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77)
만렙 회귀자입니다만-177화(176/300)
제 177화
중요한 건, 아직까지 아무도 나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회귀자에 대한 인지가 그 누구에게도 없었다. 당연히 생각조차 못하고 있겠지.
‘머리털 빠지는 고민은 질색인데…….’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하지만 분명히 설계는 필요하다.
벌레를 한꺼번에 다 때려잡으려면 영리하게 약을 쳐야 하는 것은 맞으니까. 잘 생각해야 한다.
“후아!”
나는 ‘다행히’ 멀쩡한 침대에 드러누워서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크리비아 아일랜드 앞에서 진보미와 함께 거닐던 백사장과 에메랄드빛 바다를 떠올렸다.
상상만으로도 좋았다.
그 상상 속에서 나는 섬에 호화롭게 지어진 별장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시설을 보았다.
넓은 수영장.
소소한 취미 생활을 위해 만들어진 대형 VR룸.
최상의 몸 상태로 유지시킬 최고급 훈련 시설과 고강도 회복실.
해안가에 쭉 늘어선 보트와 유사시를 대비한 적절한 방어 시설들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계획대로만 진행되면 지상낙원이 될 공간이 지금도 인부들의 구슬땀 속에 건설되고 있다!
“이놈의 은퇴를 아예 금기어로 하든가 해야지, 은퇴만 떠올리면 꼭 이런 거지 같은 일이 생기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마치 나를 내려다보는 신이 ‘은퇴’라는 달콤한 열매를 앞에서 보여 주고, 줬다 뺐다를 하는 듯하다.
“아…… 망할, 잠도 안 오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침대에 누워 잠이라도 청하려 했는데, 눈이 말똥말똥했다.
바로 그때.
토시오에게 연락이 왔다.
“강신화입니다.”
-토시오입니다. 잠깐 통화 괜찮으신가요?
“물론입니다.”
-일전에 말씀드린 시크릿 던전 건에 대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취소인가요?”
토시오가 아직 나를 신뢰하기 힘들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었다.
변심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소유 던전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게…… 시크릿 던전의 차원문이 봉쇄됐습니다. 접근이 불가능하게 됐지요.
“차원문이 닫혔다고요?”
-정확히는 열려 있는데, 들어갈 수가 없는 겁니다.
“…….”
시크릿 던전도 내게 상당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재다.
기존의 던전과 특성을 달리하는 그곳에는 분명히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다음에 열리게 되면 그때 다시 참여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차원문이 입장객을 거부하는 데 도리가 있나요. 순리대로 가야죠. 하하하.”
-저희의 거리가 멀지 않은 만큼, 긴밀하게 연락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시겠지요?
“팀 오사카의 연락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예, 수고하십시오.
시크릿 던전 공략은 이렇게 해서 다음으로 미뤄졌다.
차라리 잘됐지 싶었다.
아일라와의 일로 인해 심사가 뒤틀릴 대로 뒤틀린 상황이라 전투에도 얼마간 영향이 있을 듯했다.
물론 감정에 휩쓸려서 일을 그르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내가 무책임하지는 않으니까.
다만.
하루나 이틀 정도 그녀가 내게 준 충격을 소화하고, 지워 낼 시간은 꼭 필요할 듯했다.
“펜타나즈……. 일라이저 그리고 아일라. 나머지 세 명의 빌어먹을 사도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나는 아직 베일에 가려 있는 물음표 속의 인물 셋을 떠올리며, 다시금 눈을 감았다.
바로 이놈들이 내 은퇴의 최대 장애물이었다.
* * *
같은 시각.
“아빠! 아빠아아!”
“소희야, 자다 말고 갑자기 왜 그래?”
“꿈! 기분 나쁜 꿈을 꿨어! 꿈속에서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아저씨들이 날 막 쫓아오고 있었어!”
“우리 딸, 악몽을 꿨구나. 이리 와. 아빠가 안아 줄게!”
“응!”
요즘 제법 많아진 잡념을 없애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던 장동식이 딸 소희를 꼭 껴안았다.
올해로 여덟 살이 된 딸은 벌써부터 영재 소리를 들을 만큼 총명하고 명석했다.
