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54)
만렙 회귀자입니다만-154화(153/300)
제 154화
“후우, 후우.”
적막이 감도는 훈련실 안에서는 바지만 입고 상의를 벗어 던진 신화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왼손은 뒷짐을 진 채, 오른손의 세 손가락만 이용해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다.
신화는 전생에도 운동과 생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을 때면 늘 이 자세를 취하곤 했다.
일종의 루틴이었다.
몸의 긴장을 적당하게 유지하며 또렷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최상의 하모니.
“…….”
신화가 훈련실에 오자마자 했던 것은 체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던 가상 모의 전투였다.
그다음, 탈진에 가까운 상태에서 지금의 루틴을 이어 가는 중이었다.
벌써 2시간째.
신화는 전생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목진우, 신정아와의 전투를 복기하고 있었다.
물론 그때는 신화가 메인이 아니었다.
니콜라스가 두 사람을 정신 간섭으로 혼란에 빠지게 한 뒤.
마리나와 묵철을 위시한 나인 로드의 동료들이 맹공을 퍼부었다.
당시 현장에는 목진우의 친위대인 홍매화도 있었고, 신정아의 심복들도 꽤 있었다.
‘확실히 까다로워.’
복기를 하며 머릿속에 떠올린 목진우의 실력은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이전의 시점이라 녀석에게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도 꽤 있을 터였다.
“흐음.”
신화의 침음성이 깊어질 때마다 또렷해진 전투의 기억들이 머릿속에 알알이 박혔다.
신정아는 KSA와 양화 길드 쪽에서 맡게 될 것이다.
그녀는 목진우와 다르게 던전 외부에 있을 것이고, 그녀가 주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았다.
홍매화도 미리 목진우의 지시를 받고 단독 행동을 할 테니, 신화는 목진우만 상대하면 됐다.
‘니콜라스가 그렇게 입이 닳도록 말했던 회귀의 변곡점이 정말 크게 찍히는구나.’
내일이면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뒤바뀔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전생에 죽었어야 할 나쁜 놈들은 훨씬 더 일찍 죽게 될 것이고.
훗날 희생될 죄 없는 사람들은 다가올 비극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어떤 부분이 이득이고, 어떤 형태가 내게 좋은 건지 세세하게 따지는 건 내 성격이 아니지.’
신화가 피식 웃었다.
자신이 해야 할 선택에 이리저리 따져 보며 주판알을 집요하게 튕기던 것은 니콜라스의 성격이었다.
내가 이 선택을 함으로써 누가 살게 되는지부터 시작해서 이를 활용할 방법들을 꼼꼼하게 짰다.
하지만 신화는 단순하게 봤다.
국내에서 내전(內戰)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만 한다면.
이후 이뤄질 국내의 새 판도에서 자신이 보다 운신하기 편해질 것이라는 것. 오직 그것 하나만 봤다.
“그 정도면 됐지 여기서 더 복잡하게 따질 필요가 있나?”
팔굽혀펴기를 다시 시작했다.
같은 장면을 수십, 수백 번 복기하고 있지만 그래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생의 목진우가 딱 한 번의 빈틈을 보였던 그 순간을.
아무리 실력 있는 각성자라도 전투의 레퍼토리를 무한정으로 갖고 있지는 않다.
B+, 그리고 SS+.
자신과 목진우 사이에 랭크 세 단계라는 거대한 간극이 놓여 있지만, 신화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봤다.
째깍째깍. 째깍째깍.
그렇게 시간은 디데이를 향해 묵묵히, 그리고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 * *
3월 20일, 자정을 넘긴 시간.
공식적으로 알려진 일정과 달리 KSA 내에 마련된 비밀 아지트에는 이하성을 위시한 요원들이 대거 모여 있었다.
이하성은 미리 확보해 둔 CCTV 라인을 통해 평소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던 현장을 살폈다.
“역시…….”
“정말 전쟁이네요. 그것도 발톱 한 번 드러내지 않고 있던 갑작스러운 전쟁.”
돌아가는 정황을 파악한 이하성과 나미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신화의 미래시 재능은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해 냈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이런 식이면 혜화 길드의 주요 전력 8할 이상이 던전에 다 들어간 셈이야.”
