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
만렙 회귀자입니다만-1화(1/300)
제 1화
딱 한 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분명 나는 동료들과 축하 파티를 마친 뒤.
거나하게 취한 채 집으로 돌아와 넓디넓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무엇을 축하했냐고?
2010년의 대격변 이후, 인류에게 예고됐던 ‘대재앙’을 막아 냈음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내 나이 56세.
무려 2052년에 이르러 맞이한 완전한 해방이었다.
리더를 필두로 ‘나인 로드(Nine Lord)’라는 호칭으로 불렸던 나는 인류의 영웅이었다.
동료들과 세계를 지켜 낸 내게는 부귀영화는 물론, 죽는 날까지의 안락하고 윤택한 삶이 보장됐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이제 여생을 편히 즐기며 살면 되는 것이었는데…….
지금 내 눈에 펼쳐진 세상은 뭔가 이상하다.
‘몸이 젊어졌어?’
내려다본 내 몸은 이질적이기 그지없었다.
잔주름이 진해져 가던 손은 온데간데없이 젊은 날의 탱탱함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서른네 살, 2030년의 재앙이었던 ‘신도림 전투’에서 훈장처럼 잃은 왼손 약지도 멀쩡했다. 열 손가락 그대로다.
“…….”
조용히 주변을 둘러봤다.
서걱! 서걱!
거친 도축용 칼을 휘두르며, 현장에서 몬스터 시체를 발골 중인 기술자가 보인다.
주변은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차가운 공간 속인데, 눅눅한 냄새는 영락없는 동굴의 향취다.
“어후……. 시원하다.”
게다가 동굴 구석에서 쪼그린 채 담배를 피우며, 배변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는 남자도 있었다.
‘던전이잖아!’
그것도 동굴형 던전인 데다가 후방임이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마음 놓고 생리 활동도 하고, 몬스터 도축도 하는 것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태평하게 있지 못한다.
혹시나 싶어 내 몸을 봤다.
그러자 싼 티가 물씬 풍기는 방수용 초록 장화가 눈에 띄었다.
옷은 어차피 더러워질 것을 예상하고 대충 입고 나온 후줄근한 면티와 트레이닝 바지 차림이다.
‘짐꾼?’
던전 후방에 있는 짐꾼들의 교복이라고도 불리는 무난한 옷에 초록 방수 장화의 조합.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나는 분명 방금까지 한 병에 1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고급 와인을 마시고 있었는데?
이런 역겨운 냄새와 퀴퀴한 기운이 가득한 곳이 절대 아니었단 말이다.
바로 그때.
“어이, 강신화. 뭔 생각을 하길래 멍때리고 있냐?”
투박한 손길이 뒤통수를 툭 치고 지나간다.
돌아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진즉에 고인이 되신 분이.
“김 반장님? 김 반장님은 돌아가셨…….”
“이 자식이 신입이라고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돌아가시긴 뭘 돌아가셔? 몸 쌩쌩하게 잘 살아 있는데, 인마!”
뻐억!
“크헉!”
매서운 딱밤에 나는 붉어진 이마를 어루만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꿈이나 환각일까?
일단 둘 다 아닌 듯하다.
나는 정신을 조작하는 능력에는 완전 면역이다. 그러니 환각은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꿈이라고 보기에는 모든 감각이 너무 또렷하고 생생했다.
쑤욱.
습관적으로 작업복 주머니에 손을 넣자, 불룩한 연락 수단 하나가 잡힌다.
스마트폰!
2019년에 대한민국에서 출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화면이 접히는’ 녀석이다.
2050년식 홀로그램 폰과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이때는 첨단이라고 불렸던 문명의 이기였다.
[2020년 1월 25일]스마트폰의 메인 화면에 뜬 날짜를 보니 영락없는 2020년이 맞았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XX……. 이러면 안 되잖아? 반백이 되어 이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쉬나 보다 했는데, 쥐뿔도 없던 과거로 돌아왔다고?’
욕지거리가 먼저 터져 나왔다.
2020년의 나.
이때는 각성한 지 1년 차가 됐지만, 별다른 재주가 없어서 오직 몸 쓰는 일만 할 때였다.
