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07)
만렙 회귀자입니다만-107화(106/300)
제 107화
샤아아.
바로 출구 차원문이 열렸다.
이는 보스 몬스터의 죽음이 위장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
“만약에 EX가 떴으면, 그 길로 내가 황천길로 떠났겠군.”
지나고 생각해 보니, 가슴이 철렁했던 상황이었다.
EX랭크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신의 경지라고도 불리는 최고의 경지다.
지금 내 수준과 힘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가 없다. 당연히 변수도 없다.
이내 한 줌의 재로 흩어져 버린 녀석의 자리에 뭔가가 후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바로 극상급 차원석이었다.
등장 당시의 호가를 기준으로 삼아도, 개당 100억 원이 훌쩍 넘어가는 차원석이 무려 20개나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녀석들은 절대 판매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도 쉽게 구하기 힘든 희귀 차원석이기에 반드시 아껴 써야 한다. 게다가 쓸 곳도 많고.
바로 그때.
스르륵.
어디선가 불어온 따스한 바람에 흩날려 공중에서 떨어지는 뭔가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꽃이었다.
얇고 가벼운 형태로 만들어져 있어 바람에 민들레 씨처럼 둥둥 떠올랐던 모양이었다.
출처는 아마 방금 죽은 보스 몬스터가 드롭 한 꽃일 터였다.
“오늘은 정말 행운 가득한 날이네.”
월광의 두 녀석을 처치하고 아티팩트와 현상금 수익을 올린 것부터 시작해서.
내게 필요했던 것들을 속속 쓸어 담고 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행운이 나타나 준 느낌이랄까?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알찬 획득이었다.
나는 넓게 뻗은 손바닥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꽃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신성의 꽃] [신성력을 가득 머금고 있는 꽃으로, 특유의 오라를 꾸준히 방출하는 신성력의 근원입니다.]“이 꽃이 여기서 나온다고? 정말 뜬금없네. 원래 더미 던전이 그렇기는 하지만……. 진짜 의외인데?”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입가에 미소가 잔뜩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신성의 꽃은 굳이 먹지 않아도 그 효과가 확실한 녀석이기 때문이다.
이 꽃을 적당히 펜던트 형태로 해서 목에 걸고 다니면, 신성력 일부를 상시 ‘버프’처럼 두르는 것도 가능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꾸준히 방출되는 신성력에 샤미를 계속 노출시키면, 녀석의 저주를 정화하는 일도 가능하다.
사실 샤미를 정화하는 방법으로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과정이 너무 복잡해서 고민하던 차였다.
한데 신성의 꽃이 있으면, 적당히 목걸이로 만들어서 차고 다니게 해 줘도 된다.
손가락 한 마디만 한 크기의 꽃이 어마어마한 신성력을 머금고 있기 때문에.
아마 한 달 내로 샤미의 체내에 주입된 레체로의 저주가 모두 신성력의 ‘축복’으로 순화될 터였다.
‘설령 나중에 레체로에 의해 저주가 터져도 이게 있으면 흑화한 사람들을 정화시킬 수도 있어!’
나는 쾌재를 불렀다.
회귀한 이후로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불로소득으로 꿀빠는 일이 없어 아쉬웠는데.
이처럼 원하는 것만 쏙쏙 나오는 행운이 연이어 찾아왔다.
“암, 이래야 인생도 살맛이 나는 거지!”
바로 신성의 꽃을 아공간에 챙겨 넣었다.
게다가 오색영롱한 빛을 발하는 극상급 차원석을 보니,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뿌듯하기만 했다.
내게는 짧고 굵은, 하지만 너무나도 알찬 잠깐의 일탈이었다.
* * *
출구 차원문은 지하 창고의 입구로 열려 있었고, 신화는 기존에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일회성인 더미 던전의 특성답게 그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입구와 출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윽고 타워 밖으로 나온 신화를 반긴 것은 거의 상황 정리가 끝나 가는 현장이었다.
“무릎 꿇어, 이 새끼들아!”
