 들어가며 조금 빵빵해졌다.
로투족은 동화 속에 자주 나오는 이종족이다.
머리는 좋지만 체구가 무척이나 왜소해서 성장이 다 끝나도 그 키가 인간으로 따지면 성인 여성의 골반에나 겨우 오는 소인(小人)이다.
물론 실재하지 않으니 어디까지나 에리카를 놀리기 위해서 꺼낸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입술이 제멋대로 삐죽 앞으로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첫 만남부터 자신을 제 나이가 아니라 그보다 더 어리게 봤던 세바스티안이었다.
에리카가 볼멘소리로 작게 항변했다.
“그치만 전 아직 열 살인데요…….”
키가 작은 건 당연하다는 뜻으로 답하자 세바스티안이 은근히 웃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래서? 로투족보다 크다고?”
“저, 정확히 몇 살짜리 로투족의 키랑 비교하시는 건지…….”
세바스티안의 고개가 다시 그녀의 쪽으로 돌아왔다.
절로 숨이 옅어지며 말을 잠시 끊게 되었다.
꿀꺽.
에리카는 일단 마른침을 한번 삼켰다.
그런 뒤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계속 자신을 바라보는 세바스티안의 시선을 저 역시 곧게 응시했다.
새빨간 눈동자를 마주할 때마다 심장이 쿵쿵쿵쿵 빠르게 뛰었다.
그뿐인가?
세바스티안의 앞에서 다 발가벗겨진 것만 같은 기분이라 마음이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그 바람에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더욱 기어들어 가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리카는 끝까지 말을 이었다.
“기준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푸핫.
세바스티안이 이내 입매를 늘였다.
“참 신기한 성격이란 말이야.”
턱을 괴고 있던 손을 풀며, 그가 제 몫의 음식을 다시금 스푼으로 휘젓기 시작했다.
“소심해 보이는데, 할 말은 따박따박 다 받아치네.”
그 순간 에리카가 움찔하며 노란 눈동자를 좌우로 불안하게 도르륵 굴려댔다.
“죄, 죄송해요.”
대뜸 사과부터 하는 말에 세바스티안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아니. 뭐라고 한 거 아닌데.”
세바스티안이 답지 않게 말꼬리를 흐리다가 답답하다는 듯 슬쩍 콧잔등을 긁었다.
그러다 갑자기 홱 고개를 돌리더니 밀로드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젠장. 여자애들한테는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야?”
묵묵히 제 몫의 식사를 비우고 있던 그가 그제야 식기를 내려놓고 한심한 눈빛으로 세바스티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냥하게 말씀하십시오.”
“방금 되게 상냥하지 않았나?”
세바스티안이 조금 더 커진 눈으로 바로 반문했다.
밀로드의 조언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보좌관은 세바스타안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 사실 이해는 했다.
평소의 모습에 비하자면 상당히 상냥하고 유한 편이긴 했기 때문이다.
노력은 인정하나……. 많이 부족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덧붙였다.
“대공자님 기준 말고 일반인 기준으로요.”
“일반인 기준?”
미간을 모은 채 세바스티안이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딱히 그려지는 게 없었던 듯했다.
그가 골몰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침묵 또한 길어지자 에리카가 슬쩍 끼어들었다.
“저 겁먹은 건 아니에요. 그냥…… 혹시 기분 상하신 건가 싶어서.”
“나도 딱히 기분 상한 건 아니야.”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둘 사이에 대화가 애매하게 끊겼다.
‘어……. 이 다음 말은 어떻게 이어야 하지?’
잠시 황금빛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던 에리카는 다시 세바스티안과 시선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눈을 접으며 웃어 보였다.
그 모습에 피식, 따라 웃어 보인 그가 긴 팔을 뻗어 소녀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이듯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다 이내 시선을 떼고 고개를 휘휘 저으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멀찍이 떨어진 데서 홀로 식사 중인 봉피쥬를 발견한 그가 큰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이봐, 하녀장.”
“예?”
