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Fake Bride Who’ll Run Away Someday RAW novel - Chapter (6)
언젠가 도망칠 가짜 신부입니다 (6)화(6/91)
<6화>
에리카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 세바스티안의 입이 열렸다.
“거짓말을 하는군.”
뜬금없는 소리에 맞잡은 제 손만 바라보고 있던 소녀가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거짓말……이라니요?”
그녀는 동요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켕기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를 몰라서.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당황으로 어색한 행동을 보이자, 세바스티안이 더욱 불신하는 눈길로 에리카를 집요하게 뜯어보았다.
“난, 거짓말하는 걸 아주 싫어해.”
에리카는 자신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가짜 신부가 되기 위해서 후작가에서 특훈에 특훈을 거듭했고, 아클리프 대공가에 대해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세바스티안은 아직 열네 살밖에 되진 않지만, 성인들보다 훨씬 더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날카로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혹시 내가 무심코 한 말 중에서 대공자님이 뭔갈 눈치챈 걸까?’
자신이 실수한 게 있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에, 에리카는 슬쩍 시선을 돌려 봉피쥬의 표정을 살폈다.
‘응?’
한데 봉피쥬도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 봉피쥬 님의 모습을 보면 지금까지의 내 처신이 잘못된 데는 없다는 거야.’
그러니 봉피쥬 역시 세바스티안이 왜 이런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터였다.
혼란스럽기만 하던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었다.
어차피 물러날 데가 없지 않은가.
에리카는 양손에 힘을 주어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일단 지금은 배짱을 부려야 해!’
에리카는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봉피쥬를 제외하고, 이곳에서 자신이 후작의 가짜 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후작으로부터 직접 밀명을 받은 봉피쥬 역시 그녀와 한배를 탄 것과 마찬가지니 에리카의 정체를 이 자리에서 발설할 리도 없으리라.
“제, 제가!”
소녀가 야물딱지게 목소리를 높였다.
세바스티안을 상대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웠으나, 눈에 단단히 힘도 주었다.
“제가 대공자님께 올린 말 중에서 어, 어떤 점이 믿기 힘들다고 하시는 거죠?”
“당돌하군.”
팔짱을 낀 세바스티안이 턱짓으로 에리카를 가리켰다.
짧디짧은 순간에 불과할 뿐인데도, 에리카는 세바스티안이 다시 입을 열기까지의 그 찰나가 마치 영겁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걸까.’
소녀가 조마조마한 마음을 품은 채 세바스티안의 입술만 빤히 바라보았다.
마침내 한쪽 입꼬리를 비튼 세바스티안이 말문을 열었다.
“영애가 어딜 봐서 열 살이라는 거지?”
“……네?”
그녀가 놀란 토끼 눈으로 제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지?’
에리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세바스티안의 삐딱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무리 이 혼사가 중요하다고 해도 그렇지. 아직 부모의 손이 필요한 어린 딸의 나이까지 속여 결혼을 시키려 하다니.”
세바스티안이 거칠게 혀를 찼다.
‘어린 딸?’
느릿하게 깜빡였다.
“그러니까, 지금 대공자님 말씀은……. 제가 열 살이라는 걸 믿지 못하시겠다는 것인가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세바스티안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거 아닌가? 키도 작달막하고. 많이 봐줘야 일고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군.”
제 판단은 절대 틀리지 않았다는 듯 흔들림 없는 목소리였다.
앙헬리카 제국엔 조혼이 존재한다.
하지만 약혼이라는 제도가 따로 있는 만큼,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는 것은 귀족 가문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경우였다.
게다가 아무리 조혼이라고 한들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최저 나이가 존재했는데, 그게 바로 열 살이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에리카의 발육상태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고 따라서 세바스티안이 소녀의 나이를 의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였다.
어린 신관의 입술을 가르고 풉,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곱 살이라니.’
에리카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며, 이내 입술이 힘주어 다물렸다.
그런 오해를 받는 게, 뭔가 분했다.
무슨 배짱이었을까?
에리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볼멘소리를 높였다.
“저……! 저 열 살 맞아요! 키가 작긴 하지만, 일곱 살은 아니에요! ”
“발끈하는 게 더 수상하군.”
“진짜예요!”
