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72)
만렙 회귀자입니다만-172화(171/300)
제 172화
“쿨럭! 쿨럭! 하, XX, 세긴 더럽게 세네. 하긴, 너까지 쉬웠으면 여기 온 보람이 없을 뻔했지!”
카악, 퉤.
비릿한 맛과 함께 토해 낸 것은 꽤 색깔이 선명해 보이는 핏덩어리였다. 간만에 피를 토했다.
크루드와의 공방전이 벌어진 것도 벌써 1시간째.
정말 숨 돌릴 틈도 없이 계속된 교전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크루드의 기동력이 썩 좋지 않다 보니, 종종 쉴 틈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장기전을 위해 마력 안배에 신경을 쓰면서 마력의 과다 소모를 막고 있었다.
일단 사전 작업은 다 끝마쳤다.
크루드의 앞에서 열심히 댄스를 추며 약을 올리다가 ‘레시피’를 먹게 하는 도발에 성공했다.
머리가슴 위쪽, 사람의 부위로 따지면 정수리라고 지칭할 수 있을 법한 곳에서.
샤아아.
붉은빛이 계속 반짝이고 있었다. 초월의 꽃이 만들어져서 내는 섬광이다.
물론 뇌부에 담긴 영기(靈氣)가 레시피와 반응하면 꽃이 된다는 사실을 크루드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녀석이 초월의 능력을 가진 몬스터였다면, 지금 전황은 글쎄…… 누가 죽어도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그만큼 머리를 지혜롭게 쓸 수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던전에서의 결괏값을 많이 다르게 한다.
‘다들 잘하고 있어.’
나만 빼면 나머지 세 사람의 역할 분담은 깔끔했다.
윤별이는 부지런히 움직이며 던전 전역에서 나오는 자폭 새끼 거미들을 드리블링 중이었다.
이 새끼 거미의 문제점은 사람 냄새를 귀신같이 맡고, 달려들어 무조건 자폭한다는 점이다.
두려움 같은 감정이 거세된 녀석들이라 거침이 없어서 절대 그냥 방치할 수가 없었다.
새끼 거미가 나오는 위치는 정해져 있지만, 그 개체수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다만 꼼수가 하나 있었다.
거리 조절을 하는 것.
그러면 새끼 거미가 ‘자폭 도약’이라고 불리는 점프를 하지 않고, 타깃을 졸졸 쫓아온다.
지금 윤별이가 하는 작업이 딱 그것이었다. 갑자기 터지지 않게 하되, 계속 따라오게 하는 것.
그래서 그녀는 마치 어미 오리처럼 수많은 새끼 거미를 거느리고(?) 던전을 활보하는 중이었다.
‘디버프와 힐도 빈틈없고, 정말 다들 실력이 물올랐구나. 그동안 얼마나 강훈련을 했는지 알겠어.’
아울러 신부님과 한소준도 환상적이었다. 정말 모두가 100% 이상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었다.
New Nine Lord!
나 혼자 생각한 이름이긴 하지만, 지금의 성장세면 훗날을 준비할 영웅으로 충분해 보인다.
쿠아아앗!
“지치지도 않네, 저놈은.”
잠깐 숨을 돌리나 싶었는데, 크루드는 다시 여덟 개의 다리를 움직이며 맹공을 가했다.
파팟. 팟. 팟.
시야 속에서 세 개의 포인트가 자연스럽게 지정된다.
가장 빠른 속도로 날아들고 있는 크루드의 세 다리가 우선적으로 감지되는 것이다.
베네라를 죽이고 얻은 ‘다중 추적’ 재능의 힘 덕분이다.
파앗!
보여서 예측되는 것을 피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쉽다.
나는 사선으로 힘껏 도약하면서 어렵지 않게 크루드의 공격을 피해 냈다.
늘 그랬듯이, 녀석은 여덟 다리 전체에 노림수를 두지 않았고 덕분에 안전하게 피할 수 있었다.
쾅!
이어서 진권을 녀석의 머리가슴 윗부분에 때려 넣은 뒤.
타앙! 타앙!
충전된 전체의 마력을 2분할로 나눠 뒀던 마력탄총 MZ-20으로 마력탄을 명중시켰다.
푸화아악!
제법 굵은 핏줄기가 솟아오르기는 했으나, 크루드는 신음조차 토해 내지 않았다.
