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Fake Bride Who’ll Run Away Someday RAW novel - Chapter (17)
언젠가 도망칠 가짜 신부입니다 (17)화(17/91)
<17화>
* * *
말이 부산스러웠다.
“엇, 이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러지?”
기사들이 말고삐를 단단하게 부여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당장 어떠한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니었지만, 통제가 쉽지 않았다.
세바스티안 역시 자신이 타고 있는 흑마가 오늘따라 산만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단체로 왜 이러는 거지? 뭘 잘못 먹이기라도 한 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밀로드가 단언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클리프의 군마들은 자기주장이 강한 녀석들이라 할지라도 일단 주인을 정하면 그 명령에는 복종한다.
머리가 좋아 규율이 무엇인지도 이해하는 만큼, 이런 식의 행동은 도통 보기 힘들었다.
‘설마. 요즘 자주 쉬면서 이동을 했다 보니 거기에 익숙해져서 투정을 부리는 건가?’
그렇다면 꾀를 부리고 있다는 건데.
세바스티안의 짙은 눈썹이 멋들어진 모양으로 끝을 살짝 구겨트렸다.
품종의 특성상 어쩌면 그쪽이 더 신빙성이 높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머, 멈추세요!”
새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멈춰 주세요! 마차를 멈추세요! 멈춰요!”
에리카의 음성으로, 소리 역시 그녀가 타고 있는 마차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이런 식의 소동은 일어난 적이 없었던지라 기사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세바스티안을 바라보았고, 소년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마차를 멈추어 세웠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마차 안쪽에서 커튼이 걷히고 창문이 열렸다.
그 사이로 에리카가 얼굴을 내밀었는데 어찌나 핏기가 없던지, 새하얗게 질려 있는 모습이 상당히 안쓰럽게 느껴졌다.
“왜 그러십니까?”
“어디 불편하세요?”
“배가 아프십니까? 아니면 두통? 아! 혹시 멀미가 나시는 겁니까?”
기사들이 저마다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에리카는 누구의 물음에도 답하지 않았다. 답할 정신이 없어 보였다는 게 조금 더 정확히 그녀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일 터였다.
그래서 모두 에리카의 이 기이한 행동에 의아함을 품은 채 마차를 예의주시했다.
세바스티안이 밀로드에게 나지막이 명했다.
“밀로드, 자네가 가 봐.”
“예. 대공자님.”
밀로드가 자신의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군마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말을 몰고 다가간다면 불안정해 보이는 에리카가 더욱 동요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부드럽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러나 에리카는 이번에도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정신없는 모습으로 좌우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겁에 질린 소동물처럼 보였다.
에리카의 이상행동이 지속되자 세바스티안도 미간을 좁힌 채 마차 쪽을 주시하다가 덩달아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딱히 눈에 띄는 점은 없었다.
잠시 후, 에리카가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위에 이상한 게…… 있는 것 같아요.”
“이상한 거요?”
“네. 화, 확신할 수 없지만…….”
에리카가 앞쪽의 숲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곳 역시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그 무엇도 흔들리지 않고 그저 고요하기만 했다.
에리카가 보던 쪽과 같은 방향을 살폈던 밀로드가 다시 시선을 소녀에게 옮겼다.
그가 조심스럽게 한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질문했다.
“혹시 꿈이라도 꾸신 건 아닐까요?”
에리카가 망연하게 반문했다.
“꿈……이요?”
밀로드는 에리카가 민망함을 느끼지 않게끔 최대한 자상하고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날이 따뜻하고 좋으니까요. 생각지도 못하게 깜빡 조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말들이…….”
황금빛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가득 차 떨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지금까지 다소 산만하게만 굴었을 뿐 별다른 특이점을 보이지 않던 군마들이 흥분하며 제각기 투레질을 시작했다.
“어? 어? 이 녀석이?”
“인마! 왜 이래?”
기사들이 당황하는 사이, 세바스티안의 눈빛이 예리하게 바뀌었다.
그는 곧장 말고삐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말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통제부터 해!”
세바스티안의 말에 기사들이 제각기 높아지려는 목청을 가다듬고 느슨하게 쥐었던 고삐를 힘주어 잡은 채 허벅지를 조였다.
“워, 워.”
제 주인이 강한 힘으로 통제하자, 흥분하던 군마들은 빠르게 진정하기 시작했다. 이런 것 역시 오랜 시간 함께 호흡을 맞춰온 훈련의 효과였다.
하지만 세바스티안은 그것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행렬의 가장 선두에서 있었던 그는 조금 뒤로 물러서며 굳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전원 비상 태세로 전환하라.”
기사들은 모두 영문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대공자님?”
“갑자기…… 대체 무슨 일입니까?”
세바스티안은 여전히 전방을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었다.
기사들이 그의 시선을 따라 앞을 바라보았지만, 아까와 달라진 점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눈에 띄게 경계하는 세바스티안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무시할 순 없는 노릇.
