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24)
만렙 회귀자입니다만-124화(123/300)
제 124화
얼마 후.
지제역 현장에 도착한 이하성과 나미나는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2월 29일까지만 해도 검은 안개가 득시글거리던 지제역 일대가 맑고 깨끗해진 모습을.
심지어 10년 동안 안개 속에서 묵묵히 빛을 내 왔을 가로등의 불빛까지 반짝이고 있었다.
오랜 시간의 흐름 탓에 불빛 자체는 희미했지만, 그 불빛 자체가 의미하는 바는 컸다.
“정말 완전히 사라졌어요.”
“그러게. 아주 약간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군. 즉사의 안개가 없으면 이 지대를 굳이 블랙 존으로 지정할 필요가 없어.”
“이 정도면 기존의 블랙 존 지정을 해제하고 전부 레드 존 지정을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아요?”
“긴급 심사를 하면, 몇 분 안으로 가능하지.”
나미나의 말에 이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오기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두 눈으로 확인하자 더욱 실감이 났다.
던전이 늘어난다는 것은 어쨌든 이득이다. 각성자가 강해질 수 있는 전장이 늘어나는 것이니까.
물론 아직 던전의 랭크가 확인되지 않은 만큼, 소유권이 누구에게 갈지는 알 수 없었다.
D랭크 이상의 던전이면 각성자특별법에 의해 국가- KSA – 소유가 되고, E랭크 이하면 해당 토지를 소유한 자의 몫이 된다.
“문제는 저 던전의 판정과 무관하게 주변 땅이 온통 강신화 씨의 소유라는 점이네요.”
“E랭크 이하의 던전이라서 본인 소유가 되면 그대로 내버려 두면 되긴 하지. 오히려 문제는 D랭크 이상일 경우지.”
“애매하네요. 아까 보니까 던전 주변은 전부 사 둔 것 같던데요?”
“도대체 어떻게 안 거지? 단지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한 투자였을 뿐인가? 아니면, 미나 네 말대로 미래시인가?”
이하성은 너무 궁금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너무 많은 톱니바퀴가 절묘하게 맞물렸다.
심지어 신화가 땅을 사 놓고 잊어버린 것도 아니다.
지제역 일대에 변화가 일어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락을 한 것이다.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스캔 안 돼요?”
“안 된다니까……. 전에도 실패했다고 얘기했잖아. 보통 내기가 아니었다고.”
“대한민국의 최강자라고 불리는 본부장이 못 보면 누가 봐요?”
“그러게 말이다.”
이하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미나와 함께 멀찍이 보이는 신화에게로 향했다.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있던 신화는 두 사람이 다가오자, 자연스럽게 악수를 청했다.
이하성은 혹시나 하는 생각 – 희망 고문 – 에 탐색 재능을 발동시켜 봤지만.
“…….”
전에도 그랬듯이 거대한 장벽에 막힌 것처럼 아주 약간의 마력도 뚫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하성은 만약에 신화가 자신과 똑같은 ‘탐색 재능’을 갖고 있었다면.
거꾸로 신화의 힘에 의해 자신이 당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딱히 건드린 것들은 없습니다. 던전은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고, 당연히 주변에 아무도 없고요.”
“나미나 지부장님, 던전 코어 에너지 감지 장치로 측정 좀 해 주시죠.”
“네, 알겠어요.”
이하성의 지시에 나미나가 신속하게 움직였다. 공적인 자리가 된 터라 말은 존대로 바뀌었다.
한편 신화가 놀란 표정으로 장치를 쳐다보며 물었다.
“챙겨 오신 겁니까? 엄청 고가의 장비라고 들었는데요.”
“새 던전은 랭크 판단을 빨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고가여도 쓸 땐 써야죠. 하하.”
이하성이 웃으며 답했다.
언뜻 봤을 때는 작은 핸드백 정도 되는 크기의 장치였지만, 해당 장치의 가격은 무려 2천억 원에 달했다.
다량의 최상급 차원석이 들어가 있음은 물론이고, 미세 공정에 희귀 재료들이 많이 들어가서였다.
