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5)
만렙 회귀자입니다만-15화(14/300)
제 15화
“아가씨의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시라면, 제 목숨을 바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훨씬 더 좋겠는데요.”
“일과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당신의 든든한 수호자와 심부름꾼이 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나에게 딱히 누구의 보호가 필요하지는 않다.
뜬금없이 SSS랭크 이상의 각성자가 나타나 나를 제압하려는 것만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정훈의 제안은 꽤 그럴듯하게 들렸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남자의 보호를 받는다? 묘한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렇게 하죠.”
나는 웃으며 제안을 받았다.
우스갯소리 삼아 질문을 되돌린 것인데, 예상치 못한 답을 들었다.
그래, 이래야 더 진보미의 치료에 집중해야 할 이유도 생기지.
동기부여는 확실히 됐다.
드르륵.
그사이 도착한 문자.
[강신화 씨. 혹시 연락 안 되시나요? KSA의 윤별이입니다. 스팸 문자 아니에요.]윤별이의 연락이 또 왔다.
상부에 보고를 한 뒤, 스카우트 제의라도 하도록 지시라도 받은 걸까?
어지간해서는 매달리듯 연락하지 않는 것이 윤별이의 성격인데, 그녀답지 않았다.
‘뭐. 적당한 침묵은 금이니까.’
나는 다시 스마트폰을 주머니로 밀어 넣었다.
지금은 치료가 꼭 필요한 그녀, 진보미에게만 집중하고 싶었다.
* * *
‘역시 양화 그룹이네.’
나는 으리으리한 양화 빌딩 입구를 보며,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로비에는 차원석을 세공해서 만든 살균, 정화 구역이 보였다.
또한 중앙에는 시가 10억 원 상당의 최상급 차원석이 500개 가까이 한데 뭉쳐져 있었다.
그 자체로 5000억 원의 가치를 하는 장비.
장비가 설치된 구역을 지나치자 옷 전체가 반짝이기 시작하며, 순식간에 살균과 정화가 완료됐다.
마치 새 옷을 입은 듯했다.
‘유사시에는 이 녀석이 대 전략무기로도 바뀌게 되지.’
신도림 전투에서 마고스가 날뛸 당시,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저지했던 무기가 바로 이것이었다.
최상급 차원석 500개에 농축된 차원 에너지를 한데 모아, 그야말로 ‘살상 광선’을 쏘았던 것이다.
순간 화력으로는 EX급 각성자 여럿의 재능을 뭉친 파괴력을 갖기에 매우 효과적인 무기였다.
“양화!”
“양화.”
한 무리의 각성자들이 뛰어가다가 정훈을 발견하고는 그를 향해 인사를 올렸다.
‘황 노인 슈트잖아?’
모두가 하나 같이 2억 원에 달하는 맞춤형 강화 슈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길드원 모두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 양화 그룹다운 무장이었다.
* * *
정훈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은 양화 빌딩의 최상층인 73층에 위치한 VIP 병동이었다.
애초에 외부인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도록 층계 전체가 거대한 병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내부에는 치료 시설뿐만 아니라 운동, 회복, 재활 시설이 구역을 나눠 배치된 상태였다.
“…….”
73층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보안 요원의 검색이 이어졌다.
문제가 될만한 금속이나 무기 같은 것은 없었다. 여차해서 필요하면 내 몸을 변화시키면 되니까.
“들어가셔도 됩니다.”
보안 요원의 OK 사인이 떨어졌고, 정훈의 안내를 따라 병실로 향하는 입구에 섰다.
“회장님께서 상심이 크십니다. 좋은 말씀을 많이 부탁드립니다.”
“저도 회장님의 심정은 잘 압니다만, 거짓을 말할 수는 없죠. 진실만을 말씀드릴 생각입니다.”
“예전에 아가씨가 곧 돌아가실 것이라고 악담을 퍼붓던 녀석이 있던 터라. 그때, 회장님께서 정말 상처를 많이 받으셨습니다.”
“일단은 들어가서 상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죠.”
“노파심에 결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정훈 님 같은 분이 곁에 있어, 두 분이 든든하게 생각하실 겁니다.”
덕담을 건넸다.
정훈은 머릿속에 온통 회장 진성태와 딸인 진보미의 안전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종종 그 맹목적인 충성심이 지나치게 엇나간 말로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내 앞에서는 그런 감정을 절제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내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냉혈한으로 소문난 남자가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내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뭐랄까.
