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74)
만렙 회귀자입니다만-174화(173/300)
제 174화
J-811 던전 밖.
“…….”
모두가 푸른 하늘을 보며, 넓은 바위 위에 대(大)자로 뻗어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앉아 있는 나만이 바람을 따라 하늘하늘 떨어지고 있는 낙엽을 보고 있었다.
‘그래, 이거야.’
낙엽의 수는 적지 않았다.
어림짐작으로도 3, 40개는 될 만큼 많은 양의 낙엽.
하지만 집중해서 살피니, 낙하하는 경로가 세세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컴퓨터가 된 느낌.
그것은 바로 크루드에게서 얻은 초월의 꽃을 먹고 난 이후에 내게 벌어진 변화였다.
이제 세 개 중에 둘을 먹었다.
마지막 남은 초월의 꽃을 먹는 순간, 뇌 개변은 100% 안정적인 변화가 가능해진다.
두 눈을 감고 있으니, J-811 던전에서 있었던 모든 일과 현장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동료들의 사소한 움직임, 표정, 스치듯 하던 혼잣말까지 모조리 기억이 날 정도였다.
프슷. 프스슷.
저 멀리 숲을 벗 삼아 달리고 있는 다람쥐의 속도와 경로도 빠르게 예측이 됐다.
딱 예상하고 연산해 놓은 선에서 다람쥐가 움직였고, 경로 역시 변하지 않았다.
“윽.”
다만 단번에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용량 이상의 연산을 처리하려다 보니 두통이 찾아왔다.
바늘로 뇌를 찌르는 듯한 통증으로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에는 불쾌한 고통이었다.
‘단기 활용만 가능하다고 해도, 이 정도면 쓸 만해.’
나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일대일보다 일대다의 전투가 많은 내게는 다중 예측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대일이면 그것대로 집중력이 높아져, 초월의 꽃이 가진 초월 재능이 위력을 발휘한다.
시각, 청각, 후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에 연계하여 상대의 움직임을 잡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렌다. 빨리 남은 초월의 꽃도 먹고 싶네! 일라이저 놈을 잘 구워삶아야 하지 싶은데…….’
던전의 소유주인 일라이저에게 내가 먼저 들이대야 하는 상황.
그렇기에 적당히 알랑방귀를 뀌면서 아부도 하고, 그에게 잘 보일 센스가 필요하다.
먹고 빠지면 된다.
일라이저와 내가 밀월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녀석이 나를 동업자라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니까. 그놈과 영원히 어울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조만간 두둑하게 쓸 만한 선물을 준비해서 찾아가 주마, 일라이저.’
머지않은 날에 추진할 단기 목표로 다음 계획을 바로 세웠다.
마지막 초월의 꽃을 획득하기.
이것만 마무리하면, 내가 회귀 직후부터 욕심을 내 왔던 뇌의 개변이 끝나게 된다.
바로 그때.
“형님!”
“응?”
옆에 있던 한소준이 내게 말을 걸었다.
역시 녀석은 유난스럽게 바위 위에 돗자리를 몇 겹이나 깔았다.
그냥 눕기에 너무 더럽다나 뭐라나?
전투 중에 마시는 포션이나 흙먼지, 피로 옷이 더러워지는 것에는 대단히 너그러운 녀석이다.
한데 평상시에는 이렇게 유난을 떤다. 설마 싶어서 보니, 위생용 장갑과 토시도 착용 중이다.
“오늘 크루드를 잡은 덕분에 전부 랭크가 오르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형님은 이제 C. 너는 A+. 누나가 B-지?”
“맞습니다! 그러면 양해를 구하고 또 이 던전을 돌면 되는 것 아닙니까? 엄청난 특전인데요?”
“소준아.”
“예?”
“그렇게 꿀을 빨 수 있으면 팀 오사카에서 각성자들 데려다가 뺑뺑이 시켰겠지. 안 그래?”
“아…….”
“이건 특수 레시피로 영기를 획득한 크루드를 처음으로 공략했을 때만 가능해. 던전 리셋 후에 같은 방식을 해도 통하지 않아.”
“태초의 기회로서 주어진 딱 한 번…… 이라는 말씀이죠?”
“맞아.”
“형님은 미래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계신다 싶을 때가 있네요.”
“그건 나도 동의.”
