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Fake Bride Who’ll Run Away Someday RAW novel - Chapter (78)
언젠가 도망칠 가짜 신부입니다 (78)화(78/91)
<78화>
* * *
이튿날.
에리카의 눈꺼풀이 열렸다.
아침에 잘 못 일어나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유독 찌뿌듯하고 기분이 개운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소녀의 미간은 평소와 달리 찡그려진 상태였다.
‘너무 힘들어.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은 것 같아.’
정확하게는 목이 심각하게 아팠다.
무심결에 두 손으로 제 목을 감싸려던 에리카가 순간 멈칫했다.
조금 늦게, 자신이 눈을 뜨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실과 한쪽 손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세바스티안 님의 방이지.’
잠들어 있던 동안에도 서로 손을 놓지 않았던 모양인지 맞잡고 있는 손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그 체온이 누구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아있었다.
에리카는 우선 고개만 움직여 세바스티안 쪽을 돌아보았다.
고르게 들려오는 숨소리를 통해 세바스티안은 여전히 곤하게 잠들어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깨닫기 무섭게 절로 행동을 조심하게 되었다.
잘 자고 있는 사람을 괜히 깨우고 싶지 않았다.
에리카는 다시 조용히 천장을 보고 누웠다.
‘그나저나 몇 시나 됐지?’
뭐가 보여야 가늠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에리카는 한숨을 삼키며 최대한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고자 했다.
복도 쪽은 오가는 사람이 없을 테니 소리가 들리지 않겠지만, 정원 쪽은 아닐 것이다.
사용인들의 아침은 언제나 주인 일가보다 이르게 시작하기 마련이었고, 필연적으로 아주 작은 생활 소음이 들려오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 집중은 오래가지 못했다. 목이 다시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따가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윽.’
기도에서 이물감이 강하게 느껴지며 기침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아, 안 돼.’
에리카는 서둘러 다문 입술에 힘을 주었다.
그러곤 억지로 마른침을 모아 삼켜보려고 노력도 했다.
‘참아야 해.’
두 눈도 질끈 감은 채 소녀는 필사적으로 호흡까지 참았다.
‘여기서 기침을 터트리면 분명 세바스티안 님이 깨게 될 거야.’
아픈 사람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최대한 참을 수 있을 만큼 참고 싶었다.
에리카는 세바스티안의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베개에 얼굴을 박았다.
때때로 참지 못하고 토해내는 작은 기침에 몸이 들썩였다.
‘아, 안 되겠어.’
도무지 가라앉지 않았다.
이러다가 소리가 더 커지기라도 하면…….
세바스티안을 깨우는 건 물론, 안 그래도 아픈 그에게 저라는 걱정거리를 더 안겨 주는 셈이 되고 말 것이다.
‘내 방으로 돌아가자.’
잠시 기침이 멎은 틈을 노려 에리카는 조심스럽게 세바스티안에게서 제 손을 빼내기 시작했다.
아직 잠에 빠진 상태라 그의 손아귀에 힘이 별로 실려 있지 않아 다행이었다.
갈수록 목이 더욱 답답해졌다.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라, 조바심이 일었다.
그 마음이 아무래도 손길에 묻어난 듯하다.
처음과 달리 움직임이 다급해진 모양인지, 내내 얌전하던 세바스티안의 손이 에리카의 손을 움켜쥐었다.
‘깨, 깬 건가?’
놀란 에리카가 숨을 죽인 채 모든 행동을 멈췄다.
다행히 이때만큼은 기침도 눈치껏 멎었다.
제 손가락이 다시금 세바스티안에게 붙잡혀 있었다.
그러나 어디 가냐는 등의 질문이 돌아오지 않는 걸로 봐선 아무래도 무의식적인 행동인 것 같았다.
에리카는 빈손을 움직여 세바스티안의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냈다.
다행스럽게도 별로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다만 소녀의 손이 닿을 때마다 간지러운 모양인지 그에게서 때때로 ‘음’하고 짧은 목울음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됐다.’
마침내 에리카의 손이 세바스티안에게서 완전히 벗어났다.
에리카는 서둘러 제 목부터 지그시 눌러보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딱히 도움은 되지 않았다.
이 고통이 진정이 되려면, 내킬 때까지 거친 기침을 토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나가자.’
제발, 방을 나갈 때까지만 더 참을 수 있기를.
에리카는 간절히 바라며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정말 오랜만에 본 건데.’
이대로 떠나기가 아쉬웠다.