진보미를 낫게 해주면, 그녀뿐만 아니라 정훈의 미래까지 함께 구제해줄 수 있을 것 같달까?
어쨌든 이제 그녀를 직접 만날 시간이었다.
드르르륵.
이내 문이 열렸다.
무균실이라거나 음압 병실인 것은 아니었기에 따로 입장 절차가 까다롭지는 않았다.
“음.”
나는 시야에 바로 들어온 진성태와 진보미의 모습을 보고는 살짝 침음성을 터뜨렸다.
둘 다 전생에 TV로 보거나, 이름만 접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회귀한 이후, 정훈에 이어서 처음으로 새롭게 맺는 인연이었다.
– 야, 강신화. 나비효과가 말야. 이게 제멋대로더라고! 전생에 하지 않았던 일을 했다 해서, 꼭 미래가 바뀌지는 않더란 말이지?’
니콜라스의 말이 떠올랐다.
녀석의 말에 따르면, 회귀 이후에 자신이 기억하는 것과 미래가 달라지는 시점은.
세상에 큰 변곡점을 만들 만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라고 한다.
나를 예로 들자면, 마고스를 죽인 일이 될 것이다.
2030년에 닥칠 재앙이 사라졌으니, 그때 죽어야 할 사람이 10년 후에 죽지 않게 될 것이다.
어차피 그쯤은 상관없다 생각했다. 그때면 나는 남태평양의 어딘가에서 칵테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선탠이나 하고 있을 테니까.
‘진보미를 살린다고 해서 은퇴 계획이 꼬인다거나 하진 않을 듯하네.’
그 정도로 진보미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니까. 별로 신경을 쓸 필요는 없을 듯하다.
“반갑네, 강신화 군. 정 실장에게 얘기 들었네. 내 아이의 병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진성태가 내게 악수를 청하며,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는 분명 대기업의 회장으로서 깍듯한 예의와 대접, 혹은 접대에 익숙해 있을 사람일 테지만.
내 앞에서만큼은 그런 사회적 지위를 벗어던지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손을 맞잡고 있었다.
“강신화입니다. 예, 회장님. 따님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해드릴 수 있습니다.”
“병명이 뭔가?”
“병이라기보다 던전에서 몬스터에게 얻은 저주에 가깝습니다. 혹시 아가씨, 대화 가능하십니까?”
나는 진성태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진보미를 불렀다.
오래전에 마지막으로 염색한 듯한 금발의 머리는 어느새 층이 많이 져 있었다.
게다가 뿌리부터 자라난 검은 머리는 그 시간이 절대 짧지 않음을 단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움직일 수는 없지만, 말은…… 할 수 있어요.”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네. 얼마든지…….”
“던전에서 부상을 입은 적이 있으셨겠지만, 그게 치명적인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다만 던전에서 나올 무렵에 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점점 마력의 활용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셨죠?”
나는 내가 기억하는 아케로의 저주의 진행 과정에 대해 읊었다. 확인 차원에서다.
“맞아요. 그 뒤로 점점 마력 순환의 효율이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에 정체되었고…… 몸의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어요.”
“짐작 가는 것이 있나?”
진성태가 내게 물었다.
마음이 답답하니, 정확한 원인이라도 듣고 싶어 하는 듯했다.
“몬스터의 저주입니다. 문제는 마력 방출 장애와는 별개로 몸에 걸린 저주가 일반적인 치유 기운을 ‘독’으로 만든다는 점입니다.”
“독이란 말인가? 정말인가?”
“그간 치료를 하면 할수록, 포션을 마시거나 링거 형태로 꽂으면 꽂을수록. 아가씨의 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았습니까?”
“그렇네.”
“그런 상태를 두고 보통 데스 힐(Death Heal)이라고 부릅니다. 치유를 하면 할수록 죽음에 더 가깝게 이르도록 만드는 저주의 상태죠.”
“데스 힐?”
“신체가 외부에서 유입된 치유의 기운이라고 간주하는 순간, 그 기운은 모조리 독이 됩니다.”
“이럴 수가……. 그것보다 도대체 자네는 어떻게 그런 원리를 전부 알고 있는 것인가?”
진성태가 놀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나를 의심해서가 아니라 처음 보는 자리에서 그간 진보미의 치료 과정의 히스토리를 꿰뚫어 보듯이 말하는 것에 놀란 모양이었다.