“사, 살려만 주십쇼! 제발!”
포승줄에 묶인 월광 조직원들이 고개를 지면에 푹 처박은 채로 엎드려 있었다.
바로 그때.
왼쪽 가슴에 KSA 대전 지부의 배지를 달고 있는 한 무리의 요원이 일제히 달려왔다.
그들은 오와 열을 맞춰 신화의 앞에 늘어선 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강신화 씨 덕분에 지부장님께서 무사히 구출되셨습니다. 고개 숙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 대전 지부 전원의 은인이자 KSA의 은인이십니다!”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신화가 고개를 저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현장 상황은 확실히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듯했다.
KSA도 지부장 한승택의 신병을 확보한 시점에서 더 이상 무리하지 않기로 했는지, 길목 여기저기에 경계선을 치는 모습이었다.
“신화 씨!”
반갑게 신화를 맞이한 것은 역시 진보미였다.
그녀가 한달음에 신화에게 달려와서는 몸 상태를 살폈다.
혹시나 잠깐의 ‘외유’ 동안 어디 다친 곳은 없나 걱정했지만, 별문제는 없어 보였다.
다만,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악취가 신화에게서 스멀스멀 풍길 뿐이었다.
“더러운 오물 사이를 좀 휘젓고 다닐 일이 있어서. 웬만하면 거리두기를 하는 게 좋을 겁니다.”
“괜찮아요! 마치 자연 속의 구수한 향기 같아서 괜찮은데요?”
“그건 좀…….”
신화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성격 좋은 진보미라고 해도 악취를 좋아하는 ‘악취미’가 설마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현재 상황부터 알려 드릴게요. 확보된 포인트를 통해 수집된 정보에 따르면, 월광과 흑십자단은 전부 빠져나간 듯해요.”
“확실합니까?”
“북대전 블랙 존 북부, 중부 모두 잔여 인원이 없어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다고 하네요.”
“KSA에서 생각보다 협력 인원을 많이 동원하니까 주천호가 위축된 모양이군요.”
신화는 이해가 가는 상황의 흐름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규모 전면전의 가능성은 적었지만, 이하성이 그냥 엄포만 놓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KSA 외에 협력 길드들도 대규모로 움직였기에 더 빨리 도망을 친 듯한 모습이었다.
아마 이번 일로 흑십자단은 몰라도, 월광은 최소한 절반 이상 조직이 와해되거나 조직원들이 붙잡혔을 터였다.
바로 그때.
“……?”
신화는 현 지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건물, 그곳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양미간을 찌푸렸다.
예사롭지 않았다.
여기서 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다.
한데 그 거리를 뚫고 정확히 자신을 감싸는 차가운 살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정작 바로 옆에 있는 진보미나 다른 각성자들은 전혀 낌새를 못 느낀 모양이었다.
“잠깐, 보미 씨.”
“네……?”
“일단 여긴 사방으로 열려 있는 개활지니까 옆쪽 길목으로 살짝 빠져 있어요. 나머지 사람들을 데리고.”
“무슨 일 있어요, 신화 씨?”
“잠깐 저쪽으로 다녀올게요.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이 있어서.”
신화가 가리킨 방향은 경계선 너머의 남쪽, 그러니까 아직 현장 확보가 안 된 방향이었다.
“신화 씨……. 앗!”
쾅!
진보미가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신화는 바로 아스팔트 지면을 박차고 공중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그 순간, 방금까지 신화가 있던 자리에 두 개의 발자국 모양이 선명하게 찍히며 균열이 생겼다.
“와…….”
그것은 진보미뿐만 아니라 곁에 있던 KSA 대전 지부의 각성자들과 양화 길드원들에게도 보였다.
한편.
신화는 몰랐지만, 벌써 각성자 뉴스 속보는 한승택을 구해 낸 신화에 대한 화제로 거의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었다.
“강신화 씨가 삼중 구조로 된 보안 철문을 박살 내고, 죽어가던 저를 구해 냈습니다…….”