“사실 평소 같으면 나머지 2할의 전력으로 변수를 대비하는 일이야 어렵지 않죠.”
“맞아. 평소라면 그렇지.”
“하지만 상대적으로 홍연, 청연 길드에서 참여 인원을 아꼈으니 전력 비대칭이 심해서 오래 못 버틸 거예요.”
“문제는 청연이야. 이번 혜화-홍연 길드의 연합 던전 공략에서 빠져 있는 제3의 세력이니까.”
“이들은 전력 100%죠.”
“거기에다 저들은 얼마 전에 입국한 CSA 간부들이고.”
이하성이 화면 속의 중국인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청연 길드의 각성자들과 함께 섞여 있었다.
그 말은 곧 대외적으로 알려진 홍연 길드와 청연 길드가 앙숙 관계라는 사실과 달리.
이번 일에 두 길드가 완벽하게 협력했음을 의미하는 빼도 박도 못할 확실한 증거였다.
“정말 놀랍네요. 지난 10년 동안 서로를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욕하고, 라이벌 마케팅을 해 왔던 두 길드가 힘을 합치다니…….”
“이 모든 것을 신화 씨가 미래시를 통해 예견했다니 정말 놀라울 뿐이야.”
이하성은 혀를 내둘렀다.
신화의 미래시 재능은 단순히 미래만 본 것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전체의 질서가 뒤바뀌고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 있었던 상황을 구해 낸 것이다.
만약 신화의 경고가 없었다면?
지금 이하성과 나미나는 정기적 일정으로 예정된 던전 공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사이에 수도권 이곳저곳은 무주공산이 되어 치안의 부재 속에서 불바다가 되어 있겠지.
바로 그때.
나미나가 옆에 붙잡고 있던 포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홍연 길드의 길드원이었다.
목진우가 혹시나 싶어서 KSA 본부 주변에 심어 두었던 첩자를 기습적으로 붙잡은 것이다.
“처신 잘해.”
나미나가 이글거리는 화염구를 포로에게 들이밀며, 위압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포로는 흙빛이 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본부 쪽 상황은?
“조용합니다. 외부 순찰 병력이 정기적으로 경계 근무를 서는 것 외에는 아무 움직임도 없습니다.”
-좋아. 혹시라도 수상쩍은 움직임이라도 있다면 지체 말고 바로 보고하도록. 알겠어?
“예, 알겠습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청연 길드의 마스터 신정아였다.
뚝.
이내 전화가 끊기고.
이하성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KSA가 먼저 나서지 않은 것은 그들이 충분히 마각을 드러내도록 한 뒤.
이를 증거로 삼아 확실하게 단죄하기 위해서였다. 빼도 박도 못할 현장 증거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제 그녀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모두 들어라! 이것으로 홍연과 청연 길드의 음모는 확실해졌다. 아울러 CSA를 위시한 중국 3대 적폐의 개입도 확실해졌다!”
처척! 척!
아지트를 가득 메운 요원들.
그들은 이하성이 몇 번에 걸쳐 심도 있게 선발한 최정예들이었다.
“가자! 국가 질서를 어지럽히려는 악의 무리는 그 누구든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대한민국을 위하여!”
“출발! 목표는 혜화 길드의 본거지다! 놈들은 그곳을 노리고 있다!”
“예, 알겠습니다!”
우렁찬 외침과 함께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있던 KSA가 대규모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화의 조언대로 완벽하게 설계한 기만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을 목진우와 신정아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 * *
그 시각, 던전.
“어떻습니까? 던전 공략 초반부터 정말 꼼꼼하게 지켜보고 계시는군요.”
“매우 인상적입니다! 역시 이름값에는 그에 걸맞은 품격이 있다는 것이 느껴지네요.”
“그렇습니까?”
“그나저나 면목 없을 따름입니다. 기회를 제법 주셨는데 몇 번이나 허둥댔군요.”
“하하, 아닙니다. 애초에 던전의 수준이 높으니까요. B+랭크인 강신화 씨에게는 난이도가 높을 수밖에요.”
“부끄럽군요.”
