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17)
만렙 회귀자입니다만-117화(116/300)
제 117화
단둘의 대화를 마치고 일라이저는 전보다 한껏 밝아진 표정으로 다시 연회장으로 향했다.
신화와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에 고무된 몇몇 양화 길드의 간부들이 그에게 대화를 요청했지만.
“실례합니다.”
일라이저는 가볍게 목례만 하고 지나가는 모습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방금 신화가 남들보다 훨씬 나은, 아니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진보미가 한껏 부러운 표정으로 테라스에서 들어서는 신화에게 말했다.
“와, 저도 신화 씨처럼 단둘이서 그렇게 길게 이야기는 못 했는데! 신화 씨, 일라이저에게 확실하게 눈도장 찍었네요?”
“보미 씨.”
“네?”
“일라이저가 양화 길드 건으로만 국내에 온 겁니까? 아니면 혹시 뭔가 다른 일이 있어요?”
“있죠! 물론 메인은 저희 그룹과의 계약 건이지만…… KSA와도 협력 계약을 체결하러 왔다고 들었어요.”
“KSA?”
“네! 양양에 있는 훈련 시설에 일라이저 그룹이 투자하기로 했다던데요?”
“양양이라면 F&S 파크가 있는 그쪽을 말하는 겁니까?”
“맞아요! 잘 알고 계시네요.”
진보미의 대답에 신화는 진지해진 표정으로 턱 끝을 어루만졌다.
F&S 파크.
F랭크부터 S랭크까지의 던전이 각각 하나씩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던전의 연속성이 있는 데다 접근성도 좋아서 KSA에서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곳이기도 하다.
2019년 8월에 아웃브레이크로 생겼는데, 다행히 인명 피해가 전혀 없던 기적의 현장이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각 나라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주요 시설을 자본으로 잠식하는구나.’
놈의 노림수가 보였다.
어쨌든 신화는 일라이저와의 대화로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일전에 자신이 더미 던전에서 암시로 본 5인 중 한 명이 일라이저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남은 네 사람의 정체가 누군지는 차차 알아 갈 문제.
서두른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닌 만큼,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 * *
그날 밤.
나는 양화 길드 길드원으로서의 마지막 던전 공략을 마쳤다.
반복해서 숙달한 덕분인지 내 기여도를 줄여도 간부들은 능숙하게 바자트를 잡아냈다.
물론 내가 이탈하면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기는 하겠지만, 곧 문제없이 공략할 수 있을 듯했다.
그 후 조촐한 파티가 있었다.
나와의 한 달을 추억하며 즐거웠고 고마웠다고 말하는 간부들의 인사가 있었다.
진성태는 일라이저와의 협력 건으로 현지 공장을 함께 다니느라 바빠서 만날 수는 없었다.
진보미의 말에 따르면, 조만간 진성태가 따로 자리를 만든다고 했다.
양화그룹과의 좋은 인연을 끊을 생각이 없으니 언제든 좋다고 했다. 그들은 여전히 나에게 최고의 비즈니스 파트너다.
파티가 끝나고.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진보미와 정훈의 말을 거절하고, 나는 밤바람을 벗 삼아 조용히 걷고 있었다.
오늘 일라이저와 있었던 일 때문에 생각할 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생각.
내가 가장 질색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시원하게 뇌를 비워 놓고 있기에는 껄끄러운 문제였다.
‘확, 그냥 찾아가?’
니콜라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실 회귀한 순간부터 니콜라스를 찾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었다.
애초에 내가 원했던 회귀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딱히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전생에 쉰여섯 살, 중년의 은퇴였어도 딱히 얼굴에 제법 생겨난 주름이 슬프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는 게 편했다.
복잡하게 생각을 많이 하고, 열심히 전략과 전술을 계획하는 일은 늘 니콜라스의 몫이었다.
나는 정해진 대로, 시키는 대로 그저 힘만 열심히 쓰면 됐다.
성공과 실패, 가능성과 위험성, 그 뒤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안배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니콜라스가 해야 될 고민을 지금 내가 하고 있잖아!’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정황상 확실히 녀석보다 빨리 회귀를 한 것 같고, 덕분에 녀석이 해야 할 고민을 내가 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원하는 은퇴가 단순히 현실에서 도망치기만 하는 도피라면 진즉에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꿈꾸는 웰빙 라이프가 아니었다.
