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39)
만렙 회귀자입니다만-139화(138/300)
제 139화
그 사람은 미리 현장에 도착해 있었다.
지금까지 나와는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이지만 내가 윤별이를 통해 전한 메시지에 호기심을 느낀 듯했다.
“…….”
좀 더 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주변으로 마력을 최대한 흩뿌리며 기감을 감지했다.
‘없군.’
불청객이나 달리 훔쳐보는 눈은 없어 보였다. 은신으로 추정되는 체취도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오롯이 단둘만 만나는 자리임은 확실해 보였다.
따각따각.
적막만이 가득한 폐공장 안에서 내 발소리만이 크게 울려 퍼졌다.
그는 나를 바라보더니,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강신화입니다.”
“반갑습니다. 처음 인사드리는군요. 저는 혜화 길드의 마스터, 김재림입니다.”
김재림.
국내 서열 3위인 혜화 길드의 마스터로 SS+랭크의 각성자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진우나 신정아와 달리, 전형적인 착한 남자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사실 그런 그의 인덕에 감화되어 가입하게 되는 길드가 혜화 길드이기도 했고.
전생에 목진우와 신정아는 이런 김재림의 천성을 두고 그의 호의를 악용했다.
지금도 차근차근 진행 중일 것이다. 당사자만 전혀 모르고 있을 뿐.
내가 김재림과 만나고자 한 것은 귀국하자마자 체크한 홍연 길드의 행보가 심상찮아서였다.
지난번의 경고로 내심 목진우가 경각심을 느끼고 혜화 길드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마음을 단념하길 바랐건만 현실은 달랐다.
녀석은 그날 이후, CSA와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대외적으로는 길드 소유의 던전과 CSA 소유의 던전을 상호 협력해 공략하자는 내용이었지만.
‘상호 협의 건으로 국내에 입국한 CSA 구성원들의 면면이 문제였지.’
나는 언론 보도를 통해 CSA쪽 입국자가 누군지를 확인한 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훗날 3대 적폐 길드로 소속을 옮기는 간부들이었기 때문이다.
즉, 이미 현재 시점부터 일찌감치 3대 적폐 길드에 포섭된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런 사실을 목진우가 모를 리 없었다.
아마 공식적으로는 CSA와의 협력인 체 포장했지만, 내전에 대비해 각성자 인원을 늘리자는 수작일 테지.
상대가 중국 각성자 관리국이라는 명분이 있으니 인원이 제법 들어와도 이상할 것 없고.
‘앞당기고 있어.’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전생의 역사대로라면 4월 말쯤은 되어야 벌어질 사건이 오히려 시간이 앞당겨진 셈이 됐다.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일.
역사는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만큼, 이번 일에 개입할 생각이었다.
니콜라스는 아직 회귀하지 않았고, 이 ‘내전 사건’은 혜화 길드의 유능한 각성자들을 몰살시키는 대사건이니까.
남의 일로 치부하기에는 사라질 각성자가 너무 많다! 또한 내 미래를 위해서라도 직접 나설 필요가 있었다.
김재림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따로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 뵙기를 청했습니다. 실례가 안 됐으면 좋겠군요.”
“아닙니다. 다만 장소 선택이 의외였던 터라 만반의 준비를 하고는 왔습니다만.”
김재림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두툼하게 차려 입은 강화 슈트를 내보였다.
조심성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왜 만나자고 했는지 그 진의를 의심해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홍연 길드와 청연 길드에서 혜화 길드를 노리고 있습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예? 금시초문입니다. 두 길드와는 꾸준히 협력을 해 오고 있는데,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혜화 길드가 쌓아 올린 금자탑을 두 길드에서 차지할 계획을 준비 중입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예상했던 반응이 나왔다.
저렇게 착하고 순진한 사람이 어떻게 이 만큼이나 길드를 키웠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남을 잘 믿었다.
‘전생에서도 저래서 당했지.’
인과관계는 명확했다.