이는 병원으로 후송되기 전, 기자들이 내민 마이크에 대고 한승택이 남긴 말이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멘트는 수많은 매체를 통해 반복 재생되며 확산됐다.
덕분에 이미 각성자 관련 커뮤니티에는 신화에 대한 이야기로 한바탕 난리가 났다.
예전에 이하성이 직접 신화에게 사과와 감사 인사를 했던 건도 있고, 이번에도 유사한 사례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에 편승하여, 최근 신화의 전담 기자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박현도 기사를 써 냈다.
반은 찬양, 반은 홍보용으로 써 내려간 기사가 쉴 새 없이 인용되며 널리 퍼져 나갔다. 그렇게 강신화 신드롬이 시작되고 있었다!
물론 본인은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른 채 현재의 상황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 * *
‘빠르다.’
단숨에 빌딩의 최상층으로 도약한 나는 동시에 그만큼 거리를 벌리고 있는 상대의 움직임에 놀라고 말았다.
대응이 무척 빨랐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적당히 나와 거리를 벌리자, 녀석이 멈춰 섰다는 점이었다.
‘잘 안 보이네.’
개변된 눈이 분명 더 멀리, 방해 없이 볼 수 있게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만능은 아니었다.
특히 녀석은 유독 모래 연기가 심하게 부는 방향 쪽에 자리를 잡고 있어 파악하기가 더욱 껄끄러웠다.
주변의 지형과 환경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앞서 상대했던 박형산이나 제일건에 비해 훨씬 똑똑한 놈임은 틀림없었다. 노련하기도 하고.
바로 그때.
퀴잉!
매섭게 공간을 찢으며 날아오는 한 대의 화살이 눈에 보였다.
‘주천호였나!’
흑십자단 단장이자 동시에 신궁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남자, 주천호.
누가 봐도 녀석의 공격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읏!”
아슬아슬하게 목을 꺾었고.
후웅!
방금까지 왼쪽 눈이 있던 자리를 뜨겁게 달아오른 화살이 가르며 지나갔다.
“…….”
“…….”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서로를 응시했다.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실루엣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는 것은 맞았다.
‘KSA가 낳은 괴물.’
주천호와 KSA의 악연은 꽤나 역사가 깊다. 일일이 나열하기에는 너무 힘들 정도로.
물론 그것이 그의 악행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가 악의 화신이 된 이유를 납득할 수는 있다.
‘궁술, 그리고 육체 강화술.’
주천호의 강점은 근접전에서는 맷집으로 버티는 능력이 탁월한 육체 강화술이고,
원거리에서는 신궁이라 불릴 정도의 정확성과 파괴력을 자랑한다는 것이다.
강철 강화를 배제하고 주천호와 나를 비교한다면, 육체 강화 수준은 그가 나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법이지!’
바로 블링크 링을 만졌다.
시작부터 주천호와 악연으로 엮인 운명. 그렇다면 한번은 힘으로 겨뤄 보고 싶었다.
위잉!
이윽고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일그러지더니, 다시 재조합되며 새로운 현장이 드러났다.
단숨에 90m의 거리를 이동한 블링크 링의 힘이었다.
하지만.
슈아아! 슈아! 슈아아아!
“크윽, 제길!”
티팅! 팅! 팅!
주천호는 내가 나타날 지점을 정확히 예측했는지, 그곳으로 연속 3타로 화살을 쏘아 보냈다.
강철 강화가 없었더라면, 이마와 왼쪽 가슴, 그곳…… 이 관통 당했을 정확한 조준 사격이었다.
그는 나로부터 3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활시위도 최대치로 당긴 상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순식간에 나를 저격할 수 있는 위치였다.
물론 나 역시 눈 뜨고 당하진 않겠지만.
“목소리만 한 번 들었던 애송이를 직접 만나게 됐군. 어때, 죽을 준비는 됐나?”
주천호가 내 호승심을 자극하는 도발 섞는 한 마디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