나는 온 세상이 평화를 구가하고, 전 세계가 문명의 풍요로움을 누리는 가운데.
나 혼자 외딴 섬에 와 있는 것처럼 유유자적하게 즐기는 삶을 꿈꾼다.
죽는 그날까지 아무 걱정도 없이 노닥거리면서 살 수 있는 그런 지상낙원 말이다.
‘내가 일라이저의 존재를 몰랐고, 니콜라스가 예정대로 나처럼 회귀를 했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니콜라스가 팀을 꾸려 훗날 레체로도 처치할 것이고, 대재앙도 막을 테니까. 전 세계의 평화도 보장될 테니까.
하지만 니콜라스는 아직 회귀하지 않았다.
그리고 레체로뿐 아니라 전생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흑막도 등장했다.
‘이래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온통 걱정투성이잖아!’
신경질적으로 지면을 걷어찼다.
퍼석!
힘 조절을 못 한 탓에 아스팔트의 지면 일부가 우르르 터져 나갔다.
“…….”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했다.
내가 추측한 대로라면 대재앙은 인류에게 예고된 마지막 재앙이 아니다.
끝이 아닌 시작이다.
2052년의 대재앙은 이를 악물고 대비를 했음에도 많은 각성자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었다.
분명 승리를 거둔 것은 맞지만, 상처가 꽤나 컸던 승리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만약 그 이후의 미래에 일라이저를 위시한 레체로의 ‘선발대’들이 마각을 드러냈다면?
설령 내가 예정대로 은퇴했어도 편하게 쉬기는 어려웠을 터였다.
우리 나인 로드가 놈들이 노리는 최우선 제거 대상이 됐을 테니까.
“녀석을 강제로 어떻게 깨울 수도 없고. 회귀를 내 맘대로 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사실 내가 니콜라스를 직접 찾아가거나 만나지도, 혹은 연락하지도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니콜라스가 매번 내게 입이 닳도록 얘기했던 회귀의 ‘예민함’ 때문이다.
그때는 귀를 후비면서 귓등으로도 안 들었던 얘기였지만, 그래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서 기억 속에 선명했다.
‘회귀자는 모든 법칙을 무시하고 시공을 초월하는 존재야.
미래의 내가 기억과 경험을 가지고 과거의 내게 깃들어야 하는, 매우 정교한 과정이란 말이야.
그렇기에 회귀자만큼은 절대 외력의 개입이 있어서는 안 돼.
강신화, 다시 말해 줄까?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어떤 존재가 과거의 내 모습에 정확히 좌표를 찍어 보내 주는 거야.
근데 누군가에 의해, 최종 목적지인 ‘과거의 나’에게 급격한 변동이 생기면 어떻게 되겠어?
처음에 찍은 좌표가 안 맞게 되는 거야. 회귀를 하지 않게 되는 거라고!
그러니까 말이야, 엣헴!
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를 다시 말해 주는 거지! 알겠냐? 잘 알겠으면 엎드려 고맙다고 절해.’
매번 반복 재생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니콜라스의 말은 일관되었다.
그런 녀석의 말대로라면.
지금 내가 급한 마음에 니콜라스를 찾아가는 순간, 모든 인과관계가 어그러지게 된다.
가령 본인 앞에서.
‘야, 니콜라스! 너 왜 이렇게 회귀를 안 하냐!’
이런 짓거리를 했다가는 진짜로 니콜라스의 회귀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참자. 이거 못 참아서 진짜로 니콜라스가 안 오면 나 혼자 독박 쓰는 거야.”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쯤 분명 미국의 어딘가에서 니콜라스도 나와 같은 하늘……. 아, 거긴 낮이겠지만, 어쨌든.
잘 지내고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어느 화창한 봄날.
회귀하자마자 깜짝 놀라서는 내게 전화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야, 너도 회귀했어? 하고!
* * *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덧 2월 28일이 됐다.
[고림화학 : KR710191] [3,420] [전일대비 ↓180] [등락률 -5.00%]“이제 내일이네.”
