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20)
만렙 회귀자입니다만-120화(119/300)
제 120화
처음부터 한 놈만 보고 있었다.
리연, 강자희, 흑사자를 제외하고 남아 있는 나머지 넷은 전부 원거리 견제형 각성자였다.
최우선으로 제거한 것이 근딜러형 각성자였고, 이제 ‘마법사’ 계통의 적이 남은 것이다.
휘리리릭! 촤악!
순식간에 길게 늘어난 채찍의 어딘가가 내 옆구리를 매섭게 후려쳤다.
슈트라고 해서 모든 부위가 막힌 형태로 감싸지는 것은 아니다.
옆구리 쪽도 그중 하나인데, 다양한 동작을 위해서 워낙에 자주 늘어나야 하다 보니.
신축성 확보를 위해 작게 뚫린 구멍이 있는데, 거기에 정확히 채찍의 일격이 닿았다.
“……!”
푸슈웃!
나는 묵묵히 고통을 참아 냈다.
뭔가 붉은 것이 옆으로 튀는 것이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정도 피를 보는 일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전투에서 자주 있는 일이니까.
“이익……!”
무지막지한 내 돌진에 당황한 녀석이 급히 앞으로 손을 뻗었다.
위잉.
살짝 허공에 점이 맺히는 것을 보니, 전면 방어 역장이 틀림없다.
마력으로 만들어 낸 푸른빛의 역장을 전면에 세워 방패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순진하네.’
이놈은 나를 너무 우습게 보고 있다.
쿠웅!
힘껏 지면을 박차며,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위이이잉.
이윽고 방어 역장이 쫙 펼쳐졌지만, 정확히 예측 가능한 범위로만 방어막이 생겼다.
허들을 넘듯이, 아주 가볍게 역장을 뛰어넘었다.
다음 순간.
도약할 때 계산했던 대로 내 몸의 위치가 정확히 녀석의 머리 위에 자리했다.
마치 디딤돌을 밟듯이 상대의 머리를 사뿐히 밟아 줄 수 있는 상황.
꾸드득.
여기서 오른쪽 다리를 강화한 뒤, 마력을 실어 가며 녀석의 머리를 힘껏 밟았다.
순간 화력으로 아스팔트에도 균열을 일으키고, 디딤대로 삼은 콘크리트를 박살 낼 수 있는 다리다.
특히나 슈트의 보호부에서 방어 능력이 떨어지는 머리 위쪽이라면 체감 위력은 말할 것도 없지.
콰악!
단 한 번의 밟기.
우드드득!
그리고 수평이 아닌 수직의 힘으로 으스러져 버린 녀석의 경추(頸椎).
“억…….”
수백㎏에 달하는 엄청난 압력을 하나의 점에 집중시킨 형태로 내리찍은 다리 공격.
이를 버텨 낼 준비가 녀석에게는 부족했고, 덕분에 키가 확 줄어든 녀석은 그렇게 불귀의 객이 됐다.
쓰러진 녀석은 거북이를 보는 것처럼 목이 움츠러들어 있었다.
목뼈가 아예 박살이 났으니, 머리가 내려앉아 버린 셈이다.
“아니…….”
“왜, 채찍질 한 번에 뭐 어떻게 될 줄 알았어?”
자신의 공격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한 놈의 목숨을 빼앗은 신화의 공격에 강자희는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그녀에게 당한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육체를 강화시킨 상태이기에 상처가 크진 않았다.
바로 그때.
나는 강자희에게 무언가 말하려는 척을 하다가, 기습적으로 블링크 링을 썼다.
박형산에게 얻은 이 블링크 링의 장점은 공간과 위치 전환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물론 마력 간섭을 일으킬 수 있는 각성자가 있다면 사용을 조심해야 한다.
다만 전생에 내가 파악한 리연, 강자희, 흑사자에게는 이런 계통의 능력이 전혀 없었다. 단언컨대.
“집중해야지?”
“아…….”
또 한 놈이 사정권 안으로 들어왔다.
이놈들, 아무리 봐도 다크 포레스트에서 고용된 녀석들 같은데.
생각보다 허점이 많다.
아니, 나를 빙다리 핫바지로 보는 거야, 뭐야?
누구를 ‘암살’하러 왔다는 타이틀을 달아 주기에는 빈틈이 너무 많았다.
