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83)
만렙 회귀자입니다만-183화(182/300)
제 183화
-시간이 좀 걸릴 수는 있습니다만, 던전 외에서 구해 온 식물도 키워 낼 수 있습니다!
“뭐라고? 그게 사실이야?”
이 제안은 앞서 고민할 여지를 줬던 말과 달리,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디엔트의 말대로라면!
지금은 쉽게 구하기 힘든 독초 카트라를 위시한 다양한 풀을 키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입니다! 제가 녀석에게 축복을 내리면 비옥한 토지 위에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지요.
“X소리면 죽는다?”
-죽기 싫어서 이러고 있는데, 설마 제가 죽을 소리를 지껄이겠습니까…….
신화의 위압적인 한 마디에 디엔트가 수액을 눈물처럼 뚝뚝 흘렸다.
‘이럼 얘기가 다르지. 카트라나 마도나스를 여기서 재배할 수 있다면 정말 얘기가 달라져.’
생각지도 않았던, 하지만 매우 유의미한 전환점이 생긴 듯했다.
전생에도 식물형 몬스터를 만난 적은 있었지만, 이런 자립형 몬스터는 없었다.
단지 타입이 ‘식물형’이었을 뿐, 그 나름의 특성을 가진 녀석은 없었던 것이다.
즉, 디엔트 같은 녀석을 만나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기의 던전 – 더미 던전이지만 – 을 가지고 있고, 식물 육성까지 가능한 존재는 말이다.
“좋아. 제안을 받아 주지. 대신에 아까 그 차원석을 남김없이 좀 뱉어 줘야겠어.”
-헤헤, 그거야 어렵지 않죠.
“헤헤라니, 왕…… 치고는 참 무게감이 너무 가벼워졌네.”
-이 풀떼기 놈들 앞에서나 왕이지 뭐, 형님 앞에서는 그저 친근한 나무 아니겠습니까?
언제 또 내가 형님이 된 걸까?
신화가 팔짱을 끼고서 엄격, 근엄, 진지한 표정을 하자.
디엔트는 수줍은 표정을 짓고서는 몸 여기저기로 뻗은 줄기를 하나씩 잘라내기 시작했다.
이는 마치 도마뱀이 자신의 꼬리를 끊어 내듯, 손쉽게 이루어지는 ‘절단’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절단된 디엔트의 가지들이 쪼그라들 때마다.
“오…….”
신화 앞으로 극상급 차원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개당 가격을 최소한으로 잡아도 100억 원은 족히 넘는 극상급 차원석의 향연이었다.
* * *
그로부터 2시간 후.
“고생했어. 이 정도만 남겨 두어도 네가 다시 키우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비는 늘 부족하지 않게 하늘에서 내리니까요.
“든든하게 챙겼군.”
절로 흡족한 표정이 지어졌다.
디엔트에게서 얻은 극상급 차원석의 개수만 무려 15개에 달했다.
녀석은 죽지 않았지만.
사실상 죽어 남긴 전리품을 획득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덕분에 제작에 들어간 차원석의 대부분을 충당하고 아공간에 보유한 잔여량은 23개가 됐다.
챙길 건 다 챙겼다.
남아 있던 근력초 일부와 아르케네스도 캤고, 마력 증진용 레시피에 필요한 식물도 챙겼다.
다 섞어서 먹는다면 맛은 더럽게 없겠지만,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효과는 확실할 듯했다.
“그럼 조만간 다른 식물을 구해 올 테니까 갖고 오면 키울 수 있도록 자리를 준비해 놔.”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식물의 왕이라더니 이래서야 말 잘 듣는 ‘딸랑이’ 하나를 얻은 느낌이다.
샤미가 친구 클로이를 통해 알아 온 덕분에 정말 유의미한 전환점이 생겼다.
물론 디엔트의 말에 따르면, 던전 외부 식생은 적응에 시간이 걸린다고는 한다.
하지만 국외로 가지 않고서, 또 껄끄러운 라이선스 발급 과정 없이도 재료 수급이 가능하다면?
어지간해서는 귀찮은 일을 질색하는 내게는 최적의 조건인 셈이었다.
-형님!
“응?”
-다음 주부터는 햇빛이 아닌 달빛이 내리는 시기가 옵니다. 그때면 새로운 녀석이 생길 겁니다.
“식생이 바뀐다는 거야?”
-예, 그렇지요.
“헐…….”
아무 생각 없이 디엔트를 죽였으면, 새로운 볼거리를 놓칠 뻔했다.
