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44)
만렙 회귀자입니다만-144화(143/300)
제 144화
3월 10일, 낮.
나는 어느 정도 수습이 끝난 크로네스 섬으로 와서 문명과 완전히 단절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불탄 야자수가 있던 자리는 국왕의 배려로 새로운 야자수가 심겼다.
불타 사라진 수풀과 꽃들 역시 왕국의 다른 곳에서 공수해 온 예쁜 녀석들로 채워졌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복구되었지만, 기분이 살짝 찝찝하긴 했다.
“뭐, 이제 지나간 일이고.”
해먹에 누운 나는 기분 좋게 밀려오는 에메랄드빛 파도를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섬에 지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제부터 채워 간다고 생각하니 기대도 됐다.
한편, 조사 및 실측은 진보미와 함께 온 전문가들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크으……. 좋구먼.”
낮잠 뒤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탄산수 한 잔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대한민국 서울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바로 현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터벅. 터벅. 터벅.
한편 크롭티에 스키니진 차림을 한 진보미가 맨발로 해변을 걷고 있었다.
그녀 역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이 주는 해방감에 푹 빠진 느낌이었다.
내가 해먹에 누워 여유를 즐기던 몇 시간 동안, 그녀는 해변의 끝에서 끝까지 걷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탄산수의 여유까지 즐기고 있는 내가 부러웠는지, 슬그머니 내 옆으로 왔다.
“신화 씨, 하루라도 빨리 은퇴해서 여기로 오고 싶어요?”
“두말하면 잔소리죠.”
“호호, 누가 보면 몇십 년 동안 삶에 찌들어서 고생한 사람인 줄 알겠어요. 삶에 초탈한 것 같다고 할까?”
몇십 년 찌든 것 맞다.
전생에서 스물아홉 살부터 니콜라스를 만나서 쉰여섯 살까지 마당쇠처럼 마구 굴렀으니까.
도합 27년을 굴렀는데, 쉬고 싶지 않으면 그게 어디 정상이겠냐고.
니콜라스와 함께 있을 때는 그 흔한 휴가를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쉴 시간이 있으면 던전에 가서 힘을 키우자고 했던 것이 녀석의 지론이었으니까.
“자연 속에서 묻혀 사는 게 좋아요. 다만 이렇게 단발성으로 즐기는 건 금방 질리기 마련이니까.”
“아예 모든 시설을 갖춰 놓고 섬에서 자급자족하기를 바란다는 뜻이잖아요?”
“정답입니다.”
“안 그래도 그 점을 중점적으로 고려해서 개발, 건설 계획이 추진될 예정이에요.”
“제 니즈를 빠르게 파악해 주는 것은 역시 보미 씨밖에 없군요.”
“아버지가 늘 아쉬워하세요. 길드가 변변치 못해서, 신화 씨를 품어 주지 못한 것 같다고요.”
“아니에요. 최고의 대우를 받았어도 팀은 만들었을 겁니다. 양화 길드에는 항상 감사한 마음이죠. 지금도 이렇게 협력하고 있고.”
“신화 씨.”
“네?”
“만약에 제가 팀 미스틱에 들어간다고 하면, 빈자리가 있나요?”
“있지만 없죠.”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보미 씨는 양화 길드에서 중심을 잡아야 될 사람이니까요. 우리 팀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양화 길드를 지금보다 더 크게 키울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게 더 발전적일 겁니다. 서열 7위 길드에 만족하기에는 너무 아쉽잖아요?”
만약 목진우와 신정아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면.
대한민국 길드의 판도는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형태로 재편될 것이다.
내란(內亂)에 가까운 음모를 획책한 길드를 KSA가 그대로 둘 리가 만무할 테니까.
그러면 혜화 길드부터 시작해서 상위 Top 10에 드는 길드 사이에 앞으로 분쟁도 제법 일어날 것이다.
이때, 양화 길드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매우 중요해진다.