“그래도 저 녀석 정도는 해 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뒤에서 서포트를 하죠.”
‘하여간 여유 부리는 건 알아줘야겠군.’
나는 뒤에 선 목진우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S랭크 몬스터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김재림을 위시한 다른 각성자들은 쉬는 중이었고, 목진우가 나름 나를 ‘케어’해 주는 중이었다.
물론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케어(care)가 아닌 것은 알았다.
그는 나의 모든 움직임과 재능 발현 과정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었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날 돕기 위해서 보는 건지.
아니면 날 ‘분석’하기 위해서 보는 건지. 목진우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완벽하게 후자였다.
‘솔직히 하품이 날 정도로 쉽다.’
이것이 지금까지 나타난 몬스터를 지켜보고 상대한 나의 총평이었다.
몬스터의 분류 자체는 S랭크의 범주로 들어가지만, 이 녀석은 약점이 많은 놈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험이 부족하거나 경지가 낮은 각성자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고난도가 되겠지만 말이다.
다만 나는 목진우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계속 잦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꾸민 티가 나지 않는, 초보 시절의 나를 그대로 복제한 생활 연기였다.
후웅!
“구아아악!”
“윽, 젠장! 생각보다 빠르네요.”
“제가 검격을 보조하죠.”
나는 계속 헤매는 모습을 보여 줬고, 목진우가 그런 빈틈을 메워 줬다.
어느 순간부터는 답답함을 느꼈는지 자신이 직접 유효타를 가하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었다.
‘딱 한 번이면 돼. 최후의 칼을 뽑는 것은 적의 목을 벨 때, 그때 한 번이면 충분하다.’
철저히 연기하고 또 연기했다.
종국에 이르러서는 내 스스로도 내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되나? 하고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전생에 이오시프에게 적을 속이는 기만술 중 능청스러운 연기까지 배웠던 것을 감사해야겠어.’
나는 속으로 웃으며, 녀석에게 배웠던 ‘약자 코스프레’를 충실히 수행해 갔다.
그것은 이 던전에 들어온 이후로 꾸준히, 단계적으로 쌓아 올린 빌드업이었다.
이후로도 공략은 계속됐다.
모든 것이 내 예상대로 흘러갔고, 목진우를 위한 판이 차근차근 짜여 갔다.
목진우는 계속해서 김재림을 위시한 혜화 길드원들의 힘을 빼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빈틈을 노출하면서 그들이 필요 이상의 커버를 하게 만들거나.
혹은 김재림을 열심히 띄워 주면서, 그들이 득의양양해서 앞서 나서도록 유도했다.
그 과정에서 혜화 길드원들은 준비해 온 포션을 빠르게 소진해 갔다.
‘전에도 이랬으니, 김재림이 던전을 나서기도 전에 꼼짝없이 목숨을 잃었던 거겠지.’
나는 객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연신 헤매는 연기를 하는 와중에 꼼꼼히 모든 것을 체크했다.
정말 완벽한 설계였다.
처음에는 양쪽 모두 비슷한 준비를 하고 입장했지만.
던전 공략의 최종장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혜화 길드 쪽의 소모값만 엄청 커졌다.
먼저 탈진을 한 것도 김재림이었고, 포션이 떨어져 지원을 요청한 것도 혜화 길드였다.
목진우의 무서운 점은 여기서도 마수를 드러내지 않고, 세상 사람 좋은 얼굴로 그들을 적극 도왔다는 것이다.
그는 혹시 몰라서 준비를 해 왔다며 김재림과 길드원들에게 다수의 회복 포션을 건네기도 했다.
“허억, 하악, 하악.”
나도 잔뜩 지친 내색을 했다.
바닥에 대자로 뻗은 채.
마치 탈진한 사람처럼 가쁜 숨을 내쉬며 주변을 살폈다.
그때.
딸깍.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목진우를 위시한 홍연 길드의 각성자들이 포션 병을 열어서는 일제히 들이켜기 시작했다.
한데 바로 그때.
개변된 내 눈을 피해 갈 수 없는 뭔가가 그들의 포션에서 보였다.
장시간 담겨 있었지만 미처 사라지지 않은 아주 미세한 작은 알갱이들.
그것은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