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31)
만렙 회귀자입니다만-131화(130/300)
제 131화
미련 없이 아공간을 소환해 입구로 손을 뻗었다. 이미 무엇이 필요한지는 판단을 끝낸 상태.
처억!
거의 써 본 적이 없어 이질적인 감각이긴 하지만, 활용법은 확실히 알고 있는 녀석이었다.
바로 제일건에게서 얻은 마력탄총, MZ-20이었다.
“설마?”
동료의 놀란 목소리를 들을 새도 없이, 나는 바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조준했다.
마력탄총을 움켜쥔 양손을 따라 청소기처럼 대량의 마력이 빨려 들어갔고.
타앙!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꾸웩!”
그러자 휑한 공간처럼 보인 위치에서 폭죽처럼 피와 살점이 터지며, 단말마의 비명이 들렸다.
“인비저블 랫. 약칭 인랫.”
가장 먼저 녀석의 정체를 알아본 것은 몬스터에 대한 조예가 깊은 윤별이였다.
인비저블 랫(Invisible Rat).
평상시에도 투명화 상태를 유지하며, 이족보행으로 던전을 누비고 다니는 몬스터다.
인랫은 별도로 특화된 공격 수단이 없어 던전에 들어온 각성자를 쉽게 공격하지는 못했다.
문제는 녀석이 각성자 몰래 가까이 접근해 특유의 콧김을 이용해서 내뿜는 독기였다.
무색무취.
하지만 흡입하는 각성자로 하여금 가볍게는 감기와 같은 증상에서 심하면 마비를 일으키기도 하는 독기였다.
“신화야, 어떻게 본 거야?”
“투명화된 상대도 보여요?”
신부님과 진보미가 물었다.
“투명화된 상대가 보이는 것은 아니에요. 대신 그 녀석이 내뿜는 체취는 맡을 수 있죠.”
“극도로 발달한 후각! 혹시 이런 예시를 말하는 거예요?”
“맞아요. 정답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투명화된 상대를 직접 확인하려면 눈의 추가 개변이 필요하다.
일전에 마고스의 눈을 섭취해서 만들어 낸 것이 1차 개변으로 환각, 왜곡, 암흑에 대응할 수 있다.
그런데 투명한 대상을 보려면 더 난도 높은 개변이 필요한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이 후각과 청각이었다.
물론 적외선 탐지는 지금도 가능하지만, 워낙 눈에 무리가 많이 가는 탓에 상시 유지는 힘들었다.
“와! 그나저나 마력탄총을 상당히 능숙하게 쓰시네요. 컨트롤하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녀석이 가까워서 대충 쏴도 맞출 수 있었던 겁니다.”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은 전생의 늘그막에 총기에도 관심이 많아져 그때 바짝 연습을 한 덕분이었다.
당시와 비교하면 구형이긴 하지만, 메커니즘은 똑같아서 활용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일단 이 녀석에게는 다들 가까이 가지 마요. 죽으면 독기 분출이 거의 안 되지만, 어쨌든 병을 옮기는 위험한 놈이니까.”
애초에 내 말이 없었기 때문인지 인랫에게 가까이 접근한 동료들은 없었다.
여기에다가 확실히 경고까지 하자, 빠르게 거리를 벌리며 멀어지는 모습이었다.
“예전에 보미 씨의 마력 방출 장애를 만들어 낸 저주도 이 녀석이 옮기는 병과 비슷한 겁니다.”
“정말요?”
“심각한 독기를 머금고 있는 인랫에게 당하면, 마력 방출 장애가 생기기도 하거든요.”
“아…….”
진보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장애로 고생했던 당시의 끔찍했던 기억이 절로 떠오른 탓일 터.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몸이 기억하는 그때의 고통과 아픔이 쉽게 잊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케로는 던전 밖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하지만 던전을 마음대로 옮겨 다니는 녀석이었어.’
진보미에게 저주를 걸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케로 역시 레체로의 심복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다만 녀석은 일라이저와는 다르게 던전 안에서만 암약을 하던 놈이었다.
나중에 더 이상 위치를 쫓을 수 없어 행방조차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내 기억이 맞는다면, 아케로는 던전과 던전 사이를 뛰어넘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녀석이었다.