하루 앞으로 다가온 고림화학의 특별 공시.
아직 주식 가격이 급등하지 않은 것을 보면, 정보 보안은 잘 유지되고 있는 듯했다.
“평단가가 전생보다 좀 오른 게 유일한 흠이구먼.”
살짝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전생에서는 이때 2900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중간중간 욕심을 내서 매수액을 점점 늘린 탓인지 가격이 살짝 오른 상태였다.
당초 100억 원 정도만 가볍게 투자하려고 했던 계획을 백지화하고, 투자금을 더 늘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현재까지 야금야금 투자한 금액은 총 500억 원.
그저께는 갑자기 매매가가 급등하기도 해서 식겁했던 적도 있었다. 계획이 어그러지는가 하고.
어쨌든 내일부터 고림화학 주식은 3주간의 급등락을 반복하며 쭉쭉 치고 올라갈 것이다.
전생에는 18000원까지 쭉 올랐다가, 그 이후 회사 내부 이슈가 터지면서 급락세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나는 수익 실현의 시점을 17000원 정도로 잡고 있었다.
그렇게만 해도 500억 원의 투자금으로 거의 3000억 원에 가까운 수익을 손에 넣는 셈이다.
단지 3주 동안 돈을 뚝심 있게 ‘묻어 놨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이게 진정한 의미의 불로소득이네.”
휘이- 휘이이-.
기분 좋은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다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한은행 : 예금주 강신화 님] [잔고 : 21,000,000,000원]210억 원.
확 쪼그라든 잔고였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롤라나 왕국으로부터 인가받은 크리비아 아일랜드의 매입금은 물론이고.
왕가와 국가에 기여금, 투자금 조로 들어갈 돈까지 쭉 비용이 처리되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덕분에 박형산과 제일건을 처리하고 받은 현상금까지 모조리 사라졌다.
‘뭐, 돈이야 또 벌면 그만이지. 어쨌든 뿌듯하구먼.’
진보미를 통해 선임한 대리인이 보낸 계약 문서를 보자, 감회가 새로웠다.
크리비아 아일랜드의 장기 임대 기간도 문서상으로 확정됐다.
2020년 3월 1일부터.
2170년 2월 28일까지.
그래, 단언하고 확신하건대 그때의 나는 백골마저 썩어 문드러져 죽고 없을 때일 것이다.
그 뒤에 다시 왕국의 소유로 돌아가는 것까지야 딱히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어쨌든 이렇게 매입 건은 잘 마무리됐다. 그리고 롤라나 왕가로부터 공식적인 초청도 받았다.
늦어도 3월 중순이 되기 전, 성대한 초청 행사에 꼭 참석하기로 확정한 상태다.
가서 기념사진도 찍고, 왕실 인사들에게 눈도장도 찍어 둬야 앞으로가 편할 테니까.
게다가 그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큰손에 의해 대형 투자가 이뤄진 셈이니 먼저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현할 법도 했다.
늘 느끼지만, 돈이 최고다.
돈이 있으면 철천지원수도 둘도 없는 동료가 되고, 굳센 철벽같던 마음도 두부처럼 야들야들해진다.
한데 바로 그때.
“응?”
듀얼 모니터의 한쪽에 띄워 놓은 CCTV 영상을 아무 생각 없이 흘깃 쳐다보던 내게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CCTV가 촬영하고 있는 장소는 안산에 위치한 K-2027 던전.
진성태에게서 양도받은 뒤, 예정된 던전 브레이크로 E랭크에서 A랭크가 된 귀한 내 던전이었다.
이제는 내가 직접 관리해야 하기에 집에서 모니터링을 할 수 있도록 세팅을 해 둔 상태였다.
“저 남자, 리연 아닌가? 옆에 강자희도 있고 흑사자도…….”
대외적으로는 베일에 가려진 얼굴들. 하지만 회귀한 내게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얼굴들.
지금 이 시점에 절대 한국 땅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 셋.
그들이 내 소유의 던전 근처를 여행객처럼 자연스럽게 활보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 대고 있었다.
분명 그 모습은 한국에 여행을 온 중국인 관광객의 흔한 모습이었지만.
“올 것이 왔군.”
내 눈에는 달리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