자기들 딴에는 A랭크니, B랭크니 하는 실력자라고 말하겠지만.
EX랭크의 끝까지 가 본 적이 있는 내 눈에는 입문자의 꼼지락거림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압!”
힘찬 기합과 함께, 아공간에서 꺼낸 윌슨을 녀석의 얼굴에 그대로 꽂아 버렸다.
그래도 내심 어떻게든 막아 내거나, 기민하게 피하는 그런 그림을 기대했는데.
퍼석……!
반응도 못 한 녀석은 선 채로 머리가 터져 죽었다.
그 값비싸 보이는 슈트도 유일한 약점부인 얼굴을 지키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일 대 십의 과도한 불균형은 반 토막이 나서 일 대 오의 불균형으로 조정됐다.
* * *
7분 후.
“왜 주술이 하나도 통하지 않는 거지?”
흑사자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벌써 신화를 노리고 전개한 주술만 수십, 아니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백 차례가 넘었다.
시각 정보를 교란하는 왜곡.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드는 환각.
일시적으로 실명 또는 시야 차단을 유발하는 시야 교란.
흑사자는 자신이 쓸 수 있는 주술의 레퍼토리를 전부 다 썼다.
이 정도로 퍼부었으면, 오성칠검의 구성원이자 수준급 검사인 리연과, 강자희가 처리해야 옳았다.
하지만 신화에게 주술은 단 한 차례도 먹히지 않았다.
분명 전신을 감싸는 주술에 피격된 것이 틀림없음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S-랭크.
흑사자의 삶에서 자신의 능력이 이토록 무기력하다고 느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사이에 암살자 둘이 죽었다.
결국 남은 것은 애초에 중국에서 건너온 세 사람이 전부였다.
바로 그때.
파팟.
리연, 강자희와 난타전을 벌이던 신화의 위치가 순간 바뀌었다.
제법 거리를 두고 견제하듯 주술만 사용하고 있던 흑사자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뭐가 잘 안 되니?”
“제기랄!”
흑사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래선 팀에 대한 기여도가 바닥을 찍는 것도 모자라 쭉쭉 지하로 떨어질 판이었다.
문제는.
흑사자가 뭔가를 생각하고 판단하려는 그 찰나의 순간도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퍼억!
“크헉!”
신화의 진권이 벼락같이 흑사자의 복부에 작렬하자, 엄청난 충격파가 내장을 진탕했다.
고급 강화 슈트라서 8할 이상의 힘을 흡수했을 것임에도 2할의 힘이 내상을 입힌 것이다.
순간 활시위처럼 접힌 흑사자의 몸이 약점을 노출하자, 신화가 바로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전투는 인간 방패가 제격이지. 어디 너희들 우정이나 한번 테스트해 보자.”
이어 자연스럽게 흑사자의 목을 움켜쥔 신화가 정면에서 달려들고 있는 리연을 응시했다.
흑사자가 계속 버둥거리며 신화에게 주술을 시전했지만, 쓸모가 하나도 없었다.
흑사자의 강점은 당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드는 수많은 주술이었지만.
하필이면 신화가 마고스의 눈을 먹으면서 얻게 된 능력이 흑사자에 대한 완벽한 ‘카운터’라는 점이었다.
“…….”
신화는 흑사자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리연을 지켜봤다.
강자희는 원을 그리며 외곽으로 도는 것으로 보아하니, 상황에 따라 신화의 뒤를 노릴 속셈인 듯했다.
‘선택의 시간이군.’
리연의 살기 가득한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이놈들이 악독하다고 불리는 것은 보통 ‘아군은 죽이지 않는다’는 대전제를 깔끔하게 무시하기 때문이다.
과연 흑사자를 방패막이로 쓴다면, 리연은 어떤 선택을 할까?
‘죽이겠지.’
피를 나눈 형제도 아니고 전략적인 협력 관계이니만큼.
흑사자를 제물로 삼아 자신을 노릴 것이라고 봤다.
‘그렇다면.’
계산을 마친 신화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충분히 합리적이고 타당한 전략 예측이었다.
* * *
5분 후.
“와, 이 X끼들 봐라?”
현장에 도착한 나미나는 현장의 모든 감시 장치에 붙어 있는 교란 장치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국내에는 유통된 적이 전혀 없는 중국 암흑가의 새로운 장치로 보였다.