“내 생각도 같다. 하지만 미래에서 오는 게 가능했으면 이미 수많은 미래인(未來人)이 왔겠지.”
“미래시라고 했잖아?”
“그러니까요. 근데 미래시 재능이 단순히 미래만 내다보는 느낌인 것 같진 않거든요!”
한소준이 예리하게 정곡을 찔렀다. 미래시로만 둘러대기엔 내가 너무 자세히 알고 있긴 하다.
하지만 다들 내 폭넓은 지식에 놀라면서도 회귀했다고 의심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다. 숨기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물론, 떠벌릴 이유도 없었지만.
“어쨌든 다들 고속 성장을 해서 기분이 좋네요. 잘됐어요! 앞으로 더 부려 먹을 수 있게 됐으니!”
“솔직히 이 정도의 도움을 네게 받았으면, 종일 네 옆에서 수발을 들어도 모자랄 거다. 고맙다.”
신부님이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형님.”
“내게 또 다른 전환점을 만들어 줘서 너무 고마워, 신화야.”
아까 던전 내부에서부터 세 사람은 계속 내게 감사 인사를 하는 중이었다.
그럴 것이다.
어떤 각성자는 수십 년을 기다려도 이루지 못하는 랭크 상승을 단기간에 경험했으니까.
특히 날 만났을 때만 해도 E랭크에 머물렀던 신부님은 겨우 2달 만에 벌써 C랭크가 되었다.
내가 압도적인 급성장을 했기에 가려져 있을 뿐, 신부님의 성장도 가파르다 못해 실로 눈부셨다.
오죽했으면 무엇을 잘못 먹기라도 했냐고 동료 신부인 김환덕이 몇 번이나 물어봤다고 한다.
C랭크였던 김환덕 신부와 이제는 랭크를 나란히 하게 됐다. 대등해진 것이다.
매번 날 믿고 따라 주고.
또한 늘 존경하고 나를 치켜세워 주는 동료들이 참 고마웠다. 이들은 참 순수한 사람들이다.
“다들 호텔로 돌아가서 오늘은 좀 근사한 저녁을 먹어 보죠! 풀코스로 제가 쏩니다!”
내친김에 기분도 냈다.
그래 봤자 최하급 차원석 몇 개의 값을 쓰는 수준이겠지만.
“갑시다!”
“가즈아아……!”
그렇게 파란만장했던 J-811 던전이 끝났다.
동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나 역시 폭풍 성장을 조용히 경험한 최고의 공략이었다.
‘이제는 S다.’
이제 랭크의 알파벳에 ‘S’를 차곡차곡 붙여 나갈 때가 왔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 * *
30분 후.
팀 오사카의 상징으로도 불리는 ‘팀 오사카 스카이 타워’에는 마리나와 토시오가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가족으로서 평범한 일상 얘기를 나누던 두 사람이었지만.
J-811 던전을 관리하는 관리자로부터 새로운 소식을 듣는 순간, 집무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스카이 타워의 최상층.
오사카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창문 앞에 서서 토시오가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마리나, 네 말대로 명불허전이구나. 어떻게 저 인원으로 던전을 공략한 거지? 역시 강신화인가.”
“오빠, 말했잖아. 강신화는 시작부터 많은 것이 다른 사람이라고. 상식을 거부하는 사람이야.”
“솔직히 던전 공략 승인을 하면서도 중간 낙오라든가 추가 지원 요청을 기대했다만.”
“설마 그럼 비상지원 팀까지 꾸려 놨던 거야?”
“물론이지. 애매하게 던전 공략을 끝낼 순 없으니, 요청만 하면 추가 인원을 파견할 생각이었다.”
“강신화 씨의 실력을 안 믿어도 너무 안 믿었네, 오빠가!”
“그러게 말이다. 전략분석 팀에서는 팀 미스틱의 공략 성공 확률을 0.1%라고 계산했었으니까.”
“오빠……. 상식이 강신화라는 사람에게는 안 통한다니까?”
“이제 확실하게 깨달았다는 거 아니냐, 마리나. 어쨌든 정말 놀랍군.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어.”
“강신화 한 사람 때문에 대한민국 각성자 질서의 판도가 바뀌었어. 이 정도면 말 다했지.”
“함께 ‘시크릿’ 던전을 공략하기에는 손색이 없는 실력자라는 생각이 드는군.”