기사들은 소년의 명에 따라 제각기 발검하여 혹시 모를 사태에 준비했다.
밀로드 역시 심상찮은 분위기를 읽어냈다.
하지만 에리카를 돌아볼 때는 언제 얼굴을 굳혔냐는 듯 이내 싱긋 웃어 보였다.
어린아이에게 겁을 주어 봤자 득 될 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마님. 걱정하지 말고 마차 안에 들어가 계십시오. 괜찮을 겁니다. 다만, 저나 대공자님이 아닌 이상 절대 문을 열지 마시고요. 아시겠죠?”
에리카가 떨리는 입술을 말아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소 지어 보인 밀로드는 커튼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뒤 곧장 제 위치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 순간.
푸쉬시시시식!
조금 전까지 세바스티안과 밀로드가 서 있던 곳의 지면에 검보랏빛의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하며 조금씩 그 세를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아클리프 대공가의 기사들은 그 현상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보았다.
“경계다!”
기사 중 한 명이 목청을 높였다.
“경계가 발생했다!”
“각자 위치로!”
누구도 당황스러워하지 않았다.
기사들은 능숙하게 각자의 자리를 찾았고 전열을 만들었다.
“그나마 경계가 넓어지지는 않는군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소형인 것처럼 보이는데.”
“제 생각도 같습니다. 저 정도 크기면 마물도 한두 마리 선에서 끝날 것 같습니다.”
밀로드의 말에 세바스티안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기사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 사이, 지하로 만들어지는 소용돌이 속에서 우락부락한 마물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크륵!”
2m는 족히 넘어 보이는 마물은 마치 돌을 뭉쳐놓은 것처럼 보였다.
덩치 탓에 움직임은 굼떴다.
시력도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인지 걷다가 몇 번이나 허우적거리기까지 했다.
“쉽겠는데요.”
세바스티안도 밀로드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끝까지 얕잡아보아선 안 되리라.
“내가 부술 테니, 자네가 마무리해.”
“네, 알겠습니다.”
세바스티안이 등자를 강하게 굴렸다.
흑마가 지면을 박차고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갔다.
그러다 세바스티안이 고삐를 강하게 뒤로 당기며 제동을 걸자, 흑마가 멈추어 서며 앞다리를 치켜올렸다.
마물의 몸 위로 군마의 그림자가 거대하게 드리웠고, 이내 말발굽이 큰 소리를 내며 그 몸을 걷어찼다.
쿠당탕탕!
단숨에 마물의 몸이 산산이 조각났다.
그러나 돌들은 마치 자성이라도 띠고 있는 것처럼 다시 서로를 향해 굴러가기 시작했다.
“밀로드! 어서!”
저것들이 뭉쳐지기 전에 어서 경계를 메꾸어야 한다.
세바스티안의 외침에 밀로드가 서둘러 품속을 뒤졌다.
경계 쪽으로 다가간 그가 작은 병을 꺼내 무엇인가를 경계 속으로 집어 던졌다.
불길하게 일렁이던 검보라색의 소용돌이가 조금씩 흐려지더니 그 크기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땅은 이내 다시 평평하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마물은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흙처럼 바스러졌다. 그렇게 마물이 사라진 자리엔 아기 주먹만 한 호박색 결정이 하나 남았다.
그렇게 기사들이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 종료.”
굳은 표정으로 흑마에서 뛰어내린 세바스티안은 그 길로 곧장 마차로 다가갔다.
에리카에게 물어볼 게 있었다.
“나야. 열어.”
“바깥은…… 괜찮나요?”
“그래. 끝났어. 잠깐 내려 봐.”
그렇게 세바스티안이 직접 에리카를 마차에서 내려주었을 때였다.
“꺄아아악!”
이번엔 뒤쪽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당연히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후미의 기사가 새하얘진 얼굴로 외쳤다.
“뒤, 뒤쪽에 새로운 경계가 발생했습니다!”
그 소리와 맞물려 비명을 내지른 여자가 다시 외쳤다.
“사, 살려 주세요!”
언제 밖으로 나온 건지 봉피쥬가 땅바닥을 기다시피 하며 울부짖고 있었다.
“제발 저 좀! 저 좀 살려 주세요. 꺄아아악!”
시간 차를 두고 발생한 경계에서 튀어나온 마물은 이미 후작가의 마차를 몰던 마부를 잡아먹고, 마차를 탈출한 봉피쥬까지 노리며 달려들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첫 번째 놈과는 무척이나 다른 모양새였다.
“이게 대체 무슨……! 하녀장 목소리 아니에요?”
에리카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돌아보려고 할 때였다.
세바스티안이 빠르게 에리카의 팔을 잡아당겨 제 몸쪽으로 돌려세웠다.
강인한 힘이 소녀를 옴짝달싹도 못하게 구속하며 돌아보지 못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