그런 점은 생전의 엄마를 쏙 빼닮은 것이었는데, 외모 역시 엄마를 닮아서 무척이나 예뻤다.
그래서 장소희를 볼 때면 늘 죽은 아내 생각이 나는 장동식이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래도 아내의 얼굴은 늘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잊히지 않았다.
“아빠, 이게 뭐야?”
장소희가 캔버스에 그린 그림을 가리켰다.
유화 물감을 이용해 선 굵게 그린 그림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거? 아빠의 꿈속을 그린 그림이야. 신기하지?”
“응! 이 동상은 뭐야? 엄청 멋있게 생겼어!”
“아빠의 꿈속 나라에 살고 있는 영웅의 모습을 동상으로 만들어서 그린거지! 신기하지?”
“응! <반지의 제왕> 같은 데서 보는 그런 동상 같아! 엄청 멋져!”
“우리 소희, 얼마 전에 영화를 보고 나더니 푹 빠졌구나?”
“맞아! 너무 멋져!”
장소희가 신기한 표정으로 그림 속의 풍경을 감상했다.
그림 속의 모든 것이 현대 문명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딸에게는 꿈속의 나라라고 둘러대긴 했지만.
사실 장동식의 그림 속에 담긴 세계는 그가 10년 전까지 온몸으로 느끼고 겪었던 세상이었다.
다만 이제는 되돌아갈 길이 없기에 그림 속에 그 추억을 남길 뿐이었다.
‘여보, 당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내게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것 하나는 꼭 약속해 줘요. 우리 소희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 준다고. 무엇을 생각하든…… 꼭 딸을 우선으로 생각해 줘요. 그럴 수 있죠?’
‘미안해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고 싶었는데, 하늘은 뭐가 그리 급한 건지…….’
장소희를 보고 있으니 사별(死別)한 부인이 남겼던 유언이 떠올라 그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졌다.
그렇게 부인을 떠나보낸 이후.
장동식은 삶의 모든 것을 오로지 딸에게만 맞추고 살아왔다.
딸이 하고 싶어 하고, 누리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해 줄 수 있도록 닥치는 대로 제작에 임했다.
구매자가 선인인지, 악인인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많은 돈을 주면 그것으로 장땡이었다.
그 덕분에 장소희는 영재를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교사 밑에서 영재 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다.
또래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진즉에 끝낸 지 오래였다.
바로 그때.
“아빠! 이 반지 내가 껴도 돼?”
장동식의 작업실을 열심히 돌아다니던 장소희가 전신상의 오른손에 끼워진 반지를 가리켰다.
“그 반지는 아빠가 필요해서 끼워 둔 거야. 건드리면 안 된다, 소희야.”
“알았어요, 아빠. 죄송해요.”
“갑자기 어색하게 존대는 왜?”
“순간 아빠 눈빛이 엄청 무섭게 바뀌었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아이고, 우리 딸. 미안하다.”
장동식은 소희를 따뜻하게 끌어안아 주며, 전신상에서 꺼낸 반지를 별도로 만들어 둔 금빛 상자에 집어넣었다.
“…….”
잠시, 장동식의 시선이 상자에 담긴 반지의 외형에 멈췄다.
금빛 독거미 문양.
그것은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자신의 출신에 대한 증명이었다.
* * *
팀의 귀국 일정이 잡혔다.
시크릿 던전 공략이 취소된 마당에 더 이상 일본에 머물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까지 푹 잔 뒤.
간사이 공항에서 정오 무렵의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일정으로 비행기편 예약까지 마쳤다.
[다들 푹 쉬고 아침에 봅시다!]라는 신화의 전체 메시지가 팀 미스틱의 단체 톡방에 올라갔고, 모두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지만.
밖으로 산책을 나온 신화는 청개구리처럼 휴식하지 않고 훈련하는 팀원 하나를 발견했다.
윤별이였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새벽에는 호텔에 있는 훈련실도 문을 닫기 때문에 윤별이는 호텔 인근의 공터에 나와 있었다.
불빛이라고는 멀찍이 있는 가로등 불빛과 달빛이 전부인 어두운 공간이었지만.
그녀는 구슬땀을 흘리며 자신만의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누나, 뭐 해요?”