언제든 자신을 죽일 수 있는 나를 두고 헛소리를 지껄일 리는 없으니, 얘기가 재밌어질 듯하다.
“어쨌든 조만간 다시 올 테니까 잘 키워 놓고 유지하고 있어. 알겠지?”
-예! 명심하겠습니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맛있는 물이나 좀 구해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았어. 비싼 물을 내가 좀 알고 있는데, 그걸 갖다주지.”
-헤헤, 감사합니다!
E로 시작하는, 편의점에서도 제법 비싸게 파는 고급 생수.
그것을 떠올리며 나는 든든해진 아공간과 함께 더미 던전을 나섰다.
‘이제 남은 것은…….’
공식적으로는 더미 던전을 개인이 소유할 수는 없었다.
물론 KSA에서 논외로 두고, 특별 승인을 해 줄 경우는 가능하다.
‘인맥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법이지.’
나는 미련 없이 바로 이하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불법은 저질러서는 안 되지만, 적당한 편법과 우회 방식은 삶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지혜이기도 하니까.
* * *
얼마 후.
“이런 기분 좋은 자극이라면 휴식을 방해해도 불만이 없지.”
하수관 밖으로 나온 나는 개변이 완료된 근육의 상태를 느끼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온몸이 근육질이 됐다.
물론 근육 돼지, 괴물이라 불릴 법한 그런 모습으로 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전신 근육을 내 뜻대로 컨트롤할 수 있게 된 만큼, 협응 능력이 극대화된 것이 강점이다.
“어디 보자…….”
후웅! 후웅!
화아악! 파아악!
여기저기로 힘주어 가상의 공격 동작을 이어 가며, 내 상태를 다시금 점검했다.
그리고 기본적인 체술을 비롯한 근력을 활용한 기술에 대한 확인을 충분히 끝내고 난 뒤.
“현재 내 상태면 이제 SS-랭크의 각성자까지는 밀리지 않고 버틸 수 있겠어.”
보수적인 판단이었다.
쉽게 말해 SS-랭크를 상대로 싸워도 죽지 않을 자신이 있으며, 경우에 따라 이길 가능성도 있다고 본 것이다.
방심하지 않고서 충분한 도핑과 함께 전투에 임한다면 SS+랭크와의 장기전도 충분히 해 볼 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를테면 주천호와 같은 각성자 말이다. 그가 딱 SS랭크로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들어맞았다.
“이왕이면 하루빨리 SSS, EX랭크도 맞먹을 정도로 성장했으면 좋겠네. 감질맛 나서야 원.”
입맛을 다셨다.
남들은 초고속, 아니 압도적인 성장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것이 일상사이지만.
나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내가 욕심이 많기는 많은 모양이다.
은퇴 욕심만큼이나 돈, 랭크 욕심도 많아서 빨리빨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그래야 나중에 은퇴하더라도 나를 아무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테니까.
“좋아. 아주 좋아.”
근육 개변이 뭔가 2%의 아쉬움이 있었던 신체 제어에 확실한 마침표를 찍어 준 느낌이다.
또 근육 개변은 신체의 전반적인 저항력을 높여 주기에 액체화 재능과도 궁합이 좋았다.
아마 실전에 임하게 되면, 전보다 2할에서 3할 이상의 충격량을 더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2, 3차로 개변할 부위가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이 정도면 1차 개변은 거의 다 끝난 셈이 됐다.
손톱, 발톱 개변이라든가.
방광이나 소장, 대장 개변 같은 것도 있지만, 딱히 소화나 생리 활동에 불만이 없으니 급하진 않았다.
이제 근육 개변으로 확실한 기틀이 마련되었으니 근력 운동과의 시너지도 좋을 터.
홈 트레이닝으로 할 수 있는 좋은 운동 프로그램을 몇 개 더 추가해야겠다.
집에서 하는 운동은 하다가 귀찮으면 언제든 쉴 수 있는 속 편한 운동이니까!
퍽퍽퍽. 팍팍팍.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약속했던 대로 샤미와 클로이를 위해, 특제 츄르를 만들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한 번도 키워 본 적이 없던 내가 이제는 수제 간식을 만들고 있는 꼴이라니.
웃기기도 하면서, 동시에 샤미와도 정이 많이 든 것 같아서 기분도 좋았다.
재료야 넉넉하게 있었기에 나는 츄르를 대량으로 만들고 있었다. 만드는 김에 뽕을 뽑을 생각으로!
닭 안심, 무염 멸치, 찹쌀가루를 기본으로, 얇게 저민 가다랑어포를 추가해 줬다.