육체 강화에 살짝 소질이 있는, 하지만 한계가 뚜렷한 잠재력 없는 F급의 각성자.
이것이 지금의 내 포지션이다.
F에서부터 EX까지.
총 10단계로 분류되는 각성자의 등급 피라미드에서 최하위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신화, 일 안 해? 오늘 일당 안 받을 거야? 마무리만 하면 되니까 어서 블랙 카우 시체부터 옮기라고, 인마!”
“네? 아, 알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할 겨를 없이, 나는 바로 일선에 투입됐다.
일단 공간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2020년의 과거로 돌아온 것은 틀림없었으니까.
여기는 이때의 내가 일했던 수많은 던전의 현장 중 하나였고, 그 기억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다.
시간은 흘렀어도, 몸은 예전을 기억하는 법.
나는 일단 아무 생각 없이 지금의 일에 집중했다.
* * *
2시간 후.
“신화야, 내일은 신도림역 2번 출구에서 오전 8시에 집결이다. 알지?”
“예? 신도림역이요? 거기 없어지지 않았습니까?”
“화이트 존인데 무슨 개소리야? 신화야, 너 오늘 도대체 왜 그러냐? 뭐 잘못 먹었어?”
“아, 아닙니다.”
“내일 보자. 고생했다.”
김 반장님은 내게 돈 봉투 하나를 던지듯 건네고는 사라졌다.
신도림역.
2030년에 ‘폭주의 마고스’라는 놈이 차원을 뚫고 나타나, 완전히 초토화시킨 장소다.
역은 물론이고, 주변 일대가 아예 녹아내려 없어져 거대한 싱크홀이 되어 버린 곳이기도 하다.
신도림 전투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10대 재앙 중 하나인 사건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고.
“정말 2020년이야.”
나는 아직도 2052년의 늪에서 헤매고 있는 정신을 빠르게 털어 내고, 지금에 동기화시켰다.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도.
회귀한 것은 확실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고, 환각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약물도 마찬가지고.
다만 이상한 것은.
“회귀자는 내가 아닌데?”
나인 로드라고 불린 인류의 아홉 영웅에는 나도 포함되었지만, 리더는 따로 있었다.
니콜라스 헤이건.
녀석은 시종일관 자신을 ‘회귀자’라고 주장해 왔었다.
워낙 아는 것도 많았고, 성장을 위한 모든 수단을 알려 줬던 녀석이라 도움을 많이 받기는 했다.
그래, 회귀자는 니콜라스였다.
‘그럼 니콜라스가 회귀를 해야지, 왜 내가 하는데?’
난 과거가 그리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게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완벽한 노후가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지같게도 내 인생에서 가장 보잘것없었던 이때로 돌아와 버렸다.
“하, 이왕 시간을 돌리려면 차라리 2010년으로 맞춰 주든가. 애매하게 왜 2020년인데…….”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2010년, 내가 14살이었을 때.
전 지구적인 대격변이 일어나며 세상이 바뀌었고, 나는 갑자기 게이트를 통해 출몰한 몬스터에게 부모님을 잃었다.
시간이 지나서도 부모님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해 깊은 슬픔으로 남은, 가슴 아픈 기억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안타까워해도 지금의 시간이 바뀌지는 않는다.
어쨌든 나는 받은 돈 봉투를 대충 뒷주머니에 넣고, 지갑을 꺼냈다.
이때는 짐꾼 생활을 위해 워낙 집을 자주 옮기던 때라서 어디에 살았는지 기억이 바로 안 났다.
주민등록증과 각성자 등록증을 번갈아 살펴보니, 내가 어디 살았는지 명확해졌다.
“레드 존의 원룸촌이구나. 인생의 쓴맛, 더러운 맛, 치욕의 맛을 모조리 다 보던 시절이네. XX.”
나는 참고 싶어도 참을 수 없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일단 집이 있는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북쪽으로는 하늘 높이 솟은 수많은 마천루와 화려한 문명의 산물들이 보이지만.
내가 이제 가야 할 곳은 제대로 된 가로등 불빛 하나 찾기 힘든, 문명 외곽의 슬럼가다.
레드 존.
대격변으로 재편된 치안의 질서가 닿지 않는, 법의 테두리 밖에 위치해 있는 무법 지대다.