김재림은 바보같이 착했고, 목진우와 신정아는 그러한 김재림의 성정을 악용했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앞에서 온갖 천사 행세를 하며, 그에게 더 친밀하게 다가서고 있겠지.
“좋습니다. 처음부터 제 말을 다 믿어 달라고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 그럴 근거도 부족하니까요.”
“…….”
김재림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의심한다기보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 꽤나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혜화 길드 소속의 간부들 중에서 김장혁과 조선웅이라는 간부가 있을 겁니다. 그렇죠?”
“그렇습니다.”
“두 사람에 대해서 은밀하게 행적을 내사해 보십시오. 특히 허가받은 동선을 더 유심히.”
“…….”
“해당 간부가 일을 잘하고 있는지 체크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마음이 덜 불편하실 테고요.”
“내사라……. 두 사람은 제가 아끼는 간부들입니다. 그들이 저를 배신했다는 말입니까?”
“아직까지는, 아니죠.”
김장혁과 조선웅은 혜화 길드가 몰락한 다음, 홍연 길드의 핵심 간부로 영전하게 된다.
그들은 훗날 무용담처럼 자신들이 혜화 길드의 몰락을 처음부터 ‘설계’했다며 당당히 떠들곤 했다.
“음……. 믿을 수 없군요.”
“믿어 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만약을 위해 한번 조사해 보라는 것뿐입니다. 자체 감사를 하듯이.”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홍연 길드 쪽에서 던전 공략의 협력 제안 같은 것을 할 겁니다. 마스터의 발을 묶어 놓기 위한 밑 작업이 필요해서.”
“이미 얘기가 끝난 부분입니다, 그 부분은.”
“벌써요?”
김재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 부분을 얘기한 것은.
전생에 목진우가 김재림을 노린 시점이 함께 던전에 들어갔을 때였기 때문이다.
던전에 들어가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되어 있는 사이, 밖에서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던전 공략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김재림을 공격해 그를 죽여 버렸다.
눈 뜨고 코가 베이는 최악의 결과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럴까 싶었는데, 이미 디데이가 잡힌 듯하다.
“3월 20일. 이제 11일 정도 남았네요.”
“마스터, 그 던전 공략에 저도 참여하게 해 주실 수 있습니까? 객원이든 용병이든 좋으니.”
김재림이 던전 공략에 응했으니 목진우는 자신들의 ‘마각’을 그가 눈치채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혹시 계획이 탄로 났는지 떠볼 심산으로 김재림에게 제안을 했는데, 그가 덥석 물어서 당황했을지도.
“그건…….”
“전리품 일체는 물론이고 지원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참여만 할 수 있으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건 생각해 보죠.”
김재림의 눈빛이 흔들렸다.
여전히 목진우를 믿으면서도 내가 너무 자신 있게 말을 이어 가자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사람의 천성은 쉽게 바뀌진 않는 만큼, 지금은 오히려 나를 의심할 가능성이 더 컸다.
예상하고 있었다.
이대로 흘러가게 두고, 다른 방법을 노리는 ‘세컨드 플랜’도 생각해 놨으니까.
니콜라스가 늘 강조했었던 퍼스트, 세컨드, 써드 플랜의 중요성을 실전에 써먹을 참이다.
“저를 믿어 달라는 게 아닙니다, 마스터. 다만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한번은 의심해 보십시오.”
정리한 마지막 멘트를 건넸다.
여기에서 김재림이 느끼는 바가 없다면, 빙빙 돌아가는 길이라도 선택할 수밖에.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얼마든지. 뜻은 존중합니다.”
그렇게 어색했던 그와의 첫 만남과 대화가 끝이 났다.
미래를 다 알고 있는데도, 현재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납득시키기란…… 참으로 힘든 일인 듯하다.
니콜라스.
전생에 네가 정말 고생 많았구나, 진짜. 새삼 녀석이 존경스러워졌다.
* * *
그날 저녁.
“흠.”
조용히 길드 건물로 돌아온 김재림은 앞으로 잡힌 일정들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협력하기로 예정된 팀도 전부 다르고, 던전도 다르지만 유독 날짜가 몰려 있긴 하네.”