언뜻 보기엔 별 재료가 안 들어간 듯 보이지만, 먹고 나면 그 어떤 고양이도 맥을 못 추는 마약이었다.
“일단 오늘 치 포상이야. 약속한 대로 매일 한 움큼씩 먹을 수 있게 내가 잘 포장해 놓을게.”
-신화, 정말 고마워!
“맛있었으면 좋겠다.”
냠냠. 그릉그릉. 냠냠.
츄르를 담아 놓은 통에 아예 코를 박은 클로이가 열심히 츄르를 먹기 시작했다.
먹는 건지, 마시는 건지.
보는 사람이 헷갈릴 정도로.
“나는 좀 자야겠다. 샤미, 더 먹고 싶으면 만들어 놓은 거 꺼내 먹어. 알지? 이 버튼 누르면 알아서 그릇 내려오는 거.”
-응! 맡겨 둬! 잘 자, 신화!
“클로이는 네 방에서 자고 가도 괜찮으니까 자고 가라고 해.”
-진짜?
“그럼 진짜지, 가짜겠냐. 나 적당히 몸만 씻고 바로 잔다.”
-알았어!
으애오오오옹!
샤미와 클로이의 기분 좋은 인사를 뒤로한 채, 샤워실로 향했다.
땀내와 살짝 몸에 밴 듯한 하수관의 역한 냄새를 씻어 내고, 바로 낮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잠만 잘 거다.
* * *
꼬박 스물네 시간을 잤다.
근육 개변으로 몸에 피로가 단숨에 누적된 탓인지 정말 꿀맛 같은 잠을 잤다.
신체에 누적된 피로나 육체적인 과부하의 회복을 촉진하는 A랭크급 아티팩트인 ‘라키스 팔찌’가 있음에도 오래 잔 것을 보면.
확실히 개변이 몸에 주는 부담감이 적지는 않은 듯했다.
아마 나중에 초월의 꽃 하나를 더 먹고 뇌 개변을 마무리하고 나면, 며칠 동안 잠만 잘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사용해 왔던 뇌와 전혀 다른 형태로 거듭난 ‘슈퍼컴퓨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밤에 잤는데, 일어나니 날짜만 하루 뒤로 밀린 똑같은 밤이었다.
혹시나 해서 샤미의 방에 가 보니 샤미는 자신의 전용 침대에서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클로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녀석에게 편한 공원으로 되돌아 간 모양이었다.
“역시 스마트폰을 꺼 두는 게 최고야.”
꺼 둔 덕분에 연락이 와도 알 방법이 없으니 정말 푹 잤다.
논의 사항이 있다면 윤별이와 사전에 먼저 협의하게 되어 있어, 내가 딱히 처리할 일도 없고.
“후우, 하아, 후우, 하아.”
근육 개변으로 강화된 몸 상태도 테스트할 겸 가볍게 푸시업을 해 보았다.
예전에는 한 손은 뒷짐 지고 다른 한 손은 손가락 세 개를 이용해서 푸시업을 했는데.
이제는 엄지와 중지로도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무리를 느껴지는 부분도 전혀 없었다.
“나중에 실전에 써먹어 보면 알겠지.”
결국 개변의 효율성을 테스트하기 위해서는 전투가 필수였다. 상대가 몬스터든 각성자이든.
얼마 남지 않은 3월 달력.
이제 4월이 코앞이었다.
“……진짜 바빠지겠네.”
갑자기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4월에는 니콜라스를 대신해서 개입하기로 마음먹은 두 개의 큰 사건이 있다.
첫째는 중국 3대 적폐 길드가 벌이는 희대의 패악질인 기생충 물약 사건이고.
둘째는 유럽 각성자 협회와 미국 각성자 협회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내전이다.
아직은 3월이 며칠 남아 있는 만큼, 짧은 휴가라도 알차게 즐길 생각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크리비아 아일랜드 쪽에서 공사 진행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사진을 첨부한 메일이 오지 않았을까 싶어 스마트폰을 켰다.
관계자가 보낸 현장 사진만 잽싸게 확인하고 곧바로 스마트폰의 전원을 끌 생각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이 타이밍을 맞춘다고?”
마치 내가 전원을 켤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칼같이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 이하성.
이름만 봐도 숨이 턱 막힐 것만 같은 남자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신화 씨, 지금 혹시 여유 있으십니까?
오밤중에 전화를 걸어 느닷없이 여유 있는지를 묻는 남자.
젠장.
왠지 느낌이 안 좋아.