언젠가 우연 혹은 제보를 통해서 놈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분명 레체로와 그 뒤에 숨겨진 더 큰 흑막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
“직선 주로로 쭉 갈 겁니다. 인랫의 수가 적진 않겠지만 이 지름길로 가는 게 효율이 좋아요.”
나는 숲을 따라 쭉 뻗은 평탄한 도로를 가리켰다.
지형적인 특성상 인랫이 모습을 숨기고 있다가 접근해서 병을 옮기기에 좋은 구조지만.
감지할 방법이 있는 만큼 굳이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물론 다른 각성자 팀이 왔다면, 반드시 돌아갔을 것이다.
혹은 아무 생각 없이 횡단하다가 단체로 앓아눕든가.
킁킁.
바로 그때.
몰래 숨어든 또 다른 불청객을 감지한 나는 바로 그 지점을 향해 윌슨을 던졌다.
거친 파공음을 내며 날아간 윌슨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던 공간에서 희생양을 찾아냈다.
“……!”
퍼석!
인랫의 내구성은 형편없는 수준이기에 윌슨이 스치기만 해도, 머리가 수박처럼 펑펑 터져 나갔다.
그렇게 우리는 이동 내내 귀찮게 만드는 녀석으로 유명한 인랫을 빠르게 제거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에 예상했던 이동 속도보다 2배는 더 빠른, 신속한 던전 공략이었다.
* * *
얼마 후.
별 탈 없이 다수의 인랫을 제거하며 전진한 우리는 던전의 중간 지점에 도착했다.
어차피 내가 K-10004 던전에서 공략하려는 것은 메인 보스 몬스터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노렸던 곳은 이 던전 안에 숨어 있는 이중 던전이었다.
지금까지 절대 어느 누구도 발견했을 리 없는 특별한 공간.
내게 필요한 ‘액체화의 꽃’은 물론이고, 동료들에게도 도움이 될 요소가 넘치는 장소였다.
“저 길목까지 넘어간 다음에 쉽시다. 딱 네 시간 걸렸네요. 마침 던전의 짧은 밤이 찾아오고 있으니 막간을 이용해서 좀 쉬죠.”
던전의 해가 지고 있었다.
다만 이곳의 밤은 약 4시간 정도로 짧기에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면 될 정도였다.
“가장 만나기 싫었던, 껄끄러운 수문장이 나타났네요.”
윤별이가 오는 내내 리바니스의 담석으로 연마를 해 온 단도의 옆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녀의 공격은 생물체를 대상으로는 위력적이지만, 라스카트 같은 무생물류에는 유독 약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도 길목을 막고 서 있는 녀석을 보며 난감해하는 모습이었다.
“저 체력 돼지들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답이 없긴 한데.”
이동 경로를 지키고 있는 몬스터도 라스카트였다.
문제는 오면서 상대했던 전투형 라스카트와 달리, 이 녀석들은 ‘극방어형’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투가 목적이 아니라 길을 막고 버티는 것을 목적으로 설계된 몬스터였다.
그렇기에 아무리 내가 극대화한 파괴력으로 두들겨 팬다고 해도, 생채기 하나 안 날 가능성이 컸다.
물론 방어 능력을 얻은 만큼 공격 능력을 잃었지만, 어쨌든 ‘수문장’이라는 별명에 딱 어울리는 콘셉트였다.
“무리하지 말고 돌아갈까? 처음에 브리핑할 때는 그때 가서 얘기하자고 했었잖아?”
“그랬죠. 어떤 구조일지는 짐작이 안 갔거든요.”
신부님의 말대로였다.
던전의 내부 지형은 기억하는 것과 달리, 리셋이 될 때마다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예전과 완벽하게 똑같은 형태로 리셋 되는 것이 아니라서, 늘 10% 정도의 변수는 있었다.
“진짜 저런 고기 방패들은 어떻게 공략을 해야 하나. 쯧.”
한소준이 혀를 찼다.
수치로 비유하자면, 저 녀석들은 그간 상대한 라스카트보다 체력과 방어력이 10배는 높았다.
내가 단기간에 고화력을 일으킬 수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고려해도 한 놈을 때려눕히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을 도약으로 피하기에는 주변 지대에 우거진 고목의 높이가 무려 100m에 달했다.
즉, 정면으로 통과하지 않고서는 한참을 빙 둘러서 가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오랜만에 강력 접착제를 쓸 때가 된 건가?’