그리고 양화 길드는 대형 길드로 거듭날 수 있는 충분한 재력과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
단지 지금까지 소수 정예 위주의 육성을 고집해 온 터라, 의도적으로 억제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가요. 뭔가 아쉽네요.”
“보미 씨는 정말 능력 있는 각성자예요. 남들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멋진 주술 재능을 가졌죠.”
“…….”
“그 힘을 양화 길드에 좀 더 실어 주세요. 그것이 정답입니다.”
“알겠어요. 미안해요. 갑자기 뜬금없이 무거운 소리를 해서.”
“무겁긴요. 원래 이런저런 얘기 다 하는 거죠. 솔직한 게 좋은 겁니다.”
진보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LA에서의 던전 공략 이후 우리 팀의 시너지와 연계에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다.
나를 중심으로 완벽하게 분업화된 팀의 구조를 보고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내 팀에서는 내가 일임한 부분만 신경을 쓰면 되기 때문이다.
능력 이상의 투지나 집중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 부분은 내 몫이니까.
“신화 씨!”
“네?”
“바다 앞까지 와서 이렇게 해먹에 누워만 있을 거예요? 그러지 말고 우리 바다 구경도 좀 해요!”
그때, 기분을 전환하고 싶었는지 진보미가 내 손을 힘껏 잡아끌었다.
마침 해변에 세워 둔 간이 텐트에 이런저런 짐을 챙겨 오긴 했다.
여차하면 갈아입을 수영복과 미니 산소통 정도는 준비해 두긴 했던 것이다.
“물속 구경 말입니까?”
“네, 맞아요! 보니까 거북이부터 시작해서 해안가에 보이는 녀석들이 정말 많던데요?”
“여차하면 타고 나갈 모터보트도 있긴 하죠. 국왕께서 배려해 주신 선물.”
나는 해안가에 잘 정박되어 있는 금빛 모터보트를 가리켰다.
아이박슨 15세가 내게 선물이라고 준 보트인데, 자신이 타던 보트 중 하나라고 했다.
온통 금칠이라서 순금 보트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란다. 이왕 쓰는 거 화끈하게 돈 좀 쓰지.
어쨌든 해먹에 누워서 탄산수만 마시는 것도 슬슬 무료해지던 차에 잘됐지 싶었다.
“신화 씨만 괜찮으면 같이 바닷바람 좀 쐬고 싶은데, 어때요?”
“좋아요. 나가 봅시다. 그러라고 섬이 있고 바다가 있는 거니까. 안 그래요?”
“호호, 맞아요!”
“그럼 옷 좀 갈아입고 오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수영을 할 수는 없으니까.”
“저도 갈아입고 올게요!”
5분 후.
“와……. 신화 씨, 누가 보면 복근에다가 조각한 줄 알겠어요! 매일 얼마나 운동을 하는 거예요?”
“피차 우리 사이에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보미 씨, 진짜 이 악물고 운동했군요?”
“호호, 평일 아침에는 거의 훈련실에서 살고 있어요.”
보트 앞에 선 우리는 운동으로 다져진 상대의 몸을 칭찬하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각성자에게도 체력과 근력은 매우 중요하다.
장기전을 수행할 수 있는 체력과 순간적으로 신체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근력 말이다.
이것은 재능과 별개로 기초가 될 뼈대로서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요소이기도 했다.
보통 재능만 믿는 각성자가 체력, 근력 관리를 게을리 하다가 던전에서 목숨을 잃는다.
장기전 안배나 위기 상황 대처가 되지 않아 순식간에 죽음을 당하기 때문이다.
“수영, 자신 있어요?”
“저 초등학생 때 국가대표도 잠깐이지만 했던 몸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좋네요. 저도 수영만큼은 자신 있거든요.”
부우웅!
그렇게 나는 보트를 몰며, 크로네스 섬 인근의 바닷가로 쭉쭉 나아갔다.
* * *
‘이게 휴양지의 참맛이지. 물아일체의 삶……. 정말 좋다. 회귀 이후에 제대로 바다를 즐겨 본 건 이번이 처음이지?’
티 없이 맑고 푸른 바다를 누비는 신화의 기분은 한껏 고양돼 있었다.