“이번 던전 공략에서 너무 아쉬웠던 점이 많아서. 보완하기 위해서 복기와 함께 훈련 중이었어.”
“쉴 땐 좀 쉬지 그래요?”
“나는 극한까지 밀어붙일 때 왠지 모를 희열과 쾌감을 느껴. 그래야 더 성장하는 것 같아.”
“그거 되게 어감이 이상하게 들리는 거 알죠?”
“호호, 확실히 고생을 자처하는 타입이 맞는 듯해.”
윤별이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틈만 나면 드러눕고, 집에 처박혀 쉬고 싶어 하는 신화와 달리.
윤별이는 항상 워커홀릭이었다.
업무를 붙잡고 있거나, 그럴 업무가 없으면 훈련이라도 해서 몸을 혹사하는 타입이었다.
집에는 그 흔한 TV도 없다고 했다. TV를 볼 시간에 훈련이든 일이든, 뭐라도 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란다.
“마침 잘됐다.”
“응? 뭐가 잘돼요? 난 그냥 산책 나온 건데. 훈련 보려고 나온 거 아니에요.”
“그러지 말고 동선 좀 봐줘. 계속 변주를 주는 동선인데, 이게 충분히 유효할까 궁금해서.”
“누나, 나는 누나 같은 암살 전문이 아닌데요? 봐주는 게 의미가 없을 텐데?”
“내 눈보다 백 배, 아니 천 배는 나을 거라고 확신해. 이리 와서 좀 봐줘!”
살갑게 신화의 손을 잡아끌기까지 하는 윤별이의 눈빛에는 투지와 열정이 가득했다.
평소에는 말수도 적고 조용한 그녀인데, 오히려 훈련을 하니 말도 더 많아진 느낌이었다.
사실 겸손을 떨기는 했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분명 안목이 있는 것은 맞았다.
회귀하기 전까지 수많은 전장에서 쌓아 온 수십 년의 경험을 이 세계에서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없기에.
“신화야.”
“네?”
“네가 지금까지 내게 해 준 조언은 전부 뼈와 살이 됐어. 진심이야. 그래서 네가 내게 해 주는 말 한 마디가 너무나도 소중해.”
“허투루 말했던 것들은 없었죠.”
“응. 네가 곁에 있을 때 뭐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 팀에 묻어가는 민폐는 끼치고 싶진 않아.”
윤별이의 진심이 느껴졌다.
팀에서 반드시 자신의 몫을 해내겠다는 의지도 마음에 들었다.
전투는 성공적이었어도, 자신의 기여도가 낮으면 속상해하는 것이 그녀의 성격이기도 했고.
‘차라리 이참에 윤별이를 무강 대륙의 은아민 녀석과 비슷한 스타일로 방향성을 잡아 줄까?’
은아민.
신화가 무강 대륙인과 만든, 잊을 수 없는 인연 중 하나였다.
물론 1순위는 자신의 엄청난 괴력의 핵심을 만들어 준 나인 로드의 묵철 녀석이지만.
은아민은 나인 로드의 일원은 아니었지만, 우리를 도와줬던 조력자 중 하나였다.
일초-살(殺)!
적의 목숨을 빼앗는 데 일격이면 충분하다는 은아민의 공격에는 뒤가 없었다.
정말 오늘, 아니 바로 이 순간만을 사는 사람처럼 첫 번째 공격에 모든 것을 담았다.
“누나.”
“응?”
“꾸준히 지속적으로 상대를 괴롭히고 싶어요, 아니면 일격에 상대의 목을 따고 싶어요?”
신화가 직설적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자 윤별이가 바로 답했다.
“난 후자가 좋아. 내가 꿈꾸는 목표이기도 하고.”
“좋아요. 그럼 맞춤형 훈련으로 새롭게 해 보죠.”
“슈트 챙겨 입을까?”
“아뇨. 이 훈련은 무의식 속의 방어기제를 모두 내려 놔야 해서요. 맨살로 훈련할 겁니다.”
“……반팔 면티에 트레이닝복 차림인 이대로?”
“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지 못한 각성자는 절대 상대를 일격에 죽일 수 없어요.”
신화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