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4)
만렙 회귀자입니다만-14화(13/300)
제 14화
이른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진보미를 찾아온 진성태는 딸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 주고 있었다.
어제보다 더 나빠진 듯한 딸의 창백한 안색에 진성태는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아 낼 듯했다.
“보미야, 이게 웬 고생이냐.”
“죄송해요. 제가 부주의한 탓에 괜히 아버지까지 고생을…….”
“인석아, 내가 무슨 고생이냐. 고생은 네가 더 하고 있지! 잘나가던 A랭크 각성자였던 내 딸이! 정말 하늘도 무심하시지.”
“괜찮아요. 곧 좋아질 거예요.”
“쿨럭! 쿨럭!”
“아앗!”
하지만 진보미의 말이 무색하게, 그녀가 기침과 함께 토해 낸 것은 검붉은 피였다.
각성자에게 마력의 순환은 일반인의 혈류 순환만큼이나 중요했다.
‘마력 순환만 막히는 거니까 상관없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일반인이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각성 재능의 유지를 위해서는 소모되는 마력의 기본값이 있기 때문이다.
한데 그것이 막히면, 신체는 재능의 유지를 위해 마력 대신 각성자의 생명력을 가져다 쓴다.
미래의 수명을 갉아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력 방출 장애는 각성자에게는 매우 위험했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곳은 VIP 병실인 만큼 아무나 출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할 소식이 있다는 것은 뭔가 쓸 만한 정보가 있다는 얘기.
“들어오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렸고,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예전부터 진보미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킨 보디가드이자 보좌관이며 동시에 각성자인 정훈이었다.
“아가씨를 치료할 수 있다는 사람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치료 방식에 대해서도 잠시 얘기를 나눴습니다만.”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나?”
“말은 꽤 그럴듯한데, F랭크인 데다가 짐꾼입니다. 이름은 강신화.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헛소리를 지껄이는 놈처럼 보입니다.”
“사람의 배경은 볼 것 없네. 얼마 전에 SS랭크의 각성자라고 해서 믿었더니만, 결국 용돈 벌이를 하려고 온 사기꾼이었잖은가.”
“예. 강신화 씨의 말을 그대로 전해 드리자면, 아가씨 병의 원인은 마력 방출 장애라고 합니다.”
“마력 방출 장애?”
“예, 회장님. 마력 순환을 유도하면 되는 문제지만, 다른 각성자들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장담하더군요.”
아직까지 각성자의 세계는 마력 방출 장애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장애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몸 상태가 악화되며 마력의 순환 효율이 나빠진 정도로 인식했다.
이런 인식이 바뀌는 것은 2027년쯤. 아직 먼 미래의 얘기다.
“정말…… 그분이 마력 방출 장애라고 하셨나요?”
진보미가 눈을 깜빡이며, 가녀린 목소리로 정훈에게 물었다.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진보미가 말을 이었다.
“마력 순환이 전혀 안 되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것이 장애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지금껏 진단해 주신 다른 분들과는 이야기의 시작점이 다른 것 같아요.”
“F랭크 짐꾼이 내릴 수 있는 진단이라면, 왜 그간 다른 각성자들은 몰랐을까요?”
“명의가 꼭 이름 있는 병원에만 있는 것은 아니잖은가.”
진성태가 덤덤하게 말했다.
진보미를 치료하며 이런저런 꼴을 다 봐서 그런지, 반쯤 해탈한 듯한 목소리였다.
“다른 연락들은 전부 자신의 치유력이 영험하니, 믿고 맡겨 보라는 말이었습니다. 치료 기간도 최소 3개월을 진득하게 지켜봐 달라는 말을 지껄이기도 하더군요.”
“그런 말은 이제 필요 없네. 그 F랭크 친구는 뭐라던가?”
“한나절이면 된답니다.”
“뭐라고? 정말 그랬단 말인가?”
“예, 회장님.”
지금껏 치료에 대해 호언장담을 했던 자들은 많았지만, 기간까지 장담한 사람은 없었다.
다들 시간이 걸리니 지켜봐 달라는 말을 하며, 이리저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 남자는 아닌 모양이었다.