바다거북을 만나 녀석의 등껍질을 잡고 함께 바다를 유영하기도 하고.
좀 더 대양으로 나가 때마침 돌고래 떼를 만나 녀석들의 콧잔등을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자연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진보미도 신화처럼 현실에서의 모든 것을 잠시 잊고, 자연의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모습이었다.
‘종종 와야겠다. 제대로 건축물을 올리기 전까지는 잠깐의 단발성에 그치긴 하겠지만…….’
신화는 크리비아 아일랜드와 그 주변의 경관들이 주는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에 자리를 깔고 정착하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아무 편의 시설도 없는, 섬만 딸랑 가진 채로 자연인이 될 뿐이다.
그러고 싶진 않았다.
신화가 꿈꾸는 모습은 진성태의 제주도 별장처럼 갖출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고.
각종 편의 시설과 문화 시설까지 완비된 신화 랜드(Shinhwa Land)를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꼬르르륵.
바닷속 탐사는 계속됐다.
여유로운 폐활량과 미니 산소통을 이용해서 제법 깊이 잠수한 신화는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혹시 진보미에게 기념품 삼아 줄 만한 뭔가가 없을까 싶어서였다.
한데 바로 그때.
‘응?’
무리 지어 물살을 가르던 물고기들이 유독 색이 어두운 바위를 지날 때마다 피하는 것이 보였다.
일직선으로 유영하다가 마치 무언가에 튕기듯이 다른 방향으로 팍, 하고 선회하는 느낌이었다.
‘뭐지?’
안에 포식자라도 있는 걸까?
신화는 우선 위에 있던 진보미를 데리고 다시 보트 위로 쭉 올라갔다.
“……무슨 일이에요?”
“바위 쪽에 뭔가 있는 거 같은데, 살펴보기 전에 보미 씨는 안전한 곳에 있었으면 해서요.”
“알겠어요. 스스로를 지킬 수단이 없으니까 신화 씨만 가 보는 게 좋겠어요.”
진보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은 신화처럼 강철 강화 같은 재능으로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없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호기심이 생겨도 같이 가려는 행동 자체가 신화에게 민폐가 될 것을 알기에 그런 마음조차 내려놓았다.
“낮은 확률이지만 수중 던전일 수도 있어요. 5분 안에 안 돌아오면 던전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해변으로 돌아가요. 알았죠?”
“알겠어요. 저도 보트는 몰 줄 아니까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좋아요. 바로 다녀오죠.”
꼬르륵!
신화가 바로 잠수를 시작했다.
바다 생물이 먼저 반응하게 되는 바닷속의 변수.
보통 수중 포식자의 등장일 경우가 많지만, 신화의 직감은 조금 달랐다.
그로부터 얼마 후.
‘역시…….’
예상대로였다.
그냥 봤을 때는 바위틈 사이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빛이 완전히 차단이 된 데다 달리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화는 차원문 근처에서 늘 미세하게 분출되는 특유의 마력을 여기서도 느꼈다.
‘이 정도 마력이면 놓칠 법하지. 나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면, 마력의 흐름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야.’
신화의 자평이었다.
공기 중과 달리 마력의 흐름이 쭉쭉 뻗지 못하고 방출과 동시에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지는 것.
그것이 수중 던전을 찾기 힘들게 하는 이유였다.
수압을 비롯한 기타 요인에 의해서 마력의 확장이 극도로 억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화는 특유의 예민함을 이용해 극소량이지만 마력의 분출이 바위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했다.
볼 것도 없이 던전이라는 증거.
마음 같아서는 바위를 부술까 싶었지만, 또 어찌어찌 몸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있었기에.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숨을 참으며 몸의 부피를 줄여 바위 안으로 쓱 들어갔다.
바로 그때.
쑤우욱!
어둠 속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치 뭔가에 빨려 들어가듯 신화의 몸이 급속히 휘말려 들어갔다.
다음 순간.
“아!”
신화는 차원문에서 던전으로 이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던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