‘망할.’
난, 그곳으로 가야 한다.
* * *
덜컹덜컹. 덜컹덜컹.
지하철은 수리는 제대로 한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심하게 내부가 덜컹거렸다.
석양이 지는 하늘은 평소보다 유독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
신화의 표정은 어두웠다.
인생의 최고점에서 최저점으로 하루아침에 추락한 실망과 슬픔이 여실히 배어 있는 표정이었다.
-본 열차는 곧 화이트 존을 벗어나 옐로 존인 1호선 금정역에 진입합니다.
-최근 맹위를 떨치는 ‘흑십자단’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별도의 서행 없이 운전합니다.
“아슬아슬하네.”
안내 방송을 들은 신화가 창밖의 광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옐로 존의 치안을 담당하는 가드들이 하나둘씩 장비를 챙기며 퇴근을 준비하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낮의 수호자이지만, 밤이 되면 철저한 방관자가 된다.
안전한 화이트 존에 있는 자신들의 거처로 돌아가는 것이다.
‘대격변 이후로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지.’
2010년의 대격변으로 말미암아 기존의 질서는 완전히 무너지고, 각성자의 질서가 새로이 재편됐다.
각성자가 아닌 군인과 차원 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는 기존의 병장기는 모두 무용지물이 됐다.
몬스터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각성자의 힘이 절실히 필요해진 것이다.
문제는 각성자의 수였다.
국가를 막론하고 각성자들만으로 영토 전체를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나라는 없었다.
그래서 초국적으로 출범한 ‘세계 각성자 협회’는 가장 먼저 거주 구역을 나누는 조치를 취했다.
그것이 존(Zone)의 태동이었다.
“이거였나.”
신화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각 존에 대한 소개가 적힌 내용이었다.
<화이트 존 : 각성자 협회 본부, 지부를 통해 확실하게 치안이 유지되는 안전지대입니다.
옐로 존 : 각성자가 정당한 보수를 받고 ‘가드’라는 이름의 용병 활동을 하는 곳입니다.
일출부터 일몰까지 안전이 보장되나, 일몰 이후에는 경계 위험 구역입니다.
레드 존 : 각성자 협회, 가드의 보호 권역 바깥에 위치하는 구역입니다. 해당 권역에 구성된 합의체 질서를 따르십시오.>
‘합의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신화가 코웃음을 쳤다.
레드 존의 질서를 자체 관리, 감독하는 조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십중팔구는 범죄 조직이었다. 즉, 레드 존은 악법이 법으로 통하는 지옥 같은 세계였다.
<블랙 존 :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안전을 절대 보장할 수 없으며, 내부에서 발생한 일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블랙 존은 쉽게 말해 레드 존보다 더한 무법 지대라고 보면 됐다. 신도, 사람도 버린 죽음의 땅이다.
‘레드 존에서만 5년을 살았지.’
짐꾼 생활 5년.
니콜라스 헤이건을 만나기 전까지 신화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뿐이었다.
보수는 형편없이 적었고.
집값이 솟구칠 대로 솟구친 화이트 존이나 옐로 존에 방 한 칸을 얻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전생에서는 화이트 존에서도 가장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강남의 도곡동에 살았던 신화였다.
심지어 땅을 모조리 사들여 길거리 한복판에 초호화 단독 주택을 짓고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적응 안 되네, 진짜.”
덜컹덜컹. 끼긱끼긱.
겨울의 칼바람에 밀려, 제 맘대로 휘청이는 지하철에 몸을 맡긴 채 쓸쓸히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본 열차는 레드 존의 초입부인 1호선 병점역에 진입합니다.
-1일 전, ‘흑십자단’의 지하철 테러 시도가 있었습니다. 주변 경계에 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이내 열린 문으로 나서던 비렁뱅이 하나가 신화를 가리키며, 낄낄 웃어 댔다.
“킬킬, 헬조선에 어서 오슈. 그쪽도 레드 존 사람인가 보군. 생존을 기원하겠수다.”
본격 생지옥에 도착하는 순간이었다.
“난 그냥 웰빙 라이프를 즐기고 싶었다고! 그게 죄야? 그게 잘못된 거냐고? 아아아악!”
신화가 비명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