하지만 그녀의 항변을 세바스티안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이렇게 분하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눈물이 살짝 고였다.
그때,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노신관이 웃음기가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대공자. 이 아가씨는 올해로 열 살이 된 게 맞습니다. 저희가 출생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세바스티안이 살짝 찌푸린 얼굴로 거듭 노신관을 향해 물었고, 그때마다 신관 역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세바스티안은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이게…… 열 살이라고?”
들어도, 들어도 도무지 에리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은 까닭이다.
그가 잇새로 나지막이 뇌까렸다.
“하, 이 꼬마 영애가 열 살이라니. 믿을 수가 없군. 하여튼 성인식에 등록하는 거 제도를 싹 바꿔야 해. 태어날 때부터 하는 걸로.”
어째서인지 이를 가는 듯한 목소리였다.
앙헬리카 제국에서는 성인식을 ‘두 번째 생일’이라고 불렸다.
열아홉 살이 되는 해, 신전으로 가 성수에 자신의 피 한 방울을 떨어트리며 등록을 하기 때문이었다.
대륙 전체가 유일신을 믿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의식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생사와 영혼을 건드리는 심오한 작업인지라 아직 영혼이 불안정한 어린아이들에겐 시행할 수 없었다.
그러한 성인식을 치르고 난 뒤에야 진정한 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블랑체 후작님도 내게 성인식을 치르기 전까지만 버티라고 하신 거겠지.’
만약 그 기간을 넘겨 버린다면, 그의 진짜 딸이 오히려 그림자가 되어 두 번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없게 될 테니 말이다.
그때 세바스티안의 보좌관인 밀로드가 슬쩍 끼어들며 제 주인의 의심을 거두기 위해 노력했다.
“대공자님. 블랑체가의 아가씨께서 또래보다 작은 편이긴 하십니다만, 그래도 일곱 살보단 커 보이십니다.”
“편들지 마. 내가 열 살 때는 저 꼬마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어.”
밀로드가 피곤하다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공자님. 모두가 대공자님처럼 쑥쑥 자라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아가씨께선 어릴 때부터 허약하다고 하셨으니까요.”
“그걸 고려해도 작은 건 맞지 않나?”
꼬투리를 잡고자 하는 게 아니라 걱정하는 투였으나, 세바스티안이 낯선 에리카가 알아차리기엔 어려운 일이었다.
한편 세바스티안의 말에 밀로드의 눈길이 자연스럽게 에리카에게로 향했다.
“흐음…….”
에리카는 두 손을 꼭 맞잡은 채 간절한 눈빛으로 밀로드를 올려다보았다.
부디 그의 의견은 세바스티안과 다르길, 바라고 또 바랐다.
하지만 밀로드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단박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긴 하군요.”
혹시라도 실례가 될까 싶어 작게 중얼거렸으나, 에리카는 귀가 밝은 편이었다.
소녀가 입술을 더욱 힘주어 다물었다.
그러고는 일부러 뒤꿈치를 살짝 들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커 보이기 위해서.
그 모습을 기민하게 눈치챈 세바스티안이 에리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런 뒤 아래로 팔랑거리며 말했다.
“내려. 그래도 작으니까. 의미 없어.”
분명 얼굴 근육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소년이 피식 웃은 것만 같았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에리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찬 바람이 불어왔다.
매정하게도 순식간에 체온을 앗아가는지라, 에리카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에취!”
미처 막을 새도 없이 귀여운 재채기가 입술을 가르고 튀어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단박에 에리카에게로 향했다.
소녀가 서둘러 두 손을 제 입술 위에 포개어 재채기를 막아 보려고 했지만, 무용한 노력이었다.
“에취잉!”
너무도 정직한 발음의 재채기가 또 한 번 튀어나왔다.
‘어떡해. 품위 없이 행동했다고 봉피쥬 님께 또 혼나겠다.’
얼른 멈춰야 하는데, 어떡하지?
에리카는 잠깐 틈이 난 상황에 크게 숨을 들이켠 뒤 그대로 호흡하는 것을 참았다.
그런데 그때, 그녀의 어깨 위로 무엇인가 둘렸다.
‘……어?’
찬 바람을 막아 주는 데다가, 얼었던 몸을 녹여 주기까지 하는 따뜻한 온기에 에리카가 질끈 감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