“당장 데려오게!”
진성태의 명령이 떨어졌다.
“다만! 말에 한 치라도 거짓이 있다면, 올 생각도 하지 말아 달라고 전하게. 아비와 딸의 절실한 마음을 악용한 자에게 자비를 베풀 수는 없으니 말이야.”
“예, 회장님. 다녀오겠습니다.”
정훈이 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
* * *
간밤에 잠을 푹 잔 덕분인지 몸 상태가 최고였다.
저녁쯤 되어야 심장 개변을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금 컨디션이라면 충분할 듯했다.
‘심장을 개변시켜 두면 다른 부위에 비해서 확실히 활용도가 다양해지지.’
심장은 생명의 근원에 해당하는 부위다.
동시에 마력 방출의 핵심이기도 해서, 각성자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장기였다.
개변된 심장은 폐와 연계해서 심폐 지구력의 폭발적인 상승을 만들어 낸다.
아마 개변이 끝나면 마라톤 선수 저리 가라고 할 정도의 지구력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마력을 고도로 응축해서 심장에 저장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즉, 체내에 마력의 보조 배터리를 갖게 되는 셈이다.
‘내가 보유할 수 있는 마력 총량 그대로. 즉, 100% 마력 회복 포션을 하나 더 가진 것과 같지.’
여러모로 특전이 많다.
또한 마력 방출력이 급상승하면서 타인에게 마력을 불어넣는 것도 가능해진다.
내가 가진 마력을 나누어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심장 자체의 방출 능력이 매우 우수해야 하는데, 현재 이것이 가능한 사람은 없다.
내가 심장 개변을 마치고 나면, 아마 세계 최초가 될 테지.
‘그래서 니콜라스 녀석이 꼭 위험한 곳이나 장거리 원정을 가게 되면 날 꼭 데려갔지. 인간 배터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기승전, 니콜라스.
내게 많은 영향을 준 녀석이기에 자주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미국의 어딘가에 살고 있긴 할 텐데.
뭐, 나중에 녀석이 회귀하면 날 찾아오든 하겠지.
내가 굳이 먼저 찾아갈 필요는 없을 듯하다.
“후.”
기분 좋게 온기가 오르는 대리석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나는 바로 정신을 집중했다.
이미 양화그룹의 관계자와도 연락을 마친 차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날 찾아오겠다고 한 것을 보면 어지간히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심장 개변. 마력의 폐와 연계하여 출력 보조. 폐와 개변 연동. 마력 집중 작업.’
바로 개변에 들어갔다.
몸속을 자유롭게 순환하던 마력들이 일제히 심장으로 집중됐다.
단,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모두 밀어 넣는 집중이었다.
심장은 예민한 부위다.
개변은 초단시간에 고출력으로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장이 필요 이상으로 압박을 받게 되고.
자칫하면 뻥! 하고 풍선처럼 터져 버린다.
그러면 당연히 몸의 주인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전생에 참 공을 많이 들여서 시도하다가 포기하기를 반복했었다. 실수로라도 죽기 싫어서.
“크윽!”
대량의 마력을 받아들인 심장이 폭발적으로 반응하며,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고, 온몸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흔들리지 않고, 계속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불안감, 위기감, 망설임.
이런 것들이 개변에 가장 좋지 않은 영향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전생에 방광과 그 주변 부위의 개변을 시도하다가 흠칫 망설이는 바람에, 소위 ‘고자’가 될 뻔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이야 웃으며 떠올리는 추억이지만, 당시에는 정말 심각했다.
‘좋아. 순조로워.’
심장 개변의 난이도는 그래도 중간 정도로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가장 개변이 까다로운 뇌의 경우는 내 기준으로 최상, 아니 극상에 가까웠다.
성공만 하면 걸어 다니는 슈퍼컴퓨터가 되지만,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백치(白癡)가 돼 버린다.
“…….”
집중, 집중, 또 집중.
나는 두 눈을 감은 채로 이제는 친구처럼 익숙한 통증을 벗 삼아 개변의 과정을 견뎌 냈다.
과거에 수많은 시행착오와 중단을 반복했던 일이 이제는 간단하고 수월해졌다.