‘도대체 외피가 얼마나 두꺼우면 진권을 맞고도 이 정도나 버텨 내는 건지.’
그만 혀를 내둘렀다.
역시 쉽지 않은 놈이다.
“형님! 좀 더 적극적으로요!”
바로 그때.
멀리서 내게 크게 외치는 한소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녀석이 적극성을 주문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 체력 손실률이 높지 않음을 뜻한다.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음에도 녀석이 나를 치유할 일이 딱히 없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방어기제가 발동하고 있었던 건가?’
녀석의 말은 내 시야와 감각을 다시 한번 확 트이게 했다.
분명 전투는 깔끔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군더더기는 없었다.
하지만.
무한 디버프와 치유를 확실하게 등에 업고서 맹공을 퍼부어 승리를 거뒀던 내게.
크루드는 뭔가 넘을 듯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 느껴졌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소준의 말이 내가 무의식중에 잊고 있던, 아니 부정하고 싶었던 감정을 떠올리게 했다.
‘두려움.’
바로 공포였다.
죽음에 대한 공포.
그것은 전생에 ‘인생 만렙’이라고 불릴 정도의 극의의 경지에 도달했던 내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다.
그래서 나인 로드의 구성원으로서 입지가 공고해지고, 악당들과 엮이는 일이 많아질수록 보안을 더욱 철저히 했다.
‘그러고 보니 레체로 녀석은 부활의 꽃을 믿고, 정말 뒤가 없는 놈처럼 저돌적으로 싸웠지.’
자연스럽게 복기도 됐다.
레체로의 경우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그의 심리.
‘나도 부활의 꽃이 있잖아? 죽어도 무결점의 상태로 살아날 수 있고, 버프나 재능을 하나도 잃지 않는 신의 축복!’
개안을 한 느낌이었다.
분명 놓치고 있던 감정이었다.
확실하게 믿는 구석 하나를 떠올려 어깨의 힘을 빼는 심리.
이런 생각을 못 해서 무의식중에 계속 방어기제가 발동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 맹공을 퍼붓는다고 해도 위력적인 반격을 늘 걱정할 수밖에 없었고.
내면에 숨겨진 두려움이 죽지 않아야 된다는 부담감으로 이어진 게 틀림없었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
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모든 공격에 과감성을 담을 수 있다.
죽어도 되는 특전!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특전인가? 그 특전이 이번 삶에는 내 손아귀에 있다.
‘좋아.’
몸에 잔뜩 들어간 힘을 뺐다.
혹자는 힘을 잔뜩 줘야 상대를 위력 있게 공략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군더더기 없이, 부담 없이, 부드럽게 결대로 공격을 이어 갈 때 상대는 더 큰 타격을 입는다.
설령 공격에 실패해도 공격자가 거꾸로 입는 대미지가 상당히 낮아지고 말이다.
파아앗!
나는 거대한 크루드의 머리가슴 방향을 위해 힘차게 도약했다.
놈의 다리만 상대해서는 전투가 끝이 나지 않는다.
컨트롤 타워이자 숨통이나 다름없는 머리가슴 중심부를 박살 내어야 크루드의 목숨이 끊어진다.
‘내려놓고 가자. 죽는다고 각오하고, 다 퍼부어 보는 거야.’
생각을 간결히 정리했다.
게임으로 따지면, 목숨 하나가 더 있다고 생각하니 확실히 부담감이 덜해졌다.
다만.
퀴에에엣!
“윽!”
너무 의욕적으로 달려든 탓인지 크루드가 횡으로 친 다리 공격이 내 몸 옆쪽을 강타했다.
물론 양팔을 교차시켜 신체 강화로 받아 냈기 때문에 큰 타격은 없었다. 그저 신음만 좀 나왔을 뿐이다.
쿠아아아!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몸이 근방에 있던 높은 나무의 줄기에 닿았다.
나는 오히려 그 줄기를 디딤대 삼아 두 다리를 밀착한 뒤, 다시금 박차면서 전방으로 도약했다.
다행히…… 방금의 부끄럽고 쪽 팔린 광경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시 신부님과 한소준의 시선이 윤별이에게 가 있었던 덕분이다.
후아아악!
이윽고 나와 시선이 마주친 크루드가 연둣빛 연기를 한 번에 쫙 토해 냈다.
크루드의 독무(毒霧).