잃어버리면 정말 큰일이 나는 고가의 장비이기도 했다.
나미나가 빠르게 측정을 진행하는 동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신화는 할 말과 생각들을 일찌감치 다 정리해 둔 상태였지만.
이하성은 이제부터 머리를 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장치를 통해 확인을 마친 나미나가 외쳤다.
“셋 모두 D랭크 던전이에요!”
“확실합니까?”
“확실해요! 3중 검증했어요!”
“저는 던전 소유권에 대해서는 관심 없습니다. 국가 소유가 됐으니 오히려 잘됐네요.”
신화가 웃으며 답했다.
던전을 들어가 보지 않고도 미련을 버릴 수 있는 것은 던전 안에 뭐가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달리 특별할 것 없는 무난한 D랭크 던전이었다. 꽃이나 특이 재료가 있는 곳도 아니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던전이라 차원석 드롭률이 약간 높을 가능성 정도는 있었다.
“주변 토지들을 전부 사 두셨더군요.”
“네. 시쳇말로 ‘존버’라고 하잖아요? 어차피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은 듯해서 사 뒀었죠.”
너무 눈에 띄는 능청스러움.
이하성은 그것이 다분히 의도된 신화의 행동이라고 느꼈다.
난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이렇게 새로이 생긴 던전 주변에 땅을 가지고 있다. KSA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이냐?
이렇게 되묻는 느낌이었다.
“해당 던전은 KSA에서 관리를 하게 될 겁니다. 괜찮으시다면 아예 토지를 판매하심은 어떨지?”
이하성이 넌지시 제안을 했다.
만약 주변 입지가 안 좋은 곳에 이 던전들만 덜렁 생긴 것이었으면 생각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조건이 좋았다.
당장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도 C랭크 던전이 둘이나 있다.
지금까지는 활성화가 크게 되지 않은 던전이었는데, 그 까닭은 즉사의 안개 지대랑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큰 위험이 사라졌으니, 던전의 가치가 덩달아 상승할 가능성이 컸다.
즉, 각성자들이 몰릴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이다.
던전이 늘 번화가나 인구 밀집 지역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지나 다름없는 마을이나 섬에 위치한 경우도 많고, 산 정상을 올라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가까운 거리에 C랭크 던전 둘, D랭크 던전 셋이 있다는 것은…….
통으로 묶어, 이곳을 하나의 던전 밀집 구역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뜻도 됐다.
“판매할 생각은 없습니다.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렇습니다. 땅의 소유권은 강신화 씨가 갖고 있으니까.”
“제 생각에는 말이죠.”
신화가 운을 뗐다.
역시나 노림수가 있었다는 생각에 이하성은 신화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화에게 주도권을 다 내준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정말 땅주인이 독하게 마음을 먹으면, 해당 던전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온갖 구조물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던전이 있는데 의도적으로 주변의 땅을 산 게 아니라, 자신이 산 땅에 던전이 생겼기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즉, 신화가 마음만 먹으면 KSA에 갑질을 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했다.
“이 일대를 잘 개발하면 병점역에서 지제역까지 이어지는 1호선 라인을 붉은색보다 노란색에 더 가깝게 만들 수 있을 듯한데요.”
“KSA가 남쪽의 C랭크 던전 두 개와 같이 묶어서 일대를 던전 밀집 지대로 키우길 원하십니까?”
“저는 선순환의 그림을 보는 겁니다. 지제역 일대가 빠르게 안정화되면, 위아래로 쭉 안정화가 될 것 같아 보이는데요.”
신화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이하성도 그렇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나미나와 여기로 오면서 나눴던 얘기와 정확히 일치하기도 했고.
“일단 좋은 생각이라는 점은 동의합니다. 신화 씨는 여기에 편의 시설 및 관련 시설들을 지을 생각이겠군요.”
“두말하면 잔소리죠.”
신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필요한 시설은 일단 가건물 형태로 지어서 먼저 알짜배기 필수품부터 팔면 된다.
자본이야 신화가 댈 수도 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양화그룹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
자리를 주고, 월세 장사를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선택지다.