그리고 이번에는 전력의 참여 구조도 평소와 달리 혜화 길드의 참여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이유인즉.
그간 홍연 길드에서 다수의 인원을 참여시켜 왔으니, 이번에는 비율을 바꾸자는 제안 때문이었다.
공교롭기는 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길드 내부도 아닌 완벽한 ‘제3자’인 신화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김재림에게는 의외였다.
목진우와 딱히 악연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고, 소규모 팀을 결성한 신화가 굳이 길드 간의 분열을 획책할 이유도 없어 보였다.
“김장혁, 조선웅…….”
간부의 이름을 되뇌어 보는 김재림의 입맛이 썼다.
외부인의 말만 듣고 자신을 믿고 따르는 심복들을 의심하는 게 정말 맞는 걸까.
신화였다면 당장 결정을 내렸을 일을 김재림은 머리까지 싸매며 끙끙 앓고 고민하고 있었다.
* * *
“네, 회장님. 제게는 부지와 투자금이 있고, 양화 그룹에는 신속히 추진할 결단력과 기술이 있죠. 최고의 파트너라고 생각합니다.”
-맞네. 우린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지. 얘기 들었나? 다음 주 중에 지제역 일대가 레드 존으로 재편입이 된다는군.
“네, KSA에서 연락 왔습니다.”
-어쨌든 부지 개발과 관련해서는 실무자들을 보낼 테니 잘 협의토록 하게.
“항상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록 강신화 군이 우리 길드 소속은 아니게 되었네만, 그래도 앞으로 잘 부탁하겠네. 우리 보미도 잘 챙겨 주고.
“따님이야 뭐 항상 잘하고 계시죠. 부족한 부분 없습니다.”
-보미도, 나도 자네를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한다네. 매번 고마워한다는 사실, 잊지 말아 주게.
“별말씀을요.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늦은 밤.
저녁부터 시작됐던 양화 그룹의 회장 진성태와의 통화는 긴 시간 동안 이어진 끝에 드디어 끝났다.
부지가 있어도 투자하고, 개발하고, 인허가를 받는 등등의 절차가 워낙 복잡하다 보니.
이런 부분을 양화 건설 쪽에 일임하기 위해서 사전 조율 과정을 거친 것이다.
보통은 실무를 담당하는 간부와 얘기를 나누는 게 맞지만, 진성태가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길드를 나간 이후에도 줄곧 신경을 써 주는 진성태의 마음이 고마웠다. 비즈니스와 관련된 일도 있었겠지만.
“좀 늦네.”
나는 기다리는 손님이 있었다.
KSA의 본부장 이하성이었다.
김재림과 대화를 마친 직후, 좀 더 얘기가 잘 통할 것 같은 파트너를 고른 것이다.
“크! 내일이면 드디어 남태평양을 횡단하는 건가? 크리비아 아일랜드도 보고, 왕국에서 대접하는 산해진미도 맛보겠네.”
벌써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은퇴 라이프의 기반이 될 섬을 찾아가는 일이다. 새 보금자리가 될 테니 가슴이 설렐 수밖에.
게다가 현장 답사는 물론이고 둘러보고 쉴 겸해서 찾아가는 휴식의 목적도 있었다.
지금의 마음 같아서는!
백사장 위에 벌렁 드러누워서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밀려드는 파도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금방 힐링 될 것 같았다.
물론 이제 시작이다.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에 터부터 다지려면 갈 길이 구만리다.
지금부터 시작해야 내가 생각하는 몇 년 내의 은퇴가 가능할 것이다.
“마력도 높여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거기에 팔자에도 없는 미래 대비도 해야 하고. 해야 할 일이 가지가지군.”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지그시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먹을 은퇴를 위해, 역설적으로 지금은 몹시 바쁘게 일해야 한다.
“이제 시작이야.”
이 말로 모든 것이 정리된다.
진정한 은퇴의 첫걸음!
그것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