즉, 3대 적폐라고 불리는 세 길드 세력이 은밀히 개발한 전략 장치 중 하나로 보였던 것이다.
삑. 삑삑.
바로 가져온 태블릿 PC를 이용해 현지 CCTV와 연동해서 화면을 살피자.
“감쪽같잖아?”
분명 나미나를 비롯한 KSA 요원들의 모습이 잡혀야 할 공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나왔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아예 없는 것처럼 나온 것이다.
그것은 가시적인 부분에서만이 아니라 적외선으로 탐지하는 부분에서도 똑같았다.
“일단 너희는 이 교란 장치들을 모두 회수하고, 입구 주변에 쭉 방어선을 짜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나미나의 명령에 함께 온 요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녀는 바로 강화 슈트의 상태를 활성화시키며, 던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저도 가겠습니다.”
“제가 옆에서 보조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지부장님.”
그러자 지켜보던 최지혁과 윤별이가 바로 나미나에게로 다가왔다.
신화의 경고에 가까운 당부 때문에 던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
하지만 실력자인 나미나가 도착했으니, 이제는 충분히 진입해도 될 것 같았다.
“좋아요. 다만 의욕에 치우쳐서 앞서지 마세요. 여기서 추가 피해자가 발생하면 강신화 씨의 ‘설계’도 의미가 없어지니까.”
나미나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바로 나미나의 뒤에 자리를 잡고 섰다.
“바로 들어가죠. 신화 씨 본인이 처리하겠다고 했지만, 이런 위험한 상황을 그냥 두고만 볼 순 없어요.”
빠른 진입이 시작됐다.
던전 안으로의 진입이 끝나고.
이내 세 사람의 눈앞에는 던전 외부가 아닌 내부의 삭막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렇게 약 5분 정도를 던전 내부 깊숙이 발자국을 따라 쭉 들어갔을까?
작은 언덕을 넘어 풀과 나무가 우거진 숲 지대로 접어들던 바로 그때.
“응……?”
나미나는 완전히 피투성이가 된 채로 입구에 쓰러져 있는 흑사자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
저 멀리에서부터 아주 길게 핏자국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쓰러진 상태에서 어떻게든 살겠다고 여기까지 기어서 온 듯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입구에 닿지 못하고, 흑사자의 몸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등판 한가운데에 거대한 원형의 상처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신화가 날린 ‘매직 볼’이 등을 강타하며 단숨에 숨통을 끊은 듯했다.
“도대체 주술진이 몇 개야?”
나미나가 혀를 내둘렀다.
전방에 어렴풋이 보이는 전장에는 흑사자가 펼친 것으로 보이는 수많은 주술진이 깔려 있었다.
그것은 눈으로만 봐도 어지러울 정도로 많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신화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듯했다.
“여기도…….”
“여기도 있어요.”
이어서 최지혁과 윤별이가 발견한 암살자들의 상태도 흑사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얼굴이 성한 경우가 하나도 없었다.
좌우로 꺾이고, 짓눌리고, 얼굴이 밖이 아닌 안으로 오히려 움푹 들어가 버리고.
숫제 으깨졌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상태가 심각한 시체도 꽤 있었다.
어차피 개인 사유의 던전을 별도의 승인 없이 침입하고, 악의적으로 교란 장치를 설치한 시점에서.
이미 이들에게는 신화를 공격 혹은 암살하기 위한 의사가 있었다고 간주할 여지는 차고 넘쳤다.
문제는 무려 열 명이나 동원되었을 만큼 어설픈 암살 시도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수준급의 실력자들이 들어온 것일 텐데도 불구하고, 신화는 일 대 십의 전투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어떻게 이런 전투를……?”
나미나가 전방의 우거진 수풀들 사이로 보이는 신화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남은 두 명의 각성자와 치열하게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S랭크의 경지에 달해 있는 듯한 두 남녀.
그들이 다루는 검과 채찍의 유려한 일격이 다채롭게 공간을 가르며 신화를 몰아치고 있었지만.
신화는 신음 한 번 토하지 않고 꿋꿋하게 맞서고 있었다.
그에게 수적 열세란 전혀 걱정하고 고려할 문제조차 아닌 것처럼 보였다.
“…….”
꿀꺽-.
수적 열세를 극복하는 신화의 의연함과 침착함에 자신도 모르게 동화된 나미나가 마른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