던전에 입장하는 각성자들은 보통 여벌의 강화 슈트나 마력, 회복 물약을 반드시 구매한다.
이런 부분은 양화그룹이 체계적으로 잘되어 있으니, 협의 아래 전략적 제휴를 할 여지가 충분했다.
‘여긴 은퇴한 이후에도 고정적인 돈줄로 삼기에 딱 좋지. 땅은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안 팔지. 누구 좋으라고?’
신화의 생각은 확고했다.
이곳 일대는 앞으로 최소 10년 동안은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갑작스런 아웃브레이크도, 혹은 범죄 조직의 준동이든 무엇이든 말이다.
‘일이 생각대로 술술 풀려 가는구나.’
주식에 이어 땅까지.
확실하게 돈을 불리기 위한 토대가 마련되는 느낌이었다.
고림화학의 주식.
지제역 던전 지역 일대의 땅.
기반은 갖춰졌다.
이제 머지않아 자신에게 찾아올 돈다발을 꾸준히 잘 투자하면 될 것 같았다.
바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넘실거리는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들에 말이다!
* * *
내가 지제역을 떠나기 전, 이하성의 요청으로 현장에 도착한 요원들은 던전 탐사에 들어갔다.
으레 있는 일이었다.
국유화된 던전이기에 해당 던전에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지 반드시 미리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하성은 내게 이 일대의 개발 건에 대해서 검토하고 판단할 전담 팀을 꾸리겠다고 말했다.
나 역시 양화그룹과 논의해서 최대한 빠르게 개발 및 투자 계획을 짜겠다고 했다.
나, 양화그룹, KSA 셋은 모두 관계가 원만하니 이 일이 안 풀릴 가능성은 0%라고 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진보미와 연락해 조만간 진성태를 만날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았다.
자연스럽게 지제역에 사 둔 땅과 던전 얘기를 꺼냈지만, 진보미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신화 씨, 나중에 혹시 제 미래를 조금이라도 볼 수 있으면 알려 주세요. 돈은 두둑이 드릴게요.
오히려 이런 말과 함께 웃으면서 넘길 정도였다.
하도 놀라다 보니, 더 이상 놀라는 것을 포기(?)한 모양이었다. 이젠 그러려니 하는 듯했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 안.
간만에 앉아서 철로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니 한결 편했다.
가끔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렇게 대중교통의 힘을 빌려 이동하는 것도 괜찮지 싶었다.
뭐, 마음이 급하면 건물 사이를 열심히 뛰어 날아다녀야겠지만.
“흠…….”
나는 지갑에 넣어 둔 일라이저의 몽타주를 다시금 봤다.
전에 샤미에게 일라이저의 모습을 보여 줬지만, 전혀 알아보지 못하겠다고 했다.
샤미는 레크나트 교단의 사람이 아니라 그들에게 희생된 왕국에서 살아남은 공주.
그래서 일라이저와 접점이 없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쪽 귀로 흘리지 말고 새겨들을 걸 그랬나.’
괜히 입맛이 썼다.
전생에 레체로를 때려잡을 때, 사실 놈들의 일대기나 역사에 대해서 들을 일이 제법 있었다.
하지만 전략이나 전술, 심층 조사 등을 모두 니콜라스에게 위임하고 그가 시키는 대로만 했던 터라.
굳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죽이라고 하면 죽였고, 잡으라고 하면 잡았다.
왜, 라는 질문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때는 뇌를 비우면 되기에 참 편했는데, 이제 추리를 하자니 머리통이 깨질 것만 같다.
당장에라도 남태평양으로 훌쩍 떠나, 크리비아 아일랜드 어딘가에 처박히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한 가지는 확실하게 기억해. 나처럼 저주로 인해서 몸을 잃고, 나스 대륙에서 추방당했던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어.
-전에 살던 섬에서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어쩌면 여기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존재가 있을지도 몰라. 고양이, 개, 무엇이든 되어 있겠지.
그나마 샤미가 남겼던 말이 다른 의미에서 해결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목격자들이 필요하다.
일라이저 로우를 제외한, 베일 속의 4인을 찾아낼 수 있도록 새로운 목격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