그 마음을 좀처럼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소녀는 다시금 손을 뻗어 세바스티안의 머리카락을 살살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꼭 괜찮아지실 거예요. 전 그렇게 믿어요’
속으로 진심을 전한 에리카가 곧장 몸을 틀어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 순간 금색의 빛무리가 에리카의 손끝에서 빠져나와 세바스티안에게로 향했다.
그것은 마치 얇은 막처럼 세바스티안의 전신을 감으며 은은하게 빛을 냈지만, 에리카는 보지 못했다.
그녀가 방 밖으로 나왔다.
복도는 새벽빛으로 어슴푸레했다.
‘아직 동트기 전이구나.’
‘새벽인가 보다.’
에리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소녀는 서둘러 두 손으로 입가를 틀어막은 채, 제 방을 향해 뛰어 내려갔다.
세바스티안뿐만이 아니라 이 저택의 모든 사람들이 제 건강에 예민하게 굴었으므로 되도록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또 주치의 선생님만 곤란해지실 테니까.’
의사가 진료를 본다고 해서 딱히 낫는 것도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렇게 에리카가 세바스티안의 방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홀로 남은 세바스티안이 잠결에 뒤척이다 입술을 벌렸다.
크게 숨을 들이켜는 순간, 그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기운이 흡수라도 되는 듯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콜록, 콜록.”
에리카는 두 손으로 입술을 막은 채, 작은 몸을 연신 들썩이며 걸음을 옮겼다.
어쩌면 집사장은 만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빈센트의 성격상 밤새 세바스티안의 방 앞을 수시로 다녀갔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시간대엔 사용인들의 아침 조회를 위하여 잠시 자리를 뜬 듯싶었다.
그 덕분에 에리카는 제 방으로 향하는 동안 아무도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
‘윽, 이제 한계야.’
간신히 제 방에 도착한 소녀는 침대가 아닌 욕실 쪽으로 바로 몸을 틀었다.
이렇게 기침이 잘 가라앉지 않는 날은 대개 피를 봐야지만 진정되는 편이라는 걸 몇 번의 학습 끝에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으면 흔적이 남는다. 조안나가 제 세탁물을 죄다 관리하니, 들키게 될 건 뻔했다.
어차피 피를 토할 거라면 그냥 욕실에서 하고 바로 물에 흘려보내는 게 감추기엔 편했다.
달칵.
안쪽에서 문을 걸어 잠근 에리카는 그제야 내내 참고 있던 기침을 크게 터트렸다.
“콜록! 콜록!”
가느다랗고 끝이 날카로운 바늘이 한꺼번에 제 기도를 긁어내리며 찔러대는 통증이 느껴졌다.
뱃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리고 미처 막을 새도 없이 기분 나쁜 것이 왈칵 치밀어올랐다.
입안에 비릿한 쇠 맛이 돈다 싶었더니, 역시나 피가 나왔다.
몇 년을 반복했더니 이제 더는 놀랍거나 서럽지도 않았다.
‘색깔이 좀 다르네?’
평소보다 조금 더 검은빛이 많이 도는 데다가 액체라기보다는 끈기가 느껴지는 덩어리 감이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가래와도 비슷한 것 같았다.
‘뭔가…… 찢겨서 뭉개진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에리카가 그것을 자세하게 살펴볼 틈이 없었다.
“콜록, 콜록, 콜, 록!”
잠시의 여유도 주지 않겠다는 듯 다시금 고통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생리적으로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에리카는 최대한 빨리 기침이 가라앉기를 바라며 습관적으로 기침을 하고 피를 뱉었다.
한참을 그렇게 피를 게워낸 뒤, 에리카는 물을 틀어 그것을 깨끗하게 흘려보냈다.
그렇게 얼마나 홀로 버텨냈을까?
에리카는 이제 더는 게워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새 기침도 많이 가라앉은 터였다.
그 사이 목은 연이어진 자극으로 많이 상한 모양인지 부은 느낌이 들었다.
“하아…….”
새벽부터 너무 정신이 없고 기운이 쏙 빠졌다.
쉬지도 않고 토하고 기침하느라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던 탓에 피가 몰린 탓인지 눈이 침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 차리자.”
나가서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마시며 쓰린 속을 달래고픈 생각이 간절했다.
에리카는 두 손으로 깨끗한 물을 떠 입을 몇 번이나 헹구었다.
그러고 난 뒤에야 간신히 상체를 들어 올리곤 맞은편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대충 몰골을 정리하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소녀는 그 상태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황금빛 눈동자가 크게 뜨이더니 이내 거세게 흔들렸다.
“이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