그렇게 심장도 속도감 있게, 마력의 심장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 * *
[판정 등급 : D]“심장 하나만 손봤을 뿐인데, 바로 단계가 올라가? 최소 일 년 단축이네. 빠르다, 빨라.”
심장의 개변을 마친 신화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변동이 일어난 판정 등급을 살폈다.
모든 신체의 개변은 마력 증가로 연결되는데, 심장이 차지하는 비율이 꽤 컸던 모양이다.
신화는 일단 거실 한옆에 세워 둔 화초 앞에 멈춰 섰다.
모든 생체는 마력을 주입할 수 있다.
물론 식물이 마력을 활용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갖고 있는 것은 가능하다.
“하압!”
기합을 불어넣으며, 신화는 힘껏 심장을 펌프질하여 내면의 마력을 폭발적으로 뿜어냈다.
그러자 다음 순간!
샤아아아!
화초에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화초 전체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력을 담은 화초가 된 것이다.
물론 포션처럼 이 화초를 먹는다고 해서 마력이 회복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유사시에 이것을 재료로 삼아서 마력 폭발을 일으킨다거나 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 폭탄처럼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준비는 다 끝났네.”
진보미의 문제를 해결할 세팅은 다 마쳤다.
마력 방출 장애는 심장으로, 신체의 까다로운 회복은 타액으로 해결한다. 완벽한 솔루션이다!
드르르륵.
아니나 다를까.
약속한 시간을 5분 앞두고, 칼같이 전화가 왔다.
“네, 강신화입니다.”
-도착했습니다. 준비를 마치시는 대로 내려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바로 내려가죠.”
신화는 어제 사 두었던 캐주얼 정장을 다시 챙겨 입고는 집을 나섰다.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기본적인 격식은 차릴 생각이었다.
* * *
진보미와 진성태, 두 사람이 있을 양화 빌딩으로 향하는 길.
“…….”
“…….”
차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승차감이 무척 좋은 이 차는 전 세계에서 딱 10대만 한정 생산된 F사의 차량이었다.
그중 한 대가 진성태의 소유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역시나 그것을 몰고 왔다.
‘정훈. 킥복싱에 능한 A랭크 각성자였는데, 그릇된 충성이 큰 문제가 됐었지.’
나는 이 차의 운전자가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꽤 능력 있는 사람이었던 그.
하지만 진보미의 죽음 이후.
그녀에게 근거 없는 거짓 치료를 했던 각성자들을 모두 찾아내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인다.
연쇄살인마가 된 것이다.
KSA에서 직접 전담 팀을 꾸려 그를 체포하기 전까지, 수많은 ‘사기꾼’들이 그의 손에 죽어 나갔다.
그리고 KSA에 의해 체포되기 직전, 그는 단검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했다.
그래서 미래의 진보미처럼 이대로 두면, 언젠가 죽음이 예정된 사람이기도 하다.
그때.
“강신화 씨.”
정훈이 중저음의 무겁게 깔린 목소리로 처음 말문을 열었다.
백미러를 통해 마주친 그의 시선은 예전에도 그랬듯, 참으로 차갑기 그지없었다.
“말씀하시죠.”
“지원을 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다만.”
“네.”
“아가씨의 치료를 핑계로 삼아, 악독하게 배를 불리려는 자가 요즘 너무 많았습니다.”
그의 고민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치료하겠다고 나선 모든 이들이 선의를 가졌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생에서도 그랬고.
그러니 내게도 불안감과 의심이 교차하는 시선을 보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해합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정훈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아가씨를 꼭! 제발 구해 주십시오. 부디 강신화 님은 진심으로 기적을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또 실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훗날 진보미의 죽음으로 흑화하는 정훈이기에 그가 내뱉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는 않았다.
다만 여기서 밋밋하게 대화를 끝내면 재미가 없지.
물론 나는 그를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렇다면 기대에 부응했을 때 돌아오는 것이 있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나는 웃으며 그에게 되물었다.
“그럼 치료에 성공한다면 제게 무엇을 주실 겁니까? 실패를 원치 않는다면, 성공했을 때 그만한 대가가 따라야 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