봉피쥬가 갈라진 목소리로 크게 대답하며 식사를 멈춘 채 벌떡 일어섰다.
세바스티안이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명령을 내렸다.
“식수가 부족하군. 근처에 냇가가 있으니 가서 떠오도록 해.”
“지금……요?”
“지금.”
“……예, 알겠습니다.”
봉피쥬는 이제 완전히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세바스티안이 시키는 걸 거부할 용기가 봉피쥬에겐 없었다.
뒤돌아섬과 동시에 얼굴을 찌푸린 봉피쥬가 뛰기 시작했다.
최근, 식사 시간만 되면 세바스티안이 이런 식으로 제게 자잘한 심부름을 시키며 밥을 못 먹게 하고 있었다.
‘벌써 몇 끼나 제대로 먹지 못했어. 또 굶을 순 없다고!’
얼른 물을 떠 와서 식사하리라.
저 멀건 수프라도 먹지 않는다면 정말 낙오될 것만 같았다.
봉피쥬가 이를 악물고 무거운 다리에 박차를 가했다.
왜 제 주인은 저 말고 다른 조력자를 한 명도 딸려 보내주지 않은 건지, 처음으로 블랑체 후작에 대한 원망이 스물스물 기어 나오기까지 했다.
* * *
잠시 행군을 멈추고 말들의 목을 축이는 휴식 시간이었다.
처음의 강행군과 비교하자면 매우 대조적이라고 봐도 무방한 일정 변화였다.
세바스티안의 심경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에리카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며 그는 자주 휴식 시간을 갖게 되었다.
물론, 대공령까지의 남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주된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으리라.
“참 신기한 일이지 않습니까?”
밀로드의 물음에 세바스티안의 시선이 돌아갔다.
“뭐가?”
밀로드가 눈짓으로 한군데를 가리키자 붉은 눈동자가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햇볕이 닿은 구불구불한 빨간 머리카락이 평소보다 더욱 선명하게 반짝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에리카.
소녀가 수줍은 듯한 미소를 얼굴 가득 띄우고 있었다.
“지금 저 꼬맹이가 신기하다는 거야?”
“뭐……. 앞뒤 다 빼놓고 설명하자면 그렇기도 하죠?”
소녀는 아클리프 대공가의 기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최근 자주 보고 있는 모습 중 하나였다.
기사들은 아닌 척 목을 빼며 기다리고 있다가 에리카가 마차 밖으로 나오면 슬금슬금 다가가 무엇인가를 건넸다. 주로 먹을 거였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저 주시는 거예요?”
“물론입니다.”
“……감사해요.”
에리카는 뭐든 잘 먹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랐지만, 에리카는 먹을 것에 대한 집념 같은 게 좀 달랐다.
블랑체 후작가에서 유모의 딸로 살 땐 원하는 걸 마음껏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무척이나 귀한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그래서 최대한 음식을 음미해서 먹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먹는 속도가 무척이나 느린 데다가 다람쥐처럼 양 볼이 빵빵해질 때까지 저장하고 오물오물 한참을 씹기도 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 심장이 위치한 왼쪽 가슴께를 부여잡는 기사들이 속출했다.
“가슴이……! 가슴이 아픕니다!”
“호흡이 가쁩니다! 이러다 죽을 것 같습니다!”
어찌나 팔불출에, 호들갑들을 떨어대는지…….
세바스티안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이 진정으로 자신이 오래 봐온 기사들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기사들은 자신이 당 떨어질 때마다 먹으려고 가지고 다니는 건 과일이나 사탕 같은 것을 그녀에게 주었다.
“그런데 뭐가 신기하다는 거야? 먹을 걸 잘 뜯어낸다는 점이?”
“설마 그렇겠습니까?”
밀로드가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성을 내자 세바스티안도 슬쩍 짜증을 내었다.
“그럼?”
인내심이 긴 편이 아닌 세바스티안이 밀로드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알아듣기 쉽게 말해.”
“아클리프의 군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