토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크릿 던전은 일전에 신화에게 언급했던 정체불명의 던전을 일컫는 말이었다.
생겨난 이유도, 그 내부에 숨어 있는 존재도 전혀 알 수가 없는 베일에 싸인 던전.
하지만 변수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출구가 닫혔다면서? 차원문이 검게 변해서 입장하려고 하면 밀어낸다고 들었는데?”
“맞아. 귀한 손님이 온 김에 들어가 볼 수 있나 했는데……. 다음에 열릴 때로 미뤄야겠지 싶다.”
토시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시크릿 던전은 단순하게 랭크가 높다고 해서 공략을 시도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신화처럼 다재다능한 적응력과 대응력을 가진 각성자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J-811 던전 공략으로 사전 검증은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알 수 없는 이유로 던전의 입장이 막히는 바람에 강제로 공략을 연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나저나 오빠, 골든 스카이에서 강신화 씨에게 도대체 무슨 일인 걸까? 단순한 호기심 같지는 않았는데.”
마리나가 운을 뗐다.
골든 스카이.
대격변 이후, 호주 길드 서열 1위 자리에서 단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는 굴지의 길드다.
여기서 신화를 만나러 온 사람은 골든 스카이의 한국, 일본 접촉 권한을 갖고 있는 아일라 블란쳇 팀장이었다.
일전에 신화의 마력 포션 공개 경매에서도 마주친 적 있는 여자이기도 했다.
팀 오사카와 골든 스카이는 오랜 전략적 협력 관계였기 때문에 관계가 매우 돈독하기는 했다.
“글쎄, 길드 스카우트 건일까?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강신화에게는 전혀 의미 없는 제안일 텐데.”
“그러게. 까칠한 아일라 블란쳇의 관심을 끌었다고 생각하니…… 호기심이 들기는 들어.”
영문을 모르는 두 사람은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골든 스카이의 ‘거물’이 신화를 막 만나기 직전이었다.
* * *
그날 밤.
“이건 완전 의외인데.”
동료들과 최후의 만찬에 버금갈 정도의 호화로운 저녁 식사를 끝마치고 난 뒤.
우리는 각자의 객실로 돌아가서 세상 편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 역시 욕조에 잔뜩 넣은 입욕제의 향기를 즐기며, 혈투의 여독(餘毒)을 푸는 중이었다.
한데 윤별이를 통해 긴급 연락이 왔다.
업무차 팀 오사카의 간부들과 만남을 가졌던 한 여자가 나를 꼭 만나 보고 싶다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이름은 아일라 블란쳇.
모르고 싶어도 절대 모를 수 없는, 전생에 나인 로드 멤버로 함께했던 동료의 이름이었다.
그녀의 이름을 듣고 반갑기보다는 께름칙한 느낌이 든 이유는 하나.
‘그럼 호주의 그분도 사도 중 한 명인 겁니까?’
‘맞습니다. 호주의 서열 1위 길드인 골든 스카이 길드에 소속된 그분. 우리의 또 다른 동료지요.’
일전에 일라이저 그룹의 벨릭을 만났을 때, 그가 수수께끼처럼 남긴 단서 때문이었다.
사도의 정체를 밝힐 수는 없으나 골든 스카이 길드에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가능성은 SSS랭크의 길드 마스터인 제이콥 우드워드가 훨씬 높기는 하지만.
“흠.”
거울 앞에 선 나는 반지를 착용했다.
이 반지가 그녀가 사도인지, 벨릭 같은 추종자인지, 아니면 무관한 사람인지를 판별해 줄 것이다.
서로 공명하는 암흑 기의 강도로 판단하면 되기 때문이다.
아케로의 의안은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만약 아일라가 사도라면.
일라이저나 벨릭과는 이미 안면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장이 별 의미가 없었다.
‘아닐 거야, 아니겠지.’
이번의 만남으로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사라지길 바랐다. 그러나 만약 가능성이 현실이 된다면…….
‘배신자.’
전생에 전 세계를 구한 아홉 명의 영웅!
바로 나인 로드 내부에 변절자가 있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한데 바로 그때.
기분 탓일까?
아니면 일본에서 종종 일어나는 작은 지진 때문인 걸까?
프스스.
반지가 테이블 위에서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