회귀한 이후에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던 옵션을 활용할 생각이다.
그것은 바로 개변을 통해 성질을 변화시킨 침을 활용하는 것.
앞서 치유의 침, 추적의 침, 독성의 침은 활용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마지막 4번째 옵션인 ‘접착의 침’은 아직까지 활용한 적이 없었다. 딱히 쓸 일이 없어서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을 듯했다.
접착의 침은 강력한 접착제처럼 영구적인 지속력을 갖지는 않는다. 지속 시간은 약 10분 정도?
하지만 그 정도면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에 충분하고도 넉넉해 보였다.
“다들 달릴 준비를 해요. 길을 뚫을 테니까 일직선, 여기를 중심으로 무조건 일직선으로 달려요.”
왜? 어떻게? 가능하겠어?
이와 같은 물음을 아무도 내게 하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비상식적인 제안을 하더라도, 다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넌 항상 정답이야.’
그 이유는 여기까지 이동하는 동안, 신부님이 내게 했던 말과 일맥상통했다.
모두가 나를 믿었다.
가능성을 운운하기보다 묵묵히 믿고 따르는 것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음을 느낀 것이다.
“출발하라고 소리치면 그때 출발해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말이 끝나자마자 라스카트 무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미 침샘 안에는 언제든 초강력 접착제의 역할을 해 줄 침이 잔뜩 고여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내 몸에는 절대로 반응하지 않는 침이다. 일종의 자가 면역이랄까.
“콰아아! 쿠와!”
“카가가가!”
기세 좋게 달려드는 나를 발견한 라스카트 무리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작은 굼떴지만, 두툼한 몸이 움직이는 모습은 상당히 위력적이었다.
“퉤!”
적당히 입 안에서 소분(?)한 약간의 침을 한 녀석에게 뱉었다.
처억!
왕년에 침 좀 뱉어 본 덕분인지 정확히 목표한 곳에 접착의 침이 붙었다. 라스카트의 이마였다.
“돌덩이, 이리 온?”
나는 맞은편에 있던 녀석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녀석이 붉은 안광을 폭사하며 달려들었다.
유독 한 손가락만 우뚝 솟아 있으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만국 공용인 모양이다.
콰악! 콰아악!
내가 이마에 침을 뱉은 채로 머리 위에 자리를 잡고 있자, 라스카트가 팔을 뻗어 나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사뿐히 몸을 띄우는 것으로 얼마든지 공격을 회피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쿠우웅!
반대쪽에서 팔을 뻗어 나를 노리려던 놈이 동족과 함께 부딪히고 말았다.
상황이야 어쨌든 나를 떨어뜨리기만 하면 이득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우루룩?”
“크각?”
마치 패션쇼에서 연인 콘셉트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남녀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이마가 쩍 하고 붙어 버린 두 녀석의 얼굴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덕분에 코, 입 할 것 없이 가까이 붙어서 누가 보면 서로 입이라도 맞추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콰아악!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길목을 막고 선 라스카트는 아직도 다섯이 더 있었다.
나는 서로 단단히 붙은 채로 버둥거리는 두 녀석의 왼쪽 팔에 사이좋게 침을 나누어 뱉었다.
이제부터 이 돌덩어리들을 가지고 열심히 테트리스를 할 시간이다!
* * *
같은 시각.
“살다 살다 돌끼리 붙이는 저런 방법은 처음 보네.”
한소준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이가 없어서가 아니라, 신화가 만들어 낸 기상천외한 방법에 감탄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신화로부터 치유의 침 덕을 봤던 진보미나 최지혁도 마찬가지였다.
우둑. 우드득. 끄드득.
하나하나 나누어 보면 위압적이기 그지없는 덩치 좋은 골렘들.
하지만 지금의 녀석들은.
저마다 이마를 맞대고.
강제로 팔짱을 끼고.
‘그 부위’가 기묘하게 서로 마주 붙어 하체를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기가 막힌 모습이었다.
수문장처럼 떡 하니 길목을 막고 서 있던 본래의 모습이 무색하게.
쿠궁! 꾸르릉! 꾸궁!
지금의 라스카트 7기는 어지럽게 뒤섞여 뭉쳐진 돌무더기가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바닥을 정신없이 구르고 있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