호흡 곤란을 유발하는 안개로서 폐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오래전에 개변한 폐를 가지고 있는 내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안개다. 그저 역한 냄새만 날 뿐.
‘단순 방어 배제.’
나는 대전제를 세웠다.
크루드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부터 생각한다면 제대로 된 공격을 펼칠 수가 없다.
그래서 고통과 큰 충격을 전제로 크루드의 공격을 받아 내면서, 나도 그만큼의 위압을 행사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뒤? 없다.
오로지 앞만 보고 쓰는 전술이다.
좋게 말하면 전술이고, 나쁘게 말하면 ‘막무가내’ 정신이다.
근데, 지금까지 내 삶은 늘 그래 왔다. 특히나 전생에선 깊게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회귀하면서 니콜라스가 없는 탓에 생각할 것이 많아져서 조금 신중해졌을 뿐…….
여전히 내 사고 회로는 단순하다. 전투에서라고 해서 예외일 리가 없지.
처억!
크루드의 머리가슴 정중앙에 올라탔다. 가장 약점 부위지만, 그런 만큼 맹렬한 반격을 받는 위치다.
이전까지의 전투에서는 쉽게 노리지 않았던 부위였다. 대단히 위험한 위치니까.
쿠에에에!
역시나 크루드는 거센 거부반응을 보이며, 여덟 개의 다리를 비틀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는 네 방식대로 해라. 나는 내 길을 가련다.’
목숨을 담보 삼아 정말 깃털처럼 가볍게 마음을 먹은 나는 다시금 진권을 쑤셔 넣었다.
콰앙!
충격파와 함께 머리가슴 부위 전체가 ‘부드럽게’ 변하고, 충분한 방어력 약화가 생겨났다.
여기에 아까부터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는 신부님의 블러디 레인은 방어력 약화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푸욱!
이어서 미련 없이 검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팔을 전후좌우로 흔들며, 마치 믹서로 갈아 내듯 속을 휘저었다.
우어어어!
크루드가 비명을 질렀다.
물론 이건 시작일 뿐이다.
놈은 바보가 아니니까.
우우웅! 후우웅!
아니나 다를까, 파공음을 내며 나에게로 날아드는 육중한 다리의 향연이 곁눈질로 보였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굳이 정면으로 응시한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질 것은 없었으니까.
주삿바늘도 안 보고 맞으면 덜 아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왕 맞을 다리라면 안 보는 게 더 낫다.
스르르륵.
액체화 재능을 발동시켰다.
상대의 위력적인 공격을 상당히 무력화시킬 수 있는, 내게 소중한 재능이다.
푸푹! 푹! 푹!
“……!”
일반적인 고통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불굴의 투지와 정신력으로 묵묵히 입을 꾹 다물고 버텨 냈다.
몬스터는 단순해서 침입자의 공포, 두려움, 비명들을 자양분으로 삼아 투지를 불태우기도 하기에.
‘내가 가시나무냐?’
흘깃 아래를 내려다보니 액체화된 상태의 몸을 관통한 크루드의 털 많은 검은 다리가 보였다.
액체화의 강점은 이렇게 관통상을 입는다고 해서 몸에 부상을 입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대신 고통은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에 ‘정신력’이 그 어느 경우보다 중요시된다.
크륵……?
내 심경과 대응의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일까? 크루드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늉을 했다.
쑤우욱!
하지만 놈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빠르게 몸을 빼냈다. 지금이 바로 내 턴이니까!
크루드도 내게 유효 공격을 가하려면 다리를 쭉 뺐다가 추진력으로 때리는 과정이 필요해서다.
‘모든 수단을 다 써 주겠어!’
나는 즉시 아공간에서 목걸이를 소환했다. 패럴라이즈 네크리스.
아케로에게 얻은 것으로, 크루드에게도 충분히 3초 정도의 마비 증상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초월의 꽃 하나.
그리고 마력을 대폭 늘려 나를 A랭크까지 단숨에 인도해 줄 녀석의 심장!
확실한 보상이 내 눈앞에서 어서 주인이 와 주길 고대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망설일 수 있겠는가!
굳게 믿는 구석도 있으니, 죽음 역시 전혀 두렵지 않다.
그리고.
“크루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친X의 광기가 뭔지 확실하게 보여 줄게.”
녀석에게 확실한 선전포고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