“이런 원리를 모르고 무작정 치유의 힘만 불어넣으니, 아가씨의 상태가 좋아질 리 없지요.”
“저, 괜찮아질 수 있는 건가요? 가망이 있을까요……?”
오랜 치료에 지친 듯한 진보미의 목소리에서는 반쯤 체념한 듯한 느낌이 묻어났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분명 치료랍시고 뭔가는 계속하고 있는데, 점점 몸 상태가 나빠지기만 하니까.
절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테지.
“전적으로 믿고 맡겨주신다고 한다면 자신 있습니다. 그게 아니면 뭐, 없던 일로 해야죠.”
슬쩍 뒤를 쳐다보니, 정훈은 팔짱을 낀 채로 계속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가까이서 진보미를 지켜보며, 나름 느낀 것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자네처럼 구체적으로 원인부터 꿰뚫어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네! 아니, 설명을 하더라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들을 했었지!”
진성태가 다시금 내 손을 덥석 붙잡고는 감동에 북받친 듯한 열변을 토해냈다.
용한 점쟁이를 만났을 때의 반응이랄까? 신기해하면서도 대단해하는 듯한, 딱 그런 눈빛이었다.
“괜찮으면 아가씨를 상태를 좀 더 자세히 살피고 싶습니다만.”
“내가 눈치가 없었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성태가 고개를 숙이며 옆으로 물러섰다.
지금의 모습만 보면 내가 그룹의 회장이고, 진성태가 수행 비서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만큼 절실한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이란, 항상 애틋하고 짠한 것이니까. 돌아가신 내 부모님도 그랬고.
“손을 좀 잡겠습니다. 불쾌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괜찮아요. 어떻게든 나을 수만 있다면요.”
무척 지친 듯했지만, 진보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자마자, 바로 마력을 쭉 밀어 넣었다.
마력의 심장을 이용해서 방출력을 높이니, 그녀의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반발력을 무시할 수 있었다.
“아?”
“느껴지십니까? 여기부터 여기까지는 제 마력이 밀고 들어온 느낌일 텐데요.”
“맞아요. 엄청 순도 높은 마력이 왼쪽 팔을 따라서 밀려 들어오는 것이 느껴져요.”
“마력을 밀어 넣는다고요?”
바로 그때.
뒤에 있던 정훈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당연하고도 일반적인 반응이다.
타인의 마력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지금의 각성자들에게는 전혀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원하시면 직접 경험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만.”
나는 차분하게 답했다.
각성자가 아닌 진성태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정훈은 무슨 뜻인지 알 터였다.
“느껴보고 싶군요. 의심하는 게 아니라, 지금껏 그런 방식으로 접근했던 각성자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시겠죠. 이해합니다.”
나는 쑥 내민 정훈의 팔을 꽉 잡았다. 그리고 거침없이 마력을 힘껏 불어넣었다.
바로 다음 순간.
“아! 이건 말도 안 되는…….”
얼음처럼 차갑고, 벽돌처럼 굳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그의 얼굴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부정하고 싶어도 할 수밖에 없는 인정! 그 놀라움의 감정이 정훈의 얼굴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이 힘으로 아가씨의 방출 장애를 치료할 겁니다. 문제는 신체의 치유입니다만, 기존과 다른 변형법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음?”
조심스럽게 운을 떼는 한 마디에 진보미, 진성태, 정훈의 시선이 내게로 일제히 쏠렸다.
어차피 속인다거나 돌려서 말해서 될 이야기가 아니기에.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체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치료법을 언급했다.
“제 타액을 일부분 섞은 치유의 포션을 만들 겁니다. 물론 살균이 다 되어 있는 사실상 평범한 물에 가까운 상태죠.”
“타액?”
“그렇습니다. 아가씨께서는 이 포션을 30분 정도 머금었다가, 시간이 흘러 적응이 끝나면 마시면 됩니다. 그러면 치유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
적막이 흘렀다.
내가 너무 듣기 어렵게 말했나? 그래서 좀 더 쉽게 설명해 주기로 했다.
“그냥 제가 방금 마셨던 음료수를 입 대고 마신다는 정도로 생각하세요. 그뿐입니다.”
그 순간.
“…….”
다들 새로운 치료 접근법에 놀란 탓인지, 시간이 멈춘 듯 아무 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